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오마카세(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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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0:5–13 (NKRV)
5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5–13
주님께 오마카세
1. 생각열기
여러분 혹시 오마카세 먹어봤습니까? 벌써 부모님이랑 같이 먹어본 친구들도 있군요. 요즘 일식집에서 오마카세 먹는 게 유행인 것 같아요. 사실 이건 요리 이름이 아니라 주인이 마음대로 메뉴를 정하고 순서를 정해서 손님에게 내어주는 걸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본어로 '맡긴다'라는 뜻이라고 해요. 그 가게에 남아 있는 가장 좋은 생선을, 요리사가 가장 자신있는 방식으로 요리해서, 요리사가 잘 짜둔 순서에 따라 대접하니까 맛있을 수밖에 없겠죠? 때문에 너무 비싸서 저도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은 없습니다. 유튜브에서 보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설교의 제목은 "주님께 오마카세"입니다. 김원영 전도사님 분명 국어교육 전공했다던데... 어휘구사능력이 아주 아름답다 그죠? 사실 제 설교가 늘 그렇듯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함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5에서 7절입니다. ➤
2.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 vs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v5-7)
5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여기서는 두 가지 '의'가 등장하는 게 보이죠. 하나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이고, 하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이 둘은 한글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헬라어 접속사 '데'로 서로 논리적으로 대비됩니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 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우리는 이 둘을 비교할 거예요. 일단 5절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먼저 살펴보자면, ‘모세가 기록하되’라는 말이 나오죠? 이 구절은 모세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게 어디냐면, 구약 레위기 18:5예요.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
레위기 18:5 (NKRV)
5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이 구절은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인데요, 이집트나 가나안의 가증한 풍속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고, 그걸 온전히 잘 지키면 그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죠.
잉?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죠. "아 전도사님, 그러면 그냥 율법 잘 지켜서 구원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구약 내내 율법 지키라고 했는데 율법이 뭐가 문제죠?"
문젭니다. 율법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주어졌지만 사람들은 율법을 충분히 지킬 수 없거든요. 갈라디아서 3:11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사실 바울은 오늘 본문 앞에서 꾸준히 어떤 대비를 만들어왔습니다. 9장 32절에서는 믿음과 행위를, 10장 3절에서는 하나님의 의와 우리 자신의 의, 4절에서는 그리스도와 율법을 대비시킵니다. 그래서 5절과 6절이 여기서도 서로 대비되고 있으며, 두 구절은 모두 신명기를 인용하고 있는 구절이에요.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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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30:11–13 (NKRV)
11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이 구절을 보면 자연스레 12절과 13절 내용이 이해가 가요. 갑자기 예수님이 왜 하늘에 계시다가-무저갱에 계시다가, 우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니 마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느냐... 그건 바로 예수님이 그리 멀리 계시지 않다는 뜻입니다. 구원이 손에 닿는 곳에 있다고요. 놀랍게도 바울은 이 신명기 말씀을 율법 대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원래 신명기 맥락에서는 이게 율법일텐데 말이지요. 왜 그랬을까요? 이제 우리는 율법보다 더 쉽고 가까운 의를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사실 바울은 여기서 흥미로운 패러디를 보여줍니다. 신명기에는 ‘하늘과 바다 밖’이 언급되었는데 로마서에서는 ‘하늘과 무저갱’이에요. 무저갱이란 ‘끝이 없이 깊은 구덩이'를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이 바다랑 안 친해서 구약은 바다를 주로 알 수 없고 위험한 곳으로 묘사하거든요. 그렇지만 신약시대에 이르러 바울은 보다 명확하게 그리스어 ‘아뷔쏘스', 무저갱이란 단어를 사용해서 유대인이 아니어도 이해할 수 있는 깊이와 막막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신명기에서는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서 하나님의 명령을 가져다주겠냐고 말하지만, 로마서에서는 그 ‘누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명확히 전하고 있어요. 그 누구도 해주지 못할 일이지만, 그걸 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시기에 우리가 다시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죠.
그러면 다음 단락인 본문 8, 9절을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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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까이에 있는 구원의 길(v8-9)
8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서 '그러면'은 헬라어 접속사 '알라'입니다. 이슬람교 이야기 하는 거 아녜요. 집에 가서 "엄마, 오늘 전도사님이 설교시간에 알라 이야기 했어" 이러면 곤란해요. 이 접속사가 나왔으니 이제 하늘이나 무저갱에 가니 마니 하는 것과 반대 되는 이야기가 나올 거라는 거예요.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어지는 의죠. 우리는 예수님이 주님이심과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써 구원에 이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우리를 대신해 율법의 저주를 친히 받으심으로써 율법을 마치셨습니다.
4. 구원을 받는 법 - 오마카세 먹기
마지막으로 10에서 13절을 봅시다. ➤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0절의 마음으로 믿는 것과 입으로 시인하는 것, 의에 이르는 것과 구원에 이르는 것은 서로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내적이고 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이 둘을 분리할 수는 없을 거예요. 믿음에 이르는 길은 이처럼 단순합니다. 이어지는 11에서 13절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쉬운지를 세 절에 걸쳐서 보여주는데요,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부르면 부요하게 복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결국 구원의 준비물은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행하신 일인 복음, 그리고 그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믿음일 것입니다. 이 중에 어느 것 하나 어려운 게 있나요? 없습니다. 그냥 이미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죠. 한국인은 어디에 속하냐고요? 음... 둘 다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헬라인에 속하죠. 율법을 받지 않았고, 하나님에 대한 앎, 구원의 소식을 유대인들을 통해서 들어야만 했던 이방인이니까요. 그러나 이제 우리 모두가 이 구원의 소식을 접했고, 그 안에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이미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요.
이런 면에서 우리는 구원에 있어 특별히 할 게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가 우리를 의롭게 합니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됩니다. 누구 마음대로요? 하나님 마음대로요.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주님께 오마카세"라고 지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드릴 때 비로소 우리 것이 됩니다. 우리 행위, 우리 노력, 우리 스스로의 의로움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분주하게 고기 나르고 반찬 나르고 수저 놓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에요. 그건 오마카세가 아니라 ➤명륜진사갈비잖아요. (쉼) "무한으로 즐겨요, 명륜진사-갈비🎵" (쉼) ➤하지만 우리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하나님이 손수 예수 그리스도를 재료 다듬는 것을 지켜봅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재료를 가장 예쁜 모양으로 플레이팅한, 정성 가득 담긴 밥상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손수 원수였던 우리에게 용서의 밥상을 차려주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에 밥상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한번 볼까요?
➤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차려주신 밥상입니다. 마침 물고기 구이를 준비해주셨네요. 약간 오마카세 감성이 있으시죠? 제가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그분을 배신했던 베드로. 그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예수님은 말없이 먼저 밥상을 차리십니다. "예수님,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합니다."하기도 전에 이미 밥상은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 밥상을 다 먹고 나서야 베드로는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고백해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서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죠. 교회는 이러한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서로를 용납하고 환대합니다. 그리고 교회 밖의 사람들을 이끌어 이 식탁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함께 하나님께서 차리신 식탁을 누립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5. 결론
오늘 우리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와 철학, 가치관은 우리에게 규칙을 지키거나 행해서 얻어지는 무언가를 말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구원은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냥 예수님 하신 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말이죠. ➤ ➤예수님이 차리신 밥상을 받아먹는 것, ➤우리가 이상한 밥상을 차리려 했던 그 모든 노력을 멈추고, ➤주님께 맡겨드리는 것.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길입니다. 우리 이 길 오래오래 즐겁게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많이 나누고, 많이 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설교 아웃라인
2022-2학기 설교실습 A반
1학년 3반 김원영(2022210127)
본문: 로마서 10:5–13
제목: 주님께 오마카세
대상: 베들레헴교회 중등부
설교 목적: 새친구 초청 주일을 앞두고, 기독교가 어떤 종교이며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한다.
핵심 아이디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얻어진다.
아웃라인: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 vs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v5-7) - 훨씬 가까워진 구원의 길(v8-9) - 구원을 받는 법(v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