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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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전 삼위하나님은 서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심으로 영화롭게 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이 누리는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시며 기뻐하셨다. 그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함으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최고로 만족을 누릴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최고로 영광을 받으신다.

Notes
Transcript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함으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요 17:21-26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4절)
여러분에게 이 질문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왜 살아가고 계신가요? 무엇 때문에 신학과를, 유교과를 전공으로 공부하고 계신가요? 왜 취업하려고 하나요? 무엇 때문에 오늘 새벽예배에 나오셨나요? 주일 예배는 왜 드리죠? 교회봉사는 왜 하나요?” “여러분 진짜 행복하세요?” 여러분은 이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으신가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답에서 인간의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문: 사람의 주요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1답: 영원토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고전 10:31, 롬 11:36)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시 73:25-28)입니다.
웨스트민스터는 사람이 왜 살아가냐에 대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 대답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연히 이렇게 대답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너 왜 공부하니? 너 왜 그 직업을 선택했니? 너 왜 그렇게 행동해? 너 왜 봉사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죠!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교회 생활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특정한 상황과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해야 하고, 찬양을 할땐 좌우로 몸을 흔들고, 기도할 땐 앞뒤로 흔들어야 하죠. “왜” 라는 질문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공식처럼 알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영광"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일까요? 연예인들이 시상식에서 하는 것처럼 성공한 뒤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부자가 되어 많은 헌금을 하고 선교를 하고 교회 봉사를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일까요? 이것이 영광을 돌리는 삶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고 마침표를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다르게 말하려고합니다.
오늘 이 영광의 개념을 정리하려고 하는데요. 영광은 관계적 개념입니다.
이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창조전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전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 혹은 어떤 모습으로 계셨을까요?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시작합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창조전에대해서는 알 수 없죠.
그러나
요 17:5 절과 요 17:24 절을 살펴보면 창세전 삼위일체 하나님은 아버지가 아들을, 아들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창세전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셨고, 이것이 예수님에게 영광이었습니다. 또한 잠 8:30-31 에서는 예수님은 이렇게 고백하는데요. “내가 하나님의 곁에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성부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하나님의 앞에서 즐거워했다. 나의 아버지도 나를 기뻐하셨다”
창세전 하나님과 예수님은 서로에게 영광을 돌리고 서로를 영화롭게 하셨는데, 이는 서로를 기뻐하고 즐거워하셨던 완전한 행복, 완전한 만족, 완전한 기쁨 곧 사랑을 통해서 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행복입니다.
하나님은 이 기쁨의 정서를 당신의 형상으로 지은 사람에게, 특별히 하나님의 교회에게 나눠주기를 원하셨고 또한 이 일을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목적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리하면, 영광이란 서로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관계적인 개념입니다.
즐거워함으로 그에게 영광을 준다는 것을 예를 들어보자면 사랑하는 이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은 무엇일까요? 무슨 말을 할 때 사랑하는 이가 최고로 높임을 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너랑 노는게 제일 행복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최고의 만족을 얻는 대상은 우리에게 최고의 영광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 말 때문에 사랑하는 이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귀하고,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더 예를 들어보자면 첫째형과 조카를 보면서 깨달은 건데요. 아버지가 딸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버지는 어떨 때 최고의 아빠가 될까요? 딸이 아빠를 위해 집안일을 하며 효를 다할때? 딸이 시험에서 100점 맞을때? 딸이 취업을 하고 첫 월급으로 아빠의 자동차를 바꿔드릴때? 아뇨. 아버지의 관심은 딸 자체에 있습니다. 딸이 유치원에 돌아와 아빠에게 달려 안기고 아빠의 품안에서 조잘조잘 오늘 있었던 일, 친구, 선생님, 점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아빠와 장난을 치며 웃을 때, 아빠에게 조용하고 은밀하게 다가와 귓속말로 “아빠가 제일 좋아. 나는 아빠랑 결혼할거야”라고 말할 때 그때 아빠는 최고의 아빠가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최고의 만족을 얻는 대상은 우리에게 최고의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영광의 의미를 살려서 인간의 주요한 목적을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함으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존파이퍼의 해석이 타당합니다. 즉, 우리가 왜 살아가야 하나면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위함이라는 것이죠.
인간의 목적은 곧 인간의 행복을 말합니다. 지음받은 인간은 그 목적대로 살아갈 때 참된 만족과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 곧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위한 존재로 창조하셨기에 주님 안에서 안식을 발견하기까지 우리 마음은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하는 영적 갈망은 채워지면 좋고 아니면 아쉬운게 아닌 반드시 채워져야 하며 그렇지 않을 시 만족과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시 표현하면 하나님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요 15장에서 에수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고 너희는 가지니 내 안에 거하라.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안에 거하라. 그런데 어떻게요? 10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이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구원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접붙임을 위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행위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까부터 관계를 설명했었죠?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연인 사이에 진짜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될까요? 말로 사랑한다고 하면서 거짓말하고, 싫어하는 행동을 하고, 다른 이성을 만난다면 그 사랑은 진짜일까요? 그 관계는 진실된 관계일까요? 아니죠. 우리는 말뿐인 사랑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삶의 자리에선 아무렇게나 살아간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진짜 사랑하는 것일까요? 세상도 사랑에 대해서 상대가 좋아하는 행동을 해주고,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핵심은 억지로 하는, 의무로 하는 것이아닌 자발적이고 기쁨으로 하는 것이죠. 본문의 말씀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안에 거하면 자발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행함이 뒷바침되어야 연인사이에 사랑한다. 관계를 맺는다. 사귀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이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기고, 하나님 존재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분이 원하는 것을 행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오늘 왜 살아가냐는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써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고 고백해야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목적이고 우리의 참된 행복을 주는 것이라고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관게를 맺는다는 것은 주일에 드리는 말뿐인 사랑고백이 아니라 그분을 알아가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이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을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생각할 때 나의 안에 기쁨이 넘치고, 만나고싶고, 알아가고 싶고, 그분이 너무 좋아서 그분이 원하는 것을 행하며, 그분이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지 않음으로 내 모습이 변화되어 그분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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