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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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93 - 사도신경 - 성경봉독(교독)
찬송가 393 - 사도신경 - 성경봉독(교독)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두었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7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두 정부 아래 혼돈의 세월을 보냈던 이스라엘은 이제 다윗을 중심으로 굳게 뭉칩니다. 이러한 연합이 자기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을 느낀 블레셋은 다윗의 기세를 초반에 꺾으려는 의도로 이스라엘에 쳐들어옵니다.
블레셋은 다윗과 이스보셋이 전쟁하는 동안에는 다윗을 큰 위협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내전으로 이스라엘의 세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자 위협을 느낀 블레셋은 즉시 이스라엘과 전쟁을 시작합니다.
게다가 다윗이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 자기들에게 와서 가드 왕 아기스 밑의 신하로 있던 사람 아닙니까? 그랬던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다고 할 때는 그래도 자기들 밑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었다고 하니까 배신감을 느낀 겁니다. 그래서 “다윗을 찾으러” 올라왔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를 찾아 죽이려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블레셋은 당시 이스라엘이 감당하기 어려운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사울왕 시절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몇차례 승리를 한 적도 있었으나,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하자 추격을 단념해야 할 정도로 세력이 건재했고, 이후에 있었던 전투에서는 이스라엘이 대패하여 왕과 왕자가 하루 아침에 전사하고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내어주었을 정도입니다. 이스라엘에 내분이 없었던 시절에도 맞붙어 패할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블레셋이었으니, 이제 막 내분을 수습하고 온 이스라엘에 대한 통치를 회복한 다윗으로서는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습니까? 지금 이 전투에서 이길 수 있을지 도무지 확신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전쟁에 임하는 자세는 굉장히 신중합니다. 하지만 그는 보통 전투를 앞둔 왕이 참모들과 여러가지 작전을 계획해보는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다윗은 먼저 이 전쟁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그리고 거기서 승리를 주실 것인지를 먼저 하나님께 여쭤보고, 거기에 대한 응답을 얻은 후에 전쟁에 나갑니다.
사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신하로 있었기 때문에 군대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압니다. 누가 어디를 지휘하는지 다 압니다. 그들과의 전투 경험도 많았습니다. 또 그의 휘하에 있는 장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정적인 승부수가 필요했고, 다윗과 그의 장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궁리해보면 그런 수가 하나쯤은 나올 수도 있을법합니다.
하지만 이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그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먼저 도우심을 구합니다. 아무리 잘 아는 것이라도 하나님께 먼저 도우심을 구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하실 것과 승리의 약속을 주심으로써 다윗이 담대하게 전투에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바알브라심’은 '흩으시는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신 이 전쟁에서 다윗은 바알브라심, 즉 주님이 ‘물을 흩으심같이 자기 앞에서 자기 대적들을 흩으시는’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 르바임 골짜기의 이름을 ‘바알브라심’ 즉 ‘승리의 장소’로 바꾸어 버립니다. 이제는 르바임이 아니라 바알브라심, 즉 ‘흩으시는 주님’, ‘승리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
고대인들은 전쟁의 승패가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믿었습니다.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의 싸움에 나갈 때 하나님의 언약궤를 들고 나갔습니다(삼상 4:3).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 때문에 ‘언약궤를 들고 나가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니까 이길 것이다.’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고대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블레셋 사람들도 그들이 섬기는 바알이나 다곤 같은 우상들을 전쟁터에 가지고 나왔습니다. 자신들의 신전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우상을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서 품고 다니며 자기를 보호하는 수호신이라고 믿고 가지고 나온 겁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의 우상을 다 버리고 도망갈 정도로 크게 패배합니다. 큰 우상도 들고나왔고 품고 다니는 사이즈의 우상들도 가지고 왔는데, 다 버리고 도망갈 정도로 크게 패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우상들을 치우는데, 역대상 14장을 보면 그냥 치운 게 아니라 그들이 블레셋 우상을 불에 태워 버렸다고 나옵니다(대상 14:12).
단순한 진리가 여기서 배웁니다. 하나님께 여쭈며 나아가 싸우는 싸움은 이기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서 영적 싸움이 벌어질 때, 어려움이 닥쳐올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삶에서 우리의 악을 제거하고 정결하게 나아가면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서 싸우는 싸움은 결코 패배하지 않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블레셋은 1차 전쟁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2차 전쟁을 일으킵니다. 지난 번의 전투에서 다윗은 이미 크게 승리한 경험이 있습니다. 보통 승리의 경험은 자신감을 갖게 하고 여러가지 전략상 이점을 가져옵니다. 다윗도 블레셋과의 전투에서의 승리로 인해 자신감에 가득 차 있을 수도 있었고, 지난 번의 전투를 기억하며 훌륭한 전략을 세워 나가 싸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번에도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승리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전투에서의 승리를 철저히 하나님이 행하신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신앙입니다.이 두 번째 전쟁에서 취한 태도 역시 처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지혜로운 판단을 신뢰하며 나아갑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저희가 이번에도 또 올라갈까요? 그러면 승리를 주시겠습니까?’라고 하니까, 이번에는 함께하신다는 약속뿐 아니라 ‘아니다. 이번에는 다르게 하라.’ 하시면서 구체적인 전투 방법과 공격 시기까지 알려주십니다. 블레셋을 뒤에서 공격하되, 공격 시점을 다윗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공격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대체 뽕나무 꼭대기에서 들리는 걸음 걷는 소리가 뭘까요? 이 소리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하늘의 군대가 블레셋을 향해 나아가는 행군소리를 뜻합니다. 그러니 지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군대와 함께 먼저 블레셋을 공격해 들어갈테니 이것을 신호로 삼아 뒤따라 공격해 들어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군대가 다윗과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며 약속을 주시는 것에는 다윗이 자신의 능력과 수완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려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그런 왕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왕이요, 이스라엘의 참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그런 왕 말입니다.
보통의 왕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상식적으로 보면 나가서 싸우는 것입니다. 힘을 모아서 군대를 강력하게 훈련시키고, 훈련된 군대를 많이 동원하는 겁니다. 많을수록 이길 확률이 높아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움직이는 것을 기다려라. 하나님의 군대가 먼저 칠 것이다. 그럼 너희는 할 것도 없다.’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제 계속해서 뽕나무 꼭대기 즉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하늘에서 부터 들려올 하나님의 군대의 걸음 걷는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보통의 왕이 승리를 위해 행하는 모든 일들을 다 제쳐두고 먼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군대와 함께 블레셋을 향해 달려나아가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여기 보면 단순히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다윗의 자세는 언제나 순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승리를 주십니다.
게바는 예루살렘 북동쪽에 위치한 기브온을 말하고, 게셀은 르바임에서 동쪽으로 15마일이나 떨어진 곳입니다. 블레셋 영토에 가까운 곳이니까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영토 깊숙이 침범했던 블레셋 군대가 완전히 패배하고 도주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전쟁이 일어나자 어떻게 했습니까?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다음에 어떻게 했습니까? 계속 기도만 한 게 아닙니다. 나가서 담대하게 블레셋과 싸웠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만 한 것도 아니고, 자기 혼자 판단으로 나가 싸우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기도했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나가서 싸웠습니다. 그 결과 승리를 거두었고,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나아갔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각자가 정말로 하나님을 신뢰하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 각자의 기도와 행동을 통해 드러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도는 모든 것을 놓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도 제목을 갖고 계십니까? 건강, 사업, 직장, 자녀, 부모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당연히 그런 것을 다 기도해야 합니다. 또 큰 것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든지, 경제 침체가 오면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직장 일을 한다면, 또는 사업체에서 일을 한다면, 그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니까? 내가 너무 잘하는 일을 위해서도 기도하십니까? 요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십니까? 배탈 안 나게, 맛있게 먹고 소화가 잘되게 기도하는 겁니다. 그런 소소하고 작은 일도 기도하는 겁니다.
큰일이나 내가 바라는 일, 즉 ‘이거 잘되게 해주세요. 저거 잘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라고도 당연히 기도하지만, 매일 하는 일상생활에서, 심지어 걷는 것을 위해서도, 밖으로 나갈 때도, 운전할 때도 기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작은 일에는 대개 사람들이 기도를 안 합니다. 너무나 일상적인 일에는 기도를 안 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나의 삶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께 맡기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기도만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기도를 했으면 그 다음에 행동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는 기도하고 그 다음에 행동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 2:17)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기도와 행동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믿음 성장에 아주 중요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행동만 앞서면 세속주의로 빠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기도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이상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또 영적 이원론에 빠질 수 있습니다. 육적인 것은 나쁘고 영적인 것은 좋다고 하며 ‘영적, 영적’만 따지게 됩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 참된 믿음의 사람은 일단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다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기도와 순종으로 이루어집니다.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까 히람 같은 사람이나 인도의 총리 같은 사람은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 아주 머리를 잘 써가면서 최대한 자신과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애를 씁니다. 자신의 지식과 지혜로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지혜와 지식으로 나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안 하는, 순종의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기도한 대로 순종하여 참 믿음의 사람들로 매일매일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