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방치하면 안되는 이유

사무엘하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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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방치하면 안되는 이유 / 죄를 방치하면 삶의 각종 문제들을 일으킨다
제가 대학교 3학년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때 저는 주님을 만난 후 곧바로 죄와의 전쟁에 돌입했었습니다.
주님을 더 알아갈수록 거룩함에 대한 저의 열망도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제일 먼저 욕설이 그쳤고, 곧바로 술도 끊었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피우기 시작한 담배를 끊으려 했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담배를 사서 화장실에서 한개피를 몰래 피웠는데 피우고나면 곧바로 양심에 가책을 받아 다 버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린 담배갑이 10갑은 넘을 겁니다.
또한 저녁에 텔레비전에서 야한 영화들이 자꾸 나오자 텔레비전 코드를 아에 잘라버렸습니다.
한번은 설에 순천집에 내려가서 엄마, 아빠에게 세배하는 것을 거부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부모님과 누나 매형들에게 이상한 교회다닌다며 욕을 엄청 먹었지만 제 마음 속에는 짜릿한 승리감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절 하는 것 자체가 우상숭배라고 여겨 아에 거부했던 것인데 알고보니 제가 잘못 알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신앙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된 지식이 없어 생긴 해프닝이었습니다.
그 때 저에게는 죄에 대한 단호함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경도 잘 몰랐지만 죄에 대해 단호했던 그 시절 아마 하나님은 저를 매우 귀엽게 보셨을 거 같습니다.
물론 그때와 달리 지금은 또다른 죄악들이 저를 괴롭히지만 예전처럼 죄에 대한 그런 단호함은 줄어든 거 같아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는 얼마나 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죄의 심각성을 얼마나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 몸 안에는 기생충만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죄 또한 몰래 기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중 누군가는 일주일에 한번도 회개하지 않을 지 모릅니다.
제가 대표기도로 회개기도를 한다고 해서 실제로 회개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회개는 마음의 변화, 삶의 변화를 동반해야만 진정한 회개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회개를 자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곧 우리가 죄를 많이 짓고 있지 않다는 말과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는 것일수 있습니다.
안 좋은 기생충이 우리 몸에 각종 질병을 일으키듯, 회개하지 않으면 죄는 우리 삶에 각종 문제를 일으킵니다.
오늘 다윗 집안에 일어난 죄악들을 보며 내 죄를 어떻게 다뤄야 할 지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
첫째, 우리는 죄에 대해서 단호해야만 합니다.
13장 21절입니다.
다윗왕은 이 이야기를 모두 듣고서, 몹시 분개하였다.
여기서 이 이야기란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이 배다른 동생 다말을 강간한 사건을 말합니다.
암논은 거짓말로 아버지 다윗을 속여 다말이 자신을 병문환오게 만들었고, 그 자리에서 다말을 강간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 다윗은 몹시 분노했지만 그를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다윗의 반응은 21절이 끝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따르면 근친상간을 저지른 암논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에 분개할 뿐 정당하게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왜 일까요?
암논을 사랑해서 일까요?
암논이 왕위 계승 1순위라서 수치스러운 죄를 감추고 싶어서 였을까요?
진짜 이유는 다윗 자신에게 있습니다.
다윗은 11장에서 자신의 충성스러운 신하의 아내였던 밧세바와 간음한 일이 있었습니다.
자신도 간음뿐만 아니라 살인도 저질렀기 때문에 암논에게 떳떳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암논의 죄를 그대로 방치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렇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려면 자신이 빛이어야 하는데 자신도 어두우면 빛을 비출수가 없는 법입니다.
심지어 요새는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이상한 일들까지 벌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죄를 처벌하지 않고 방치하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납니다.
23절입니다.
두 해가 지난 어느 날, 압살롬은 에브라임 근처의 바알하솔에서 양털을 깎고 있었다. 이 때에 압살롬이 왕자들을 모두 초대하였다.
다윗은 2년동안이나 암논의 죄를 방치했습니다.
다윗은 다말의 상한 마음도 제대로 어루만지지 않았습니다.
성폭력을 당한 사람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그 가해자를 제대로 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암논만 자식입니까? 다말은 자식 아닙니까?
다말은 평생 트라우마때문에 우울증을 앓으며 슬픈 나날을 살아가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2년 동안 손을 놓고 방치하는 동안 또다른 사람은 몰래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습니다.
바로 다말의 진짜 오라버니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은 암논에게 분노했지만 조용히 그를 죽일날만 기다렸습니다.
32절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때에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인 요나답이 나서서 말하였다. “임금님, 젊은 왕자들이 모두 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암논 한 사람만 죽었습니다.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보인 날부터, 압살롬은 그런 결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 2년 동안 아버지 다윗이 암논에게 적절한 처벌을 내렸다면 압살롬은 암논을 죽일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시간을 허비하고 죄를 방치했습니다.
2년을 준비한 압살롬의 계략은 매우 치밀했습니다.
그는 암논이 아버지 다윗을 속인 것처럼 자신도 아버지 다윗을 속입니다.
그는 양털을 깎는 축제를 이용해 암논을 제거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 당시 양털 깎는 날은 일년중 농작물을 추수하는 때와 같이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그때는 가족들, 친지들, 이웃들을 모시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는 이 날을 노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실행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아버지 다윗왕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왕과 형제 왕자들을 그 날 모두 초청합니다.
아버지 다윗이 의심하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의도를 숨긴채 아버지 다윗에게 축제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합니다.
24, 25절입니다.
압살롬은 다윗 왕에게도 찾아가서 말하였다. "임금님, 제가 이번에 양털을 깎게 되었으니, 임금님도 신하들을 거느리시고, 이 아들과 함께 내려가셔서, 잔치에 참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왕이 압살롬에게 말하였다. "아니다, 내 아들아. 우리가 모두 따라가면, 너에게 짐이 될 터이니, 우리는 가지 않으마." 압살롬이 계속하여 간청을 하였지만, 왕은 함께 가고 싶지 않아서, 복을 빌어 주기만 하였다.
다윗이 계속해서 거절하니 이제서야 압살롬은 자신의 요청을 슬며시 바꿉니다.
26절입니다.
그러자 압살롬이 말하였다. "그러면 맏형 암논이라도 우리와 함께 가도록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왕이 그에게 물었다. "암논이 너와 함께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감춰둔 원래 목적을 넌지시 말하며 다윗이 못 온다면 대신 맏형 암논이라도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버지 다윗은 계속해서 그의 호의를 거절했기 때문에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압살롬이 노린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다윗은 압살롬을 약간 의심합니다.
암논이 꼭 가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암논과 압살롬의 관계가 안 좋은 것을 알기에 의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암논 혼자 보내지 않고 다른 왕자들을 다 함께 보냅니다.
그렇게 하면 압살롬이 암논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압살롬은 암논이 술취한 때를 기다렸다가 자신의 군사들을 시켜 그를 제거했습니다.
결국 이 사달이 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윗이 암논의 죄를 방치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훈계해야 할 때 제대로 훈계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자식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2년이라는 시간동안 다윗은 암논을 벌하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동안 다윗은 충분히 하나님의 뜻을 물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시간을 낭비했고, 그 결과 밧세바와 낳은 자식에 이어 또다시 자식을 잃게 된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자식 하나만 잃은 게 아닙니다.
다말도 잃었고, 살인자가 되어 도망친 압살롬도 잃은 것입니다.
분명히 다윗은 이 사건으로 인해 죄를 방치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뼈져리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나라는 하나님 말씀이 아닌 죄가 통치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삶은 누가 통치하고 있습니까?
내 안에 숨어있는 죄의 반란군을 빨리 제압하지 않으면 우리 삶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믿는데도 나의 삶은 이렇게 지지부진할까요?
믿음이 부족해서? 아니면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어쩌면 우리 안에 기생하는 죄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염증을 일으키듯, 죄는 우리 영혼을 갉아먹고 우리 삶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영적으로 둔하면 죄에 대해 무방비상태가 된다는 점입니다.
죄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죄에 대해 단호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둘째, 우리는 영적으로 예민해야만 합니다.
이 사건을 잘 보면 다윗의 특징 한가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가 영적으로 매우 무뎌졌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가 영적으로 부주의하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영적으로 민감하던 다윗이 아닙니다.
무엇을 보면 결정적으로 알 수 있냐면 다윗이 하나님께 자주 묻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이름이 아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별명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데 오늘 말씀 속에는 다윗 자신의 감정과 판단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보니 다윗은 자꾸 속아 넘어갑니다.
2년전 암논에게 속았던 다윗이 압살롬에게 또 속았습니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속여 간음하고, 아버지를 속여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아버지 다윗이 거의 죄의 도구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분명히 다윗이 예전처럼 영적으로 예민했다면 그는 안 속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사달도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의 영적인 우둔함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자, 나머지 왕자들은 놀라서 자신의 노새를 타고 도망갑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소식을 전해주기를 압살롬이 모든 왕자들을 다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다윗왕이 하는 행동을 보십시오.
31절입니다.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입고 있는 옷을 찢고 땅바닥에 누워 버렸고, 그를 모시고 서 있는 신하들도 다 옷을 찢었다.
다윗이 왜 이렇게 성급합니까?
다윗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사건의 진상을 먼저 확인해 봤어야 했습니다.
원래 다윗은 매우 조심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무엘하 1장에서 사울왕과 요나단이 죽었다고 한 젊은 군사가 찾아왔을 때에도 두번이나 다시 물으면서 확인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식들이 다 죽었다는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립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멀어져 영적으로 둔해졌기 때문에 이런 부주의함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의 무딘 영적 감각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대조적인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가 바로 요나답입니다.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입니다.
앞서 그는 암논의 친구로 소개되어 암논에게 다말을 강간할 계략을 알려줬었습니다.
그는 교활한 자로서 기회주의자입니다.
암논의 친구였지만 그가 죽자 곧바로 다윗에게 붙은 것입니다.
그는 압살롬의 계획을 뛰어난 감각으로 모두 알고 있었지만 암논에게 충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암논이 죽고나자 다윗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33절입니다.
그러니 이제 높으신 임금님께서는 왕자들이 다 죽었다고 하는 뜬소문을 듣고 상심하지 마십시오. 암논 한 사람만 죽었을 따름입니다.
35절에서는 자기가 판단한 게 맞았다며 자신만만하게 다윗에게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친구가 죽었는데 그는 자신의 판단이 맞은 것에만 의기양양하고 있습니다.
그는 공감능력이 없는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그의 비정상적인 영민함은 다윗의 우둔함을 더 돋보이게 만들 뿐입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다윗의 우둔함이 또다시 드러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38, 39절입니다.
압살롬은 도망한 뒤에 그술로 가서, 그 곳에 세해 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다윗 왕은 암논을 잃었을 때에 받은 충격도 서서히 가라앉았고, 오히려 압살롬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점점 간절해졌다.
그술은 외가쪽이 있는 곳인데 그곳에서 압살롬이 3년동안 숨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자 다윗은 암논을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 오히려 압살롬을 보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식이니까 감정이야 그럴 수 있지만 문제는 다윗이 또다시 압살롬에 대해 제대로된 처벌을 하지 않고 방치한 것입니다.
외가댁을 찾아가서 압살롬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아올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냥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막는 것으로 처벌을 대신한 것입니다.
이렇게 큰 일이 일어났으면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았어야 하는데 다윗은 여전히 영적으로 둔해져 깨닫지 못합니다.
그럼 우리가 영적으로 예민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무엇보다 말씀을 가까이해야만 합니다.
말씀은 우리 영혼의 거울입니다.
거울을 안보면 우리 얼굴에 무슨 이물질이 붙어있는지 알 길이 없듯, 말씀을 보지 않으면 우리 죄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은 우리의 양심을 예리하게 만들어 우리 마음에 숨어있는 죄들을 보게 만듭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예민하지 않으면 다윗처럼 죄에 계속 속아넘어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예민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우둔한 비참한 존재가 됩니다.
요나답과 다윗을 보십시오.
요나답이 다윗을 얼마나 비웃었겠습니까?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죄에 대해 도전하십니다.
우리의 둔해진 영적 감각을 말씀으로 예리하게 하시고, 잠자고 있는 영적 감각을 다시 깨우십니다.
히브리서 4장12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또, 에베소서 6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마지막으로 베드로전서 5장 8절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저를 포함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넉넉히 죄를 이기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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