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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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몬과 빌립 2. 사마리아인의 회심 3. 시몬의 욕심 4. 망할지어다 5. 진짜와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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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와 가짜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을 붙여본다면 “진짜와 가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드려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진짜"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긴 했으나 여전히 변화되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는 가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휴대폰 입니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갖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을 들여다 볼 수 있고 소통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 떨어질 수 없는 물건이 바로 이 휴대폰입니다.
사도행전의 배경이 되는 고대시대에도 휴대폰과 같이 사람들의 삶에 굉장히 밀접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마술입니다.
마술사와 마술도구는 고대 사람들의 삶에 빠질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우리 나라로 치면, 물을 담아두고 달 아래에서 손을 돌리며 빌었던 무속신앙이 바로 마술이었습니다.
무속 신앙에서 “살을 날린다.”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는데요.
저주를 내리고 싶은 상대의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잘라 밀짚인형 안에 넣고 부적을 붙이고 칼을 꽂아놓는 행위 등을 놓고 “살을 날린다.”라고 하는데, 고대에도 이처럼 상대를 저주하기 위해 마술을 사용했었습니다.
미신적 저주를 하기도 했고, 미신적 축복을 통해 초자연적 치유를 경험하기도 하면서 마술은 고대 사람들의 삶에서 떨어뜨릴 수 없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이 당시 사람들도 마술사를 신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존재라 생각했습니다.
마술사들은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이 보이는 마술들이 신들의 선물. 신에게서 온 것이라 이야기하며, 사람들을 현혹해 두려움과 존경심을 심어주고 그들에게서 많은 돈을 받아 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이 바로 이렇게, 사람들을 속여서 그들에게 두려움과 존경심을 심어주고, 그 것을 이용해 돈을 벌던 사람이었습니다.
현대의 마술사들처럼 각종 속임수와 비법으로 사람들을 속였던 사람이기도 했고, 9절, 11절에 기록된 것처럼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진짜 마술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없었던 간에, 사람들을 놀라게 할 재주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보이는 시몬을 사람들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10절입니다.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라는 표현은 시몬을 신의 현현. 신이 사람이 되어 내려왔다! 라는 뜻과 동시에, 반은 신이고 반은 사람이다! 라는 두가지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이러한 평가에 도취되었는지 시몬은 자기 자신을 향해 “자칭 큰 자"라 부릅니다.
자칭 큰 자는 신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 즉 신 혹은 반신반인이라는 것이죠. 시몬은 스스로 자신을 향해 ‘나는 신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몬 외에 다른 인물도 등장을 하는데요. 그는 전도자 빌립입니다.
빌립은 지난 주 현목사님께서 나누어주셨던 것처럼 가는 곳마다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사람이었습니다.
표적도 행했고, 더러운 귀신들도 크게 소리를 내며 쫓아냈고,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들이 걷기도 했습니다.
빌립의 이러한 표적들은 시몬이 행하던 ‘마술'과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시몬은 속임수와 같은 마술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빌립은 속임수가 아닌 하나님의 권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시몬은 놀라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큰 자'라 말하며, 자신을 향한 두려움과 존경심을 갖도록 했습니다.
빌립은 놀라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큰 자’가 절대 아니며, 하나님을 통해 모든 일들이 가능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을 높이지 않고 모든 권능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그의 고백을 들은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마술사들과 다르게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 빌립을 보며, 표적을 보이도록 해주었다는 그 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복음을 믿게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드립니다. 그리고 물 세례까지 받습니다.
이 때 특이한 것은 마술사 시몬도 빌립이 전하는 예수님에 대해 듣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최고인 줄 알았던 사람. 자신 스스로를 신과 같다라고 말하던 그가 예수님을 믿고 물세례를 받은 후 빌립을 따라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빌립이 하는 모든 사역을 가까이에서 지켜봅니다. 설교하고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봅니다.
13절입니다. 빌립을 통해 일어나는 표적과 큰 능력들을 본 시몬의 모습을 “놀라니라"라 저자는 표현합니다.
‘놀라니라'이 말은 “우와.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하지?”라는 놀람의 표현이 아닙니다.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평생 남을 속여왔고, 큰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시몬이었습니다.
시몬 자신은 절대 할 수 없는 엄청난 큰 능력을 보고 넋이 나가버린 것이죠.
이처럼 시몬과 같은 큰 마술사도 예수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놀랍고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책이라면 시몬과 따라다니던 사람들의 믿음과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더 커져갔을 것이다.는 이야기가 뒤를 이어 나올텐데, 14절부터 다른 이야기 등장합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합니다.
14-17절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빌립과 함께 사마리아로 가서, 그들에게 안수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난 뒤 그들은 성령을 받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파송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토록 싫어하고 배척하던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해 지도자들이 갔다는 것은 “사마리아인들도 하나님 나라의 형제자매이다"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구원은 유대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도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죠.
이 모든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시몬입니다.
마술사 생활을 하던 그 때 그에게 생긴 한가지 특이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바로 상대 마술사의 속임수를 찾기 위해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을 보며 일하던 사람이기에 눈썰미도 꽤나 좋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빌립이 함께 사람들에게 안수하며 기도하는데 그들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본 시몬은 어떤 속임수가 숨어있을까 계속 살펴보았는데, 어떤 것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을 준다.”
성령은 누가 주는 것일까요?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안수하며 기도하는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었다 해도, 그들을 통해 일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시몬은 이러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그는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죠.
자신보다 더 큰 능력을 발휘하는 빌립을 보고 그가 전하는 예수님을 믿고 세례까지 받았지만, 아직 그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드리는 믿음보다 빌립, 베드로, 요한이라는 사람에 대한 놀라움이 더 컸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는 성령을 마술이라 생각했습니다. 시몬은 마술로 돈을 벌던 사람입니다. 마술로 사람들에게 큰 자라 칭함을 받으며 신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사람입니다.
자신이 했던 것과 차원이 다른 기적을 이루어내는 빌립을 보며, 성령을 내리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며, 놀라움 속에 감춰졌던 그의 속마음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내가 저들처럼 성령을 줄 수 있다면 난 부자가 된다.”
18-19절입니다. “돈을 줄테니 그 성령을 내리는 권능을 나에게 팔라"

망할지어다

시몬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베드로는 딱 한마디 합니다. “망할지어다.”
“망할지어다" 무엇가의 완전한 파멸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네가 지옥을 향하고 있으니 네 돈도 그리로 따라갈지어다!”
베드로의 이 말은 단순히 “지옥에나 떨어져라!”라는 저주의 말이 아닙니다.
말도 안되는 시몬의 제의에 경멸을 표하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을 믿는다 말하면서 돈, 물질적인 것에 마음을 두고, 하나님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그 삶은 “파국. 완전한 끝"이다 말합니다.
이렇게만 말하고 베드로는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시몬이 다시 살 수 있는 방법, 그가 용서 받을 수 있는 방법 한 가지를 22절을 통해 시몬에게 알려줍니다.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혹'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나라 식으로 ‘혹'을 이해한다면, “회개하고 기도해라 혹. (누가 아느냐 / 어쩌면) 너를 용서 해주실 것이다"로 받아드리게 됩니다.
“회개하고 기도해라 혹. (누가 아느냐 / 어쩌면) 너를 용서 해주실 것이다" 이상함을 느끼지 않으시나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다 듣고 용서해주시는 분'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은 죄들에 대해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2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회개하고 기도해라 혹. (누가 아느냐 / 어쩌면) 너를 용서 해주실 것이다"
우리가 죄를 고백해도 마치 용서해주지 않을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 이유가 바로 ‘혹'이라는 말 때문이죠.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혹'이라는 이 말은 반반의 확률처럼 보이는 말이지만, 원래 성경이 쓰여졌던 그 언어로 본다면 “거의 확실하다" “확실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쓰여졌던 성경대로 다시 22절을 읽어본다면,
“회개하고 기도해라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너를 용서 해주실 것이다"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면 확실하게 그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너의 죄를 고백하며 나아오기만 한다면 확실하게 반드시 너를 용서해주실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고백한다면 그 분은 너를 용서 해주실것이다.
베드로는 시몬이 잘못을 저질렀어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시몬은 베드로가 알려준 이 방법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 베드로가 말했던 “망할지어다" 이 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대신 중보해달라고, 대신 기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회개는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자신이 스스로 고백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우리는 중보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죄에 대한 고백은 스스로 결단하고 기도하며 책임져야 하는 부분입니다.
여전히 시몬은 알아듣지 못한체, 베드로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기를 요청합니다.
시몬의 이러한 모습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의 습관과 생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나 여전히 그는 세상에서의 성공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또한 꽤나 높은 위치에 있었고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받던 존재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지금 자신을 높여주었던 사람들의 자리로 내려가 빌립, 베드로, 요한을 쫓아다니며 그들이 보이는 성령의 권능을 보며 넋이 나갈 정도로 놀라고 있습니다.
시몬은 자신이 일반 사람의 자리까지 내려 온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에게는 다시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과 또 자신이 갖지 못한 성령의 권능을 가진 이들을 향한 시기심이 있었습니다.
그 시기심과 교만이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나 내려 놓지 못하고 여전히 갖고 있었던 그 시기심과 교만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누르기 시작합니다.
베드로가 23절에서 시몬에게 “악독이 가득하여 불의에 매인 바 되었다!” 말합니다.
‘악독이 가득하다'는 남에 대한 시기나 원한에 사무친 사람
‘불의에 매인'은 악의 족쇄에 채워진 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즉, 시몬은 몸만 그리스도 공동체에 있었을 뿐, 그 마음은 남에 대한 시기와 원한에 사무쳤으며, 악의 족쇄에 채워진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시몬은 마술사가 된 이후부터 사람들의 존경과 박수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는 이미 세상이 주는 죄의 달콤함을 맛보았던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반응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평생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버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아니 어렵습니다.
그랬기에 그가 예수님을 믿고 물세례까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악독에 가득하여 불의에 매인 사람'으로 남았던 것이죠.
시몬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는 아직 변화되지 못한, 그리스도의 은혜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표하기도 합니다.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으나 여전히 변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시몬입니다.
시몬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대입시켜야 합니다.
혹 나도 시몬처럼 내려놓지 못한 나의 욕심, 교만 그리고 시기심이 있지는 않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시몬은 사람들 위에서 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지위는 결코 낮지 않았습니다.
그가 변할 수 없었던 이유 그리고 그가 자신의 현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던 이유바로 자신의 바뀐 지위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죠.
자신을 향해 “우와!”하던 사람들 곁에 서서 다른 사람을 보고 똑같이 “우와”하고 있는 모습이 싫었던 것이죠.
그는 다시 올라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몬은 돈을 줄테니 성령의 권능을 나에게 팔라! 라고 한 것이죠.
시몬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고백했으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후 시몬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각종 이단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으나,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진짜와 가짜

오늘 본문에는 진짜와 가짜가 등장합니다.
가짜는 마술사 시몬이고, 진짜는 빌립입니다.
가짜 시몬의 사역은 어떠했을까요? 그에게 기쁨와 은혜 그리고 행복이 있었을까요? 전혀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시기심과 부러움만이 있었습니다.
시몬의 모든 사역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습니다.
오직 나. 사람만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보다 사람을 높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남아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만 남아야 합니다.
우린 때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공동체가 내가 없으면 안돼”
“이 공동체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이런 생각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이기에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 끝에 그래도,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남아야 합니다. 함께 했던 어떤 일들에 대한 그리움은 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나눈 그리스도로 결론이 맺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마술사들은 오직 내가 중요했습니다.
마술사들은 두려움을 조장했습니다.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는 오직 나밖에 없다. 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조종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나만 남았고, 그 안에 자신만 존중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는 가짜 능력을 구사합니다.
마술쇼를 통해 기부금을 얻어내고 사람들을 힘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얼굴이 어두워. 혹시 무슨 일 있어?”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는거 같은데 내 말 맞지?”
이렇게 접근하면서, 당장 그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말합니다. 그리고 옆에 바람잡이들을 세워놓고 분위기를 만듭니다.
분위기에 휩쓸리게 만들고, 휩쓸린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투자합니다.
내가 낸 돈과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마술사들의 마술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그들에게서 돈을 빼앗아 오고, 그들로 하여금 마술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사람들을 마술이라는, 죄라는 틀 안에 가두는 역할을 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마술사들에게 돈을 주고, 마술사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돈을 더 받아냅니다.
마술은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두려움을 진짜 없애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끊어질 수 없는 굴레가 생겨버립니다.
삶과 정신이 피폐해져 갑니다.
마술, 세상의 모든 접근은 우리를 망가뜨리는데에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술을 하는 사람도, 마술을 기대하는 사람도 물질에 목을 매고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돈과 같은 재물에 마음을 고정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합니다.
물론 사역 혹은 생계를 위해 물질은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절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몬처럼 내가 한 일의 대가를 돈으로 채우려 하거나
혹은 자꾸 그 쪽에 마음이 쏠린다면,
시몬을 통해, 마술을 보고 가짜를 통해 내 삶이 바뀌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음의 중심.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물질,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빌립의 모든 사역. 그가 전하는 메시지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는 사역의 방향이 그리스도를 향한다면 방향을 정말 잘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서운함 혹은 불편함이 생기고 방향이 그리스도를 향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그 당시 사람들을 죄에서 해방시키는 역동적인 능력이 있었습니다.
죄의 굴레에서 자유를 얻게 하는 정말 놀라운 힘이 있었습니다.
그 힘은 시몬처럼 그 당시 마술사들처럼 뛰어난 마술사가 보이는 어떠한 속임수와 같은 가짜 힘이 아니었습니다.
빌립은 달랐습니다.
빌립이 전했던 그 예수 그리스도는 마술과 세상의 문화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그 밖에 있는, 생각해 보지 못한 자유를 선물해주었습니다.
빌립을 통해 사람들은 마술로 채울 수 없는 진정한 회복과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빌립이 복음을 전하는 모든 발걸음과 도시에 기쁨이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술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부담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복음. 예수 그리스도는 각종 책임이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게 해주었습니다.
돈을 내야 하고, 마술을 위해 나의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하고,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줘야 하는 그러한 의무와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을 구세주로 고백하면 됩니다. 진심으로 나의 마음을 담아 고백하면 그것 자체가 주는 은혜와 자유가 있습니다.
내가 얼마만큼 헌금을 내고, 시간을 내 사역을 해야 한다는 그런 의무감에서 오는 은혜와 자유가 아닌, 예수님만으로도 충분한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으로도 행복과 만족을 경험하는 것이죠.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행복과 만족이 있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기쁨과 회복의 은혜가 있으십니까?
제가 예전에 필리핀에서 선교사님을 도와 선교사역을 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갔던 그 곳은 필리핀 전역에서 버린 쓰레기를 모아 처리하는 곳이었습니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우리 교회 높이만큼 아니 그 이상 쓰레기들로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산이 세워진 곳이었습니다.
처음에 그 곳에 간다고 했을 때 저는 좀 의아했습니다. 쓰레기로 산을 이룬 그 곳은 사람이 살 환경이 아닐텐데, 어떻게 사람이 산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도착해 보니 역시 환경은 좋지 않았습니다. 아니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나오는 수많은 악취들 그리고 그 아래 흐르는 물은 새까맣다 못해 눈살이 찌뿌려질 정도였습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 것 같은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 곳에 도착하고 몇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사는지 모르겠는 환경인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쓰레기 산을 뒤져 성한 물건들을 찾고 그것을 내다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정말 불행해 보였습니다. 그들의 자녀들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 가난을 끊을 수 있는 어떠한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참 속이 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 밝았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영어를 사용하며 말을 걸어왔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온통 쓰레기 밖에 없는 이 마을에서 도대체 어떻게 영어 교육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그런 곳에서 살면서도 “환하게 웃고 또 영어를 사용할 수 있었을까요?”
쓰레기 산 마을에도 교회가 있었던거에요.
한국인 선교사님께서 그들과 함께 살며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교육하고 계셨어요.
삶에 아무런 희망이 없던 그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태어나 쓰레기 더미에서 죽던 그들이 복음을 듣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 것이죠.
비록 쓰레기 더미에 살지만, 그들을 사랑하여 대신 죽기까지 한 신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깨달았습니다.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가 생겨나자,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취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렇게 조금씩 더 나은 삶을 살아갔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버렸고 비참하게 살도록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붙으셨고 세우셔서 일어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은 빛이 났고 환하게 웃을 수 있었던 것이죠.
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기쁨과 은혜가 확실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기쁨과 은혜가 있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으로도 충분하십니까?
그러한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세상의 가치처럼 우리에게 돈 혹은 시간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하나님이 주신 은혜 그리고 우리의 마음 속에 내주하시는 그 성령님을 믿으라 의지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인생.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은 죄송하지만 돈도 물질도 세상도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 삶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저와 여러분 안에 살아 숨쉬고 계시는 성령님 외에 없습니다.
빌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했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 은 삶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삶은 그대로입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180도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대하는 나의 마음과 행동에 분명한 변화가 찾아옵니다.
삶은 그대로일지라도, 성령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그 희망이 우리 안에 생겨납니다.
귀신을 쫓고, 수많은 물질의 축복을 받는 것만이 기적이 아닙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되시고, 나의 구세주 되시며,
보이지 않지만 나의 마음 속에 계신 성령님을 믿는 것 그것 자체가 바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 기적을 알고 계신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베드로는 시몬에게 “하나님께 기도하라" 말합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용서해 주실 것이다"라고 그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마술사였던 그가 잠시라도 자신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자체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그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다.
왜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성령을 내리고 수많은 기적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그들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졌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대신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자신이 높아지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만 높일 수 있었습니다.
시몬은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잘 살펴보았지만, 기도를 미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이루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도록 하는 그 기도를 알지 못했기에, 감히 성령을 돈을 주고 사겠다 말했습니다.
잘못 접근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또 기회를 주셨습니다.
“기도함으로 나를 찾으라"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시몬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나에게 있더라도”
“나의 지위 혹은 중요한 무엇인가를 내려 놓게 된다 하더라도"
“그 것을 마음에 품고 어려워하지 말고 나에게 고백하라"
고백하기만 한다면 ‘우린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성령님의 존재를 다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를 이어가지 않는다면, 시몬처럼 변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으로 남게 될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한다면 빌립처럼 성령으로 인해,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에 분명한 변화가 매일 쉬지 않고 일어날 것입니다.
기도한다면 빌립처럼 성령으로 인해,
성령으로 인해 변화된 성도님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모르는 주위 사람들 역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함께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진짜 빌립과 가짜 시몬.
이 두 사람 중 진짜 빌립과 같이 되어,
삶에서 기도가 끊이지 않고, 그분과 깊은 교제를 이루어 내는 제2가족이 되길 소망합니다.
진짜 빌립과 같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며 자랑이 되는 제2가족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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