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자랑 Ⅲ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38 views
Notes
Transcript
갈라디아서 6:14 (NKRV)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놀라운 십자가

지난 주 우리는 바울이 십자가만을 자랑한다 말하였던 이유를 알아보았습니다. 분명 바울은 십자가를 불편하게 생각했고 십자가를 대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행 26: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그랬던 바울이 어떻게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바울이 십자가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하고, 가장 놀랍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에서 절대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이 함께 있고, 누구도 풀 수 없는 딜레마가 풀리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과 같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것, 어떠한 사람도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던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 세상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그 일이 십자가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바울이 외쳤던 복음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복음 말입니다. 단언컨대, 그리스도의 십자가야 말로 세상에 전해진 모든 소식 중에서 가장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영원 전부터 우리의 구원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나타내셨고, 죄인들을 향한 은혜와 자비를 나타내셨으며, 우리를 향한 끝없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세상 어디에서 이런 지혜와 은혜와 사랑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십자가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완전하신 하나님의 성품들을 나타셨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이러한 것들이 끝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죄인들을 향한 공의를 만족시키고 사랑을 베풀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지혜였음을 보았나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찢으셔서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품을 활짝 열어 주셨음을 보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 그 보혈의 한 방울 한 방울이 세상을 향해 쏟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음을 보았습니까? 이것을 본 자들은 세상에서 얼마나 신비하고, 놀랍고, 아름다운 것을 이전에 보았던 간에 상관없이 이후로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합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자, 이러한 자가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지난 시간 함께 나누었던 내용입니다.

세상에 속한 자

지난 두 주 동안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었는데요, 여전히 이 구절에는 여러분들과 나눌 내용이 많습니다. 십자가야 말로 가장 신비하고, 가장 놀랍고, 가장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제 막 믿기 시작한 믿음의 초보였기에 이렇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해 열정적인 태도를 가졌던 것일까요?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하였던 때는 결코 바울이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시점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대략 A.D 34년 경에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였고, 이후 아라비아 사막과 고향인 다소에서 10년이 넘는 세월을 잠잠히 보냈습니다. 바울이 보낸 10년의 세월에 대해 성경이 언급하는 바가 없지만 그는 분명히 이 세월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며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맡기셨는가? 이 십자가의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 것인가?”하며 계속해서 묵상하고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신학이 이제 무르익었을 무렵부터는 본격적인 선교여행을 시작하였는데요,
(PPT) 바울이 처음 떠났던 1차 선교여행에서 갈라디아 지역을 방문하였고, 이후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던 그 무렵에 갈라디아서를 작성하였습니다. 요점은 바울의 신학과 선교의 열매가 무르익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십자가를 붙들고 있고,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십자가가 전부였고 바울은 모든 좋은 것들이 다 십자가로부터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빌 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엡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심지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천사들도 놀라워하며 자세히 살펴보기를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벧전 1:10-12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어떻게 해야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위대함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여러분이 계속해서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누리며 살아가게 할 수 있을까요? 제 지혜와 능력이 부족한 것이 참 한탄스럽습니다. 성령께서 이 모든 일을 우리 안에 은혜로 이루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제 우리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봅시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이 십자가만을 자랑하게 된 것에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하고, 가장 놀랍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울이 십자가만을 자랑하게 된 또 한가지의 이유가 본문에 나타나는데요, 이제부터 본문의 하반절을 집중해서 살펴봅시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전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은 지금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이루신 일 중에 특별히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울은 “스스로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을 십자가가 자신을 위하여 이루어주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데요, 십자가는 우리에게서 세상을 분리시키고 우리 안에서 세상을 제거하는 일을 이루어줍니다.
바울이 말하는 세상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요한1서 2장 15절 말씀을 참고해봅시다.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바울이 말하는 세상이나 요한일서에 나오는 세상이나 모두 물질세계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나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성경 곳곳에서 이 ‘세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사는 삶,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을 가리키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사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죽음에 대한 자세,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하나님에 대한 태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이웃에 대한 태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언급한 것들 외의 모든 것들을 대하는 모습이 이 ‘세상’이라는 단어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이라는 단어의 뜻입니다. 세상이란 전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없이 모든 일을 생각하며 결정하고 행동하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공동체 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고, 하나님께 이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종교던 어떤 철학이던 어떤 사상이던 예외는 없습니다. 모든 것들이 다 세상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임의대로 생각하며 결정하고 행동하게끔 하는 것이라면, 제 아무리 훌륭해보이는 것이라 하여도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인간은 십자가 없이는 누구나 예외없이 세상에 속해서 세상의 풍습에 따라 살아갑니다. 엡 2:1-2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여러분은 이 말씀이 교훈하는 것 곧, 세상의 풍습의 배후에 존재하는 사탄의 활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사탄은 자신의 권세로 세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풍습 다른 말로는 문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며 진리의 빛을 가림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죄를 짓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세상의 열매

예수님께 분명히 세상이 심판의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요 12: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왜일까요? 이 세상의 임금 즉, 사탄이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그가 온 세상에 가득 채워가고 있는 것이 온통 더럽고 추악한 것들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그렇습니다. 세상에 가득차 있는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 말씀이 과연 진실한지 한 번 생각해봅시다.
세상이 계속해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최첨단의 기술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받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쟁과 학살, 가난, 기근, 학대와 같은 일들 말입니다.
(러시아 영상)
이런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성경은 일부 잘못된 사람 개개인의 문제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 즉,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사는 삶,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마음가짐 때문입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인간에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불어넣고 있으며, 모든 인간이 그에 따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정욕이란 무엇일까요? 육신의 정욕은 강한 욕구를 뜻하며, 성경은 이런 욕심에 이끌려 사는 삶을 정죄합니다. 물론 인간은 욕구와 강한 충동을 본성으로 가진 존재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떤 것을 하고 싶어하고, 그것을 마음에 품은 순간부터 열심히 그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본능이 너무나 강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세상에서 자제력을 상실하고 본능대로 마구 날뛰는 사람들을 보게 되지요. 아주 분별력이 있고 자제력이 뛰어나 보이는 사람이(브래드피트) 알콜중독자가 됩니다. 아주 휼륭한 교육을 받았다 하는 사람들이 다른 이의 가정을 깨뜨리거나, 어린아이들을 학대하는 일들을 저지릅니다. 이런 죄악이 다 육신의 정욕에서 출발합니다. 강한 욕구가 우리 안에 충동을 일으키면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이런 욕망들을 사랑하며 즐기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것을 ‘육체의 정욕’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닌 우리의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육체의 정욕을 부추기는 것들이 온통 가득합니다. 특시 이 시대에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굳이 포르노 비디오가 아니더라도, 이제 우리가 쉽게 접하는 모든 미디어에서 성적인 묘사를 아주 짙게 표현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요한은 마치 오늘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성경을 기록한 것처럼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삶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삶입니다. 요한이 살아있던 당시 1세기에 살았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그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은 우리 조상들이 했던 일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요한은 안목의 정욕에 대해서도 언급하였습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외모나 외관을 숭배하며 외형적인 것에 치중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인간을 안목의 정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눈에 보기에 좋은 것들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가게 합니다.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속에는 겉모습은 그럴 듯하게 보이나 실상은 그저 보기 좋게 꾸며놓은 가짜가 넘쳐납니다. 안목의 정욕이 가득한 세상의 문화 속에서는 겉모습만을 온통 화려하게 꾸며서 가짜가 진짜로, 거짓을 진실로, 부정직을 정직으로 꾸며냅니다. 정말로 진짜인 것, 진실인 것, 정직한 것이 무엇인지 분간하는 것은 그닥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겉모습만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안목의 정욕에 젖어 살아가는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해 보이지만 속이 어떤지 전혀 보지 못합니다. 보기에 멋지다면 속이 어떻든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생의 자랑입니다. 야망과 교만과 욕구는 계속해서 이생의 자랑을 부추깁니다. 사람들은 이를 자랑하며 이것들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박수 받기를 갈망하고, 유명해지기를 열망합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더 중요한 인물이 되려고 애씁니다. 오늘날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행태들을 보십시오. 박수를 받을 수 있다면, 유명해질 수 있다면, 더 중요한 인물이 될 수 있다면 온갖 불의와 악행도 감수합니다. 그렇게 지식과 재물과 권력을 얻었으니 자신이 가진 지식과 재물과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나 있겠습니까? 그저 자기가 얻은 것을 자랑하기에 바쁠 뿐입니다.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도록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삶에 대하여, 세상적인 삶을 사는 인간과 그들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정욕들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시점에서 두가지 진지하게 여겨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정욕이 세상을 무시무시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과 세상이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정욕 자체가 부끄러운 것일 뿐만 아니라 이 욕정이 한 인간를 넘어서 세상 전체를 나쁜 길로 이끌며 무질서를 초래하며 풍기문란을 일으킵니다. 온 인류의 역사 내내 이러한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세상을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는 전망은 그저 유토피아에 불과했습니다.
무엇으로 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무엇으로 세상에 물든 인간의 마음을 고칠 수 있을까요? 세상은 교육제도를 개선해 사람들을 잘 가르치면 문제가 해결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느것으로도 우리는 스스로를 치유하고 고칠 수 없습니다.
심판을 막을 길도 피할 길도 없습니다. 이 세상이 받아야 할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주님께서 대신 받으셨음을 믿는 길 뿐입니다. 이것을 굳게 붙들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 세상에 심판이 임할 때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 악한 세상이 받을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운명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켜 줍니다. 이러한 일은 오직 십자가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붙드는 순간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며,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분리하시며, 자기에게 속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입니다. 이제 세상이 내게 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세상으로 분리시켰고 당신의 나라에 속하도록 이전시키셨기 때문입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