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6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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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313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본문 왕하 23:24-25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과 인내로 붙들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들을 하나님, 날마다 말씀 가운데 교훈하여 주시고, 때로는 책망하여 주셔서 어긋난 길로부터 돌이킬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주저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열왕기하 22 장과 23장의 말씀은 남유다 제 16대 왕인 요시아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함께 읽진 않았지만 왕하 22:2 에서는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앞으로 언급될 22장과 23장의 내용을 통해 요시야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8세에 왕위에 올라서 31년간 남유다를 다스렸다. 그는 즉위한 지 여덟째 되던 해에 성전을 보수할 것을 명하였는데, 이 때에 힐기야 제사장은 성전 보수를 하던 도중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왕에게 보였고, 왕은 그 말씀을 읽으며 지금 남유다의 상황이 하나님께서 명하셨던 율법의 내용과 너무나도 멀리 떨어졌음을 깨닫게 되어 그 비참함과 참담하에 자기 옷을 찢기에 이른다. 아마도 추측하건데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은 본래 언약궤 옆에 보관하였는데, 므낫세와 아몬의 극심한 우상숭배 정책으로 인하여 위기를 느꼈던 제사장 한 사람이 율법책의 보존을 위해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 감추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왕 요시야 때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숨겨졌던 율법책을 다시 찾게 하심으로 무너졌던 신앙을 다시금 회복하게끔 인도하시는 것이다.
이에 요시야 왕은 힐기야를 비롯한 다섯 명의 대신들을 파견하여 발견한 율법책의 말씀에 관하여 여호와께 묻도록 한다. 이에 여선지자 훌다는 두 가지 예언을 전하는데, 첫번째는 유다와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기록된대로 재앙을 내리시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요시야 왕의 경건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사 유다에 내릴 재앙은 그가 평안히 죽고 난 후에 내리시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요시야는 심판에 대한 메세지를 들었다. 자신의 왕국이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재앙을 맞게 되리라는 내용과, 또한 자신은 그와중에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진노가 내 때에 임하지 않으리라는 약속까지도 들었다. 그렇다고 하면 요시야 개인은 더이상 피해볼 일이 없다. 그냥 하던대로 하나님 잘 믿고, 평안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누렸어도 되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들을 보면 참 이상하다. 요시야 왕은 온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한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서 율법책을 낭독하고 온 백성들과 더불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그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요시야 왕은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감행하는데, 가장 먼저 성전부터 청결하게 정화한다. 왜 성전부터 개혁하였을까? 당시 성전은 므낫세와 아몬 왕의 치하에서 각종 우상과 우상을 위한 제단들로 더럽혀질대로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시야 왕은 종교개혁의 첫 출발로 성전 보수와 더불어 성전에 들어와 있던 온갖 우상들과 가증한 것들을 파괴함으로서 성전을 거룩하게 회복시킨 것이다.
성전정화를 시작으로 그는 이스라엘 전역으로 종교개혁운동을 감행한다. 먼저 요시야 왕은 유다 전역에 흩어져 산당에서 분향하던 제사장들을 소집하고 그들이 분향하던 산당들을 무너뜨리고, 그 이방 제사에 참여했던 제사장들을 구별하여 여호와 성전의 제단에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몰렉 신에게 인신 제사를 하던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힘으로 더이상 이곳에서 몰렉을 위한 인신제사가 드려지지 못하도록 조치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역대 유다왕들이 세웠던 각종 우상들과 제단들을 파괴하였고, 북이스라엘 왕이었던 여로보암이 벧엘에 수웠던 금송아지를 위한 산당과 그 단을 제하고,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으며, 사마리아에 있는 우상의 산당들과 산당의 제사장들까지 모두 죽여 불사른다.
어떻게 남유다 왕이 북이스라엘까지 종교개혁을 감행할 수 있었는가? 당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앗수르 제국은 신응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바벨론에 의해 패하여 겨우 나라만 유지되고 있던 실정이다. 따라서 당시 앗수르의 지배 하에 있던 북이스라엘 지역에는 통치 공백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요시야는 바로 이런 틈을 이용하여 자신의 통치권을 북이스라엘 지역까지 확대했고, 그 지역에까지 개혁 조치를 단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요시야의 개혁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철저하게 시행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그는 율법에 기록된 대로 유월절을 지키게 되는데, 성경은 사사시대 이후로 요시야 때 처럼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다고 할 정도로 요시야 왕이 얼마나 철저하게 유월절 절기를 지켰는지를 강조한다. 이는 그의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얼마나 크고 대단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24-25절 말씀은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대한 평가로서, 그는 율법에 기록된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말 그대로 최선을 다했으며, 그 결과 요시야와 같이 전심으로 모세의 율법을 지킨 왕이 역사 이래로 없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여러분, 요시야의 개혁은 말 그대로 유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물론 오늘 우리에게는 이 개혁운동이 참으로 귀한 회복의 운동이지만, 당시 우상의 문화에 찌들대로 찌든 백성들에게 이러한 개혁운동은 파격적인 일이었고,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일부 백성들의 반발도 거세었을 것이고, 사회적인 혼란도 일부 야기되었을런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요시야의 개혁운동에 대하여 너무나 급진적이고 국가의 안녕을 해치는 지혜롭지 못한 정책이었다고 평가했을런지도 모른다. 사람의 기준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요시야를 가리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했던 왕, 잘못되었던 모든 것들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키고자 했던 왕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이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이런 평가를 들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하나님의 율법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읽으면서 지금 남유다가 얼마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으로부터 타락했는지를 깨달았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들을 짓고 있는지를 발견했다. 이것을 깨닫게 되자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상황이나 형편이나 조건을 고려할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 죄로 물든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의 말씀이 지속적으로 들리지 않는다면 언제든 다시 죄로 치우칠 가능성이 있다. 내가 조금이라도 영적으로 둔감해진다면 나도 모르게 수렁속으로 빠져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을 주신다. 그 말씀을 들으며 말씀 앞에 나의 삶을 비추게 하셔서 내 안에 얼마나 부패한 본성이 자리잡았는지 깨닫게 하신다. 그 말씀을 통하여 나의 삶의 방향을 비추시고, 거룩한 목적을 품게 하시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그 길로 전력으로 달려가게 하신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왔는지를 깨달았을 때, 내가 얼마나 멀리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졌는지를 깨달았을 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반응은 무엇인가?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이나 상황이나 조건을 따질 것이 아니라, 즉각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서는 것이 우선이지 않겠는가? 내가 살기 위해서는 이것 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살아나려면 이것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무엇 고민하지 않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서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요시야 왕이 이처럼 철저하고도 즉각적인 개혁운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의 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들었음에도 그가 즉각 하나님의 율법대로 모든 것들을 회복하고자 했던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 길만이 생명의 길이요 이 길만이 구원의 길임을 그는 확신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연약함과 죄악을 깨닫는 자들이 보여야 할 합당한 반응은 지금 돌아서는 것이다. 다른 무엇 고려할 것 없이 즉각 돌아서는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던 중에 불이 났다. 빨리 나가야 한다. “이런 와중에 벗은 몸으로 어떻게 나가지? 밖에 알몸으로 뛰쳐나가다가 아는 교인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하지?” 라고 고민할 수 있는가? 지금 안나가면 죽는다. 이런 저런 고민할 여지가 없다. 그냥 바가지로라도 몸을 가린 채로 뛰어 나가야 산다. 물에 빠진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그토록 미워하던 저 인간이 나에게 밧줄을 던져준다. 지금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인가? 누가 던져주던 그 줄을 잡아야 산다.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죄성을 들추어내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깨우신다면, 지금 내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로부터 한참이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바로 그 때가 회개의 때이다. 바로 그 때가 회개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다른 것들을 고민하고 고려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지금 우리에게 돌이킬 것을 바라시기 때문이다.
성도 여러분, 요시야 왕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말 하나도 죄가 없는 거룩한 삶을 살았을까? 아니다. 그도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죄인이다. 그에게도 우리 못지 않는 수많은 죄의 유혹들이 있었을 것이고, 늘 연약함 가운데 넘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25절처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다고 평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말씀을 통해 순종하고 돌이키는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순종이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계속해서 여러분들 마음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여러분들 마음 가운데 계속해서 울리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있을 것이다. 돌이켜야 할 부분들을 말씀해 주시고, 보다 거룩한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도록 우리의 마음 가운데 그 말씀들이 울려퍼지고 있다면,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더 고민할 필요가 없다. 더 뜸들일 필요가 없다. 바로 지금이 하나님의 때임을 기억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라. 우리의 심령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서 즉각적인 순종으로 나아갈 때,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너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바라옵기는 이와 같은 즉각적인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 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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