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설교하시는 하나님

킹덤스토리 해설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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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수요기도회에 오신 성도님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광야 생활 막바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말씀을 듣게 된 이야기를 말합니다. 교재를 가지신 분은 아시겠지만 9페이지에 본문이 1장부터 4장까지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저는 이걸 설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본문을 4장 1-2절로 정해놓고 일단 교재에서 말하는 주제대로 최대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교재를 따라 오시면 되겠습니다.
1-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신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으로 애굽에서 탈출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그냥 믿음으로 그 땅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으면 되는데 불신앙으로 인해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게 됩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40일을 40년으로 계산해서 광야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살펴보는 신명기 말씀은 이스라엘이 광야생활 40년을 하고 나서 다시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의 설교를 담은 것입니다. 이 설교는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20장에 말씀하셨던 율법을 다시 조직적으로 해석하고 해설한 내용입니다. 이미 선포된 율법을 모세가 다시 설교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1세대를 위해 율법을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다. 그 1세대들은 광야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태어났거나 아니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광야 생활을 한 광야 2세대를 위해서 다시 율법을 선포하십니다. 가나안 땅 앞에서 이 약속의 땅을 다시금 선물로 허락하시며 모세의 입을 통해 율법을 설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기회를 주신다는 말은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한 이들을 광야에서 훈련하시고 믿음을 회복시키셔서 다시 한 번 가나안 땅에 도전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회를 주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 절절 하게 회개를 잘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뭔가 아쉬운 게 있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실 때 언급하신 적이 있지만 하나님은 얼마든지 다른 민족을 세워서 하나님의 일을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책 잡혀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갑의 입장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에게 기회를 주시고 회복시키셨습니까? 바로 약속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기회를 주신 것은 이스라엘이 뭔가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포함한 족장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이 민족을 통해 교회를 세우고 세상을 구원 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붙들 것은 이 약속, 언약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말씀만하셔도, 그러니까 구두로만 약속을 하셔도 그것은 효력이 있습니다. 마땅이 구두 약속만 가지고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전쟁을 해서 싸워 이기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만 있으면 이스라엘이 충분히 전쟁을 해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에게 기회를 주실 때 이 백성들이 또 이방의 왕과 군대를 보고 두려워할까봐 본격적으로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이스라엘이 실수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시는 그 사랑과 은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적용) 우리는 때론 이런 생각을 합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지난 날을 너무 정신없이 시간에 쫓겨 사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하지 못했을 때, 아니면 나태하게 살았던 시간들이 후회 될 때 혹은 과거에 큰 잘못을 했을 때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너무나도 많이 하게 됩니다. 저도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으면 지금 내 사역이 좀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좀 더 나은 설교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사역하다가 무심코 하게 된 말실수도 생각이 납니다. ‘내가 그 때 그런 말 안해야 하는데,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서!’는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이 너무나 많지만 하나님께서 절대 시간을 되돌려 주시지 않습니다. 대신에 기회를 주십니다. 회복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갈 때 알게 혹은 모르게 불신앙으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나의 어려운 일을 기도로 풀어가야 하는 것을 아는데 세상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화가 나서 너무 힘들어서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습니다. 더 섬겨야 하는 것 아는데 섬기지 못하고 더 순종해야 하는데 순종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불신앙에 물들어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나의 다양한 욕망에 따라 하나님의 뜻과 전혀 상관 없이 살아가려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약속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그 약속 때문에 우리는 불신앙에 물들어 살아가지 않습니다. 시간을 되돌려서 우리가 과거의 실패를 다시 되돌릴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실패위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 회복하게 하십니다. 다시 교회에서 기도하게 하시고, 다시 사랑하며 섬기게 하십니다. 우린 지난 날 실패투성이고 앞으로도 실패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분의 교회와 그분의 나라를 세우시고자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세상 앞에 서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이유를 감당합니다.
2- 하나님은 다시 말씀을 주신다.
(전환문장) 하나님께서 이렇게 기회를 주시는데 어떻게 기회를 주십니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그 시작은 바로 말씀입니다.
(설명)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시작은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불신앙이 우리의 마음으로 계속해서 밀고 들어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광야 2세대를 향해 다시 율법을 선포하십니다. 신명기에 기록된 모세의 설교 세 편을 통해 율법을 다시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 신명기는 영어로 듀테로노미 여기서 듀테로는 두 번째를 뜻하고 노미는 율법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법을 두 번째로 말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걸 신명기라고 번역하는데 신명기에 신은 거듭 신자고 명은 명령 명자입니다. 그러니까 거듭 명령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전 세대에 율법이 선포되었기 때문에 다시 율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광야 2세대를 위해 다시 율법을 선포하셨습니다. 원래라면 이전에 선포된 율법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간 이스라엘이 겪었던 사건과 현재의 이스라엘의 입장에 맞게 율법을 해석해서 선포합니다.
우리 교재의 두 번째 챕터의 제목이 “하나님 나라의 법을 두 번째로 설명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같지만 우리의 형편에 맞게 고백하고 적용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신명기라는 책 자체가 고대근동의 조약의 형식에 따라 기록되어있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히타이트 제국의 종주권 언약 문서의 형식을 보면 신명기랑 비슷합니다. 종주권 언약은 왕이 신하에 대해서 혹은 대왕이 분봉왕에 대해서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종주란 왕이나 대왕을 의미하고 종주가 그 신하들, 봉신들과 약속을 합니다. 이 약속은 신하는 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왕은 또 신하에 대해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종주권 언약의 형식은 서문이 있고, 역사적 서언, 준수사항, 문서처리규정, 증인들, 저주와 축복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신명기를 보면 이 형식에 딱 맞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신명기 말씀을 들었을 때에 고대 제국의 수준 높은 법률을 듣는 것처럼 이 것을 굉장히 무겁게 받아들이고 명심했을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신명기의 설교를 듣고 이것에 근거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전의 그들의 부모세대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 아서 광야생활 했던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이제 광야 2세대는 이 말씀에 근거해서 믿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합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도 이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온갖 우상들이 있고 온갖 음란하고 타락한 문화가 견고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그 우상과 문화는 그 지역에서 수 백 년을 똬리 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의지나 정신력으로는 그것을 거스르며 살수 없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반드시 그 죄악의 문화에 젖게 됩니다. 그래서 모세가 광야 2세대를 위해 선포한 이 율법이 필요합니다. 이 말씀만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그 문화에 물들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며 살 수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 2세대를 위해 설교한 이 율법을 그냥 듣고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설교가 계속 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설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이 율법을 말하고 듣고 마음에 새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모세의 설교가 계속 해서 그 마음에 설교되지 않으면 또 다시 불신앙과 죄악에 물들게 될 것입니다.
(적용) 신명기는 거듭 명령한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우리도 이렇게 신명기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세가 과거의 실패를 회고하며 다시 율법을 붙잡아 설교했듯이 우리도 과거에 실패했을지라도 너무나 연약한 내 모습에 실망할지라도 다시 말씀이 나에게 설교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역사는 한 번 들은 적이 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성이 말씀을 거절하고 그 욕망대로 살아라고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또 말씀을 놓쳐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심령에 계속해서 설교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욕망은 우리 마음에 끊임없이 불신앙을 설교합니다.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보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를 세상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세상이라는 교과서에 우리를 항상 노출시킵니다. 우리의 욕망이 세상이라는 교과서를 펼쳐놓고 우리에게 설교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살아도 잘 살고 이렇게 살면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한지 보여줍니다. 우리는 나의 욕망이 세상을 가지고 설교할 때 얼마나 이 설교에 많은 감동을 받고 이 설교대로 살아가려고 아등바등 애를 쓰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고 이 욕망이 설교하는 것을 듣고 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그 나라의 법을 다시 설교하십니다.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지금이라도 세상의 법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법,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히타이트 제국의 종주권 언약처럼 왕이신 하나님의 신하인 우리가 지켜야 할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설교 한 번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들은 말씀이 내 삶에 계속 설교되도록 해야 합니다. 메모를 하셔서 계속 묵상을 하시든지 주보를 모아서 보시든지 셀에서 나누시든지 어떻게든 교회에서 들은 말씀이 계속 내 삶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한 좋은 방법 중하나가 새벽기도인 것 같습니다. 새벽에 같은 성경을 연속해서 설교하지 않습니까? 지금 로마서 설교를 계속 듣고 있는데 이 로마서가 말하는 풍성한 복음의 진리와 교훈을 연속으로 듣고 기도시간에 그걸로 기도하면서 소화하고 그 다음 날에 또 듣고 기도하고 하면 말씀이 내 삶에 계속 설교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물론 새벽기도 나오려면 내 삶의 패턴을 완전히 바꿔야 해서 너무 힘듭니다. 어떻게든 밤 10시 안에는 모든 생활을 다 끝내야 합니다. 밤부터가 이제 유튜브도 보고 예능도 보고 하는 시간인데 새벽기도 나오려면 이걸 다 끊어야 합니다. 젊은 사람일수록 더 힘듭니다. 제가 아는 청년 한 명은 하루에 유튜브를 두 시간을 본다고 합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직장생활이 힘드니까 말씀보다는 유튜브로 위로를 받게 되는데 이거 끊어야 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말씀이 내 삶에 지속적으로 설교되도록 삶의 형식을 수정해야 되겠습니다.
3-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게 하신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교훈은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4장 1절을 보시면 땅을 얻는 조건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땅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말로 여쭤보겠습니다. 가나안 사람들 그 기골이 장대하고 군사훈련을 잘 받은 사람들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보통의 대답은 이럴 것입니다. 우리도 군사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피지컬이, 체격이 안되니까 무기라도 좋은 무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놀랍게도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영 엉뚱한 이야기를 합니다.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면 그 땅을 얻는다고 이야기 합니다. 땅을 얻어야 하는데 싸워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힘을 키우라고 하시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일 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세상 그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규칙입니다.
이렇게 땅을 얻고 승리하는 것에는 개인의 공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아까 읽은 4장 1절위에 3장 27절을 보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땅을 보기만 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모세 정도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하지 않습니까? 비록 모세가 이전에서 반석에서 물을 낼 때 반석을 치는 잘못을 했지만 이때까지 모세가 고생한 것 생각하면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준은 누가 고생을 많이 하고 공을 많이 세우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입니다. 이건 설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오랜 세월이 지나서 모세가 약속의 땅을 밟게 하십니다. 누가복음 9장 30절에 모세가 엘리야와 함께 예수님과 변화산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천오백년 후에 이야기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은혜가 풍성하신 분인지 알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모세가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게 하셨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땅을 밟게 됩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에 순종할 때 가나안 족속들을 이기게 하시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기는 것은 선교적인 차원도 동반됩니다. 신명기 4장 5절과 6절을 보겠습니다. 5절에 보면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6절에서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들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이스라엘이 할 일은 단순히 하나님께 어떤 군사적인 지원을 받아서 땅을 차지한 것 그 이상의 일입니다. 말하자면 선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면 이방인들이 그것을 보고 듣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보고 들을 때 그 말씀이, 말씀에 근거한 삶이 그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이 큰 나라 사람들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까 수준이 있습니다. 도덕적입니다. 윤리적입니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너무 좋은 분입니다. 이러면 이방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부터 이방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준비하셨고 이 일에 그분의 백성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적용)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 가운데서 승리한다고 할 때 그게 단순히 우리가 잘되가지고 예수님 믿으면 저렇게 잘되는구나 이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충격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그들에게 이야기 할 때 세상 사람들은 이런 분이 다 있나 하고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하고 충격을 받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합니다. 전도하라는 성경의 명령에 따라 우리가 전도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이렇게 전도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일 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통해 일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보고 많은 이들이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우리의 삶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말씀이 우리 삶을 주도하도록 할 때 지난 세월의 연약했던 모습조차 놀라운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연약했던 우리가 말씀으로 강하여진 이야기가 더 복된 이야기가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 세상 가운데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분입니다. 어떻게 기회를 주십니까?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설교하십니다. 끊임없이 설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설교하실 때 이 설교된 내용을 다시금 우리 마음에 부지런히 설교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설교된 말씀을 세상 가운데서 실천하고 이 말씀을 말할 때 세상을 놀라게 하고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복된 일들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함께 찬양하시고 말씀 들은 것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