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 최고의 모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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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 최고의 모략가 / 하나님은 세상의 악하고 강력한 모략을 폐하시고, 어리석어 보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승리하게 하신다.
오늘 말씀에는 두 명의 모략가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아히도벨이고, 다른 한 사람은 후새입니다.
아히도벨과 후새는 모두 다윗왕을 모시던 참모들이었는데 아히도벨은 압살롬 편에 붙었고, 후새는 다윗편에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후새를 스파이로 압살롬 쪽에 붙여놓았습니다.
앞장에서 아히도벨의 첫번째 전략은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아버지 다윗왕의 후궁들을 백성들 앞에서 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고대 전쟁에서 승리한 왕들이 패전국에 행하던 잔인한 처벌중 하나였습니다.
이전 왕의 아내와 후궁들을 범해서 패배한 왕조를 수치스럽게 만들고, 백성들에게 새로운 왕조가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아히도벨은 역시 이 전략을 통해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왕과의 관계를 확실히 끊었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보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이런 관행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다윗은 압살롬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후궁을 범하는 것은 율법따르면 사형에 해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히도벨의 전략은 압살롬을 왕으로 삼는데 있어서는 좋은 전략일지 모르지만 악한 전략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 이었습니다.
[본론]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아히도벨의 두번째 전략이 등장합니다.
아히도벨은 자신이 정예군사 만이천명을 뽑아 오늘밤 당장 다윗을 치겠다고 제안합니다.
이러한 그의 전략은 군사전술로 볼 때 다윗편의 치명적인 약점을 노린 탁월한 방법이었습니다.
먼저, 만이천명의 군사를 동원한다는 것은 다윗의 현재 군사들 숫자와 비교할 때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아마도 다윗은 이천여명 남짓한 군사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정도의 압도적인 차이라면 다윗쪽 군사들이 싸우기도 전에 겁을 먹고 도망쳤을 것입니다.
그럴 때 다윗왕만 죽이면 전쟁이 쉽게 끝날 수 있습니다.
왕 한 사람만 희생시켜 다른 백성들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밤 당장 치면 올리브산을 넘느라 지친 다윗의 군사들은 재정비할 시간이 없어집니다.
고대세계에서 보통 전쟁은 잘 보이는 낮에 하였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밤에 심지어 지쳐있는 적들을 공격한다면 치명적일 것입니다.
심지어 아히도벨이 다윗을 죽이겠다고 했으니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죽이는 껄끄러운 일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본인이 출전하지 않아도 되니 안전하기까지 합니다.
과연 아히도벨의 전략은 매우 탁월했습니다.
16장 26절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드러나 있습니다.
16:26 사람들은 아히도벨이 베푸는 모략은 무엇이든지, 마치 하나님께 여쭈어서 받은 말씀과 꼭 같이 여겼다. 다윗도 그러하였지만, 압살롬도 그리하였다.
아히도벨의 충고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마치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으로 여길 정도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히도벨이 압살롬편으로 갔다고 하니 다윗이 얼마나 두려워했을까요?
그렇다보니 처음에는 압살롬과 장로들이 그의 전략을 모두 좋게 여깁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아히도벨의 전략대로 압살롬이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대로만 진행되면 압살롬은 왕이 되고, 다윗은 죽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갑자기 압살롬은 후새에게도 의견을 물어보기로 한 것입니다.
이 짧은 한 순간때문에 압살롬과 다윗의 운명이 뒤바뀌게 됩니다.
왜 갑자기 압살롬은 후새에게 물어보고 싶었을까요?
아마 압살롬은 후새가 다윗의 친구라서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그의 의견을 듣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다윗의 스파이인 후새 입장에서 아히도벨의 전략을 처음 들었을 때 분명 가슴이 철렁했을 것입니다.
아히도벨이 다윗의 치명적 약점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아히도벨의 전략이 채택되지 못하게 막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압살롬이 후새에게도 의견을 말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이 때 후새는 아히도벨과는 완전히 다른 전략을 내놓습니다.
그는 다윗이 전쟁에 탁월하고 노련한 용사이며, 그의 군사들도 용감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또한 다윗이 현재 새끼를 빼앗긴 곰처럼 무섭게 화가 나 있는 상태라서 섣불리 건드리면 큰일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히도벨의 전략처럼 함부로 덤비다가는 굴같은 곳에 숨어있는 다윗을 잡지도 못하고 오히려 압살롬의 군사들이 당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후새는 자신의 전략을 내놓습니다.
11-13절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을 임금님에게로 불러모아서,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군인을, 임금님께서 친히 거느리고 싸움터로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들이닥쳐서, 마치 온 땅에 내리는 이슬처럼 그를 덮쳐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물론이려니와 그와 함께 잇는 모든 사람가운데서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또 그가 어떤 성읍으로 물러나면, 온 이스라엘이 굵은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읍을 동여매어, 계곡 아래로 끌어내려서, 성이 서있던 언덕에 돌멩이 하나도 찾아볼 수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아히도벨의 말은 매우 짧고 간결한 반면, 후새의 말은 길고 비유가 많습니다.
그는 자신의 말에 이미지 언어를 많이 사용하여 듣는 사람이 상상하게 만들어줍니다.
아히도벨은 자신이 기습작전을 펼쳐 빠르게 끝내겠다는 것이고, 후새는 왕이 모든 군사들을 모아서 정면으로 치면 개미새끼 한마리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히도벨은 다윗 한 사람만 죽이면 된다는 것인데, 후새는 모든 다윗의 군대를 전멸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현재 다윗의 상황을 볼 때 아히도벨의 전략이 훨씬 탁월한 전략입니다.
그러나 압살롬 입장에서는 현실성과 효율성을 강조한 아히도벨의 말보다는 자신을 치켜세워주는 화려한 후새의 말이 더 듣기 좋았습니다.
또한 아히도벨이 전쟁에서 이기면 그 공이 그에게 돌아가지만 자신이 만약 나가서 이기면 모든 공이 자신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더 매력적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부 후새의 함정입니다.
압살롬은 대규모 전쟁 경험이 부족한 자라서 이런 전면전은 어울리지 않는 전략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각지에서 모든 군사들을 다 모으려면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시간동안 다윗은 군사들을 모으고 전열을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됩니다.
후새는 이점을 노려 이런 전략을 말한 것입니다.
과연 압살롬은 누구의 전략을 선택할까요?
14절입니다.
그러자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이 아렉 사람 후새의 모략이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더 좋다고 찬성하였다.
놀랍게도 천재 모략가 아히도벨의 전략은 묻히고, 후새의 전략이 채택됩니다.
이런 압살롬의 결정은 자신과 다윗의 운명을 한 순간에 바꿔버립니다.
압살롬은 왜 이런 어리석은 결정을 했을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압살롬이 교만하고, 후새가 그런 압살롬의 허영심을 부축해서 이런 선택을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원인이 아닙니다.
압살롬의 어리석은 선택 뒤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14절 후반절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압살롬이 재앙을 당하게 하시려고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좌절시키셨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압살롬이 후새에게 물어본 것도, 아히도벨의 전략이 어리석은 것이 되고, 후새의 전략이 지혜롭게 들린 것도 모두 그 뒤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다윗의 편을 드셨을까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다윗의 기도때문입니다.
15장 31절입니다.
그 때에 누가 다윗에게, 압살롬과 함께 반역한 사람들 가운데는 아히도벨도 끼여 있다는 말을 전하자, 다윗이 기도하였다. “주님, 부디, 아히도벨의 계획이 어리석은 것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다윗은 당대 최고의 지략가인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합류했다는 소식을 듣고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그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실제로 아히도벨의 모략은 후새의 모략에 비해 훨씬 탁월한 것이었는데도 어리석은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히도벨 이름의 뜻은 ‘나의 형제는 어리석다’입니다.
자신의 명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그의 계획을 어리석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광야로 다시 돌아가게 된 다윗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겸손해진 다윗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잘보시면 모든 것이 잘나가던 왕이었을 때는 등장하지 않던 하나님의 이름들이 다윗이 광야로 나갈 때부터 등장하고 있습니다.
분명 다윗은 뛰어난 지략가 아히도벨이 자신과 함께 있었을 때는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도보다 더 빠른 게 아히도벨의 지혜를 빌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 중에도 자기가 기도하지 않고 목회자에게 곧바로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사건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가 결코 하나님의 지혜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럼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는 사람은 기도할 마음이 별로 들지 않습니다.
또한 삶의 문제가 별로 없어도 기도할 마음이 잘 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게끔 우리의 환경을 바꾸십니다.
다윗에게 광야가 그런 곳이었듯, 우리에게도 광야의 시간을 주십니다.
그 시간이 복된 이유는 기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난이 오면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도망쳐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그 고난때문에 하나님을 더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세상 역사도 그렇습니다.
왜 세상 역사는 항상 권선징악으로 끝날까요?
저는 누군가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인들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가장 큰 재앙이 될뻔 했던 세계 대전도 마찬가지입니다.
히틀러가 했던 이해할 수 없는 몇가지 판단들이 전쟁의 판도를 바꿔놨다고 합니다.
특히 영국 해협이 맞닿은 덩케르크 전투에서 영국을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갑자기 진격을 멈췄던 것이 이해할 수 없는 히틀러의 실수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저는 이때 많은 이들의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순간 히틀러의 판단을 어리석게 만드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는 자의 삶은 하나님이 반드시 책임져 주십니다.
곧바로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그 기도로 인해 하나님은 우리를 악에서 보호해주시고, 선한 결과를 얻도록 인도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 편을 들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다윗쪽의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압살롬쪽 이유도 있습니다.
그래서 둘째 이유는 아히도벨이 하나님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아히도벨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지혜의 근본으로 삼지 않은 것입니다.
잠언 1장 7절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
아히도벨의 모략들은 탁월한 것들이었지만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의 후궁들을 범하고, 아버지의 목숨을 노립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은 이를 철저히 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히도벨은 그 효과만 생각해서 당시 왕들의 관습을 따르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압살롬이라도 거절했어야 하는데 그 역시 아히도벨의 이러한 모략을 지혜롭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아히도벨도 압살롬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전쟁터에서는 자기들의 지혜, 세상의 지혜가 판단기준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히도벨이 이런 충고를 해주고 압살롬이 이를 따를때부터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미 악인의 길, 죽음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시편 1장 1,2절이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이 말씀에 따르면 아히도벨과 압살롬은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았기에 전쟁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고려대상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묵상을 하는 이유도 중요한 선택을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제가 만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작은 선택들을 할 때는 말씀을 잘 따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할 때는 하나님을 제쳐놓고, 자기 지혜를 따르거나 세상 지혜대로 결정해 버립니다.
예를들어, 평소 신앙생활을 잘 하던 사람인데 정작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인 결혼을 할 때는 안믿는 사람과 결혼을 해버립니다.
입으로는 신앙이야기를 하지만 진짜 기준은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뿐입니까?
대학다닐 때는 신앙생활 잘 하던 사람이 직장을 결정할 때는 연봉과 복지만 생각하고 결정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은 중요한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아히도벨, 압살롬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졸업할 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렵게 외국계 회사에 취업을 했는데 하필 그 첫 출근날 K은행 면접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저는 첫 날 출근을 안하고 은행면접을 가버렸습니다.
연봉이 천만원 이상 차이가 났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당시 여자친구를 시켜 회사에 아파서 출근 못했다고 거짓말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외국계 회사에서도 짤렸고, 은행에서는 결국 면접 떨어졌습니다.
그 때 정작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하나님을 제쳐두었던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탁월한 지혜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배제된다면 결국 어리석은 판단일 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보기에 당장은 어리석은 판단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은 결국 탁월한 지혜가 될 것입니다.
창세기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받아 보디발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누구보다 충성되이 일하여 보디발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는 것을 뿌리치다가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가게 됩니다.
아마 처음에 요셉은 이렇게 재수없는 인생이 있나하며 낙심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결코 주인의 아내와 간음을 할 수 없어 어려움에 처했지만 그것이 바로 신의 한수, 하나님의 한수였습니다.
요셉은 그 감옥에서 고위관료를 만났고, 결국 왕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짧은 시야로 나의 인생을, 남의 인생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장은 우리의 선택이 세상 지혜로 보기에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선택이 얼마나 탁월한 하나님의 지혜였는지 드러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그 분이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인생 최고의 모략가는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는 어리석습니다.
세상의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를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어 버립니다.
다윗의 길, 압살롬의 길 우리는 어느 길을 가야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세상 지혜만 따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땅의 지혜를 얻기 위해 하늘의 지혜를 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이가 천원짜리를 얻으려고 오만원짜리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모략은 결코 패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의 지혜인 말씀을 부지런히 묵상하고 기도합시다.
그럼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은 세상 지혜를 무력화시키고 어리석게 만드실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로 제자도를 배우는 이유도 그 분의 지혜를 닮아가기 위한 과정임을 기억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