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붙드시는 손(느6:1-19)

느헤미야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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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2년 9월 18일 주일
제목 : 주님께서 붙드시는 손
본문 : 느헤미야 6장 1-19절 *구734
결단찬양 : 주가 일하시네
[도입]
저는 “고생했다.”는 인사를 참 좋아합니다. 언제부터 이 인사를 선호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모르게 함께 고생함을 인사로 나누며 격려하는 것 같다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슨 일이든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참 자주하고, 또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그 어떠한 인사도 없다면 저는 조금은 슬퍼지곤 합니다. 근데 이보다 더 슬프고 힘들게 하는 것은, 고생했지만 이를 비난하거나 허망하다 표현한다면 더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나의 수고와 노력이 허망해진다면 과연 기뻐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제 주변에 보이스 피싱이나 또는 사기 등을 당하신 분들이 부쩍 많아 졌습니다. 위협과 때론 달콤한 유혹에 넘어지셨고, 참으로 딱합니다. 분명 충분히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이 눈 앞에 다가오자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한체 넘어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열심히 살지만, 이 달콤하고 위협적인 연락이 사망과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느헤미야를 향한 달콤하고 위협적인 목소리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느헤미야는 어떻게 이겨냈는가 보게 됩니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게 주시는 그 은혜가 차고 넘치길 소망합니다.
[흠 하나 없이 건축하다]
느헤미야의 반대 세력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산발랏과 도비야 그리고 게셈이 반대 세력일 것이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들은 어떤 소식을 들었습니까? 1절의 하반절에 기록된 말씀을 함께 봅시다.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정말 긴 시간 느헤미야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성전 재건을 위해 힘썼습니다. 총 42군대를 함께 도맡아 재건하였는데, 정말 대단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무엇입니까? ‘허물어진 틈이 하나도 없다’는 소식입니다. 이는 정말 대단한 소식입니다.
저는 건축을 실제로 해본 적은 없지만, 수많은 공사현장을 접해보면서 흠 하나 없이 공사를 마무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공사가 끝나도 잠시 잠깐이나마 완벽해 보일 수 있지만, 조금의 시간만 지나보아도 보수할 곳이 어디가 있는가 눈에 보이게 됩니다. 이어진교회도 그랬습니다. 공사가 끝난 후 아쉬운 부분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많이 보수했습니다. 보강하기도 했고, 수리하기도 했고, 때로는 새로 다시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많은 시간을 거쳐 지금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보니, 한 번의 건축으로 흠 하나 없이 공사를 마무리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느헤미야와 이에 함께한 이들이 정말 대단한 수고와 노력을 보여주었단걸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이들은 마지막 관문이 남았습니다. 바로 문을 다는 일 입니다. 건축의 루틴을 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이어진교회도 생각해보면 안의 내부를 다듬었고 그리고 나서야 문을 마지막에 달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안에 들어갈 내용물들 또한 먼저 옮겼고 그리고나서 마지막에 달았던 것이 문으로 기억이 납니다. 이들도 그렇습니다. 맡은바 임무가 다 끝이 났고 이제 이들도 ‘문짝을 달아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느헤미야를 향한 첫 번째 제안]
이 상황을 들은 산발랏과 도비야 그리고 게셈은 그 즉시 사람을 보내어 느헤미야에게 제안을 합니다. 첫 번째 제안은 2절에서 발견이 되는데,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라는 것이지요. 당시 자신의 구역을 넘어 타지역에서 만남을 가진다는 것은, 그 영역까지 삶의 반경을 넓힐 때 주로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제안만 듣고 보면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에서 오노 평지까지 삶의 영역이 넓혀지는 것이니 매우 긍정적인 제안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속셈은 긍정적인 제안이 아니었습니다. 2절 하반절을 보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그들의 속셈은 삶의 영역을 넓혀주기 위해 만나고자 함이 아니라, 성전 재건의 우두머리라 볼 수 있는 느헤미야를 살해하고자 했던 것이 이들의 진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들의 목적을 눈치챘고 그들에 제안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를 향한 두 번째 제안]
이들은 느헤미야를 향해 추파를 지속적으로 던졌습니다. 두번, 세번, 네번의 추파를 던졌지만 느헤미야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느헤미야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다섯 번째 제안을 던집니다. 그 제안이 무엇인가 5절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느헤미야에게 봉하지 않는 편지를 보내는데, 봉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편지는 모두에게나 오픈 가능한 것이며, 또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편지에 적힌 내용이 만인에게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란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가 봅시다. 6절과 7절입니다.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여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지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어떤 내용이 담겨 있습니까? ‘너희가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 우리 왕을 버리고 너희끼리 나라를 세워 왕을 세우려 하는구나? 이게 왕에게 들려지면 진짜 큰일날건데 우리가 왕에게 이 말이 안들어가도록 도와줄께! 그러니 의논 좀 하게 만나지 않을래?’ 라는 내용이 편지에 담겨 있었습니다.
느헤미야의 대답은 어떠합니까? 8절입니다.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이거 다 네가 지어낸 이야기자나. 그런데 굳이 내가 널 만나야 할까?’ 느헤미야는 자신의 행동에 떳떳했고 당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그럴싸한 제안에도 충분히 거절할 힘이 있었던 것이지요.
[느헤미야가 가진 가장 큰 무기]
그렇다면 느헤미야의 충분히 거절할 힘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입니까? 9절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에게 기도는 무기였고 그가 의지하는 여호와 하나님과 이어진 끈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떤 기도로 하나님께 구합니까? ‘이제 내 손에 힘이 있게 하옵소서’ 그의 기도는 여호와의 손이 나를 붙잡아 그 힘이 내게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그 결과 성전이 완공됩니다. 15절입니다.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 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하나님의 도우심 끝에 성전은 완벽하게 재건에 성공합니다.
느헤미야에게 있어 가장 큰 무기는 기도였고, 무엇보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그 손이 느헤미야의 발걸음 가운데 함께 하여 보호하셨습니다.
바라옵기로는 이 여호와께서 느헤미야를 붙드셨던 그 손이 우리 가운데도 임하길 소망합니다. 연약하고 부족하다 평가할 수 있는 우리에게 있어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그리고 가장 안전한 길로 인도하시는 그 주님의 손이 우리 가운데 임하길 소망합니다.
[적용]
사랑하는k 청소년부 여러분. 지금 이 손이 불필요하다 느낀다면, 다시금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내 지난 날의 삶이 누구의 힘으로 걸어온 삶인가를 말입니다. 내 힘으로 사셨습니까?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아내셨습니까?
명심하십쇼. 우리는 우리 힘으로 살아낼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눈 앞에 우리의 삶이 아름답게 보여도 그것이 전부일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 사는 삶의 아름다움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삶은 고난이어도 아름답고, 행복이어도 아름답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진정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 되길 소망합니다. 힘들어도 감사할 수 있는, 고난 길에도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삶 살길 소망합니다.
특히 고3 친구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제 수능이 60일 남았습니다. 두 달의 시간이 너무나 짧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앞에 두 달이 아무리 짧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천지를 다스리시는 그 주님의 힘이 임한다면 뭐가 두렵겠습니까?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정말 주님께서 붙드시는 그 손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임재하도록 함께 기도하는 우리 청소년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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