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가 섬김 받고 연합된 교회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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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새벽기도에 오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다윗이 다시 사명을 찾고 그가 속한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회복된 공동체를 통해 참된 믿음의 공동체,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교회는 약한 자를 끌어주는 공동체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교회는 약한 자를 끌어주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어제 본문에서 다윗이 머물던 시글락이 침공되었지만 다윗이 하나님을 붙들고 말씀에 의지하여 잃었던 것을 다 되찾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전쟁 이후에 다윗이 전리품을 나누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공동체는 과연 어떤 공동체인지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찾아간 이들이 있습니다. 어제 설교하다가 그냥 살짝 지나가서 기억이 잘 안나실 수 있는데 10절에 보시면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명을 머물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서 피곤하다는 것은 잠이 온다는 뜻이 아니라 기력이 다 빠져서 더 이상 뭔가를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지금 이사람들이 전 재산을 다 빼앗기고 처자식이 다 인질로 잡혀간 상황입니다. 웬만하면 따라가지 않겠습니까? 팔다리가 붙어있는 이상 따라가는게 정상적인 사람의 생각입니다. 이들이 아벡에서 시글락으로 오고 시글락에서 브솔시냇가에 오는 동안 많은 에너지를 소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이백명은 다른 이들보다 더 연약했습니다. 다윗은 그들을 두고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겨서 다시 그들에게 돌아왔습니다. 21절에 다윗이 그들에게 다가가자 그들이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사백명을 영접하러 나왔습니다.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자신들은 힘이 없어서 싸우지 못했는데 승리해서 처자식을 찾아왔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 때 다윗의 곁에 있던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본문에 악한 자와 불량배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들이 다윗에게 “이 사람들은 우리랑 같이 블레셋과 전쟁도 안했는데 전쟁에서 얻은 물품들은 주지 말고 그냥 처자직만 돌려보내줍시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22절에 악한 자와 불량배라는 이 말을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해야 합니다. 우선 여기 악한자와 불량배라고 할 때 악한자와 불량배는 같은 의미를 중복으로 쓴 것인데 악한 자는 원어상으로 벨리알입니다. 제가 벨리알에 대해서 몇 번 설명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본문에 엘리 제사장의 아들을 벨리알이라고 말합니다. 벨리알은 고린도전서 6장 15절에 보시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반대되는 것을 말합니다. 적그리스도입니다. 복음이 확장되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이 벨리알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벨리알이고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 축하하지 아니한 이들이 벨리알이고 다윗을 도발했던 나발도 벨리알이라고 말합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이들이 벨리알입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이들이 벨리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다윗과 함께 한 이들을 벨리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주목할 부분이 이들이 과연 왜 벨리알이라고까지 불렸나 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함께 한 이들은 목숨을 걸고 수고한 이들입니다. 다윗을 도왔고 가족을 지켰습니다. 이스라엘의 원수인 아말렉과 싸워 이겼습니다. 여태껏 다윗과 온갖 고난을 다 헤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들에게 가차없이 벨리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23절에 다윗이 말합니다.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라고 이야기 합니다. 다윗이 하는 이야기는 아말렉과 싸워 이긴게 우리가 이긴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이 전쟁에서 이겼고 따라서 아말렉과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도 다 나눠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한 이들이 약자이기 때문에 그 전리품을 못 얻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브솔시내를 건너서 아말렉과 전쟁을 한 이들도 자신들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그 전쟁을 이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결코 그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브솔시내가에 있는 이들과 다름 없는 입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 전쟁에 참여하지 못한 약한 자들도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승리의 전리품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믿음의 공동체는 그래서 특이합니다. 약한 자들의 몫이 있는 공동체입니다. 강한 자들이 힘이 있다고 더 누리고 더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약한 이들에게도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강한 자를 들어서 약한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의 공동체가 가진 특징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이기는 곳이 아닌 이끌어 주는 곳입니다. 세상이 가지지 못한 교회만의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이걸 실천하지 못할 때 이 원리에 반대할 때 아무리 전쟁에서 이겼더라도 아무리 공을 많이 세우더라도 하나님은 그를 벨리알로 여기십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끌어주는 이 원리가 실천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적대하는 것으로 보십니다.
(적용) 우리가 교회 공동체에 있을 때 어떠해야 되겠습니까? 여기 계신 분들은 다른 분들보다 더 기도와 말씀에 충실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과 기도의 측면에서 강한 분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말씀과 기도로 은혜 받을 때 이 은혜를 나눠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이 자리에 오자고 독려해야 합니다. 신앙의 어려움을 넘기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 함께 동역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에 있으면 약한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이끌어서 나와 같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시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돕고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2- 교회는 연합하는 공동체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교회는 연합하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하나된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 주로 사도신경을 고백하는데 사도신경과 같은 공교회 신경인 니케아 신경에는 교회에 대해서 사도신경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사도신경에는 그냥 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 이렇게 나와 있었는데 니케아 신경에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사도적인 공교회를 믿습니다.’라고 나와있습니다. 니케아 신경에서 교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제일 처음 나오는 이야기가 교회가 하나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라는 것은 연합된 것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 연합은 순수한 복음으로 인한 연합을 의미합니다. WCC라고 세계교회협의회라는 단체는 온갖 종교를 짬뽕 시켜놓고 그것을 연합이라 이야기합니다. 신학교수가 무당이 입는 옷을 입고 살풀이를 하고 그것을 성령의 역사를 동양적으로 표현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일 외에도 예수님 믿으면 천국가고 부처님 믿으면 극락에 가고 자기가 믿고 싶은거 믿으면 다 좋은 대로 가니까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순수한 복음이 아니면 연합이 아닙니다. 그건 혼합입니다. 그냥 같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에서 말하는 연합은 순수한 복음으로 인한 연합입니다.
26절에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전리품을 그의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 이르되 보라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선사하노라 하고” 여태 다윗이 아말렉을 쳤을 땐 그것이 이스라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옛 언약 시대의 교회라고 보았을 때 다윗이 블레셋 땅에 있는 동안 다윗은 교회와 연합 하지 못하고 그 연합이 굉장히 느슨해진 상태였습니다. 블레셋에 숨어살며 아기스 밑에 있었던 것을 보면 교회와 올바로 연합되어 있다고 이야기 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시글락 성이 불타고 아말렉과 전쟁하는 것을 통해 다시금 교회와 연합이 더욱 견고해집니다. 다윗이 속한 공동체와 유다에 있는 믿음의 공동체들이 전리품을 나눠주는 일로 연합이 되고 있습니다.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원수들에게서 약탈한 전리품 가운데서 떼어네어 선물로 주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전리품들이 있는데 떼어내서 주었습니다. 같은 전쟁의 전리품을 취하도록 한 것입니다. 같은 전리품을 취한 것은 같은 편일 때, 연합일 때 가능합니다. 또 제가 아까 참된 교회 연합의 기준은 순수한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26절에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선사하노라 이 말은 여호와의 원수와 싸웠다는 것이고 이겼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원수와 싸웠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싸움을 싸워서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이 승리야 말로 참된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용사들을 들어서 그분의 백성을 구한 것은 복음입니다. 전리품을 전달하면서 단순히 물건 자체만 전달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떻게 우리 손에 떨어져서 나눠갖게 되었는지 복음을 담아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땅에 아말렉을 친 다윗의 공동체나 다윗의 친구 장로가 거주한 곳에 있는 이스라엘 공동체나 똑같이 순수한 복음을 공유하는 하나의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순수한 복음을 통해 서로 연합된 공동체입니다.
(적용) 아까 니케아 신조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교회가 하나의 거룩하고 사도적인 공교회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의 교회라고 할 때 우리는 이 하나됨을 지켜야 합니다. 이 하나됨, 연합을 지킬 때 교회가 교회로서 올바로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순수한 복음을 공유함으로써 그 복음의 은혜를 서로 나눔으로서 하나가 됩니다. 교회 안에 구성원들, 성도들은 다 다릅니다. 성별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하는 일도, 정치적인 성향도 다르고 MBTI도 다 다릅니다. 우리가 어떤 공통점을 찾아서 하나가 되려면 너무나 어렵습니다. 교회의 모든 성도를 포괄할 수 있는 견고한 토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복음으로서는 가능합니다.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인해 모였습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모두가 빠짐 없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저 분과 하나되는 것이 힘듭니까? 나와 성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소통하는 스타일이 달라서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 안에서 연합되었습니다. 나도 구원 받았지만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저분도 구원하셨고 하나의 교회를 섬기도록 부르셨습니다. 이 진리 안에서만이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음 외에 모든 것이 다르지만 그 모든 다름이 복음 안에서 퍼즐처럼 맞춰져서 교회라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교회 공동체는 강한 이가 약한 이와 은혜를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순수한 복음으로 연합된 공동체입니다. 이 교훈을 붙들어 주 안에서 더욱 아름다운 교회 세워나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