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수호하다.

사무엘하 강해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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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새벽기도에 오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불법한 왕 사울을 몰아내셨는데 이 사울이 죽을 때 다윗은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직분이 가지고 있는 복음의 의미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복음의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 어떤 거인지 그 교훈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1- 성도는 복음을 위해 슬퍼하는 사람이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 성도는 복음을 위해 슬퍼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제 본문 사무엘상 31장에서 사울이 길보아 전투에서 패하고 사울과 아들들이 죽은 사건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불법한 왕을 몰아내시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작용이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사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됩니다. 2절에 보시면 다윗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시글락 성에 머물렀을 때에 한 사람이 옵니다. 그 사람은 사울의 진영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옷이 찢어지고 머리는 흙투성이입니다. 험난한 전쟁의 상황에서 돌아온 그런 모습입니다. 그가 다윗에게 사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내용과 다른 내용입니다. 사울은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니가 나를 죽여라 하고 부하에게 명령을 했는데 부하가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스스로 자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의 진영에 온 사람의 보고는 좀 다릅니다. 사울이 거의 죽어가는 상황에 그게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이 사람을 불러서 죽여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고 사울을 죽이고 사울이 가지고 있던 왕관과 고리를 벗겨서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31장에서 사울이 자결을 선택하게 된 주된 이유는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이 자신을 죽이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온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사울이 그런 것은 상관 없이 그저 고통만 없애주면 누가 죽여도 되나는 식입니다. 다윗에게 온 이 사람은 13절에서 보듯이 아말렉 사람입니다. 아마 이 아말렉 사람이 거짓으로 다윗에게 보고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외적으로 알려지기를 사울이 다윗을 싫어하고 다윗도 사울에게 오랜 시간동안 쫓겨다녔기 때문에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고 이야기 하면 다위에게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이 아말렉 사람이 기대한 것과 영 딴판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11절에 자신의 옷을 찢습니다. 슬피 웁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사울은 다윗의 목숨을 위협하고 오랜시간동안 다윗을 추격한 사람인데 울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면 여기에는 복음적인 의미가 숨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11절에는 다윗이 슬퍼하고 12절에는 왜 슬퍼하는지 나옵니다.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한여 울며 금식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여호와의 백성이 죽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냥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까지만 적으면 의미가 다 통하는데, 여호와의 백성이 죽임당한 것을 이야기 합니다. 여호와의 백성이란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는 백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어떻게 다스리십니까? 하나님 나라의 대리 통치자인 왕을 통해서 이들을 다스립니다. 그러니까 사울의 본연의 역할은 하나님의 통치원리를 잘 이해하고 받들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울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기름을 부어서 세우는 중요한 직분자가 셋이 있었습니다. 제사장, 선지자, 왕입니다. 이 세가지만 기름을 부어서 세웁니다. 제사장은 제사드리는 것을 통해 백성들이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왕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언약 백성들을 다스리고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사울의 역할은 기름 부음 받은 자중에 왕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기름 부음 받은 자를 히브리어로 메시아, 헬라어로는 크리스토스,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 기름을 부음 받은 자는, 임시적인 그리스도입니다. 신약시대에 오신 예수님은 완전한 제사장, 완전한 선지자, 완전한 왕으로서 최종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고 구약의 기름부음 받은 자들은 임시적인 그리스도인데 자신의 사역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를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왕 답지가 않아 장차 오실 완전하신 왕을 드러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 권한을 위임 받아서 언약백성을 지키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심판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 잘 죽었다 꼴좋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사울이 죽은 것을 여호와의 백성들이 고난당하고 죽임당한 것으로 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다윗은 개인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슬퍼했습니다. 장차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드러내는 기름 부음 받은 왕이 전쟁터에서 전사했다는 것을 비극으로 여겼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를 잃었습니다. 아까 기름부음 받은 자를 헬라어로 크리스토스, 그리스도라고 알려드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다윗은 무엇 때문에 슬퍼진 것이 됩니까? 다윗과 그 백성은 부족하지만 기름 부어 세운 그 왕을 잃어버린 이유로 슬퍼하고 있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 크리스토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줍니다. 이렇게 되면 다윗은 구약의 임시적인 그리스도의 죽음에 슬퍼한 것이고 그 사람을 따르다 피해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깊은 안타까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복음의 핵심이지 않습니까? 다윗이 기름 부음 받은 자 사울의 죽음을 슬퍼한 것은 바로 복음이 희미해지고 쇠락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도는 복음의 의미가 약해지고 퇴색 할 때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아말렉 사람은 단순히 인간관계만 예측해서 조금의 이득을 바랬습니다. 복음을 핑계로 지위나 보상을 얻기 위해 자신의 죄성과 욕망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복음의 핵심인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다고 거짓말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참된 성도는 복음이 희미해지는 것을 발견할 때 슬퍼해야 합니다. 복음이 더 뻗어 나가지 못하고 사람들이 복음 전하는 모습을 보면 비웃고 조롱하고 이런 장면을 보면 우리가 슬퍼야 합니다. 복음의 의미가 퇴색되었을 때 우리는 가슴아파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2- 성도는 복음의 의미를 지키는 사람이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성도는 복음의 의미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저녁 때까지 슬퍼 울고 소식을 전한 이에게 어디 사람인지 물어봅니다. 보니까 이 사람이 아말렉 사람입니다. 그가 신분을 밝히자 14절에 다윗이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는지 말합니다. 그리고 15절에 다윗은 기름 부음 받은자 죽이기를 두려워 하지 않느냐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15절에 다윗의 부하 중 한 명에게 명령을 내려 그 아말렉 사람을 쳐서 죽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16절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다윗은 언약 백성을 구원하고 지키는 기름 부음 받는 자를 죽인 아말렉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그를 그대로 두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자신이 사울을 죽인 일을 막 떠벌리고 다닐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입장에선 그들의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이방 민족에게 모욕을 당하는 것이 됩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가, 그리스도가 구약의 교회를 구원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돌게 될 것입니다. 이게 복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가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했다. 이런 메시지가 돌아다녀야 하는데 기름 부음 받은 자 별거 없더라 하나님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통해 구원 사역을 베풀지 않더라 신통치 않더라 이런 이야기가 돌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기름 부음 받은 자, 그리스도라는 말이 들어갔지만 가짜 복음입니다. 다윗은 이 가짜 복음이 멀리 퍼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이거나 대적하면 하나님께 심판 받는다는 내용을 실현시켰습니다. 시편 2장에 보시면 세상의 권력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비웃으십니다. 그리고 분노하십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는 결코 꺾이거나 조롱당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윗이 한 것은 단순히 살인을 사주한 것이 아니라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건드리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다윗은 복음의 의미를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순수한 복음만이 전파되도록 했습니다.
(적용) 성도는 이렇게 복음의 의미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오늘 나온 아말렉 병사처럼 말할 지 모릅니다. 아말렉 병사가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다고 있지도 않은 일을 진짜인 것처럼 말합니다. 가짜뉴스를 퍼뜨립니다. 거 예수님 별거 아니던데, 예수님은 죽고 없는 존재인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윗처럼 복음의 의미를 순수하게 지켜야 합니다. 구약시대와 지금 시대는 다르기 때문에 폭력은 결코 써서는 안되지만 우리의 삶을 통해 여전히 순수한 복음이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다윗이 아말렉 병사를 심판함으로써 여전히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면 안된다는 그 진리가 효력을 가진 것처럼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이 계시는 구나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 순수함을 지켜야 합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이 시대가 복음을 만만하게 생각하고 복음을 깔보고 무시합니다. 아말렉 병사도 얼마나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만만하면, 복음이 만만하면 저런 거짓말을 했겠습니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슬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슬퍼할 뿐 아니라 우리가 바꿔 나가야 합니다. 세상은 복음을 무시하고 그들이 마치 예수님을 없앤 것처럼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를 구원하시고 다스리시는 그리스도가 있음을 우리의 삶을 통해 말을 통해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복음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눈물 흘리고 실천하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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