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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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즈음, 신학대학원 기숙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친한 전도사님들과 함께 윷놀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섯 명의 전도사님들이 모여 미리 음식을 시켜놓고 3대 3으로 팀을 나누어 진 팀은 아직 계산되지 않은 음식값을 내게 되는 이미 왔으나 아직 계산되지 않은 음식을 두고 펼쳐진 윷놀이었습니다.
여섯 명의 전도사님들은 윷놀이 판 위에서 치밀하게 전략을 세우기도 하고 또 울고 웃으며 게임을 즐겼습니다. 그 여섯 명의 전도사님들 사이에는 저도 있었습니다.
3판 2선승의 게임에서 양 팀은 각각 한 판씩의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판, 잡고 잡히기를 반복한 결과 상대 팀은 말 하나를 남기고 모두가 결승점을 통과해 있었고 그 한 개의 말 마저도 결승점에 걸쳐져 있었습니다. 반면 저희 팀은 한 개만 통과를 하고 모든 말이 출발도 하지 못한 채로 고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팀이 차례로 던진 윷의 결과는 ‘도’와 ‘도’와 ‘도’였습니다.
세 번의 ‘도’를 두고 전도사님들의 전략들이 빛을 발했습니다. 앞으로 가야한다와 업고 가야한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는 틀렸다와 같은 전략들이 나왔고 결국 세 번의 도를 업는 전략이 채택되었습니다. 한 바퀴를 돌아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는 윷을 던졌고 무엇이 나왔는지 예상이 되십니까? 바로 뒤로 한 칸 갈 수 있는 ‘백도’가 나왔습니다. 도에 머물러 있었던 저희 팀의 말 세 개는 결국 결승점에 골인하기 직전인 상대팀의 말 하나를 잡고 다음 순서에 깔끔하게 결승점을 통과하며 짜릿한 역전승과 함께 준비된 음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 윷놀이를 통해서 배운 교훈이 있었습니다. 윷놀이 판 위에 말이 올라와 있는 동안에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었습니다. 도가 나와도 모가 나와도 결국 결승점을 통과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잡힐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의 삶과 참 닮아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 세상은 윷놀이판과 비슷합니다. 때로는 앞서는 것 같다가도 뒷서게 되고 잘 나가는듯 하다가도 때로는 잡혀서 무너지기도 합니다. 이 상황에 우리는 수많은 훈수들을 듣게 됩니다. 그럴 때에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해답을 제시하고 있을까요? 또 세상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배경

오늘 말씀 속에서 시편을 쓴 기자는 다윗입니다. 여러분 다윗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들을 가지고 계십니까? ‘여호와께 합한 자’, ‘찬양의 모범답안’, ‘골리앗과 싸워 이긴 용사’, ‘이스라엘의 왕’ 다윗하면 평안함을 누리고 또 기뻐하며 찬양하는 왕, 승리의 이미지가 떠올려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 속 다윗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시편은 현재 다윗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지 않지만, 도망을 가야하는 상황, 위기의 상황처럼 보입니다. 성경을 통해 볼 때에 다윗의 인생 대부분의 시간은 우리가 떠올리는 평탄한 삶에서 하나님께 찬양하는 왕의 이미지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항상 목숨의 위협 속에서 도망 다니는 것이 그의 삶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날에는 사울에게 쫓기고 나이가 들어서는 아들 압살롬에게 쫓김을 당합니다. 아마 오늘의 시 또한 다윗이 사울 혹은 압살롬에게 쫓기는 상황 속에서 적은 시일 것입니다.

여호와께 피한 다윗, 산으로 도망하라는 자들

오늘 시편의 상황 속에서는 ‘나’라는 화자인 다윗과 ‘너희’라는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아마도 너희는 다윗과 함께 도망을 나온 다윗의 식솔 혹은 신하들일 것입니다. 이들은 다윗의 편입니다. 다윗은 이 너희들의 리더입니다. 위기 속에서 말씀 속 다윗은 여호와께로 피하기로 결단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주변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 피하지 말고 새 같이 너의 산으로 도망가라고 말입니다.
2절에서는 다윗이 처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활을 당기고 활을 시위에 먹여서 마음이 바른 자들 그러니까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어두움 가운데에서 쏘려고 벼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화살을 어두운 데서 쏘면 어디에서 또 언제 화살이 날아올지도 모릅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3절에서 다윗을 따르는 자들이 다윗에게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터란 기본적인 도덕이나 정의, 질서와 같은 것을 말합니다.
신하들의 말을 조금 더 알아듣기 쉽게 바꿔보면 이렇지 않을까요? 다윗 왕 당신이 의인이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합시다. 그런데 모든 것이 무너지고 하나님이 세우신 법조차 사라져버린 것 같은 지금, 언제까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구하면서 답답하게 있을 겁니까!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부터 하시지요! 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이 터가 무너진다는 표현이 마치 이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정의와 법이 무너져가고 의인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오늘날입니다. 믿는 것도 알겠고 의인인 것도 알겠는데 설 자리를 잃어가면서까지 여호와께 피해야겠냐는 훈수에 마주합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여호와께가 아니라 우리의 산으로 피하는 것, 눈에 좋아보이는 선택을 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여러분이 다윗이라면 산으로 도망하라는 자들을 향해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터가 무너지고 있는 오늘날 여러분은 여전히 여호와께 피하실 수 있겠습니까?

흔들리지 않는 터 여호와 1)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

이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어떻게 다윗은 이 어려움 속에서 도망이 아닌 하나님께로 피하기로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살펴보았듯,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에 여호와께 피하는 결과가 때로 우리의 터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들에 여호와를 따르는 우리의 결정은 가뜩이나 흔들리는 상황에서 우리의 삶을 더욱 위태하게 만들어놓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의 결정들을 살펴보면 그의 선택과 결과를 옅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도망을 다니는 동안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 피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다윗은 한참을 더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사울 왕 때에나 또 압살롬에 의해서 도망다닐 때에나 다윗은 하나님께로 피하기로 선택합니다. 그 결과는 시편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방법을 구했을 때 그것이 그를 더욱 힘들게 할 때가 생각보다 많았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얼굴을 봐야 하는데 오히려 낯을 가리신 것 같고 주변에서는 적이 에워싸는, 또는 여호와가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는 고백들이 그것입니다. 다윗은 이 때마다 하나님 앞에 울부짖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피해야한다는 정답은 너무나도 잘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실행하기에는 큰 두려움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위기의 상황에서는 성경보다 또 말씀보다 주변 사람들의 인간적인 충고가, 당장 내 눈 앞에 보이는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적인 방법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것이 우리의 연약한 현주소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여호와께 피하기를 권면합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피하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가 밟고있는 이 세상이라는 터는 언제든지 흔들리고 또 무너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여호와께 피했을 때도 또 나의 산으로 피했을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땅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 다윗에게 충고하는 자들과 같이 너의 안위가 먼저 서야, 네가 두 발을 딛고 설 터가 있어야 하나님을 섬겨도 섬길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이는 언뜻 들으면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유한한 이 땅에 살아가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황과 환경과 상관없이 높임 받으시기에 마땅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흔들리는 터에서도 하나님께로 피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밟고 있는 터보다 어느 순간에도 높으신 하나님을 자신의 터로 삼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표준으로 삼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1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조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만드는 것을 착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진 우리에게서 받으실 영광와 찬양이 전혀 없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어떠함은 하나님을 조금도 영화롭게 해 드리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영화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가 할 일은 그저 하나님의 영화로움을 ‘인정’하고 그것을 즐거워하는 것일 뿐입니다. 다윗은 이 점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딛고있는 터가 어떻든지 하나님은 홀로 높으시고 영광스러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의 고백과 시편들을 보면 그는 터가 견고해보이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고 높이며 찬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어떤 목표를 이루고 그 뒤에 하나님을 드러내면 하나님이 더 높임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즉,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터’를 만들고 그 터 위에서 나로 인해 하나님께서 더욱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다윗의 사람들이 다윗에게 하는 말이 이것이고 우리에게 세상이 하는 훈수가 이것입니다. 하지만 이 터는 제가 경험했던 윷놀이 판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모가 나와도 도가 나와도 골인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따라잡히고 잡아먹힙니다. 세상의 ‘터’는 상대적이고 유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피난처가 필요하다면, 영원하고 절대적인 터가 필요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터 여호와 2)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

다윗이 여호와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나의 산으로 도망하는 것보다 낫다는 믿음과 확신 그리고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여호와를 선택하기 위해서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적인 방법보다 옳다는 용기와 믿음 그리고 결단이 필요합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당장의 결과가 좋아보이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그 근거의 첫 번째가 우리의 존재와 하나님의 존재에서 온다는 점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바,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주요 또 섭리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다윗도 동일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때문에 다윗은 이를 알고 하나님께로 피하는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다윗 외에도 하나님을 선택한 자들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삶에서 두 번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속에서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누명과 감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그는 억울함을 토로하는 대신 하나님을 선택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관원장들의 꿈을 해석하고 관원장이 석방되었으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수년간 그는 감옥에서 고난을 당했지만, 결국 출애굽기 전까지 이스라엘 민족들을 창대하게 만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주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신약에서는 바울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1장에서 가이사랴의 성도들은 바울이 붙잡혀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바울은 예수의 이름을 위해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고 말하며 내 산으로 피하기보다 하나님께로 피하며 하나님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결과 바울의 터는 흔들립니다. 그는 옥에 갇혀 사형선고까지 당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바울을 사용하여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 앞에서 하나님을 전할 기회를 얻도록 하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을 찾으셨고 하나님의 원리와 하나님의 방법들을 적용하시며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명해지실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낮은 곳에 계셨습니다. 천군 천사들을 모두 부릴 권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고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야겠다고 하셨을 때에 베드로는 예수님께 그리 하지 말라고 권하였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속 인물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피할 때에 창대한 결과들을 바라면서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하였을까요? 제 생각은 ‘아니다’였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선택하고 위기의 순간 내 생각이나 주변의 조언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한 이유는 모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4문에서는 이렇게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변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은 이 땅에서 우리의 능력으로 세우는 터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무한하시고 무궁하시고 불변하신 성품은 하나님의 비공유적인 속성이라고도 부르는데, 존재, 지혜, 권능, 거룩, 공의, 인자, 진실과 같은 하나님의 성품은 우리 인간에게도 있으나 무한하고 무궁하고 불변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 비공유적인 속성을 묵상하고 믿을 때에 우리는 이 땅으로부터 또 세상의 방법과 환경들로부터 벗어나 성경의 인물들처럼 여호와께로 피하고, 하나님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과 결단을 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변론 4-7절

다윗은 4-7절에서 네 산으로 피하라는 자들에게 대해 변론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시며 보좌는 하늘에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과 하늘의 주관자이시요 왕이십니다. 만물이 다 하나님께 속하여 있습니다. 내가 내 산이라고 말하는 그 산마저도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존재목적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꿰뚫는 눈으로 모두의 인생을 둘러보시고 또 감찰하시는 ‘심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미워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벌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어둠가운데서 우리에게 화살을 겨누는 악인들이 두렵지만 모든 것을 알고계시며 또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 그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에게는 마침내 그의 얼굴을 보이신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의인입니다. 정확히는 우리가 의인인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인이시기에 우리도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이 사실을 믿으시는 저와 여러분은 다윗과 같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터이신 하나님께 피하는 선택을 하게 되시기를 권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할 때에 그 결과는 윷놀이에서 가장 하찮은 ‘도’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방법은, 우리 산으로 숨어버리는 방법은 ‘모’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압니다. 윷놀이 판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승점을 어떻게 통과하는가입니다.
확실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인간은 굳건히 설 수 있는 변하지 않는 터를 찾고자 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이 터를 찾기위해서 고민합니다. 불법을 행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며 불의를 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언컨데 아마도 그들은 찾지 못할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는 터는 하나님 외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결국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 의인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습니다. 이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흔들리는 세상 속, 변하지 않는 ‘터’이며 그분의 삶을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께로 피하는 방법임을 증거하십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서 바울은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앎이며, 우리가 이 당에서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한다고 편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상황 가운데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는 그 선택에 대해서 많은 충고들과 훈수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저와 여러분이 어떤 선택지를 가지고 있든지 그 선택지 가운데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선택하기를 권면합니다.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피하는,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선택지를 취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며 이 선택을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지음받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속 다윗을 따라 그리고 우리의 모범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썩어 없어질 이 땅의 터가 아니라 굳건하고 움직이지 않으며 무너지지 않는 영원하고 무궁하며 불변하고 무한한 하나님의 나라, 하늘나라의 터 위에 굳게 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터가 흔들릴 때에 어느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의인으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터 위에 설 때에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또 좋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어떠한 고난도 어떠한 상황도 어떤 풍랑과 터가 무너지는 현실과 여러 상황 속에서도 또 그 속에서 우리의 터가 흔들리니 네 산으로 피하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의 조언 속에서도 결국 하나님께로 피하고자하는 우리 의인들의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의 삶이 좋은 것보다 옳은 것, 썩어질 것보다 영원한 것을 선택하는 삶이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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