착하고 충성된 00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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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가끔 보다보면 부모님 말을 참 잘듣는 아이들을 보곤 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어찌나 성격이 온화한지 착하고 또, 순합니다. 이런 아이들을 순종적인 아이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순종에도 질이 있습니다. 어떤 순종은 기꺼이하는 순종이 있고, 어떤 순종은 강제로 하는 순종이 있습니다. 짐승을 예로 들어봅시다. 맞으면서 훈련받은 짐승은 맞기 싫어서 순종합니다. 그러나 맛있는 간식을 먹으면서 훈련받은 짐승은 간식을 먹고싶어서 순종합니다. 순종할 때 마음이 다르죠. 억지로 하는 순종이 있고 기꺼이 하는 순종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순종을 한다고 해서 그게 다 기꺼이 하는 순종은 아닙니다. 어떨때는 기꺼이 하고, 어떨 때는 보상을 바라고 하며, 어떨때는 무서워서 말을 듣고, 또 어떨 때는 그냥 부모님이니까~ 순종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순종하는 아이들을 보고 ‘철들었다.’라고 말하는 부모는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왜그럴까요? 철이 들었다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사전에 의하면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철든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철든 자식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자식은 대게 부모가 되어 봤을 때, 부모의 심정을 조금씩 알아가며 조금씩 철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이 아무리 부모님께 순종한다고 한들 철이 드려면 한 참 먼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말 듣는것이 아니라, 마음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주인의 마음을 헤아린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라! 이것은 1차원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주인양반이 타국으로 먼 길을 떠나기 앞서서 종 세 사람을 불러다가 각각 돈을 맡겼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마지막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때 다섯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생각합니다. ‘아 주인께서 이 돈을 맡긴 이유는 이걸 잘 관리해서 결산하기 위함이구나!’ 그래서 그 돈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처럼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전혀 딴 생각을 했습니다. ‘에이 나에게 왜 이런걸 맡긴거야 귀찮게~’ 그러고서는 달란트를 가져다가 땅에 묻어두고 말았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입니다.
시간이 오래오래 흐르고 주인이 먼길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종들을 찾아가서 결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다섯달란트, 두 달란트를 열심히 불린 종들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이윤을 남기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원금만 유지해도 잃은것보단 낫죠. 그러나 책망받은 이유는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해했기 때문이죠.
착하고 충성된 종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할 수 있고, 영광돌릴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착하고 충성되다를 조금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착하다 입니다.
흔히 착하다라고 생각하면 성격이 좋다는 정도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착하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착하다는 창세기에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여기에 나와있는 좋았더라! 이 말과 오늘 본문에서 읽은 착하고라는 말이 같은 말입니다. 이 단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최상품 과일에 붙이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칭찬 중에 최고의 칭찬 모든 것을 통틀어서 좋을 때 이 표현을 씁니다.
천지 창조에도 이 표현이 쓰인 것입니다. 천지 만물이 하나님 말씀대~로 지어졌을 때 좋다! 하셨습니다.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순종했을때 하나님이 심히 좋구나! 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인이 다섯달란트를 맡긴 종을 보고 아 이 종은 내 마음을 알았구나! 싶었을 때 착하다!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악한 종에게는 뭐라고 하셨을까요?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하셨습니다. 이 악하다는 말도 창세기에 등장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바로 사람들이 타락해서 악해졌을 때 이 악하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탄식하셨습니다.
악하다는 표현은 창조의 목적을 빗나갔을 때 사용되었습니다. 한달란트 받은 사람도 주인의 마음을 오해하고 어긋나게 생각해서 악하다는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착하다 악하다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성격이 좋으면 착하다, 심성이 곱지 못하면 나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창조하신 목적에 부합할 때 착한다!,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을 때 악하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두 번째로 충성된 종아 할 때 무엇이 충성된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충성은 곧 신실하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새 번역입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잘하였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충성은 곧 신실함입니다. 맡겨진 일을 신실하게 돌보고 이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이 곧 충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죽도록 충성하라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죽는 그 날까지 끝까지 신실하라!라는 뜻입니다. 믿음을 빼앗기지 말고, 사명을 빼앗기지 말고, 소명을 잃지 말고! 신실하게 충성되게 살라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실한 사람은 나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충성', ‘헌신' 하면 딱 떠오르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왕의 충신이나 군대의 병사들이죠. 성경에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병사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한 번 읽어봅시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탁합니다. 너는 나한테 들은 것들을 신실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무엇을 부탁하느냐?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는 어떤 사람이냐?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병사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살림살이 걱정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병사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어떻게하면 상사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병사는 자기 삶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먹을거 마실거 입을거 걱정하느라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잘먹고 잘 살 일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병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명을 이행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신실하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좋~다!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보실 때 탄식할만한 사람입니까? 좋다! 할 사람입니까?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모습으로, 때로는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창조의 목적을 잊어버린채 세상에 얽매여서 살아간다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머리에는 죄악된 것만 가득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실하면 신실할수록, 하나님이 기뻐하는 신앙생활을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다해 살아가면 살아갈 수록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시편에도 보면 하나님께 헌신하는 주의 백성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헌신하는데 즐거이 헌신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즐거이 헌신하고 기꺼이 자원하는 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애굽에서 430년간 노예 생활을 마치고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출애굽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의 거주할 처소를 먼저 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모실 성말을 먼저 지었습니다. 성막을 짓기 위해서 애굽에서 가지고 나왔던 모든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자원하는 것이 바로 이 헌신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왔으므로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중지하고 와서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모세가 명령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이르되 남녀를 막론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그치니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백성이 너도 나도 주님께 헌신하니 성막을 만드는 자들이 나와서 너무 많이 가져옵니다. 멈춰주세요!라고 이야기할정도로 기꺼이 헌신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나타납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구원의 사건을 경험하고 헌신했습니다. 애굽으로부터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꺼이 헌신했습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했습니다.
두번째 특징은 그들의 삶 중심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습니다. 출애굽 백성들은 늘 성막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성막을 기준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정했습니다. 초대교회 백성들도 교회를 중심으로 자신의 물건을 통용했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마음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음의 중심인 사람들은 기꺼이 헌신할 수 있습니다. 내 기쁨이 주님의 기쁨이고 주님의 기쁨이 내 기쁨인 것입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일하셨고 영광받으셨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을 이야기하면서 세 가지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헤아린 다섯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모집한자를 기쁘게하는 병사, 그리고 기꺼이 헌신하는 주의 백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주인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경의로운 축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죄에 물들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던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과 한 마음 한 뜻을 품게 된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새 사람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새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 전에는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즐겁고 죄짓는 것이 즐겁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낫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안에서 모든 과거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래서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우리를 드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착하고 충성된 종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기를 더욱 힘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점점 끝날이 다가오고 주님이 오실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25장은 예수님의 말세 설교 중 일부입니다. 마태복음24장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조용히 나아와서 물어봅니다. 주님 마지막 날에는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그때 주님께서 마지막 날의 징조를 쭉 설명해주시다가 갑자기 달란트 비유를 제자들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 모두 주님이 언제 오실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끝까지 신실하게 사명을 다 했습니다.
열 처녀 모두 다 신랑이 언제 올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늘 주님 오실 날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언제 오실 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실하게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시고 나서 바로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때 오른편에 있는 양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다.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다. 헐벗었을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혔을 때 돌보았다. 그때 의인들이 대답합니다. 주님 우리가 언제 그랬습니까?
그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우리는 지극히 작은 일, 작은 사소한 일에도 신실하게, 작은 사람에게도 신실하게 행할때 하나님의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을 주님과 마음을 합하여 신실하게 행하시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중심에 모시고 충성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죄에 물든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구원하셔서 새 삶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섯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처럼, 기꺼이 헌신하는 주님의 백성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비전이 우리의 비전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우리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우리의 능력이 되는 삶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우리도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삶에 중심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