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아이콘

아브라함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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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실한 자도 넘어진다 2. 전형적인 반응 3. 하나님의 등장 4. 아브람이 배운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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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자들도 넘어진다

여러분이 제일 좋아하는 마블의 영웅은 누군가요? 마블이 아니더라도 여러분들의 영웅은 누구인가요?
만약 그 영웅에 결점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계속 영웅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아이언맨 한번 볼까요?
아이언맨 1에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슈트를 만들었고, 포로에서 탈출 했어요. 그리고 계속해서 아이언맨 슈트를 업그레이드 시켜왔죠.
그리고 그는 마지막에 자신이 타노스 장갑 끼고 손을 털면서 죽음을 맞이했죠.
솔직히 아이언맨이 그렇게 죽었을 때 좀 아쉽고 속상했어요. 좋아했던 캐릭터를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이죠.
아이어맨의 죽음은 숭고한 희생처럼 보이죠. 그런데 그가 살아왔던 삶을 보면 어떨까요?
슈퍼 리치, 히어로 그리고 숭고한 희생까지 정말 멋진 영웅의 삶이지만 사실 토니 스타크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삶은 그닥 그렇게 멋지지 않았어요.
그가 돈을 벌기 위해 만든 무기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사람들을 죽이는데 사용되고 있었고, 그의 실수로 인해 많은 어려움들이 있기도 했죠.
잘한 일들이 많아서 그의 실수와 잘못들이 묻혔을 뿐 그는 흠이 없는 무결한 히어로는 절대 아니에요.
그럼 아브람은 어떨까요?
인격적으로 만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났고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은 미래를 향해 길을 떠났어요.
우리는 이러한 믿음의 사람을 향해 영웅이라 하지 않고, 신실한 사람이라고 표현을 하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하나님을 정말로 의지하고 붙잡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
삶의 어느 한 부분도 하나님을 기대할 수 없는데, 그분의 역사를 기대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신실한 사람이라 말하고, 또 그 신실한 사람이 바로 아브람이에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평생 살아온 집을 버렸어요. 이제 떠돌이 인생이에요. 집도 땅도 없어요. 자신이 믿던 달의 신도 버렸어요.
이제 그는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완벽한 떠돌이. 유목민의 인생을 살아가요.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세상 문화를 거절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그는 자신에게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가족과 손절했어요.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을 떠났어요.
그가 계획해 왔던 모든 인생의 계획을 과감하게 포기했어요.
그는 우르를 떠나 북서쪽으로 향하기 시작해요. 잘 닦여져있던 무역로를 따라 산악 도시인 세겜을 향해 남쪽으로 끊임없이 이동해요. 그리고 세겜에 도착해요.
당시 세겜은 나름 큰 무역도시였어요. 그리고 현지 사람들이 굉장히 신성하게 여기는 장소이기도 했어요.
우상의 도시 그리고 신성한 이방신의 장소에 아브람이 도착했어요. 세겜에 도착한 아브람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무엇일까요?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 아래에 장막을 쳐요. 상수리나무의 뜻은 “가르침의 나무"에요. 그리고 굉장히 거대한 나무에요.
사람들은 이 거대한 가르침의 나무 아래에서 자신들의 소원을 빌었어요.
여기에서 예배를 열심히 드리면 아이를 많이 낳는다는 소문도 있었기에 그 곳엔 사람들이 항상 많았어요.
아브람이 지금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 이방인들의 성지에 장막을 쳤어요. 그리고 제단을 쌓고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 제물을 드렸어요.
어쩌면 사람들은 아브람을 보고, 자신들이 믿는 그 신 앞에 제사를 드린다라고 생각했을거에요. 하지만 아브람은 그들이 믿는 가짜 신이 아닌 진짜 신을 향해 제사를 드렸어요.
아브람이 예배하는 그 장소에 모였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몰랐어요.
존재하지도 않는 신. 내가 만들어낸 신을 향해 빌고 또 빌고 또 빌었어요.
자신이 많은 치성을 드리고 에너지를 쏟는 것 만큼 신이 축복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열심히 예배를 드린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만족하며 집으로 돌아갔어요.
제사를 마친 아브람과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향해 떠나요.
그들의 헛된 희망과 다른, 진짜 희망을 붙잡은 아브람은 계속해서 남쪽으로 향해요. 그리고 마침내 한 곳에 도착해서 제단을 쌓아요. 바로 예루살렘이에요.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그 역사가 지금 시작되고 있어요.
제단을 쌓은 아브람은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해요.
당신을 신뢰하고 믿습니다.
전적으로 당신만을 의지합니다.
나의 삶엔 당신이 필요합니다.
크. 멋지지 않아요? 신실한 아브람의 삶을 좀 봐요.
탁 내던지고 길을 따라 걸어오며,
이방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어요.
그리고 일어나서 또 쭉 걸어가서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고백했어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마치 흠이 없는 영웅. 신실한 사람 아브람의 전기를 읽는 것만 같죠.

전형적인 반응

이렇게 멋지고 신실한 믿음을 가진 아브람은 실패하지 않는 삶을 살 것만 같아 보여요. 그는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와도 “허허" 웃으면서 이겨낼 사람처럼 보여요.
신실한 그의 믿음을 시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갑자기 기근이 찾아와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땅에 도착했어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착했어요. 행복한 일만 가득해야 하는데, 행복의 ㅎ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기근이 닥쳐와요.
그가 네게브 지방에 있었을 때 기근이 찾아왔는데요. 네게브의 뜻은 ‘마른, 건조한'이에요. 이름부터 마르고 건조한 곳에 정착한 아브람 앞에 바로 고난이 딱 생겨났어요.
기근은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였어요. 가뭄. 병충해 혹은 메뚜기 떼. 농사 실패. 왜 어떤 이유로 기근이 찾아왔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네게브는 ‘마른, 건조한'이라는 이름부터 식량이 부족함을 알려주는 곳이기도 했어요.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갑자기 나타난 신이 나에게 보여준 땅. 마치 행복하고 모든 것들이 다 가능할 것이다 생각하고 찾아왔는데
또 오면서 제단까지 쌓고 예배까지 드리며, 나의 신앙을 고백했는데! 기근이에요.
아브람이 원래 살던 곳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지형이었어요.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있어, 씨를 뿌렸다 하면 대풍년이 일어나는 곳이었어요.
그에게 익숙한 지형은 곡식이 넘쳐나는 땅이었어요.
하나님이 가라고 한 땅이에요. 근데 망했어요. 먹을게 없어요.
일차 위기가 그에게 찾아와요.
배고픔이 계속 되어요. 지난 번에 말했던 것처럼 아브람과 사래만 온 것이 아니잖아요. 조카 롯과 모든 짐승들을 싹 다 데리고 왔잖아요. 근데 먹을게 없어요.
중요한 시험의 순간이 그에게 찾아와요.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믿음을 보기 위해 치사하게 기근을 일으키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은 이 기근을 통해 그의 믿음의 깊이가 더 해지기를 바라셨을 뿐이에요.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이러한 기근이 있어요.
무조건 있어요. 아브람의 여정에만 시험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반드시 분명한 시험. 기근이 있어요.
마음이 메마르기 시작하면,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하면 말씀이 들리지 않아요.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쏟는 것이 괜히 아까워져요. 안하고 싶어져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 포기하고 싶어져요.
그냥 되는대로 흘러가는데로 살고 싶어져요.
그것이 저와 여러분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기근의 모습이에요.
그 기근 앞에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요? 기근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나요?
여러분의 신앙의 도전을 받는 그 순간. 그 때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나요?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였던 아브람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고난. 기근 앞에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반응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 그 상황을 피하려 한다는거에요.
우리의 신실한 신앙인. 히어로 아브람이 그랬어요.
기근을 맞이한 아브람은 냅다 튀어요. 지금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제단도 쌓고 예배도 드리던 그가 맞이한 첫번째 위기 앞에 바로 고꾸라져요. 냅다 애굽으로 튀어요.
기도고 제단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일단 먹을 것을 향해 달려요.
왜 애굽으로 갔을까요? 애굽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어요.
애굽은 언제나 세상을 의미해요. 좀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세상과 연합하려는 저와 여러분의 끊임없는 노력을 말해요.
세상이 주는 어려움을 경험하면 우린 움추려 들어요.
얼마 전에 여기있는 사람들 중 몇 명이랑 방탈출 카페를 갔었는데, 공포 테마였거든요?
한명은 귀막고 벽보고 혼자 중얼중얼 거리고, 한명은 자기 심장 위에 손을 올리고 계속 쓰다듬고 있더라구요.
이게 일반적인 우리의 반응이에요. 세상이 위협하면 귀막고 벽보고 혼자 중얼 거리고, 괜히 자기 자신 쓰다듬으면서 괜찮아 괜찮아. 하는 이 모습이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이에요.
아브람은 어려움을 만나자 하나님이 아닌 벽, 세상부터 봤어요. 그리고 뭐라도 잡으려고 허우적 거렸어요. 그게 바로 애굽이었어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거에요.
당신을 신뢰하고 믿습니다.
전적으로 당신만을 의지합니다.
나의 삶엔 당신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멋진 고백을 하던 그가, 이 말이 무색할정도로 빠르게 돌아 세상을 향해 뛰어 세상으로 쏙 들어가버렸어요.
애굽으로 피한 것 자체가 죄는 아니에요. 그런 선택 할 수 있어요.
A와 B 둘 중 하나만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에요. 둘 중 맞는 정답을 선택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예끼 이 놈아"하면서 꼴밤 때리지 않으세요.
둘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세워두신 계획이에요. 기도하고 조금 더 마음에 감동이 오는 쪽을 선택했다면 그것을 붙잡고 나가야 해요. 기도하지 않고 선택했어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구요.
그런데 아브람은 둘 다 하지 않았어요.
자신이 냅다 선택해서 애굽으로 갔는데, 이차 위기가 찾아와요. 아내가 너무 예쁜거에요. 그래서 내 누이라고 말하자. 그리고 나는 너의 후견인이야. 라고 아내랑 짜요. 근데 이거 반은 맞아요.
사래는 엄마만 다르지 같은 아빠를 갖고 있는 진짜 이복 누이였거든요. 근데 진짜 나쁜 놈이죠.
사래가 너무 예뻤고, 애굽 사람들의 눈에 띄어 왕에게 잡혀가요.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왕에게 잡혀갔어요. 그리고 왕은 사래를 보고 한 눈에 반했고 구애하기 시작해요.
그런데 바로 사래를 취한 것은 아니에요.
고대 결혼 의례를 보면 내가 데려온 이 여자가 임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증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요.
혹시 누군가의 아내일수도 있기도 하고, 또 임신을 했다면 그 관심도가 줄어드는거죠.
누구와도 교류할 수 없도록 그리고 어떠한 관계도 맺지 못하도록 그 여자를 독방과 같은 곳에 두고 문을 걸어 잠궈요.
임신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 애굽 왕은 아브람에게 엄청나게 많은 결혼 선물을 보냈어요.
사래는 잡혀가서 혼자 독방에 갇혀 벌벌 떨고 있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은 선물을 받고 오히려 더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어요.

하나님의 등장

남편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앉아서 주는 선물을 받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움직이기 시작하셔요.
아브람이 왕을 찾아가서 “사실은 내 아내입니다!”라고 말할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불가항력적인 방법. 정말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모습을 드러내셨어요.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어요. 12장 17절에서 말하는 재앙은 질병을 말해요.
여느 날과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저녁을 먹으려 하는데, 갑자기 질병이 발병을 하기 시작했어요.
왕이 고통스러워해요.
고통스러원하는 왕을 병간호 해야 하는 후궁들도 이상한 질병에 걸려서 픽픽 쓰러져요.
그리고 뒷 수습을 하러 달려온 종들도 병이 나서 아무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다 누워 있어요.
왕은 이 질병을 보면서 이것은 “신의 분노"라는 판단을 내려요. 당시 질병은 영적인 문제라 생각했거든요. 보지 못한 질병이 생기면, 우리가 신을 만족시키지 못해 받는 벌이라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희생제물로 자신들이 믿는 신을 달래왔어요.
왕은 자신의 어떤 행동이 아브람의 하나님을 불쾌하게 했다는 생각을 해요.
왕은 어떻게 아브람의 신이 자신들에게 벌을 주었다고 판단했을까요? 무엇을 근거로?
그 왕궁에 유일하게 질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있었어요. 딱 한 사람. 누굴까요?
맞아요. 바로 사래에요.
독방에 있었기 때문에 안 걸렸다고 하는 사람 있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사래도 사람들에게 노출 되었어요.
바로가 지금 사래를 보고 한 눈에 반했어요. 사래는 독방에 있지만 집중 케어를 받아요.
당연히 그녀도 질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확인했겠죠. 그런데 그녀는 너무 멀쩡했어요.
바로가 바로 아브람을 찾아 분노하기 시작해요.
바로는 왕이잖아요?
아브람을 그대로 죽이거나 소유를 빼앗아 노예로 팔아서 평생 후회하면서 살도록 할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하지 않아요.
진짜 말도 안되게, 부인을 돌려주고, 아브람에게 주었던 선물도 빼앗지 않고, 그를 살려서 다시 보내요. 어떤 보복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 때 나중에 아브람의 인생에 한 부분을 차지하는 하갈도 따라 나와요.
여러분 좀 이상한 결말이지 않나요?
기근을 피해 먹을 것이 있는 애굽으로 갔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더 많은 가솔과 짐슴들을 얻었어요. 그리고 다시 여전히 기근이 있는 네게브로 돌아왔어요.
먹을 게 없어서 피했는데, 더 많은 사람들과 짐승들을 갖고 여전히 먹을 것이 없는 곳으로 돌아왔어요.
아내를 돌려받고 더 많은 재산을 갖게 되었으니 해피엔딩 인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먹을 것이 없는 새드엔딩처럼 보여요.

아브람이 배운 원칙

하나님께 묻지 않고 선택한 길 위에서 그는 굉장히 황당한 결과를 들고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어요.
어떤 큰 일을 치루고 나면 그것을 통해 얻는 것들이 있잖아요? 아브람도 이 사건을 통해서 깨달은 것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의 깨달음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첫째, 모든 사람은 기근을 두려워해요.
우리 앞에 어떤 어려움과 힘든 일. 즉 기근이 닥치면 우리는 그저 멍하니 쳐다봐요.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괜찮다 말을 한다던지, 혹은 답을 찾으려고 나의 모은 에너지를 쏟아요.
우리도 아브람처럼 걸어가는 그 믿음의 여정 속에 위기가 늘 찾아와요.
이 위기. 기근은 파괴적이며 또 우리를 두렵게 만들어요.
그것을 이겨낼 힘과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것이 무엇인지 떠올리지 못해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기근은 우리를 하나님과 더 가깝게 그리고 더욱 깊은 관계가 되도록 만들어요.
제가 인도 이야기를 자주 하는 이유는 그 곳이 저에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기근의 자리였기 때문이에요.
단 하루도 말씀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머리가 아파서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었던 곳이 었어요. 그런데 그 기근의 삶을 어떻게든 버티고 버티고 나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너무 깊어진거에요.
나를 향한 그분의 사랑의 깊이가 더 해졌음을 느끼게 되더라구요.
여러분의 기근은 무엇인가요? 기근으로 인해 힘들다면, 고간 가운데 진실함을 지킨 사람을 찾아보세요. 순에도 있을 수 있고, 옆에 앉은 사람이 그런 은혜를 경험했을 수도 있어요.
부탁하여 내용을 듣고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졌는지 생각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보세요.
내 기근을 끝낼 수 있는 단서가 거기에 있어요.
둘째, 회피에는 반드시 거짓이 따르고 그것은 내 약점이 되요.
고난 앞에 전형적인 반응을 보이며 회피하고 하나님이 아닌 내 힘으로 해결하려 하면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내 힘으로 안되는데, 된다고 거짓말하고 거짓말하다 수습불가능한 상황이 와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시험을 정면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피하느라 인생을 소비해버려요.
그리고 그렇게 버린 시간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고 변명을 늘어놔요.
그렇게 쏟아낸 합리화와 변명 거짓말은 나의 약점이 되어 돌아와요.
여러분 신실해 보였으나 시원하게 넘어져서 바닥을 구르고 있는 이 아브람은 바로 저와 당신이에요.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고 흠이 있어요. 그래서 현명하고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없어요.
전형적인 방어기제. 회피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어버려요.
아브람은 두번이나 제단을 쌓았어요. 하지만 그대로 추락했어요.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에요. 예배를 드리지만 늘 추락해요.
우리가 넘어지는 이유는 기근을 밟고 걸어가는 것이 아닌, 우회하여 돌아가기 때문이에요.
기근 저 한 가운데 서계시는 예수님을 향해 걸어가면 빠른데, 편한 길 찾아서 걸어가려고 돌아가다 지구 끝까지 가버리는거에요.
그리고 그것은 나의 약점이 되어 계속 넘어지게 돼요.
셋째, 타협은 사래를 위험하게 해요.
제가 아내랑 오키나와를 놀러갔던 적이 있었어요.
제가 또 나름 특전사를 나왔잖아요. 대충 수영을 할 수 있단 말이에요. 같이 바다 스노쿨링을 갔어요.
필리핀에서도 살았던 저니까 얼마나 스노쿨링 많이 했겠어요. 바다 수영도 많이 해봤어요.
오리발을 주는데 저는 필요 없다고, 아내보고도 하지 말라고 내가 끌어줄게! 라고 했어요.
그리고 물에 들어갔어요.
물살이 장난이 아닌거에요. 아무리 수영을 해도 앞으로 가지 않고 뒤로 가요. 점점 저와 아내는 배와 멀어지기 시작했어요.
아내가 살려달라고 말하자고 했는데, 또 그 이상한 자존심 때문에 아냐 내가 살려줄게! 라고 했어요.
결국 아내가 옆에 있던 일본 사람에게 살려달라고 했고, 그들이 우리를 함께 배까지 데리고 갔어요.
저희 아내는 제가 자신을 지켜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실은 바다 물살 앞에 제 한 몸도 가누지 못했죠. 저희 아내는 엄청 무섭고 두려웠을거에요.
사래는 더 심했을거에요. 왕궁에서 고립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으세요?
“난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남편이 나에게 이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우리의 삶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그리스도인은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이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의 삶은 절대 아무런 관계가 없을 수 없어요. 우린 무관한 존재들이 아니에요.
저와 여러분이 하는 세상과의 타협은, 우리 공동체를 흔드는 하나의 작은 불꽃이 될 수 있어요.
함께 걷는 공동체란 다른 말로 함께 영적인 모든 것을 공유하는 공동체이기도 해요.
나의 타협이 누군가의 시험이 되고, 그를 넘어뜨릴 수 있어요.
아브람은 굉장히 얼빠진 짓을 했어요.
그의 신앙은 아주 세차게 흔들렸고 하나님께 영광도 돌려드리지 못했어요. 대학교 학점으로 치자면 F학점. 재수강해야 해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던 사람. 결국 자신에게 익숙한 세상을 향해 떠난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주신 계획을 박박 지워버린 사람.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은 아브람.
이상하게 하나님은 그를 더 부유하게 만드셨어요.
하나님은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아셨어요. 왜냐하면 모든 선택지를 만들어두신 분이 하나님이시니까요.
그가 그리고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마음. 그 결심은 절대 바뀌지 않아요.
여러분 아브람이 이 얼빠진 짓을 하고 다시 돌아왔어요.
아내도 몸 성하게 돌아왔죠. 자신도 살았죠. 더 부자가 되었어요.
말도 안되는 이 상황을 보고 그가 무슨 생각과 결심을 했겠어요.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되었겠죠. 하나님이 하신 무조건적인 약속이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 생각했겠죠.
하나님은 믿음이 부족해도 은혜로 우리를 축복하고 계셔요. 우리의 행실에 달리지 않았어요.
아브람의 잘못된 결과를 오히려 가르침의 방편으로 삼으셨어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아브람의 이 세가지 교훈은 꽤나 현실적인 내용이에요.
여러분의 삶에 기근이 덮쳤을 때, 이 세가지를 꼭 기억하세요.
회피하지 마세요.
거짓말 하지 마세요.
타협하지 마세요.
어렵다는 것도 알고 너무 두루뭉술 해 보이는 것일 수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 이게 가장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삶의 적용점이에요.
이 세가지를 머리 속에 넣어놔도 우리는 또 피할거에요. 벌러덩 넘어질거에요.
그 때가 기근을 극복하는 순간이 될거에요.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반드시 경험하는 말도 안되는 순간이 될거에요.
이 세가지를 꼭 기억하며 살아보세요. 그럼 다른 눈으로 삶을 대하게 될거에요.
그런 은혜가 있는 한주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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