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8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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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88 이 몸의 소망 무언가
본문 대상 15:16-29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놓치지 않으시고 붙들고 가시며, 주님의 재림의 날에 우리를 지극히 영광 가운데 영접하여 주사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보며, 모든 천군천사들과, 앞서간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토록 찬송케 하여 주심을 또한 믿고 감사드립니다. 그 날이 분명 올 것임을 확신하며, 그 영광의 날을 믿음으로 준비하는 오늘 우리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행할 바를 교훈하여 주시어 그 말씀 붙들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본문은 다윗왕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장면을 다루고 있다. 그는 앞서 언약궤 운반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사건을 거울로 삼아, 하나님께서 율법에서 정하신 방식을 따라서 운반 준비를 하고 있는 대상15:1-15 의 말씀에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는 언약궤 운반을 위한 레위인 찬양대를 조직한 사건과 더불어 이를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이동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서로 대비되는 두 부류를 발견하게 된다. 한 부류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며, 또한 이를 기뻐하고 축하하던 부류였고, 또 다른 한 부류는 이를 가볍게 여기고 하찮게 평가하였던 부류였다.
먼저 다윗은 레위인들로 구성된 찬양단을 조직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인 대상15:16 을 보라.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한글 번역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원어로 보면, 하나님의 언약궤가 율법에 기록된 대로 들려 올려질 때 레위인들에게 찬양하고 연주할 것을 명령하는 다윗의 흥분된 소리가 아주 생생하게 들리는 것같은 뉘앙스를 담고 있다.
다윗에 의해 결성된 찬양단은 하나님의 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질 때 그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임무를 맡았다. 16절에서 비파와 수금과 제금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원어를 보면 비파들과 수금들과 제금들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양의 악기들이 사용되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준비된 셈이다. 또한 그 연주자들로 하여금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게 하라고 하였다. 이는 연주가들이 즐거움으로 충만하여 자신의 연주를 통하여 그 기쁨과 환희가 듣는 회중들에게까지 넘치게 하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터져나오는 기쁨을 자신들의 악기와 노래로 크게 표현하게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마음 가운데 묵상하는 것도 참으로 중요하지만, 감사와 감격을 크게 소리내어 증거하고 거룩하게 찬양함으로 드러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다윗은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25절을 보면, 다윗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오게 하기 위하여 오벧에돔의 집으로 이동한다. 동일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사무엘하의 내용을 살펴보면 여기에 동원된 인원만 약 천 명에 달했음을 말씀한다. 상상해보라. 찬양대와 노래하는 자들과 언약궤를 메고 이동하는 무리들과, 이를 앞뒤 양옆에서 지키면서 이동하는 군사들까지 대규모 행렬이었을 것이다.
앞서 1차 시도때에는 웃사가 궤를 잡다가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26절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를 멘 레위인들이 행진을 시작했을 때 웃사처럼 심판하지 않으시고 궤를 옮길 수 있도록 허락하셨으며, 레위인들은 이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즉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옮길 수 있도록 도우시고 지지해 주셨다는 것으로, 이 행사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었고,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이를 이루도록 도우셨다는 것이다.
이 행사는 단지 그 행사에서 역할을 맡은 자들만의 축제가 아니었다. 28절을 보면 이를 지켜보던, 이에 함께 참여하였던 이스라엘 온 회중 역시 여호와의 언약궤가 들어올려질 때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함께 악기를 불며 즐거워하였다. 28절 말미를 보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다"고 번역함으로 회중들이 함께 언약궤를 메어 올렸다고 오해할 수 있게끔 오역을 했는데, 정확하게 원어를 번역하면 회중이 레위인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들어올릴 수 있도록 하였다는 의미이다. 즉, 레위인들이 이 일들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지해주고 한 마음으로 격려해주며 함께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윗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기쁨으로, 또한 율법 가운데 철저하게 준비하였지만 자신은 참여하지 않고 구경만 했던 자가 아니다. “너희들이 알아서 잘 메어와라” 라고 명령만 하고 뒷전에 있던 자가 아니다. 다윗 역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춤추며 뛰었다. 어느 정도로 뛰었는가? 그의 바지가 내려갈 정도로 그리 하였다. 그의 즐거움과 기쁨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고, 어떤 것으로도 감출 수 없었다. 다윗을 비롯하여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성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환호하였다. 왜 다윗을 비롯하여 온 회중이 이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는가?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였는데, 구원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들어오시는 것으로 그들은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일 예배마다 “문들아 머리 들어라"를 찬양하는 것처럼 그 영광의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좌정하시도록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법궤의 이동을 이처럼 기뻐하고 환호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부류가 등장한다. 그는 누구인가? 바로 다윗의 아내이자 사울의 딸이었던 미갈이었다. 왜 그녀는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가운데 혼자 방관자처럼 머물러 있는가? 29절 말미를 보면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라고 말씀한다. 미갈은 자신의 남편인 다윗이 왕이라는 신분도 잊어버린 채로 어린 아이처럼 기뻐 뛰는 것이 납득이 되질 않았다. 왕이라는 신분은 주변국가를 둘러보아도 최고통치자였고, 가장 명예롭고, 가장 권위가 있으며, 가장 위엄있는 자리였는데, 어찌 왕이 저렇게 바지가 흘러내리는 것도 모른 채로 기뻐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마음에 업신여겼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미갈이 “그 마음에 업신여겼다”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그녀가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지적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도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던 민족이었으니 그녀 역시도 어릴 적부터 기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들어왔을 것이다. 그분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떤 일을 행하셨고, 어떤 명령들을 주셨으며, 어떠한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지 들어왔을 것이다. 그녀가 이스라엘 백성이었기 때문에 때로 구약의 절기들이 찾아올 때마다 절기에 참여했을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할 제사에도 때마다 참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다윗이 왕으로서 백성들 앞에서 지켜야 할 체면과 위신에 대해서는 생각했지만, 그가 언약궤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올 때 왜 그렇게 기뻐하였는지, 왜 온 백성들이 이와 같이 기뻐하며 찬양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좌정하시는데 이 사실이 그녀에게는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했다. 온 땅의 창조주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들어가시는데 이 사실이 그녀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되질 않는다. 구원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임하시는데 이 사실이 그녀에게는 아무런 감동으로도 다가오질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미갈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던 웃사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운반하려다가 그 궤를 붙들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던 미갈이 하나님을 이처럼 가볍게 여기다가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은 누구라도 예견할 수 일이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다윗과 찬양대는 자기 맡은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였다. 기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준비하였고, 즐거움으로 주님의 영광을 선포하였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저와 여러분들을 주님의 몸된 교회로 부르셨고, 지상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임재를 준비하며 즐거움으로 주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기관이다.
오케스트라에서 각각의 악기들이 서로 연합하여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교회의 다양한 직분자들과 섬김과 봉사들이 한데 어우러져 주님 앞에 아름다운 연합의 선율을 만들어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인데,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변함없이 주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그 구원의 은혜를 찬송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나에게 주어진 그 직분의 자리, 그 섬김과 봉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 즐겁게 감당하라. 이것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일이다.
둘째로, 한몸된 성도들을 거듭 돌아보아야 한다. 함께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갈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함께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섬기는 가운데에서도 혹 미갈과 같은 자들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다양한 지체들을 같은 신앙 안에서 한 몸으로 부르셨다. 그 가운데에는 신앙이 단단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연약한 사람들도 분명 있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들이 물론 많이 있겠지만 더러는 아직 하나님께 온 마음을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교회의 성도들을 부지런히 돌아보아야 한다. 혹 우리 가운데 신앙이 연약한 자들은 없는지, 혹 시험에 든 자들은 없는지, 혹 넘어진 자들은 없는지 부지런히 살펴야 한다. 주일학교에서부터 시작해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주님께서 그들을 우리와 한 몸으로 부르셨다. 이는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은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성도들을 돌아보자. 그날은 도적같이 이를 것이기에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에게 맡겨주시고 붙여주신 한 몸된 지체들을 돌아보아 모두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음으로 기뻐하고 그 날을 즐거워하며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들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하겠다.
말씀을 맺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했던 사실을 다 알고 계실 것이다. 그 곳 벽에는 갇힌 채로 죽음만을 기다리던 유대인들이 기록했던 많은 글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메시야가 다시 오실 것을 믿는다. 단지 그분의 도착이 조금 늦어지고 있을 뿐이다” 어느 학자가 성경을 연구하면서 메시아께서 이 땅에 오실 것에 대한 구약의 예언은 456회인데,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의 회수는 신구약 1500회가 넘는다고 한다. 456회 예언되었던 예수님의 초림은 성취되었는데, 1500여회나 예언된 예수님의 재림도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영광의 날, 그 감격과 환희의 날은 반드시 올 것인데, 그 날을 오늘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가?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부지런히 감당함으로 그 날을 준비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직분과 섬김과 봉사의 자리를 부지런히 감당함으로서 말이다. 또 그 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나와 한 몸된 성도들을 부지런히 돌아보아 그들의 믿음이 바르게 세워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중 미가와 같은 자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중 누구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잘 믿는 신앙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 우리 양문교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자.
주님, 비록 그 날이 더디오는 것 같아도 분명 다시 오마 약속하신대로 다시 오실 줄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 가운데 그 날을 준비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사명들을 부지런히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한 몸된 지체들을 돌아보아 모두가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는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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