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스와 결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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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에서 나눈 대화의 결과로 보아스가 결혼을 위한 재판을 여는 이야기. 시작은 추수밭 에 찾아온 룻과의 대화. 그냥 보면 남녀의 로맨스처럼 보임. 대화 내용의 주제는 헤세드. 시어머니를 봉양한 인애보다 더 큰 인애가 내 발아래 누운 인애, 희생적 사랑. 다시 과부 될 일 있나? 젊은 남자 고르지 않고 자기를 희생해서 보아스와 결혼하겠다고 찾아온 자기희생적 사랑에 감동. 보아스의 옷자락이 룻에게 덥히고 가정으로 발전하게 되는 이야기. 하나님이 위에서 보고 계시고 남녀가 깊은 밤 헤세드의 노래가 추수밭에서 울려퍼진 후,
4장에 보아스가 결혼을 위해 재판을 주최. 희생적 사랑에 대한 보아스의 희생이 등장. 손해보지 않으려는 율법을 상징하는 고엘제도와 아무개. 율법으로는 희생할 수 없고 용서받을 수 없다. 율법은 온도만 알려줄 뿐 올리거나 내릴 수 없다. 율법을 넘어가는 것은 사랑(헤세드). 율법이 아니라 자기희생으로 이방여인을 구원한 보아스는 사랑으로 나를 희생하신 하나님을 미리 보여주는 상징. 우리가 이런 사랑을 받은 존재. 아무개는 넘어갈 수 없는 자리. 사랑과 인애가 겹치는 자리에서 결혼이 허락됨. 상징적인 문학 구조. 책의 주제가 헤세드.
7절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권리를 포기하는 법적 절차가 있는데 이 당시 룻기를 읽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옛날 율법이었음. 그래서 이야기하는 나레이터가 설명을 하는 것.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고 포기하는 행동.
8절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법률적 포기 선언. 아무개의 결혼 포기로 인해 보아스 고엘의 의무가 보아스에게 넘어오게 됨. 장로들이 이 법은 정말 실현되기 어려운 법이구나 하는 순간 보아스가 자신이 이것을 이루겠다고 선포함.
9~10절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룻을 산다는 말이 대속의 개념. 값을 주고 구입한다는 용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 ‘테텔레스타이’ 다 갚았다. 죄의 빚을 다 갚았다! 선포하고 우리를 사심. 그리고 보아스와 룻이 아이를 낳아서 나오미의 아들로 안겨주고 호적해주는 것.
그 순간 일제히 장로들의 증인의 노래(축복송)가 성문 앞에서 울려퍼진다. 11~12절인데 이 내용이 아주 예언적 내용의 축복송. 첫 번째는 룻을 축복함. 11절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더 이상 이방여인, 하녀가 아님. 신부로 신분의 변화. 이 여인이 라헬과 레아처럼 될 것이다. 룻은 한 집안의 대를 잇는것도 실패한 여자. 그런데 보아스를 통해 축복하셔서 룻이 이스라엘 12지파를 낳은 여인이 될 것이라는 장로들의 아주 의미심장한 노래. 룻과 보아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가 이스라엘을 새롭게 세우는 건국적 역할을 할 인물임을 축복하는 예언적 찬송.
보아스는 유다지파. 유다는 ‘레아’가 낳은 아들. 레아처럼 될 것이라고 하지 않고 라헬과 레아라고 했나? 구원역사의 초점이 철저하게 룻에게 맞추어져 있음을 알리는 것. 라헬과 레아를 통해 12지파가 생기고 이 지파를 통해 메시아가 올 것. 메시아 소망이 열두 지파로 퍼저있었지만 이제 룻이라는 여인을 통해 초점이 집약되며 이 여인을 통해 메시아가 올 것이고 룻은 메시아의 어머니가 될 것을 예언하는 노래.
두 번째는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에브랏은 베들레헴의 옛 지명. 이 땅에서 잘 되게 해달라는 덕담 정도로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묘하다. 네(보아스)가 이후에 더 잘되었는가? 태어난 아들이 오벳인데 오벳도 여기 외에 성경에 등장하지 않음. 이 예언은 장로들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한 축복. 메시아를 미리 내다보는 예언. 당대에 이들은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고 사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에브랏에서 태어난 보아스의 후손을 미리 보여주는 예언. 미가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사무엘상16: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중의적 표현. 사무엘에게 다윗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시각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나의 아들, 진정한 왕을 보고 있는 말씀. 단순한 덕담이 아니라 인류의 죄악을 용서하실 하나님의 계획된 축복을 예언하는 인류사의 엄청난 노래.
세 번째 축복 12절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미 보아스는 베레스의 후손. 무슨 뜻인가? 베레스는 창세기 유다와 다말에게서 태어난 아이. 베레스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나?
유다와 다말의 유명한 일화. 창세기 38장. 유다의 며느리 다말. 남편이 죽음. 형사취수제도에 따라 유다의 아들들이 다말에게 들어가서 아이를 낳아주어야 함. 그러나 도와주기를 싫어하여 계속 나쁜 짓을 함. 하나님의 헤세드, 인애가 없음. 그 행동을 보고 유다의 아들들을 하나님이 죽이심. 아들이 다 죽게 생겼으니까 유다가 다말을 희생시키기로 작정. 아들을 안들여 보내는 것. 꼼짝없이 굶어죽을 위기에 빠짐. 이때 다말이 시아버지를 통해서라도 애를 낳아야겠다고 생각. 창기로 변장을 하고 길에서 기다렸다가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음. 그리고 정을 통했다는 인감도장을 받아놓음. 시간이 지나 다말이 임신. 유다가 죽이려고 하자 인감을 꺼내 증명. 유다가 다말에게 “니가 나보다 더 의롭다” 고 말하고 다말을 죽이지 않고 자기 아이로 받아들이는 사건.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이것은 상대적인 의로움. 내 이기심 때문에 니가 죽을 위기에 빠졌었구나. 얼마나 살려고 발버둥 쳤는지 알겠다. 오죽했으면 니가 이런 행동을 해서 대를 이어가고 싶었을까? 그것도 모르고 너를 죽이려고 했던 내가 너보다 더 나쁜 놈이다. 그리고 며느리를 맞이하고 자식을 키운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베레스 집안. 베레스의 집안이 생긴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약자를 불쌍히 보는 마음을 인정했을 때 베레스라는 가문이 존재하게 된 것. 오죽했으면, 나라도 그랬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헤세드. 신의 열심, 신의 희생, [신의 긍휼].
베레스의 가문에서 누가 태어나나? 보아스가 태어나고 보아스와 룻의 인애 사이에서 다윗이 오고 다윗의 국가를 통해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는 국가 사랑과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실천하는 나라, 이 다윗의 가문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과 긍휼의 상징인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
인애가 없었다면 파괴되어 버릴 뻔한 생명.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이 땅에 들어오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를 통해 이 땅에 세워지는가? 인애를 알고 지킨 사람에 의해서 들어온다. 약자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긍휼이라는 길을 타고 들어온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눈길로 인애를 베푼 사람을 통해 들어옴. 세상이 얼마나 무자비한가? 손해 보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시대. 속는 것. 힘들었겠구나. 그랬겠다. 나는 더 했을 것같아! 잘 버텨내었구나. 긍휼의 눈으로 볼 때 거기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들어옴.
인애를 믿고 행한 한 사람에 의해서 베레스라는 생명이 이땅에 들어오고 그 아래에서 보아스-룻을 통해 다윗. 내 나라는 통치 이데올로기는 긍휼과 사랑과 인애로 다스리는 것!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속으로 들어오는 것. 단순한 동막골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인류역사에 주는 엄청난 메시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의 눈으로 불쌍하게 약자를 바라보고 그들에게 인애를 베푸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약한 자를 버려두지 않는다. 괴로울 때 함께 계신다. 세상의 돈의 무자비한 작동방식으로 수습된다. 돈의 세력을 업고 합리성과 시장의 힘으로만 작동되는 세상. 허름한 옷 입고 뛰어내린 아이. 댓글 소동.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다.
고통속에 들어간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은혜로 덮으시는 하나님. 함께 아파하고 눈물흘리시는 하나님. 마침내 회복해내시고 건져내시는 하나님. 너무 소중하니까. 자기 아들을 죽이신 하나님의 인애. 오늘 하나님을 바라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