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 죄를 이기라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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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지혜를 통해 끔찍한 대참사를 막은 한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죄는 정당한 요구가 좌절 될 때도 찾아온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죄는 정당한 요구가 좌절 될 때도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아까 함께 읽은 25장 다윗의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서 나발이 벌을 받게 되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24장의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는 본문과 25장의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는 본문 사이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다윗에게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을 때 다윗은 사울을 살려주는데 그 이유는 기름 부음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24장과 25장 둘 다 이런 이유로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다윗은 전쟁과 살육을 통해서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룰 사명을 위하여 왕이 되는 사람입니다. 다윗이 칼을 겨눌 때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원수들을 제거해야 할 때입니다. 이 외에 다윗은 자신의 무력을 함부로 휘둘러선 안됩니다. 다윗은 폭력을 통해 권력을 취하는 세상의 왕과는 다른 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을 살려 준 것입니다.
사울을 살려준 이 원리에 대해서 아주 잘 설명한 본문이 바로 나발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나발도 다윗 입장에서 죽일 수 있지만 죽이지 않은 사람입니다. 나발을 살려 준 이야기는 사울을 살려준 이야기와 연관이 있습니다. 왜 다윗이 사울을 제거하지 않았는지 우리는 나발 사건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발 사건은 사울을 살려준 두 이야기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독자 입장에서는 이 이야기가 “아 왜 사울을 살려주지” 그냥 쓱싹하고 다윗이 바로 왕이 되면 안되나?“ 하는 생각을 없애주는 역할을 합니다. 세상의 왕은 폭력을 휘두르고 권모술수를 쓰고 온갖 죄를 지으며 자기 욕망을 정당화 하지만 다윗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선지자 사무엘이 소천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뜬금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장면은 이제 다윗이 사무엘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느냐? 하는 그런 질문을 만들어 냅니다. 그 질문의 답은 나발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을 대체해서 하나님께서 또 지혜로운 사람을 붙여줄 것입니다. 바로 아비가일입니다.
본문은 사건을 설명하기 전에 나발과 아비가일이 어떤 인물인지 설명을 합니다. 2절에 보시면 나발은 부자인 사람이고 양 삼천마리, 염소 천마리를 키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성품에 대해서 성경은 완고하고 행실이 악한 사람이이라고 기술합니다. 3절 끝에서 나발이 갈렙족속이라고 설명하는데 갈렙족속이라는 히브리어 칼리비는 갈렙족속이라는 뜻도 있지만 개와 같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것은 이후에 나발이 얼마나 천박한 태도로 다윗을 대하는지 암시합니다. 그리고 나발과 달리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지혜롭고 용모가 아름다운 이로 설명됩니다.
4절을 보시면 나발이 그의 양떼의 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다윗이 듣게 됩니다. 이것을 듣고 다윗은 사람을 보내서 나발에게 수고비를 요청합니다. 다윗의 목자와 나발의 목자들이 같이 있을 때 다윗의 무리들이 다윗의 목자와 더불어 나발의 목자들도 보호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면 조폭들이 자기 구역에 상인들에게 보호비 명분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16절에 보면 여기에 대한 아비가일의 인식이 나옵니다.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이것을 보면 다윗이 조폭처럼 보호비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정당한 수고에 대해서 호의를 요청했다고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양을 먹이고 키울 때 광야는 그렇게 좋은 환경은 아닙니다. 밤낮으로 들짐승을 경계해야 하고 물이나 먹일 풀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목자간의 경쟁이나 갈등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가 서로 갈등을 일으켜서 롯이 분가를 하지 않습니까? 이삭도 우물을 팔 때마다 우물울 빼앗기는 것을 봅니다. 광야에는 도움을 줄 사람보다 경쟁자가 더 많습니다. 다윗은 이런 광야에서 자기 양을 지키는 김에 다른 이들의 양도 지켜주고 상대편 목자들과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목동 출신인 다윗은 광야에서 친구의 존재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잘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척박한 광야에서 만난 이들, 나발의 목자들을 잘 섬겼습니다. 그래서 나발이 양털을 깎고 축제를 할 때 호의를 요청했습니다. 고대근동에는 손님을 만나면 극진히 환대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살기가 어려운 곳이기 때문에 자기민족인 손님을 환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환대하지 못하는 것을 수치로 여겼습니다. 다윗은 이런 관습에 근거해서 정당한 호의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본문이 설명한대로 나발은 완고하고 악했습니다.
나발은 다윗의 요청을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10절에 보시면
다윗이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하면서 다윗을 무시합니다. 게다가 나발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니는 것을 갖고 비아냥거립니다.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다윗의 종들이 나발의 말을 다윗에게 전했습니다. 다윗은 사백명의 부하들에게 각기 칼을 차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태 나발에게 쓰지 않았던 무력을 사용하기로 결심합니다. 다윗이 나발의 양떼를 지켜주고 호의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나발로 인해 마음이 상했다고 칼을 든 것은 명백한 죄입니다. 나중에 나발이 하나님께 심판 받아 죽을 때에 다윗이 이 내용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39절에 보시면 다윗이 만약 화가 나서 직접 손을 써서 나발을 심판했다면 그것은 악한 행동이라고 다윗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적용)이렇듯 죄라는 것은 꼭 나쁜 마음을 계속 품다가 생기는 것뿐 아니라 어떤 실망감에서 생기기도 합니다. 이것이 나의 정당한 권리인데 나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좌절 되었을 때 우리는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생깁니다. 죄는 그렇게 먼 것이 아니라 가깝습니다. 죄는 내가 가지지 못한 어떤 것을 가지려고 하다가 짓는 것 뿐 아니라 내 손에 쥐어야 할 것을 못 쥐게 될 때 우리는 죄를 짓게 됩니다. 죄는 치명적이지만 우리에게 정말 가깝습니다. 이런 죄의 속성을 기억하며 경계해야 합니다.
2- 죄를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지혜다.
(설명) 그러면 이런 죄를 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본문에는 이런 죄를 억제할 수 있는 것을 지혜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윗이 나발의 집안을 몰살시키기 위해 칼을 들고 왔을 때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이 나섭니다. 아비가일은 급하게 예물을 챙기고 다윗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26절에 보시면 친히 복수하는 일을 여호와께서 말리셨다고 다윗을 설득합니다. 그리고 다윗을 축복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싸움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해 든든한 집을 세우시고 다윗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싸개 안에 있고 여호와께서 다윗의 원수들을 심판하시고... 이런 내용들로 축복합니다. 이 축복은 다윗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메시아의 계보를 잇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예언적인 축복입니다. 31절에는 만약 다윗이 나중에 왕이 되었을 때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거나 친히 복수하거나 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어떻하느냐 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다윗은 진정하게 되었습니다. 32절에 다윗은 아비가일을 보내서 그의 행동을 멈추게 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33절에 이번 설교의 핵심적인 부분이 등장합니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 지로다 오늘 네가 피를 흐릴 것과 친히 복수 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악에 받쳐서 칼을 든 다윗을 막은 것은 아비가일의 미모도 아니고 아비가일이 든 예물도 아닙니다. 그것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다윗의 죄를 억제한 것은 바로 아비가일의 지혜입니다. 아비가일의 지혜에서 나온 그 축복의 말이, 그리고 친히 복수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복수하신다는 그 이야기가 다윗의 칼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은 단순히 권모술수가 아닙니다. 사탕발림으로 인해 다윗의 노기를 누그려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 1장 7절에서 지혜에 대해 말할 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지혜는 단순한 처제술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비가일은 악한 이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손으로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 복수를 맡기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비가일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고 자신이 고백하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얻은 지혜를 다윗에게 말하며 다윗을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비가일의 지혜를 듣고 죄를 지으러 가는 발걸음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아비가일의 지혜를 통해서 다윗은 세상 왕처럼 폭력을 휘두르는 그런 왕이 아니라 메시아의 계보를 이을 수 있는 왕이 되었습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시고, 수치를 참으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이 말은 헛된 말이 아니었습니다. 말뿐인 말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복수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아비가일의 말은 맞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셔서 나발이 죽게 되었습니다. 아비가일의 지혜는 현실 가운데 역사하는 그런 지혜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할 때 하나님은 현실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어떻게 하면 세치 혀를 통해서 상대방을 잘 구슬려 내가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데에 관심이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죄악을 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나라의 대리 통치자로 서기 위해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닌 아비가일이 가진 것과 같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다윗은 이 사건을 통해 복수는 하나님의 심판에 맡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지혜는 사울을 대할 때 드러나게 됩니다. 이 지혜를 통해 다윗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적용) 우리에게도 이런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우리보고 똑똑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주식에 대해 훤히 알아야 하고 돈이 되는 부동산을 미리 파악해서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한다고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관련된 책과 유튜브 영상이 끊임없이 쏟아집니다. 이런 것들은 알면 유익하지만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이 주는 지헤가 아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알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올라올 때 나의 욕망을 제어하고 다시 우리 삶의 기본인 성경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지혜를 어떻게 구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이 지혜를 구하는 방법을 명확하게 이야기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지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꼐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이 야고보서 1장의 문맥은 시험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입니다. 다윗이 시험당했습니다. 시험 당할 때 죄 지을 뻔 했지만 한 여인의 지혜로 말미암아 다윗이 죄 짓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이 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짓지 않는 것은 물론 공동체의 연약한 지체가 실수하지 않도록 동역하고 독려할 수 있는 그런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지혜가 죄를 막기 때문입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는 권리를 빼앗기면 바로 죄 짓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죄짓기 너무 쉬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지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우리의 죄성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지혜를 구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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