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과 세리 비유(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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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눅18:9-14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인가요? 어떤 기도를 가장 많이 하고 계신지요?
평생을 주님을 섬기며 사셨던 한 목사님께서 소천을 얼마 앞두고 설교하시면서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분이 자주 하셨던 기도가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불쌍히 여기소서”였다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저도 기도 중에 가장 많이 하는 고백이 바로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고백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어머니에게도, “어머니, 기도가 잘 안 되시면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탄식하며, 주님께 부르짖으세요!”, 권면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기도가 기독교의 본질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탄식과 함께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한 심정이 절절히 배어있는 기도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지난번에 눅18 1-8 절 말씀을 통해 항상 기도하고 낙심말라는 예수님의 교훈을 살펴보았습니다. 기도에 대해 이렇게 교훈하신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을 향해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눅18 9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예수님께서 교훈을 주시는 대상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바로 자기 스스로를 의롭다고 믿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자기를 의롭다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다른 사람을 멸시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훈이 우리 믿는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도 동일하게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이러한 성향이 늘 우리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자기의를 가지고는 결코 하나님께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이 이야기의 결론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
눅18 14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
바리새인이 아니고, 세리가 의롭다하심을 받았다고 이 비유의 결론을 주십니다.
따라서 오늘 교훈을 통해 우리 모두가 철저히 우리 자신의 어떤 것도 의지말고 하나님의 자비를 온전하게 의지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되길 축원합니다!
눅18 10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예수님의 비유에 바리새인과 세리가 등장합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열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산위에 있는데, 그곳까지 가려면 기도하려는 열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리새인
먼저 바리새인은 굉장히 도덕적입니다.
눅18 11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도덕적인 삶을 말씀드리고, 그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토색(남의 물건 착취), 불의, 간음 등을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또한 대단한 종교적 열심있었다는 것입니다.
눅18 12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그는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말합니다. 굉장한 종교적 열심으로 헌신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덕적, 종교적 열심은 결코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토색, 불의, 간음을 삼가해야 하고, 이 바리새인과 같은 금식기도와 십일조에 대한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바리새인이 하나님을 부르며 감사제목을 내놓으면서 이러한 자신의 선행을 공로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 이러한 자신의 경건 습관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 앞에 자기 선행을 공로로 늘어놓고 있습니다. 자기선행을 근거로 하나님께 자신이 열납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선행이 결코 우리가 의롭다 여겨지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로마서 3:28 (NKRV)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갈라디아서 2:16 (NKRV)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도덕성, 즉 정직함, 성적 순결, 정의로움 등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경건의 습관, 즉 새벽기도습관, 매일성경읽기습관, 가정예배, 전도열정 등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코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의 앞에 우리가 의롭게 되는 근거로 내세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선행을 근거로 하나님께 나를 받아달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와 그 기도자를 물리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도 “제가 주님의 은혜로 이러 저러한 선행을 했으니, 날 받아주세요! 내 기도를 받아주세요!” 이런 말은 결코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께서 눅18 14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 말씀 하십니다.
(적용)
우리에게도 이런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잘 하는 어떤 일이나 영역에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다른 사람과 그들의 의견을 멸시합니다. 겉으로는 멸시 안 하는 것 같지만, 우리의 속 마음과 태도는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로 들으면서 속 마음으로는 내 할 말을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이 문제 만큼 내가 오래 생각했고, 연구했고, 묵상했고, 기도했고, 경험했으니, 내 말을 들어야한다는 태도가 늘 우리 안에 있습니다.
저는 신앙서적을 읽고, 신학교를 다니면서 신학지식이 늘어가자, 어느새 제 안에 다른 사람과 대화 가운데 이러한 교만과 자기의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새벽기도생활하고, 날마다 성경읽고, 가정예배하고, 성경 연구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렇게 못하는 사람들을 속으로 은밀하게 멸시하는 경향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바리새인적입니까? 교묘하게 자기의를 의지하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태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행의 기준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없게 됩니다.
성경은 선행에 대해 우리에게 크게 3가지 기준을 요구합니다.
참된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롬14 23 “믿음을 따라(from faith)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나온 생각과 말이 아니면 다 죄입니다. 따라서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하나님께 열납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은 늘 온전하지 못해서 참된 믿음으로 행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이기적인 동기로 말하고 행동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결코 자기의를 내세우거나 다른 사람을 멸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부합되게 해야합니다. 레18 4 “4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요약하신 예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생각하면 믿는 사람은 누구나 죄송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의 기준대로 온전하게 행하고 있다고 하나님 앞에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포괄하는 모든 교훈들을 균형있게, 적절하게, 그 강도와 깊이와 정도를 충분히 고려하여 적용하며 살고 있다고 하나님 앞에 공로로 내세울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해야 합니다. 고전10 31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는 커피를 마시든지, 차를 마시든지, 짜장면을 먹든지, 짬뽕을 먹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위가 늘 하나님의 영광을 온 마음으로 생각하며, 사모하며 행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 앞에 자기의를 내세우거나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태도를 갖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3가지 즉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기준으로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저울에 달아보면 하나님 앞에 얼굴을 제대로 들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 세리와 같은 태도로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겨달라는 비명이 터져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우리에게 이러한 바리새인적 자기의와 타인을 멸시하는 태도를 경계하며 주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태도의 결말은 너무나도 무섭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다 여김을 못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로 심판의 날 주님 앞에 서게 된다면 우리는 주님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2. 세리
그렇다면 이번에는 세리의 기도를 살펴봅니다.
1) 가슴을 치는 회개
눅18 13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친다고 말합니다.
가슴을 친다는 표현은 자신의 죄를 애통해하며 슬퍼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냥 한번만 치는 것이 아니라, 동사의 형태(미완료)가 계속해서 가슴을 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려고 섰는데, 자신의 죄에 대한 애통함이 절절히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죄에 대한 이러한 근심을 바울이 이렇게 표현합니다.
고린도후서 7:10–11 (NKRV)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이 세리는 자신의 죄에 대한 애통한 마음으로 얼마나 간절하게 가슴을 치고 있으며, 죄를 지은 자신의 모습을 얼마나 분하게 여기고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 앞에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도 이러한 상한 심령을 늘 주시길 소원합니다.
2) 용서를 구함
이어서 그는 주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눅18 13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그는 가슴을 치는 애통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간구합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말은 “속량해주소서, 용서해주소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동일한 단어가 죄를 속량하다 라는 의미로 히브리서에서 쓰입니다.
히2:17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말은 ‘내가 그 죄인입니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바로 그 죄인이 접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 제대로 살지 못하고, 그 말씀을 어기며 살아온 바로 그 죄인이 바로 저라는 고백입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는 표현을 통해 오직 자신에게서는 죄에 대한 애통함 밖에 없으니, 마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자비만을 의지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죄를 사해주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인의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는 예수님의 피로 죄인이 죄사함 받는 것으로 성취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면 만족할 수 없는 죄인의 심령이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인됨을 깊이 깨달은 다윗의 고백에서도 이러한 심정이 잘 드러납니다. 시51 1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남편을 교활하게 죽인 자신의 죄성의 뿌리를 생각할 때, 자신이 오직 의지할 것은 주님의 인자와 긍휼 밖에 없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도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의 인자와 긍휼을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그러할 때 주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회복과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예수님의 결론
이러한 두 사람의 기도를 비교한 후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결론을 주십니다.
눅18 14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자기의 선행을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근거로 삼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 세리가 의롭다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갑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선행을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근거로 내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그가 행하신 하나님 율법의 온전한 순종만이 우리가 의롭게 되는 근거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의가 되십니다. 그가 우리의 의가 되신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릴만한 아무런 선한 것이 우리에게는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건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어떠한 선행도, 어떠한 종교적 열심도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근거로 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주님을 의지하여 이땅에서 하나님 앞에 겸손히 기도를 훈련하다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 오직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오니,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면서 이 비유의 마지막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눅18 14 “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께서 친히 낮아지셔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빌2 6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 8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런 주님을 하나님께서 높이셨습니다.
행5 30-31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자기를 낮추는 자가 어떻게 높아지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지신 분이 부활의 영광으로 높아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늘 겸손히 낮추고, 자기가 행한 어떤 선행도 주님 앞에 의롭게 되는 근거로 내세우지 말며, 우리의 죄인됨을 고백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신 어떤 선이라도 그것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우리가 의롭게 됨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며, 그가 우리의 의가 되심에 늘 감사하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설교후 찬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