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이웃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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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여러분이 싫어하는 친구가 다쳤으면, 여러분은 도와주겠습니까?
여러분이 싫어하는 친구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대신 변호해주겠어요?
율법교사는 아니에요.
율법교사는 똑똑한 사람입니다.
법학자에요.
법을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자기가 싫어하는 친구는 도와줄 마음이 없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시험하러 온 이유가 뭐에요?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인지,
아니면, 내가 싫어할 만한 사람이지,
파악하러 온 거에요.
25절에 보니까,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였다고 되어 있어요.
‘시험하다’는 단어는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쓰던 단어에요.
함정에 빠뜨리려고, 나쁜 마음으로 시험하고 있는 거에요.
사랑이 없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율법에는 정통한 법학자입니다.
여러분, 사랑 없이 지식만 있으면 율법교사처럼 되는 거에요.
법학자가 나쁜게 아니에요.
사랑 많은 법학자가 되면 되지요.
그런데, 사랑은 없고, 지식만 있으면 괴물이 됩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는 것은 되게 좋은데,
공부만 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여러분은 괴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시험하는 사람이 되는 거에요.
심지어 율법교사는,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시험하고 있어요.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도 시험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사랑 없는 지식은 이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거에요.
*오늘 사마리아 비유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제사장과 레위인은 확실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31절에,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확실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제사장이에요.
그런데 그는 그를 보고 피해서 지나가요.
레위인도 마찬가지에요.
오늘날로 치면 교회 행정 사무를 보는 사람,
교회를 관리하는 사람,
혹은 성가대를 지위하는 사람,
찬양단의 단원,
이런 사람이 레위인입니다.
확실히 하나님을 사랑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확실합니다.
이 사람은 확실히, 강도만나서 죽게 된 사람을 도와줄 거에요.
그런데 이 레위인도 어떻게 하고 있나요?
32절입니다.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피해서 지나가고,
분명히 봤어요.
그런데 보고 피해서 지나갔다고 되어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가면, 우리는 확실히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죠.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교회에 온 것이고, 예배를 드린 것이죠.
그런데 밖에 나가서,
위험에 처한 친구를 보고도 그냥 피해서 지나간다고 생각해봐요.
분명히 봤어요.
그런데 봤는데도 안 도와줘요.
그러면 누구입니까?
제사장과, 레위인이죠?
*똑똑한 율법학자는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영생의 길이다.
분명히 자기 입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27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분명히 대답을 했어요.
그런데 이것을 실천하지는 않았어요.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 것이다.”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실천하면 살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율법학자는 실천하지 않았어요.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과 같아요.
율법학자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처럼,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시는 분이세요.
그는 자기 돈과 생명을 드려,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이세요.
예수님의 출신과,
학력과, 그 무엇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긍휼이 많으신가, 예수님이 얼마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크신가?
이게 중요한 것인데,
율법학자는 그게 아니라,
예수님 어디 대학교 나왔어?
어디 지역 출신이야?
가문은 어디 가문이래? 제사장 가문이야, 레위인 가문이야? 어디 가문이야?
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자격이 있어?
하면서, 그를 시험하고 있었던 거에요.
*반면, 사마리아 사람은 확실히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여행하는 중이었어요.
그는 제사장도 아니었고,
레위인도 아니었고,
유대인도 아니었어요.
그러니, 율법학자가 보기에, 사마리아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온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 예배 드리는 그 시간에,
여행하고 다니는 사람이었어요.
확실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가 무엇을 했어요.
33절입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그는 그의 감정을 소비했어요.
타인의 아픔에 공감했어요.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어요.
또 무엇을 했습니까?
34절,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가까이 갔어요.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부어서 응급처치를 했어요.
그리고 개인 승용차에 태워서 쉴 수 있도록 여관에 옮겨주었어요.
그는 확실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확실히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행동을 했어요.
이게 뭐에요?
이게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행동은 여행하는 중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이리저리 여행하고 계세요.
말씀을 전파하면서 여행하고 계세요.
그러면서 병든 자를 고치고,
아픈 자를 고치고,
귀신 들린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그러고 계세요.
예수님이야 말로,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계신 것이죠.
그런데 율법교사는 이런 예수님이 의심스러워서, 시험하러 온 것입니다.
정말 예수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맞는가?
정말 예수가 우리의 이웃이 될만한 사람인가?
그게 아니라면, 예수를 고발해서, 십자가에 못 박든지, 죽여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 당시 종교인들이 그만큼 냉랭하였던 것입니다.
아무도 강도 만난 자 같은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있었던 거에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고,
그들을 도우려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던 거에요.
그런데 학력도 변변찮고,
출신도 비천한, 예수님이
백성들을 돌보고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고,
백성들을 고치고 살리고 있었던 거에요.
예수님은 율법학자도 살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도 자비를 베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를 통해서 알려주고 있었던 거에요.
그러나, 율법교사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37절입니다.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끝까지 예수님을 정통 유대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자비를 베푼 자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맞지만,
출신 성품이 명확하지 않은,
이방인과 같은,
비천한 예수님을 자신의 이웃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것이 율법학자의 대답이었습니다.
*말씀의 결론인데요.
우리가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냉혹하게 하면서,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잘해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친구도 사랑해주라고 하십니다.
그 친구가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요?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거든요.
예수님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던 율법교사도 사랑하셨던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니,
우리가 당연히 그분을 닮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실 때에,
우리 마음에 긍휼이 가득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율법교사처럼 똑똑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예수님처럼 강도 만난 자와 같은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실제적으로 도울 수 있는 사랑 많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묵상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 “내가 잘 해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사마리아인 :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불분명하다.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제사를 드리러 온 것도 아니다.
그는 여행하는 중이었다.
그는 강도 만난 자를 보고, ‘자신의 이웃’이 될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그는 강도 만난 자에 대한 신학적 판단을 하지 않고, 자신의 시간, 자신의 감정(불쌍히 여김), 자신의 재정, 자신의 자동차, 자신의 신용을 사용하여 그 사람을 도왔다.
율법교사 :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확실하다.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거기에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다.
그는 영생을 상속받는 길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의심하였고, 예수가 자신의 이웃이 될만한 사람인지를 시험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예수의 말씀에 수긍하지 않고, 예수를 대적하였다.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
*그의 한계를 드러내시는 예수님
*복음이 유대를 떠나 사마리아로 전파된 이유
주석
예수님이 죽임당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틀려서가 아니다.
율법교사들의 ‘의로움’이 꺾였기 때문이다.
율법학자는 말그대로, 법을 해석하는 ‘법학자’이다.
일반적으로 유대인의 정의에 따르면, 사마리아인들은 결코 ‘선하지 않다.’
예수의 이야기에서 만일 사마리아인이 어떤 역할을 맡는다면, 그것은 강도의 역할일 뿐이다.
예수께서 사마리아인을 착하다고 하시는 것에 대해 사마리아인 스스로도 조금이라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도랑에 빠져 죽어가는 유대인을 발견한 사마리아인의 전형적인 반응은 ‘속 시원하다!’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비유에서 예수님의 강조는 ‘누가 네 이웃인가’라는 사랑의 명령에 대한 보편적 취지를 알아듣게 하려는 것에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의 비유는 분명히 유대인 (또는 다른 어떤 종류의) 외국인 혐오와 민족 중심주의에 저항하는 것이 분명하다.
“가장 큰 계명”에 대한 논쟁 속에,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공인된 종교 당국이 ‘비공식 교사’를 시험하여, 그가 올바른 대답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바리새인들은 ‘평범한 사람들’은 이웃에서 배제하였고, 쿰란 공동체는 ‘어둠의 아들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배제하였다.
쿰란의 경우 사랑의 대상이 되는 이웃을 ‘빛의 자녀’에 국한 시켜 ‘어둠의 자식들’은 이웃이 아니라 그들의 원수로 보았다.
“긍휼의 부족”
율법사는 “누구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까?”라고 질문했다면,
예수님은 “누가 그를 사랑했는가?”라는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웃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부적절하다는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내 이웃”이 되는가?
이 질문은, 율법사에게는 ‘이웃이 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율법사는, “영생”에 대한 질문을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으로, 예수를 시험하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청중은,
세 번째 등장인물이, 이스라엘 평신도일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유대인들이 미워하는 공동체의 일원에 대해 의도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사마리아인”
사도행전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고 있다.
당시 여관 숙박비가 1/12 데나리온인데, 사마리아인은 2데나리온을 주었으니, 숙박비와 식비로 충분하였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이웃처럼 행동했다고 생각합니까?
이 세 사람 중에 “이웃”이 될만한 사람은, 제사장과 레위인 뿐이다.
그런데 “이웃”이 되지 못할, 사마리아인이 가장 “이웃처럼 행동”해 버렸다.
예수님은 이웃이 된다는 것은, 자비를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대인들은 비유대인들에게 자비의 행위를 받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과 아무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적대적인 관계였다.
a. 율법교사의 질문(25b):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b. 예수의 질문(26 a):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
c. 율법교사의 대답(27): 사랑의 이중계명 제시
d. 예수의 대답(28): 긍정과 행할 것에 대한 지시
a. 율법교사의 질문:(29) :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10:30-35)
b. 예수의 질문(36) : “이 사람의 이웃이 누구냐?”
c. 율법교사의 대답(37a): “자비를 베푼 자”
d. 예수의 대답(37b): 긍정과 행할 것에 대한 지시
영생을 구하는 질문, 과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이 똑같은 구조 속에서 전해지고 있다.
율법교사는 ‘율법’은 알고 있었지만, ‘율법의 정신’은 알지 못하였다.
율법교사는 ‘율법’을 죽이는 법, 또는 죽음을 방치하는 법으로 해석하였고,
사마리아인은 ‘생명을 살리는 작용’을 하는 율법을 의미하는 것 같다.
당시 새로운 유대 부흥운동의 지도자였던 예수는 촌사람이었다.
공인된 종교 지도자인 율법사의 차원에서 볼 때 예수는 출신이 미약하고 배운 것이 없는 자이다. 따라서 그는 예수를 민초들을 선동하는 ‘사기꾼’ 쯤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율법사는 자신의 지혜를 통해 예수의 ‘우매함’을 시험할 목적으로 질문하였다.
그러나, 누가복음, 10:21-24에서 예수님은 ‘슬기로운 자’의 어리석음을 묘사하고 계신다.
율법사가 예수에게 듣고 싶었던 대답은 ‘예수가 어디까지를 이웃으로 제한하는가’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예수는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하고 비유를 통해 그를 교훈한다.
당시 여행은 부자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심각한 생활고로 인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여행을 하지 못했따.
올리브유와 포도주는 당시 상인들이 가장 많이 거래하던 상품이기에, 사마리아인은 상인이었을 수도 있다.
당시 주막도 상인들이 주로 머물던 곳이었다.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예수님은 율법교사뿐만 아니라, 종교지도자들, 유대인들의 ‘민족주의’적 자기 사랑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했고, ‘자기 민족’의 이익을 사랑했던 것이다.
결국, 예수는 ‘율법교사가 옳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
율법교사는, 사마리아인 뿐만 아니라, ‘예수’도 자신의 이웃에서 배제하고 있다.
누가복음
누가는 자신의 저작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보편성-확장성을 논한다.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세상을 대표하는 로마 제국의 심장부까지 진출함을 서술한다.
예수는 온 인류의 구세주이시다.
9장 51절부터는,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도중에 일어난 일들이다.
누가복음에는 유달리 많은 ‘비유’가 등장한다.
실천력
인지와 행동
묵상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이라고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웃 사랑’의 증거를 보이라고 하신다.
사역
25 그리고 보라!, 어떤 율법고사가 일어났다, 그가 시험한다, 그를, 그가 말하기를, 선생님이여, 무엇을 행하여야, 영원한 조에(생명)을 내가 상속받을 수 있나요?(클레로노메오 / 미래 / 물려받다, 상속하다)
*상속이라는 개념
26 그러나 이제 그가 말하였다, 그에게, 노모스(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느냐? (그라포 / 완료 / 수동태), 어떻게 네가 소리내어 읽느냐?(아나기노스코 / 읽다, 소리내어 읽다)
27 그러나 그가 응답하여 말하였다, 네가 사랑할 것이다(아가파오 / 미래), 주 너의 하나님을, 모든 중심(카르디아)으로부터, 너의, 모든 생명(프시케)으로, 너의, 그리고 모든 능력(이스퀴스)으로, 너의, 그리고 모든 사고방식(디아노이아 / 생각, 인식, 사고방식)으로, 너의, 그리고 이웃을, 너의, 네 자신과 같이.
*모든 카르디아, 모든 프시케, 모든 이스퀴스, 모든 디아노이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너의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28 그가 말하였다, 그러나, 그에게, 네가 대답하였다, 바르게(오르소스 / 바르게, 옳게). 이것을 네가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살 것이다(자오, 미래).
29 그러나, 그가 원하였다, 의로움을 드러내 보이기를(디카이오오), 그 자신을, 그가 말하였다, 예수에게로, 그러면 나의 이웃이 누구입니까?
*27절에서 율법교사는 ‘이웃을 네 자신처럼’(2인칭 재귀) 사랑하라는 율법의 뜻을 알렸다. 그런데 그는 29절에서 이웃이 아니라, ‘그 자신’(3인칭 재귀)을 옳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이웃이 누구냐?”라는 질문이, 어떻게 자기를 ‘옳게’ 보이는데에 도움이 되는가??
30 예수께서, 이제 대답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내려가고 있었다(미완료).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그런데 그가 레스테스(강도, 도둑, 폭도 / 복수)들을 페리핍토(만나다)하였다, 그들이 벗겼다, 그리고 구타하고, 그들은 버려두고 떠났다, 헤미사네스(거의 죽은, 반은 죽은) 한 이를,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 폭도들을 만나게 되었다. 폭도들은 두 명 이상이었다. 그들이 옷을 벗기고 때리고 거의 죽은 것을 버려두고 떠났다. 이 사람은 아마 성전에서 예배하고 돌아가던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같은 동족이요, 같이 제사를 드린 사람일 것이다.
31 슁퀴리아(마침, 우연히), 그러나, 어떤 제사장이 내려가고 있는데(미완료), 그 길(호도스)로, 그리고 그가 보았다, 그를, 그가 안티파레르코마이(반대편으로 지나가다)하였다,
*호도스 : 는 구약에서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의 길, 사람의 길, 율법의 길
32 이와 같이, 또한, 그리고 레위인 그 장소에 갔다, 그리고 그가 보았다, 그가 반대편으로 지나갔다.
*제사장과 레위인을 묘사하는 동사가 일치한다.
33 사마리아 사람이, 또한, 어떤 이가, 여행하고 있는데, 그가 갔다, 그곳으로, 그리고 그가 보았다, 그가 스플랑크니조마이(불쌍히 여기다, 측은히 여기다 / 수동태)하였다.
*이 사람은 성전에 방문하여 예배드리지 않고 여행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보았다”는 점에서는 3명이 일치하지만, “불쌍히 여겼다”는 점에서는 사마리아인이 차이를 이루고 있다.
34 그리고 그가 프로스에르코마이(가까이 다가가다)하였다, 그가 싸맸다, 그의 그 트라우마(상처 / 복수)들을, 그가 올리브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포도주를, 그가 그를 태웠다, 개인(이디오스 / 자기, 개인, 따로, 혼자, 조용히)의 크테노스(가축, 짐승)에, 그가 그를 데리고 갔다, 판도케이온(여관)으로, 그리고 그가 그를 에피멜레오마이(돌보다 / 수동태)하였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안티파레르코마이’하였는데, 사마리아인은 ‘프로스에르코마이’ 하였다.
*에피멜레오마이 :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갖거나 분주하게 하다, 바쁘다, 힘쓰다, 무관심의 반대적 의미. 책임을 지다.
*그는
1) 가까이 다가갔고
2) 그의 상처들을 싸매었고
3) 그 상처들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부었고
4) 자기 개인 승용차에 태웠고,
5) 그를 여관으로 데리고 갔고,
6) 여관에서 그를 돌보아 주었다.
35 그리고 다음 날, 그가 데나리온 둘을 꺼내었다, 그가 여관주인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가 말하였다, 당신은 에피멜레오마이(수동태 / 명령)하라!, 그를, 그리고 당신이 프로스다파나오(더 쓰다, 더 들다 / 가정)한다면, 내가, 에파네르코마이(돌아오다), 내가 아포디도미(갚다, 되돌려주다 / 미래)할 것이다, 당신에게,
*왜 다른 사람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가? 그게 이웃이다.
7) 데나리온 둘을 꺼내 여관주인에게 주었다.
8) 여관주인에게 돌보아 주라고 부탁한다.
9)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10) 비용이 더 들면 자신이 갚아주겠다고 약속한다.
*너는 이를 행하라
*너가 돌보아주어라!
36 누가, 이들 셋 중에, 이웃이 되겠느냐? 당신이 생각하기를, 강도들을 만난 사람의,
*누가 이웃이 되겠는가?
*너의 생각은?
37 또한 그가 말하였다, 엘레오스(긍휼, 자비, 연민)을 행한 자입니다. 그와 함께, 예수께서 그에게 말하였다, 또한 너는 가라!(포류오마이 / 명령) 그리고 너는 행하라!(포이에오 / 명령), 이와 같이.
*너는 가라
*너는 이와 같이 행하라
*긍휼을 행한 자 - 이 사람이 이웃이다.
단어연구
*에크페이라조 : 시험에 빠뜨리다, 유혹하다
누가복음에서 2번
4:12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시되
*조에 : 생명, 영생
누가복음에서 6번 중 3번이 영생으로 번역됨
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클레로노메오 : 물려받다, 상속하다
구약에서 ‘상속받다’의 의미이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소유물로 여겨졌기에, 그 땅을 하나님에게서 받는 상속이라고 생각하였다.
주석
영생을 상속받는 길에 관해 예수님과 율법학자 사이의 대화에 나타납니다.
이 대화를, 누가는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배치하였고, 마가와 마태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 마지막 날’에 배치하였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 예수님이 하신 질문은 ‘가장 큰 계명’에 중심을 두고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영생을 상속받는 방법’이 주제이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구약을 인용하시는 분이며, 누가복음에서는 율법교사가 두 구약 본문을 인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누가복음에 이어지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는 빠져 있다.
Deuteronomy 6:5 NKRV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Leviticus 19:18 NKRV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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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 비유는 이웃을 재정의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사마리아인으로 바꾸어 청중을 놀라게 하십니다.
땅에 누워 있는 사람은, 강도 사이에 떨어져 옷을 벗고 매맞고 버림 받은 사람이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와 일치한다.
영생은 단순히 칠절한 행동이 아니라, 예수님께 합당하게 반응하느냐 아니냐로 정의된다.
레위기, 19:18절에서 이웃은 문맥상 ‘너의 백성’을 가리킨다.
시체를 부정한 것으로 여겼고, 반쯤 죽은 상태도 부정하다고 여길 수 있었다. 이것이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반응이었다.
‘자신의 순결에 대한 관심’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사람은 미움을 받는 이방인이었다. 이 사마리아인은 “민족적 경계에 구속되지 않는 사랑”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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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은 율법을 어느 정도 지키고 있었지만, 자비를 소홀히 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 거리는 약 17마일로, 사해 바로 북쪽에 있는 요단강을 향해 급격히 내려간다.
지금의 길보다 훨씬 더 오래된 길은 강도들이 쉽게 숨을 수 있는 험준한 바위 지형을 통과하여했다.
제사장은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무였고,
레위인은 성전 봉사와 질서 유지하는 일을 도와야 했다.
25절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37절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A 율법교사의 질문 (25절)
B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질문(26절)
C 율법교사의 답변(27절)
D 예수님의 답변(28절)
A’ 율법교사의 질문 (29절)
B’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이야기(30-35절)
X 예수님의 질문(36절)
C’ 율법교사의 답변(37a절)
D’ 예수님의 답변(37b절)
이웃에 대한 정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긍휼의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율법교사는 정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고발할 구실을 구하려고 예수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다가올 나라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가 살맛나는 나라이다.
반복되는 단어
포이에오 :
25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8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37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37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홀로스 : 25절에서 4번 반복됨.
에이돈 :
31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플레시온 :
27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29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6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에피멜레오마이 :
34 돌보아 주니라
35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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