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 28:10-22
하나님의 집
Behind him was Esau with his murderous designs. Ahead was a great unknown.
1. 야곱의 상황
1) 뒤에는 에서의 위협
2) 앞에는 망망한 불확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Would he ever see his mother again? His father? Would he ever come home? Had his efforts to obtain the blessing been worthwhile?
벧엘이라는 장소
여호와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아마 독자들에게 놀랍게도 하나님은 야곱이 아버지와 형제에게 한 행동을 꾸짖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신다. 여호와께서는 야곱에게 호통치시는 것이 아니라, 야곱에게 무조건적인 약속들을 주신다. 명백하게 명예롭지 못한 행동에 비해 하나님께 상대적으로 비난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야곱은 이삭과 아브라함에 합류한다. 이렇게 꾸짖지 않는 것은 이런 예외를 누리지 못하는 아담과 하와, 가인, 노아 시대의 사람들, 바벨탑 건설자들의 이야기와 생생하게 대조를 이룬다.
야곱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이 복의 p 303 연결 고리다. 지금까지 야곱의 이야기에서 야곱은 축복을 “얻는 것”을 강조했다. 여기서는 강조점이 축복이 “되는 것”으로 옮겨간다. ‘베라카’는 그 무언가 대가를 치러 얻을 수 있는 축복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주어지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 특별한 약속은 아브라함의 경우보다 훨씬 극적이다. 아브라함이 처음 나라를 위한 복의 촉매제로 약속을 받을 때 (12:3), 그는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었다. 야곱이 같은 약속을 받을 때, 그는 자녀가 없을 뿐 아니라 또한 결혼도 하지 않았다. 여기에 자손들에 의해 만국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많은 자손들에 대한 약속이 있다. 그러나 야곱은 한 자손이나 심지어 한 복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서 이 동사의 유일한 목적어는 야곱 자신이다. 여섯 번 여호와가 주어다. “나는 ~이다. p 304 …… 나는 지키며 …… 나는 돌아오게 할지라. …… 나는 다 이루기까지 …… 나는 떠나지 아니하리라 …… 나는 약속했다.” 그리고 여섯 번 야곱은 목적어다.
Fokkelman, Narrative Art in Genesis, p. 81. “서원에서 분별할 수 있듯이, 이제는 너무 냉정하고 비인격적으로 보이는, 이전의 공식적이고 엄숙했던 어조에서(12절, 3인칭 단수를 사용함) 야곱은 벗어나서, 긴급한 기도를 하는 탄원자나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노래하는 사람처럼, 하나님을 직접 부른다.”
그의 행보는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여정과 상반된 방향이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갔다. 그것은 믿음의 여정이었다. 그런데 거꾸로 가고 있는 야곱은 도망자의 모습이다.
왜 야곱이 루스라는 성을 두고 바로 곁의 들에서 유숙하였는냐는 것이 의문이다. 구약시대에는 성 밖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그것은 매우 위험하였기 때문이다. 야곱은 우연히 그곳을 지나치면서 들러 잠을 잔 것이 아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p 446 어렵게 이곳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돌들을 취하여 제단을 쌓았던 특별한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창세기 12장에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먼저 세겜에서 하나님에게 제단을 쌓은 후 벧엘에 이르러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라고 했다(12:8). 제단을 쌓았으면 그곳에서 제사를 드린 것이 당연하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예배하였음을 의미한다.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돌아와서는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때에 본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러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13:3). 이때에 전에 장막쳤던 “곳”을 하마콤(הַמָּקוֹם)이라고 히브리어로 표기한다. 히브리어 마콤은 보통의 한 장소를 가리키지만, 거기에 정관사 하(הַ)가 붙으면 특별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12:3에서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하여 햣마콤 핫미즛베아흐(חַמָּקוֹם הַמִּזְבֵּהַ), 즉 ‘제단의 장소’라고 표현되었다. 다시 방문한 이곳에서도 아브라함은 여호와께 예배를 드렸다. 그렇게 벧엘은 특별한 장소, 즉 예배의 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