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또 묻고

사무엘하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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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윗과 이스라엘 2. 지식과 삶 3. 블레셋과의 전쟁 4. 방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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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이스라엘

오늘 본문을 보면 점점 더 높아지는 다윗과 이스라엘의 위상에 대한 내용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면 두로의 왕 히람이 등장을 합니다. 두로 왕 히람은 다윗시대 뿐만 아니라 솔로몬 시대에도 나오는데요. 앞으로 이스라엘과 두로의 관계가 지속될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한 구절입니다.
두로 왕 히람이 이스라엘을 도와준다는 것 그리고 다윗을 위해 집을 지어주었다는 것은 꽤나 중요합니다. 11절 하반절을 보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라고 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집을 짓는다는 것은
상대와 계약을 맺고, 대금을 받고 집을 지어준다거나
혹은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선물로 집을 지어주는 것.
이 둘 중에 하나 일 것입니다.
그 누구도 아무런 댓가 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히 지금 다윗의 집은 백향목으로 지어졌고 목수와 석수 그리고 사절단까지 보내어 지어지고 있습니다.
사절단이 오면서 그냥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꽤나 많은 양의 선물을 가져왔을 것이고, 목수와 석수들은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백향목 나무를 정성스레 옮기고 깎고 제단하며 일을 진행했습니다.
이 것은 다윗을 위한 집을 짓는데 들어가는 모든 예산과 인력을 두로의 왕 히람이 다 담당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다른 목사님들께서 새벽에 나누어주시겠지만 두로는 이스라엘의 발전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발전에 기여하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여기에서 이러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왜, 어떤 이유로. 두로왕 히람이 이스라엘을 위해 일했을까?”
“두로왕 히람은 왜 자신의 돈과 인력을 써가면서 다윗을 위한 궁을 세워주었을까?”
당시 두로는 교역하는 나라였습니다.
교역을 하는 나라라는 것은 셈에 밝고 머리 회전이 빠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손해보지 않는 나라라는 것이죠.
교역에서 우위에 서고 이익을 남기는 것이 익숙했던 두로지금 모든 것을 퍼주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익을 얻는 것을 최고의 방침이나 원칙으로 삼는 주의. 영리주의를 표방하는 나라가 바로 두로였습니다.
자국의 의익을 최고로 삼는 나라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많은 것들을 제공하고 준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두로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아니 그 이상이 될만 국제적 규모의 상업주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블레셋과 같은 이웃나라의 끊임없는 침공을 받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다른 나라들이 먼저 와서 머리를 숙일만큼 강해졌고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7절에 기록된 것처럼 다윗은 통일 왕국의 왕이 됩니다.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되어 7년 반을 다스렸던 다윗을,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추대하여 통일 왕국의 왕으로 세움으로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어가기 시작합니다.
다윗은 이 모든 일들이 자신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외교적인 안정과 나라의 번영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뒤이어 벌어지는 전투에서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다윗이 통일 왕국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블레셋이 바로 전쟁을 준비합니다.
그의 정권이 뿌리 내리기 전, 단단해지기 전 싹을 잘라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블레셋은 이전에 있었던 전투들에서 다윗을 이겨본적이 없습니다.
다윗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그들은 그가 더 강해지기 전에 빨리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다윗이 유다만의 왕이었을 때에는 큰 위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왕권이 강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유다가 계속해서 반목하고 있었기에 가만히 둬도 스스로 무너질 가능성이 높았기에 블레셋은 오히려 그 상황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바로 전쟁을 준비하고 르바임 골짜기로 모여듭니다. 르바임 골짜기는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접경지대인 예루살렘의 남서쪽에 있습니다.
블레셋이 르바임 골짜기로 들어와 전쟁을 준비한 이유는 이스라엘 남북 중간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허리를 장악한다면 북쪽 지파들은 고립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은 다시 두 개로 나누어 질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북 이스라엘은 아직 남유다만큼 다윗을 지지하거나 나의 왕이라 말하는 충성도가 조금은 부족했습니다.
어렵게 의견을 모아 다윗을 왕으로 추대했는데, 블레셋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거나 혹은 블레셋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북 이스라엘이 다윗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할 것이라는 전략적 목적으로 르바임 골짜기를 선택한 것이죠.
블레셋은 자신들의 무기와 군대가 이스라엘보다 더 강함을 믿었기 때문에 이런 전쟁을 바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이스라엘은 블레셋만큼 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블레셋이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두 가지 변수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변수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의 모든 전쟁은 하나님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블레셋이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죠.
두번째 변수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이었습니다.
통일왕국의 왕이 되어 하는 첫 전투였기에 다윗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전투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전쟁에 능한 왕이었고, 블레셋을 밥먹듯 이겨왔던 사람입니다.
블레셋의 전략과 전투 방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다윗이 나타나면 블레셋은 기가 죽었기에 이미 이긴 싸움일 수도 있었습니다.
멋지게 자신의 전략을 사용하여 전투에서 승리하고 강함을 온 이스라엘에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전략과 경험들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묻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인도하심에 따라 르바임 골짜기에서 전쟁을 시작합니다.
한쪽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했고, 한쪽은 자신이 가진 최신식 무기를 의지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맞습니다. 이스라엘의 압승이었습니다. 홍수가 모든 것을 휩쓸어 내려가듯이 완벽하고도 완전한 압도적인 승리가 이스라엘에게 찾아옵니다.
얼마만큼의 압도적인 승리였냐면, 21절의 말씀처럼 ‘블레셋이 우상을 버렸습니다.”
블레셋이 우상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것은, 쉽게 말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하기 때문에 내가 믿는 신. 우상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죠.
블레셋이 르바임 골짜기에 자신들이 가져온 우상들을 버리고 갔습니다.
18절을 보면 ‘블레셋이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했다’고 말합니다. 블레셋이 도망간 그 르바임 골짜기에 우상들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대로 두었을까요?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그 우상들을 다 수거하여 치워버렸습니다.
우상들을 치우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고대 근동의 전쟁은 사람들이 싸우지만 신과 신의 대결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지면 신이 졌다라고 인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과 블레셋의 신은 우리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라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마음에 얼마나 기쁨이 넘쳤을까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벅차오름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엘리 제사장 시절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빼앗겼던 적이 있습니다.
블레셋이 전쟁에 져 도망가면서 우상을 버렸던 것처럼 그들 역시 가장 중요한 언약궤를 빼앗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압도적인 승리 그리고 우상을 버리고 간 블레셋. 하나님을 믿는 마음 그리고 다윗을 신뢰하는 마음들이 단단해졌을 것입니다.
블레셋은 다윗과 북이스라엘의 사이를 떨어뜨리려 했지만 오히려 그들이 패배함으로, 다윗을 향한 북이스라엘의 믿음이 강해졌습니다.
블레셋은 이제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다시 싸워서 이스라엘을 굴복시키던지 아니면 자신들이 굴복하여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던지 해야 합니다.
하지만 블레셋은 굴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덤벼듭니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전략을 듣습니다. 뽕나무 숲에서 기다리다 습격하라"
블레셋은 첫 전투의 패배를 만회해야 했기에 큰 여유없이 전쟁을 하기 위해 나왔을 것입니다. 승리만을 외치며 앞을 향해 가던 블레셋을 이스라엘이 습격합니다. 그리고 또 압승을 거둡니다.
이번에는 도망가는 블레셋을 게바에서 게셀까지 내몹니다.
게바에서 게셀을 우리는 가보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거리인지 감이 잘 오지 않을텐데요. 약 30km 이상을 쫓아가면서 블레셋을 공격했고 그들을 밀어냈다는 것을 말합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몇 곳을 점령하고 있었는데, 그들까지 다 몰아내버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랑하는 다윗의 믿음과 그 믿음에 응답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이제 맘 편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윗 참 멋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따라가볼 수 없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다루지 않은 본문 13-16절을 주목하여 보면, 다윗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많다 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듣고 읽고 공부한다 하여도, 그것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은 또 다른 별개의 일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 잊게 될 수도 있는 길을 열어둡니다.
그의 실수 중 첫번째는 바로 두로왕 히람입니다.
두로왕 히람이 다윗 성을 짓고 솔로몬 시대에 성전을 지어주는 등 이스라엘을 위해 많은 시간을 헌신하고 자신의 것을 투자합니다. 하지만 꼭 좋은 영향력만 미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부패를 부추겼습니다. 성경 역사상 가장 악하고 못됐다고 알려지는 여성이 하나 있습니다. 이세벨입니다.이세벨은 두로와 함께 페니키아라는 나라의 대표적인 도시였던 시돈 왕의 딸이었습니다.
또한 이방 나라와의 활발한 교역이었습니다.
다윗은 두로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되었고, 점점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열방을 통해 자급자족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워나갑니다.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교역을 통해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고, 가질 수 있게 되자 다윗의 마음이 조금씩 변하게 됩니다.
사명 의식을 자신도 모르게 점점 잊어가게 되어버립니다.
실수 두번째는 예루살렘에서 얻은 자녀들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얻은 자녀들의 숫자는 유다왕으로 있으면서 헤브론에서 얻었던 아들들보다 5명이나 더 많습니다.
많은 아내와 자녀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나라. 열방들의 왕의 삶이었습니다.
많은 아내를 취하지 말라셨는데, 첩제도를 통해 많은 아내를 취했고 자녀를 얻었으며, 열방의 왕의 모습으로 점점 변해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지금 주셨던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다윗과 그 가문을 축복하셨을텐데, 스스로 하나님의 축복을 제한해 버렸습니다.
물론 다윗은 후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하지만 첫 마음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다윗은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에 마음을 두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이후 그의 자손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제2가족들이 믿음과 신앙 연수가 더해갈 수록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의 깊이가 더해지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분들이 여기 계신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그 마음을 잊지 않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의 깊이 만큼 주위를 둘러보고, 그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아내시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삶과 환경에 여유가 없어도, 마음에는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넉넉함의 여유를 갖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아는만큼 삶으로 드러내는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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