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거룩한 전쟁: 내전(삼상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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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내전 의미와 거룩한 전쟁에서 나오는 일상의 거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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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거룩한 전쟁: 내전(삼상 21:1~9)
오늘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잘 준비된 사람. 소년시절보투 남달리 성령체험 한 사람. 사무엘 선지자 기름붓고 그날 이후로 성령의 감동이 임하는데 내면의 정서가 하나님의 평화로 가득차서 수금을 타고 노래를 부르면 사방이 평안, 목동 시절에 향때들도 평안하여 흉악한 짐승도 오지 않음. 시23편도 그런 경험을 통해 나왔을 것. 소년시절부터 그의 내면이 잘 준비되었다. 목자의 훈련을 잘 받았던 사람이기도 함. 사자나 곰이 들어오면 목자의 마음이 귀하다. 양떼를 구하려고 사자를 죽이고 쳐서 죽이는 괴력을 발휘함. 목자의 마음으로 양떼를 귀하에 여기는 마음을 특별히 보셔서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한 것. 이 체험이 골리앗과의 전쟁에서 나가게 했던 것. 사울이 어떻게 싸우겠냐하니까 다윗이 제가 목자였을 때 이런 일이 많았습니다. 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니었고 목동시절 자신감이 나타난 것. 골리앗 싸움에서 너는 칼과 단창, 나는 여호와 이름으로 나간다고 하면서 이 무리에게 여호와의 능력을 보이겟다고 말하는데 무리라는 단어가 양떼라는 전형적인 목자가 쓰는 단어. 골리앗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양떼로 본 것. 다윗은 목자의 마음으로 골리앗앞에 선 것. 조약돌이 투구를 뚫고 머리를 때려 죽였는데 과학적으로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하나님이 전능이 임하게 하셔서 놋투구를 깨고 죽게 만든 것. 이런 경험을 가졌다.
하나님 두 번재 훈련은 목자훈련이 아니라 광야의 훈련. 왕궁으로 들어가서 수금을 들고 왕의보좌관으로 들어가는데 악기를 연주하면 왕을 진정시키는 감화력을 나타냄. 왕을 섬기면서 왕은 어떤 사람인가를 본 것. 이게 왕궁에 들어가서 왕으로써 준비를 한다는게 놀라운 일. 왕은 왕 아래에서 배우는 것이다. “왕을 섬기는 왕” 왕을 섬기면서 왕이 무엇인가를 보는 것. 사울을 섬기면서 권력을 가지고 힘으로 밀고 나가면 안된다는 것을 배움. 왕이 되면 아첨꾼이 많아서 왕이 자기 성찰이 안되는 것을 다윗이 다 보고 배운 것. 이거 위험하구나.. 사울을 통해서 왕은 하나님과 사람 눈 앞에서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 것. 자기 숭배의 유혹, 나르시즘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 반명교사로 삼음. 자기 성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워서 그런지 나중에 죄를 지었을 때 나단이 공개적으로 비판할 때 다윗은 그 자리에서 왕좌를 버리고 주저 앉아서 죄를 고백한다. 하나님과 사람 눈 앞에서 자신을 볼 수 있는 성찰이 있는 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하나님이 귀하게 보신 것. 자기 성찰이 중요하다. 비판하면 못견디고 권력이 폭력적으로 바뀌는 지도자는 안된다.
왕궁에 있으면서 왕실의 권력투쟁도 보게 됨. 사울 따르는 사람, 다윗을 따르는 사람, 죽이려고 하는 음모, 왕실 내 권력투쟁에 대해서 깨닫게 됨. 다윗의 태도가 얼마나 훌륭했던지 자기 와 왕위 계승 다툼이 있을 만한 사람이 요나단이었는데 이 사람이 다윗에게 매력을 느끼고 의형제가 됨. 다윗이 얼마나 인간관계가 훌륭한지 알 수 있다. 왕의 딸 미갈도 결혼하려고 했던 것을 보면 적의 마음도 감화시킬 만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이방군주제와 같은 왕을 요구했을 때 응답으로 사울을 허락,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로 키가 더 컷다고 선지자가 증언. 이것은 전사였다는 말. 열방과 같이 싸움 잘하는 사람이고 사울이 자신들의 잘못된 욕망에 근거한 왕이었다는 것을 이런식으로 묘사한 것. 사울이 첫전쟁에서 승리하니까 본문에 이스라엘에 힘있는 사람이 다 모였다고 말함. 파워맨들이 모여서 강한 권력집단이 되었다고 묘사.
그러나 다윗은 반대로 묘사. 사무엘이 기름을 붓는데 사무엘에게 외면을 보지 말라. 중심을 보라. 눈이 붉고 아름다운 사람이 다윗. 아름답다는 말이 토브라는 말.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었다는 말. 창세기 1장에서 천지창조 할 때 보시기에 좋았더라. 한단계씩 계속 완성되어 가는 것. 형제 동거가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이게 관계가 온전하고 인격적인 사람을 하나님이 보고 세웠다는 것. 처음 세워지는 이미지가 사울과 다윗이 다르다. 한명은 파워맨, 하나는 아름다움. 이 아름다움이 왕궁앞에서 빛나는 것이다. 이렇게 잘 가다가 다윗이 죽음의 위기가 온다. 암살단을 보내서 죽이려고 하니까 미갈과 요나단이 망명을 보낸다. 주로 남쪽으로 내려간다. 왜? 브엘세바 시글락지역인데 이스라엘의 대적인 블레셋 다섯도시가 있는 곳. 블레셋 군대가 강해서 사울왕의 통치가 잘 못미친다.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서 그곳에 사는 이스라엘 민족이 고통을 당하는데 다윗이 그곳을 선택한 것. 거기서 다윗이 자기 군대를 모아서 사울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과 싸우는 것. 국경을 탄탄하게 함. 블레셋에 고통받던 사람을 보호하고 안정. 나발 같은 사람이 블레셋에 시달리다가 다윗시대에 산업이 발달해서 부자가 되는 모습이 있다. 변방으로 나가서 변방에서 이기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성군은 왕실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세종대왕, 대군이 되어서 왕궁 밖에서 살게 된다. 신하들이 안찾아감. 왜? 왕의 아들과 가까이 가면 역모로 물리기 때문에. 외로우니까 예술로 나가거나 주색잡기를 하거나 그래서 왕에 관심이 없음을 알려준 것. 그러면 왕궁 안에서 못보던 백성의 가난과 소외를 보게 된다. 탐관오리가 되어 백성들을 괴롭히는 신하를 보게 되고 왕이 되면 성군이 되는 것이다. 다윗도 마찬가지였다. 왕이 엉뚱한 일을 할 때 변방의 백성이 얼마나 고통당하는지 알고 이겨내는 것. 그것도 모르고 사울이 군대끌고 죽이려고 함. 동굴에서 기회가 있었는데 다윗이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지 말라고 한다. 옷자락 들고 왕에게 호소한다. 저는 해할 생각이 없다고 말함. 본문에 옷자락을 벤것도 마음이 힘들어서 괴로워했다고 말함. 하나님이 처리하실 일이지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자기 절제를 해 가면서 사울을 대하는 것. 사울이 감동을 받아서 니가 왕이 될 것이다 옳다! 하고 떠날 정도로 끝까지 아름다움을 하나님 앞에서 유지한 사람. 그런 사람이 왕이 되니까 성군이 되는 것이다. 지도자는 승승장구한 사람 좋지 않다. 패배와 가난함과 소외를 겪은 사람이 인물이 된다. 나라 지도자를 세울 때 승승장구해서 교만한 사람 세우면 안된다. 눈물을 씻겨주는 사람 세워야 한다. 다윗은 전형적으로 왕의 길을 준비한 사람.
오늘 본문에 보녀 다윗이 도피를 하면서 묘한 상황. 높에 있는 제사장 아히벨렉에게 떡을 달라하니까 아히멜렉이 이 떡은 제사장만 먹는 거룩한 떡밖에 없다고 말함. 다윗이 과감하게 그 떡을 달라고 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말을 한다. 모를 리가 없다. 레위기에서 이 떡은 아론과 자손에게 돌리고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오직 대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떡이다. 거룩한 떡을 다른 사람이 먹으면 죽는다. 오늘 본문에 보니 다윗이 이 떡을 달라고 요구하고 또 준다. 4~6절. 아히멜렉이나 다윗이 율법을 어기는 묘한 일을 한다. 떡을 주기 전에 조건을 냄. 너와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 안하면 주겠다. 다윗이 말하길 우리가 길을 떠난지 삼일이 되었고 우리가 특별한 여행이다. 나와 내 소년들이 더욱 거룩하다. 그 말을 듣고 아히멜렉이 제사장만 먹는 떡을 준다. 이게 묘한 행동.
구약에 보면 평신도가 구약 대제사장과 같이 똑같이 거룩한 자로 취급받는 일이 한가지 있다. 그게 여호와의 전쟁에 헌신한 야훼의 전사가 될 때. 구약의 전쟁은 거룩한 전쟁이있다. 그 전쟁의 목적에는 어느 민족의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쟁이고 영토확장이나 민족강건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는 전쟁. 그래서 야훼의 전사는 활과 칼이 아니라 성결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요단강 건너기 전에 길갈이란느 곳에서 할례를 행하고 삼일간 거룩을 행함. 그리고 여리고를 향해서 구별되어서 나가니까 야훼 군대장관이 나옴.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을 지휘하기 위해서 장관을 보냄. 이제부터 이 싸움은 하나님이 지휘하는 전쟁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전쟁의 군사로 편성되었음을 말하는 것. 전쟁하는 모습도 특이. 전쟁선지자 여호수아가 말하고 앞에 법궤가 나간다. 칼과 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한바퀴씩 돈다. 전쟁의 모습이 아니라 예배의 모습. 마지막 7바퀴 돈다. 돌고나서 전쟁선지자가 예언을 한다. 오늘 이성을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선지자적 과거. 성취가 분명한 일을 말할 때 쓰는 히브리어 용법.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으로 반응해서 테루하! 하고 외치고 들어감. 라아라는 단어에서 파송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 우리가 믿음으로 본다! 하고 그 순간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성이 무너지고 이김. 여리고성이 전투요원이 많고 큰대도 전투의지를 상실하고 마음이 물처럼 녹아서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승리한다. 하나님이 주도하고 하나님이 싸우는 방식으로 싸운 것. 그리고 끔찍한 대 학살을 명령함. 이게 진멸전쟁. 하나님이 종말론적으로 모든 죄인들을 치는 심판을 미리 땡겨서 역사 안에서 행하는 전쟁. 마지막 날에 심판할 때는 어린애라고 살려두지 않는다. 죄가 용서받지 못한 사람은 다 심판받는다. 심판의 보편성을 말하는 야훼의 저주가 임하는 전쟁. 그래서 여리고 성에 들어가는 사람은 제사의 희생제물의 역할. 희생제물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한다. 아간이 불순종한다. 무슨 일이 생기나?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인 사람의 것을 뺏으니까 하나님의 저주가 이 사람과 백성에게 옮겨옴. 벧엘과 아이를 칠 때 저주를 당하는 것. 진노의 재물을 취한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온 것. 아간을 아골골짜기에서 죽임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가 아간에게 다 옮겨가서 속죄가 된다. 이 저주의 죽음이라는 단어를 바울이 예수님에게 적용. 우리의 저주를 예수가 당함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함. 야훼전쟁은 굉장히 독특하다. 전쟁은 성결과 순결로 하는 것.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드러내서 악과 사망과 진노와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군대는 먼저 거룩해야 사용하시는 것이 특징인데 사울에게 쫒겨서 망명을 떠나고 도망가면서 이것을 삼일간을 특별하고 성결한 여행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떡을 다오. 이 말은 우리는 하나님의 야훼의 전사로 성별되었기 때문에 이미 거룩하므로 떡을 먹어도 된다. 이 떡을 먹는 행위는 선지자의 시각으로 다시 쓰는 것. 이 사건 이후로 다윗의 전쟁은 권력을 찬탈하려고 하는 개인적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거룩한 전쟁이라고 해석하는 것. 이것을 알고 있었고 떠날 때 삼일간 헌신했고 야훼 전쟁이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 증명하는 것이 제사장의 떡이었음. 안 죽으면 하나님이 이 전쟁을 인정하신 것으로 본 것. 거룩한 전쟁을 시작하는 것. 이 떡을 먹고 안죽는 것을 보고 이 싸움은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전쟁이라고 본 것. 사울의 통치는 이미 악한 영이 역사하고 죄와 폭력을 통치로 시작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악과 폭력으로 들어갔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보내어 이 악한 통치에서 건져내려고 하는 전쟁을 시작하신 것. 망명을 할 때 단순히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이 왕국을 영광의 왕국으로 바꾸겠다는 작정을 하고 내전을 시작하는 것. 하나님이 쓰는 군사는 성결을 원하셨으니 성결하겠다는 작정을 했고 삼일이 지나서 제사장의 떡을 먹은 것.
그 전까지 거룩한 전쟁은 항상 이방인과 싸우는 것. 그러니 이제는 내전이 거룩한 전쟁. 전선이 바뀜. 이스라엘 내에 사악한 권력과 싸우는 내전도 거룩한 전쟁이라는 것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 이제 다윗은 외부 블레셋과 싸우고 안으로는 사울과 전쟁을 하는 이중전선을 형성하는데 이 전쟁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다윗의 부하중에 아무도 없었다. 요압같은 전투 사령관 같이 고생한 사람도 다윗의 이 전쟁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은 사람이 없었음. 다윗에게 비류들이 모였다고 되어 있는데 비류는 우상숭배자들이라는 말. 이 말은 다윗 아래로 들어간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놈들이라는 낮게 본 말. 그래서 우상숭배자라고 정의하는 이름이다. 거기에 억욱, 원한, 사울의 압제 아래에서 비극을 겪고 싸우기로 결정한 사람이 모여드니까 다윗 초기에 모인 사람은 다 심령이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라 독하고 악한 사람이 모여서 이를 갈고 증오로 가득차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과 망명생활하면서 이 사람의 마음을 다 바꾼다. 증오와 미움을 넘어서서 이들이 거룩한 여호와의 전사로 점점 변하여 사무엘상에서 이들의 이름이 건국공신으로 이름이 쫙 나온다. 다윗은 비류들을 모아서 감화시킨 것. 부정적인 마음 삐뚤어진 마음으로 변화시킨 사람으로 묘사함. 자세가 그랬다. 사울을 만날 때도 왕에 대한 증오를 넘어서서 왕을 인정하고 왕의 칼을 거두도록 만드는 것을 보면서 다윗의 인격에 감동되어 변화된 것. 이 비류들이 다 이스라엘의 건국공신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사람들 중 아무도 이 전쟁의 목적을 모른다.
나발이라는 사람이 다윗덕에 목장을 크게해서 부자가 됨. 배은망덕한 사람이 내가 언제 너희덕에 부자가 되었느냐? 모욕을 주니까 나발을 죽이려고 감. 목장주들은 항상 전초병을 둔다. 다윗의 군대가 출동했는데 기세가 사나워서 보고를 하는데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라는 여자. 굉장히 담대한 여자. 보고에 나발은 나는 죽었다고 하는데 여자가 말을 타고 부하들을 끌고 나가서 다윗과 맞추쳐서 설득하는 것. 이 말이 독특함. 다윗의 부하들도 이 전쟁의 의미를 모르는데 아비가일이 알고 있었다. 왕이여 당신이 보통전쟁도 아니라 거룩한 전쟁을 하는 사람인데 순간적으로 분노에 의해서 나발을 죽이는데 칼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설득을 한다. 이게 삼상25:28에 나온다. 굉장한 설득력. 당신의 싸움은 거룩한 싸움. 분노 때문에 죽이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왕으로 세울 것입니다 왕이 될 것을 내다본다. 다윗이 놀란 것. 부하도 모르는데 이 여인이 전쟁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그리고 돌아갔는데 나발이 죽음. 과부가 된 것을 알고 다윗이 아내로 삼는다. 아비가일의 아름다움은 이스라엘 3대 미인으로 고사에 뽑는다. 사라, 에스더, 아비가일이다. 밧세바 아니다. 밧세바는 그리스적 미인이다. 심미적 미인. 앞의 세사람은 성결미, 경건미이다. 아베마리아 조수미씨는 잘 부르는데 경건미가 없다. 다른 사람은 감동이 있다. 이게 다른 것이다. 성결미와 경건미다. 외모나 옷잘입어서 아름다운게 아니라 기도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여야 한다. 눈물흘리고 헌신하는 모습을 볼 때 아름다워 보여야 한다. 남편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힘있고 소리지르고 돈 많이 벌 때 아니라 모든 인격을 하나님 앞에 의지할 때 아름답다. 인간의 마지막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될 때 아름답다. 다윗이 반함.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여자다!
이 일을 예수님이 그대로 말한다. 마2:23-28절을 보라.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안식일을 범하여 성결을 범했다고 공격한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은 이미 야훼의 전사로써 이미 거룩하여졌다. 저들을 안식일 안지켰다고 고발할 수 없다. 재들은 그런 수준이 아냐. 야훼전쟁에 헌신한 자들은 대제사장 규례나 안식일 규례를 넘어서서 그 삶 자체가 하나님앞에 거룩하게 받아들여졌어 거기 정죄할 수 없어.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을 야훼전쟁에 거룩한 전쟁에 참여한 자로 보신 것.
여기서 개신교 교회론이 나오는데 교회란 무엇인가? 전투하는 공동체이다. 칼빈. 사랑과 정의로 죄와 사망을 이기는 싸움을 하는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하는 전투공동체로 본다. 제자가 다윗의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거룩에 헌신하였다. 땅끝까지 주님의 이름으로 칼과 창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 하나님의 군대로 선택을 받은 사람의 공동체가 교회. 여러분의 나머지 생애가 하나님의 거룩한 군대로 쓰이길 축복한다. 죄와 사망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기 바란다. 하나님의 거룩이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길 바란다. 우리의 모든 예배는 헌신예배이다. 일상의 6일이 거룩한 전쟁이 되고 예배가 되는 것. 일상에서 죄와 싸우고 어둠과 싸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 이겨나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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