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 28:10-22

Genesis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38 views

야곱의 벧엘 언약

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F
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View more →

하나님의 집

Behind him was Esau with his murderous designs. Ahead was a great unknown.

1. 야곱의 상황

1) 뒤에는 에서의 위협

Genesis 27:41 (NKRV)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테니,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겠다는 말이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의 나이를 보통 137세로 본다.
(야곱 130세 때(47.9), 요셉이 39세[30세(41.46) + 7 + 2년(41.29-30; 45.6)]
-> 요셉 출생 = 야곱 91세, 이때 야곱이 라반을 떠나겠다고 함(30.25) (최소 14년 - 최대 20년)
-> 야곱 결혼 77세 (91-14)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60세에 낳음(25.26), 야곱 축복 당시 이삭 137세(77+60)

2) 앞에는 망망한 불확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던 때와 마찬가지로, 야곱도 철저한 떠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아브라함 75세 떠남, 야곱 77세 떠남, 심지어 미혼)
밧단 아람이라는 낯선 장소도 장소지만
이제 늙으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고향에는 기세등등한 형 에서만 남는다.
언제든 야곱을 죽이려고 칼을 갈고 준비하고 있는 에서가 두 눈 멀쩡하게 뜨고 살아 있는 상황 가운데에서,
야곱이 고향으로 언제 다시 돌아올지,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있었을까?

Would he ever see his mother again? His father? Would he ever come home? Had his efforts to obtain the blessing been worthwhile?

사기치고, 어떻게든 축복은 받아 냈지만, 그 축복은 눈에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는 현실은 그저 막막할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야곱은 800키로미터가 넘는 먼 여정에 홀로 올라
홀로 밤을 지새고 있는 상황이었다.

벧엘이라는 장소

벧엘은 브엘세바에서 약 80km정도 떨어진 곳으로, 야곱이 길을 떠난 첫 날 밤에 이곳에서 노숙하게 되었다고 보기에는 너무 먼 거리다.
이 길이 다 산길인데, 지금도 잘 뛰는 트레일 러너들이 한 시간에 평균 6km정도 뛴다는 걸 생각해 볼 때,
만약 야곱이 하루밤만에 이 벧엘에 이르렀다면,
잘 훈련된 산악 달리기 선수들이 산을 달리는 속도로, 15시간 가까이 달렸어야 가능한 거리다.
NICOT 창세기 Ⅱ (2.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28:10~22))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야곱이 하란에서 만날 사람이 아니라 하란에 도착하기 전 만날 분이다
NICOT 창세기 Ⅱ (2.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28:10~22))
이와 같이 많은 시간이 걸렸음이 p 299 틀림없는 여행에서, 성경 내러티브는 오직 이틀 동안의 일야곱이 잤던 장소에만 집중한다.
NICOT 창세기 Ⅱ 2.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28:10~22)

여호와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아마 독자들에게 놀랍게도 하나님은 야곱이 아버지와 형제에게 한 행동을 꾸짖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신다. 여호와께서는 야곱에게 호통치시는 것이 아니라, 야곱에게 무조건적인 약속들을 주신다. 명백하게 명예롭지 못한 행동에 비해 하나님께 상대적으로 비난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야곱은 이삭과 아브라함에 합류한다. 이렇게 꾸짖지 않는 것은 이런 예외를 누리지 못하는 아담과 하와, 가인, 노아 시대의 사람들, 바벨탑 건설자들의 이야기와 생생하게 대조를 이룬다.

NICOT 창세기 Ⅱ 2.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28:10~22)

야곱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이 복의 p 303 연결 고리다. 지금까지 야곱의 이야기에서 야곱은 축복을 “얻는 것”을 강조했다. 여기서는 강조점이 축복이 “되는 것”으로 옮겨간다. ‘베라카’는 그 무언가 대가를 치러 얻을 수 있는 축복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주어지는 것이다.

NICOT 창세기 Ⅱ 2.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28:10~22)

어떤 면에서 이 특별한 약속은 아브라함의 경우보다 훨씬 극적이다. 아브라함이 처음 나라를 위한 복의 촉매제로 약속을 받을 때 (12:3), 그는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었다. 야곱이 같은 약속을 받을 때, 그는 자녀가 없을 뿐 아니라 또한 결혼도 하지 않았다. 여기에 자손들에 의해 만국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많은 자손들에 대한 약속이 있다. 그러나 야곱은 한 자손이나 심지어 한 복도 이루지 못했다.

NICOT 창세기 Ⅱ 2.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28:10~22)

그러나 여기서 이 동사의 유일한 목적어는 야곱 자신이다. 여섯 번 여호와가 주어다. “나는 ~이다. p 304 …… 나는 지키며 …… 나는 돌아오게 할지라. …… 나는 다 이루기까지 …… 나는 떠나지 아니하리라 …… 나는 약속했다.” 그리고 여섯 번 야곱은 목적어다.

NICOT 창세기 Ⅱ (2.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28:10~22))
야곱이 자식이 한 명도 없을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후손에 대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심지어 야곱이 땅을 떠나기도 전에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라고 야곱에게 말씀하신다.

Fokkelman, Narrative Art in Genesis, p. 81. “서원에서 분별할 수 있듯이, 이제는 너무 냉정하고 비인격적으로 보이는, 이전의 공식적이고 엄숙했던 어조에서(12절, 3인칭 단수를 사용함) 야곱은 벗어나서, 긴급한 기도를 하는 탄원자나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노래하는 사람처럼, 하나님을 직접 부른다.”

그의 행보는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여정과 상반된 방향이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갔다. 그것은 믿음의 여정이었다. 그런데 거꾸로 가고 있는 야곱은 도망자의 모습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설립 60주년 기념 성경주석 - 창세기 (1) 야곱이 벧엘을 찾아가다(28:10–11))
이스라엘의 지형을 잘 아는 사람이면 브엘세바에서 출발한 야곱이 하란으로 가기 위해 벧엘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음을 안다. 그가 여행하는 경로가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삭은 브엘세바에서 살았다. 브엘세바는 가나안 남쪽 네게브 평원에 위치해 있다. 거기에서 하란으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은 평지를 따라 서쪽으로 가서 지중해 해안을 타고 올라가는 길이다. 므깃도를 지나 가버나움, 하솔, 다메섹 그리고 하란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그는 평지의 큰 길을 택하지 않고 중앙 산지로 올라간다. 만약 산지로 올라갔다면 예루살렘을 조금 지나 베냐민 평원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여리고 쪽으로 내려가서 요단강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 정상적인 길이다. 그런데 그는 동쪽으로 틀지 않고 위로 더 깊숙이 올라가서 가장 어려운 산악지대로 또 접어들고 있다. 이것을 보면 그는 의도적으로 이곳을 찾아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 야곱이 루스라는 성을 두고 바로 곁의 들에서 유숙하였는냐는 것이 의문이다. 구약시대에는 성 밖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그것은 매우 위험하였기 때문이다. 야곱은 우연히 그곳을 지나치면서 들러 잠을 잔 것이 아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p 446 어렵게 이곳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돌들을 취하여 제단을 쌓았던 특별한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벧엘을 향한 걸음이 그렇게 이례적인 것이라면, 이것은 에서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 일 수 있다.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는 길에, 야곱은 삼일 길을 간 후에 라반에게 추격당한다.
벧엘 = 예배의 장소

창세기 12장에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먼저 세겜에서 하나님에게 제단을 쌓은 후 벧엘에 이르러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라고 했다(12:8). 제단을 쌓았으면 그곳에서 제사를 드린 것이 당연하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예배하였음을 의미한다.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돌아와서는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때에 본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러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13:3). 이때에 전에 장막쳤던 “곳”을 하마콤(הַמָּקוֹם)이라고 히브리어로 표기한다. 히브리어 마콤은 보통의 한 장소를 가리키지만, 거기에 정관사 하(הַ)가 붙으면 특별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12:3에서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하여 햣마콤 핫미즛베아흐(חַמָּקוֹם הַמִּזְבֵּהַ), 즉 ‘제단의 장소’라고 표현되었다. 다시 방문한 이곳에서도 아브라함은 여호와께 예배를 드렸다. 그렇게 벧엘은 특별한 장소, 즉 예배의 장소가 되었다.

Refo 500 성경 해설: 모세오경 ((4) 벧엘의 야곱(창 28:10–22))
야곱이 이 서원을 한 것은 말씀대로 이루시면 전적으로 여호와께서 하신 일로 알고 여호와를 하나님과 왕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이다(Youngblood 2002, 28, 50). 십분의 일은 전체의 대표를 의미한다.
의도적 방문인가 우연인가?
나는 우연이라고 생각해.
작정하고 거기까지 갈 수준이 못되
본문의 표현이, 작정이라기 보다 우연으로 나타나고 있어
다시 돌아옴? 왜? 약속 때문이지 않을까?
21,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지금 야곱에게 먹을 떡과, 입을 옷이 부재된 상황임을 암시한다.
아브라함의 종과 같이, 다 같추고 떠나는 여행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