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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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정한 기도
(2022.10.23. 표선교회 오후예배-서 현 목사)
본문: 눅18:9-14
주제: 진정한 기도는 낮은 자의 기도이다.
1. 서론-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비유의 목적은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말씀하시는 것인가? 겸손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말씀은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오늘 말씀은 기도에 대한 비유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도 진정한 [[기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누구에게 말씀하시는가?를 살펴보면,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듣는 대상을 생각해보면, 겸손에 대한 비유입니다. 말씀의 내용을 보면,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겸손]]이 주제인가? 기도가 주제인가?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본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2. 본문
1) 두 명의 등장인물
오늘 비유에 두 명이 등장합니다. 이 둘은 대조됩니다. 한 명은 바리새인입니다. 다른 한 명은 세리입니다.
바리새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지키고자 열심을 냈습니다.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쳤고, 그들 스스로가 율법을 지켜 본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을 존경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세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세리는,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매국노입니다. 로마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같은 동족에게 돈을 받아내고, 그 돈을 로마에 바쳤습니다. 일정한 세금을 바치고 난 것은 자신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세리를 인간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저주했습니다. 개 취급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비유에 세리가 등장하는 것도 싫어할 정도입니다. 세리 이야기를 하실 때 사람들의 얼굴은 찌푸려졌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도, 세리도 성전에 왔습니다. 왜 왔습니까? 기도하러 왔습니다. 10절을 보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세리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전]]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부자도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누구도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교회에 낯선 사람이 예배드리러 오면 은근히 경계합니다. 어디서 왔지? 누구지? 왜 왔지? 이단은 아닌가? 어떤 목적이 있나? ‘저 사람은 교회에 안 왔으면 좋겠다’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세리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똑같이 기도드리지만,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바리새인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11절을 읽어 주십시오. 바리새인은 서서 / 따로 / 타인과 비교하며 / 자신의 행위를 자랑 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저는 [[토색]]하는 사람과 다릅니다.” 여기서 토색이라는 말은, 노략질하다. 사기꾼, 남의 물건을 탈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세리를 의식하고 기도한다고 하면서 그가 하는 일을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불의는, 율법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간음]]은 성적인 범죄를 의미합니다. 바리새인은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말을 합니다.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그의 감사 내용을 보십시오. 그는 세리와 다름을 감사합니다. 지금 바리새인은 어떻게 기도하고 있을까요? “따로 기도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원어로 보면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기도했다” 즉, 그는 기도하는데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기도합니다.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 나는 율법을 다 지켰다! 나는 성적인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나는 세리와 다르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바리새인은 하늘을 보며 기도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옆에 있는 세리를 의식하며 기도합니다. 세리를 바라보고 기도합니다. 세리와 자기 자신을 비교하며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께 향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기도였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2절입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합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율법에 따르면, 일주일에 한 번 [[금식]]하면 됩니다. 그는 두 번이나 금식합니다. 그것을 보면, 그는 율법을 분에 넘치도록 지키는 사람입니다. 십일조도 빠짐없이 드립니다. 율법적으로, 바리새인은 완전해보입니다. 그의 기도는 누가 들어도,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래, 저렇게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을 봐! 얼마나 영적이야? 얼마나 거룩해?” 이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됩니다. 또한, 그가 기도하는 내용을 들어보십시오. 세리를 쳐다보며, 비교하며 기도합니다.
여러분, 높아지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스스로를 높은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더 쉽기 때문에 우리는 흔히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합니다. 바리새인이 지금 기도하는 듯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들으라고 큰 소리로 세리를 비난하고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도일까요?
그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옆에서 세리가 기도합니다. 세리는 어떻게 기도할까요? 이번에는 세리의 기도를 보겠습니다. 13절을 읽어 주십시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의 모습을 원어 그대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리는 아주 멀찍이 떨어져서 눈도 들지 못하고 하늘도 보지 못했다. 그는 오직 가슴을 심하게 칠 뿐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이야기했다. ‘하나님,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은혜]]를 베풀어 불쌍하게 여겨 주십시오.’”
세리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자기가 한 일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킨 것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모습을 돌아봤습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다만,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그의 기도였습니다. 그는 차마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도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저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합니다. 그가 가슴을 치며 간절하게 하나님 앞에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것이 세리의 기도였습니다. 여러분, 혹시 이와 같은 기도를 드려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엎드렸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며 짐승처럼 울부짖는 그런 기도 말입니다. 그것은 기도라고도 볼 수 없을 정도의 괴성처럼 들립니다. 그것이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세리의 모습입니다.
2) 예수님의 설명.
여러분, 예수님의 이 비유를 듣고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대체 예수님은 무엇을 말하시는가? 그래서, 과연 누가 의인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을 아시고 예수님이 설명해 주십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세리가 진짜 의인이라고 하십니다.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여러분,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이 비유를 들었습니까? 9절 처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 앞에서도 떳떳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사람이고, 자신들은 예수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항상 예수님을 감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공격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보다 세리가 더 의로운 사람이다! 여러분, 의로움은 누가 정합니까?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의롭다고 해야 의인입니다. 법정에서 범죄자들은 자기들이 모두 죄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억울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죄 없다고 해도, 판사가 유죄 판결을 내리면 죄인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죄 있다고 해도, 판사가 무죄 판결을 내리면 죄 없는 사람입니다. 의로움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의로움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 자신이 율법을 다 지켰기 때문에 스스로 의롭다고 했습니다. 세리는,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은, 세리가 의인이라고 하십니다. 겸손한 마음.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미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미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의로움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진정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여러분, 우리는 처음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본문의 비유는 기도에 대한 것인가 겸손에 대한 것인가?”
이것에 대한 예수님의 답은 이것입니다.
“겸손한 자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다. 기도하는 자는 반드시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바리새인은 기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에게 기도했습니다. 하늘을 보기보다 옆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였습니다. 세리는 얼굴을 들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봅니다. 얼굴을 하늘을 향해 들어야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굴을 땅에 파묻을 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은혜는 주는 쪽이 있고 받는 쪽이 있습니다. 주는 쪽은 은혜를 베푸는 존재요, 높은 존재입니다. 받는 쪽은 은혜를 받는 존재요, 낮은 존재입니다. 물이 낙차가 클수록 큰 힘이 생기는 거서럼, 은혜를 주는 쪽과 받는 쪽의 차이가 클수록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이것을 기억하면, 은혜를 받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를 낮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높이면 높일수록. 그리고 우리를 낮추면 낮출수록 은혜가 커집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우리 수준으로 낮추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처럼 높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은혜가 없고 기도에 눈물이 없고 감동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면 하나님이 낮추시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면 하나님이 높여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3. 결론-우리의 기도는 어떤가?
여러분,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는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보이는 반응이 예배요, 찬양이요,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가 많이 왜곡됩니다.
“하나님, 이거 해주십시오. 저거 해주십시오. 저는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합니다. 교회에 봉사 많이 했으니 기도 들어주십시오. 헌금 했으니 기도 들어주십시오. 저는 범죄자도 아닙니다. 그러니 기도 들어주십시오. 저 사람은 기도 들어주시는데, 왜 제 기도는 안들어주십니까?” “하나님, 저는 주일 오후예배도 나오고, 수요 저녁예배도 나오고, 새벽예배도 나옵니다. 제 기도 들어주십시오. 바쁘다고 주일예배만 나오는 누구누구 집사보다 열심히 주님 섬기지 않습니까?”
어느새 하나님 앞에서 눈물은 사라지고, 당연히 무엇인가 요구하고 따지는 기도를 하는 우리의 모습이 점점 많아집니다. 감사가 사라지고, 형식적인 믿음과 기도로 전락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기도하러 눈 감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던 모습은 사라지고, 화려한 말과 행동, 익숙한 신앙생활은 하지만 영적으로 메말라가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주님은 다시 한번 진정한 기도가 무엇인지 알려주십니다. 겸손하고. 낮은 모습으로. 은혜를 구하며 눈물을 흘리는 기도가 화려한 언변으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믿음이 좋다고 착각하는 기도보다 능력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기도를 14절을 다시 읽으며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진정한 기도를 드리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진정한 기도를 드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