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힘써 알자. 호세아 6장 1-3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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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힘써 알자. 호세아 6장 1-3절 설교.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1. 망한 나라
교회는 망했다. 교회는 망해간다. 교회의 생명이 다했다.
이런 말들은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 뿐만 아니라. 교회를 출석하고 있는 성도들도 숨어서 자주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경험되기도 하지요.
고령과 중년의 성도는 과거를 말합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모였고 과거에는 전도가 쉬웠고 과거에 우리 교회는 어떠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에 모습을 잊어 버렸다.
교회 밖을 나가면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소식을 쉽게 접합니다.
또한, 악행을 한 교회도 우리는 너무 쉽게 듣습니다.
교회 지도자가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교회의 물질을 횡령하거나. 좌우로 갈라져 그리스도를 버리고 정치 집단에 매달리거나.
어른들은 침묵하라 하며 서로 봐주는 악을 행하며 젊은 이들은 침묵 대신 교회를 떠납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중, 고등학교에 전도를 다녀 본 친구들이 있습니까. 저는 지난 한 달까지 혼자 지역에 가까운 학교를 찾아 학생들을 만나고 그 학생들이 말하는 교회에 대한 말을 들었습니다.
안산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제가 있던 마산이라는 동네는 한 반에 23-24명이 있다면 교회를 출석하는 이가 2-3명 외에 없었습니다.
“쟤 교회 다녀요. 너 교회 다니잖아.” 그 지목된 아이를 보면 고개를 바싹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합니다.
우리 친구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교회가 능력이 있어 보이나요? 그리스도인이 능력이 있어 보이나요?
교회 출석하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요!
마산 청소년 중, 대략 4-5%가 교회를 출석한다고 합니다. 그 중 상당수는 어른이 되고 교회를 떠나겠죠.
우리가 선교를 하자. 복음을 전하자라고 하는데 우리는 우리 가까운 곳에 선교지를 두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동시에 무기력한 교회, 무능한 우리들의 현실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악행에 침묵되는 교회, 동시에 젊은 이가 떠나가는 교회. 예수 믿는다는 고백도 없이 교회 출석하는 일도 부끄러운 현실.
전국에 있는 교회의 교육부서가 무너져도 교회가 알아주지도 못합니다.
과거를 부르는 분이 청소년을 바라볼 때, 하는 말.
“옛날에는 되었는데 왜 지금은 못해.”
무능한 이 세대들이라 하며
교육부 학생들이 교회에 있어 다가와 주는 어른들은 교육부서의 선생님 외에 없는 것도 경험됩니다.
떠나는 학생들을 경험하는 현실과 이에 무감각한 교회의 현실.
시급함에도 침묵에 침묵을 요구하는 모습들.
어떤 이가 울부짖으며 ‘위급합니다.’ 외치는 이가 있더라도 그 외친 입이 교회를 떠나는 아픈 현실들.
중고등부를 맡았던 부교역자들은 한 해 사역하다 멘탈이 부셔져서 목회직을 아예 그만 둔 분들도 계십니다.
청소년들은 떠나고 어른들은 무능한 목회자라서 책임지도록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청소년부를 맡았다 떠나는 목사들이 말합니다.
“망했다.”
저도 제 가까운 동기 목회자들 많은 수가 사역을 그만 두었습니다.
일을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납니다.
목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교회에는 성도라는 이름으로 앉아 있는 제 동기들이 많습니다.
무너지고 아픈 현실들을 우리들은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랑할 우리 세광 선생님들과 학생 여러분.
우리 이거 부딪칩시다.
2. 호세아와 교회
오늘 본문의 호세아의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호세아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8백년 전의 사람으로 당시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왕의 오랜 통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번영하였으며 이스라엘 아래에 있는 동족 유다는 평화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윗쪽으로는 앗수르라는 나라와 아래로 애굽의 사이에 있는 주요 교역로로 큰 경제적 이득을 취했습니다. 당시의 앗수르는 주변의 위협 세력들을 제거해 나갔지만 당시에는 이스라엘을 경제적 협력을 하는 공동체로 여겼지 서로 분쟁, 갈등을 가지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전체적으로 부강해져 갔을 무렵, 이전 이스라엘의 농민들은 시리아의 침입과 오랜 가뭄으로 땅을 잃게 되었습니다.
무역 등으로 부유해진 백성이 있는 반면, 가뭄과 침입으로 인해 가난해 진 백성이 나뉘어져.
당시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졌고 돈이 많다는 것이 권력이 되어 법을 통해 부유한 자는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국가가 정의롭지 못하며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일이 나라안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이스라엘은 어떤 국가였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국가.
여호와를 섬기는 일이 국교인 나라입니다.
비록 성전은 유다에 있으나 하나님의 법이 있으며 하나님의 예배가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나요?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의 예배처 벧엘이 있었습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범죄한다고 합니다.
길갈 ->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후,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가나안 땅에 거했던 장소이며 가나안 땅에 들어오자. 첫 유월절을 행한 장소이죠. 그러기에 기념비를 세운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성지와 같은 장소입니다.
그 예배의 자리에서 그 성지에서 예배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아침마다 예배를 드리고 삼일 마다 십일조를 드립니다. 수은제와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합니다.
돈도 많았고 예배에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분들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범죄하며 죄를 더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니라. ‘너희가 좋아하는 바다’라고 선포하십니다.
경제적으로 나라는 부강해졌고 한 국가의 국민 전체가 ‘하나님을 섬긴다’ 하며 예배에 헌신적인 사람들이 많아 예배라는 예배에 모두 참석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도 많아 교회까지 물질적으로 풍족한 상태.
과거 어른들이 말하던 부흥을 이들은 경험해 내었습니다.
어른들이 기억하는 20년 전의 한국교회의 상황과 많이 닮았습니다.
이때 호세아는 선포합니다.
호세아 4:1–10 (NKRV)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동일함이라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그들이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음행하여도 수효가 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을 믿는 다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백성들아,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를 드린다는 백성들아, 하나님께 물질적으로 바친다는 백성들아 들으라.
얼마나 자기 만족에 빠져 있기에 하나님께서 ‘내 이야기를 들으라’할까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면 여호와께서 이 땅의 주민들과 논쟁하신닫고 할까요.
그 예배 드린다는 백성들의 삶을 보십시오. 진실도 없고 인애, 사랑도 없고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습니다.
저주와 속임, 살인, 도둑질, 간음 등등이 그 안에서 행해집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 이 일을 행하나.
이 악에 대해서 악이 악인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며 침묵에 침묵을 더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이어 백성과 제사장이 다투는 자처럼 되어 버렸죠. 왜 다툴까요.
백성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까지도 하나님의 말씀,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배 때, 죄의 문제로 제물을 드립니다. 이것이 예배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죄의 문제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 조차도 죄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그 법도 모르는, 기준이 없는 교회에서 성도와 목회자가 다투는 모양입니다.
당신이 옳다, 내가 옳다 하는데 정작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고 진리에 무능합니다.
기준이 없으니, 자기 마음대로 다투는 것이 매우 쉽습니다.
이어 6절은 말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 도다. 지식을 버렸다. 제사장도 버렸고 백성들도 버렸고 선지자들도 버렸다.
교회는 있지만 헌신적인 성도들은 있지만 결국 자기만 만족하는 교회, 하나님을 선포하지만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교회.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망한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취하고 있습니다.
현실로 더 나아가 봅시다.
교회에 대한 비판 많습니다. 판단 많습니다. 교회는 어떠해야 한다 주장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교회 내에서 성도들이 모여서 우리 교회는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진리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모릅니다.
기준이 뭐냐고요. 세상이 말하는 기준 아니면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교회의 기준, 좋아 보이는 교회를 보고 ‘저 교회처럼 해야 한다는 기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교회는 분명히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인데, 교회 오래 출석했다는 분들이 진리를 모릅니다.
제가 마음 먹고 헛된 진리로 교회 출석하는 어떤 분을 속이겠다고 하면 너무 쉽게 속일 자신이 있습니다.
대답하지 않아도 되니. 단순하게 여쭤볼까요. 오늘 호세아서를 설교합니다.
성경은 단 66권 밖에 되지 않죠. 상당한 시간 교회 출석했다면 조금만 생각하면 당연히 알아야 할 질문.
하나님께서 호세아서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교회가 복음을 전한다고 하죠. 그러면 ‘복음’이 무엇인지 설명 가능한 분들이 몇 분이나 계실까요.
저는 교회사를 묻지도 않았고 성경 원어 히브리어, 헬라어를 언급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려운 질문이 아니라. 쉬운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돌아보면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에 무식하라 하신 일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이만큼만 알아도 된다고 하신 적이 어떤 성경 구절에도 적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리를 모르면서 만족해 합니다. 그리고 목사는 ‘말씀 사역자’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진리를 모르는 성도들을 보며 울면서 탄식하거나 ‘말씀 사역자’라는 이름대로 살아가지도 않습니다.
저는 지난 주 제가 교회에 마지막 설교 시간에 했던 말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말씀의 사역자입니다. 그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성도님들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친 일을 보셨습니까. 말씀을 가르쳐야 할 소명을 가진 자가 성도님들께 가르치지 않는 이 악행을 하는데 왜 아무도 이를 가지고 묻거나 목사면 목사 답게 살라 하시는 분이 왜 없으셨습니까? 저는 성도님들도 다 아십니다. 분명히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악에 대해서 악을 악이라 하는 분들이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현실이 변했다고 세대가 변했다고요. 교회가 그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요.
친구 여러분 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같은 목회자가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 악을 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이라 분별하지 못하는 무지한 이들이 넘치는 교회.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3. 결론 : 다시 알아가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세아는 외칩니다. 그들이, 교회각 교회 답지 않던 가장 근본되는 원인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버렸으니. 이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낫게 하실 것이고 치셨으며 싸매어 주실 것이며 살리시고 일으키시는 분이시다.
여호아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이만큼만 알자가 아니라. 힘써서 여호와를 알자.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망했다라고 하는 이 자리에서 소망을 외치고자 합니다. 저도 망하는 거 싫고요. 무너지는 거 싫습니다. 우리 선생님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연약해지는 교육부의 현실을 보면서 탄식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저는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기초를 세워 나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바로 알고 그 아는 진리로 굳건하게 세워. 무너져 가는 이 현실 속에서 진리로 살아 남아. 진리에 굳게 선 교회가 우리 세광 친구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며 만일 목사가 목사로서 우리 선생님들과 우리 친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과 전하는 일에 게으르다면 ‘목사 답게 살라’ 저에게 질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말씀을 성실히 준비할 것이며 가르치는 일에 게으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선생님들과 우리 친구들도 진리를 알고자 하는 일에 열심을 가져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렵더라도 진리를 알아가는 일에 힘을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진리가 말하는 바, 하나님을 바로 알아갈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진리로 우리를 인도해 내시며 망한 백성이 아닌, 승리의 백성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