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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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명의 믿음을 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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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배경)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을 열심히 하셨던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다.‌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치심‌시몬의 장모를 고치심‌각종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치심‌나병환자를 고치심. 특별히 오늘 본문은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그 나병환자가 예수님의 소문을 너무 열심히 퍼뜨림으로 예수님이 도저히 동네에 들어올 수 없고, 외진 곳에 지내야 할 정도로 인기가 절정인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이다.‌예수님께서 갈릴리 전 지역을 돌고, 외진 곳에 계시면서 사역을 하시다가 드디어 그의 선교사역을 전초기지인 가버나움으로 들어오게 되었다.‌그러자 예수님이 다시 가버나움에 돌아왔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가버나움 전체로 퍼져 나갔다.‌순식간에 예수님을 만나 그 말씀을 듣고, 치료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예수님이 계신 집 뿐만 아니라 문밖까지도 입추의 여지도 없이 사람들이 가득 찼다.‌그때 네명의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침상채로 데려 와서 예수님의 치유를 받는 사건이다.‌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께로 나갈 수 없었던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그 중풍병자를 데리고 옥상까지 올라간다.‌그리고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는 그 중풍병자를 침상채 누인 채로 지붕에서 예수님 앞까지 내려 보낸다.‌그때 예수님께서 그 중풍병자를 고쳐준 사건이다.‌‌오늘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예수님의 사역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그전에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난 후에는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철저히 숨기길 원하셨다.‌​마가복음 1:44 NKRV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엄중한 말씀을 하셨다.‌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의 방향이 완전히 바꿔진다.‌‌​마가복음 2:10 NKRV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예수님은 당신이 구약의 다니엘서에 예언된 인자임을 당당히 선포하신다. 그리고 그 당시로는 신성모독에 해당되는 죄 사함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그 죄사함의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시겠다고 선포하신다. ‌‌완전히 당신의 사역의 방향을 바꾸신 것이다. 실제로 그 다음 사건을 보면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히 세리인 레위를 제자로 부르고 그 집에 들어가 함께 식사를 나눈다.‌그리고 그것을 비난하는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에게 당당히 선포하신다.‌‌​마가복음 2:17 NKRV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무엇이 예수님의 사역을 바꾸게 하셨을까? 무엇이 예수님의 마음을 그토록 감동시키셨을까?‌본문 5절에 그 키가 있다.‌‌​마가복음 2:5 NKRV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예수님께서 믿음을 보셨다고 말씀하신다.‌보다는 원어로 에이돈으로서 ‌2. 이해하다 ⇔ 보다 — 이해하다, 보는 것으로 이해하여.‌Rick Brannan, ed., Lexham 헬라어 성경 어휘사전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20).‌예수님은 믿음을 보셨다.‌그냥 믿음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오늘 본 사건은 공관복음서에 다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모든 공관복음이 그 표현이 약간은 다른데 똑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는 표현이다.‌그만큼 그들의 믿음이 예수님을 감동시켰고, 그 믿음이 예수님의 사역의 방향을 결정짓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는 것이다.‌도대체 그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기에 예수님의 마음을 그토록 울리게 했을까?‌‌은대1) 주변의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다.‌​마가복음 2:1 NKRV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예수님의 소문은 사람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소문을 들은 한 사람의 마음에 믿음이 생겼다. ‌​로마서 10:17 NKRV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그래 예수님이시라면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있는 한 중풍병자를 떠올렸을 것이다.‌그리고 그 믿음을 다른 친구들에게 고백했을 것이다. 그 고백은 또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고, 결국에는 그 중풍병자에게로 옮겨가 그들은 그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갔을 것이다.‌‌그렇다 믿음은 움직인다. 믿음은 파동력을 가진다.‌불신앙도 파동이 있고‌믿음도 파동이 있다.‌‌​전도서 4:12 NKRV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10명의 정탐꾼들의 불신앙은 순식간에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을 절망으로 몰아갔고‌다윗의 마음에 불붙은 믿음은 순식간에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을 승리의 군사로 세워갔다.‌‌​사도행전 11:24 NKRV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예수님이 보신 것은 바로 이들 다섯명 가운데 흐르고 있는 믿음의 파동이었다.‌혼자서는 쉽게 무너지는 믿음도 서로가 서로에게로 흘러가는 믿음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하게 서서‌예수님께로 한 걸음 한걸음 걸어가게 한다.‌‌은대2) 어떤 장애도 포기하지 않고 뛰어넘는 믿음이다.‌​마가복음 2:4 NKRV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해석) 마음을 모아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네 사람은 곧 장애에 부딪친다. 그 장애는 어떤 환경이나 조건의 장애가 아니었다. 바로 사람의 장애였다. 아무도 이들에게 길을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은혜의 자리인가? 힘들고 어려운 우리들에게 양보도 할 줄 모르고, 자기들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모임이 아닌가? 여기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돌아가자. 발을 돌리는 믿음이 아니었다.‌장애가 있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었다. 이들은 그 상황에서 길을 찾기 시작했다.‌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중풍병자를 침상채 든 채 힘을 합쳐 영차 영차 옥상으로 올라갔다.‌그리고 예수님이 계신 바로 그 위의 지붕을 뜯기 시작했다.‌이게 무슨 미친 짓일까?‌나중에 어떤 비난과 공격을 받을 것인가? 뻔히 드러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그 구멍으로 중풍병자를 침상채 예수님 앞에 달아내렸다.‌ㄱ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을까? 바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었다.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중풍병자를 고칠 수 있는데,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평생을 침대에 누웠던 인생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데, 어찌 포기할 수 있겠는가?‌‌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의 에너지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의 불꽃이다.‌ 풍랑이는 바다 위를 베드로가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셨다.‌그 예수님을 바라 보았을 때, 풍랑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물은 더 이상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도리어 그의 발을 굳건하게 바쳐주는 디딤돌이었다.‌베드로가 뱃전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 때문이었다.‌베드로가 풍랑을 밟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예수님 때문이었다.‌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장애보다 더 크신 능력으로 우리를 이끄신다.‌믿음이라는 줄을 우리에게 던져, 그 줄을 붙잡고 어떤 장애라도 떨치고 일어설 수 있게 하신다.‌‌성예) 예수님을 힘겹게 데려오던 회당장 야이로‌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당신의 딸이 이미 죽었습니다. 더 이상 선생님을 괴롭게 하지 마세요.”‌그때 주저앉는 야이로를 붙잡는 음성이 있었다.‌“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그 예수님의 음성이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 앉을려는 야이로를 일으켰다.‌그 절망적인 상황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었다.‌그래서 이제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워있는 딸의 방으로‌주님과 함께 한 발자국씰 내딛게 하였다.‌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기의 딸을 살리는 예수님의 능력을 목격하는 큰 은혜를 누렸다.‌적대) 예수님만을 바라봅시다.‌‌‌

배경)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을 열심히 하셨던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다.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치심
시몬의 장모를 고치심
각종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치심
나병환자를 고치심. 특별히 오늘 본문은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그 나병환자가 예수님의 소문을 너무 열심히 퍼뜨림으로 예수님이 도저히 동네에 들어올 수 없고, 외진 곳에 지내야 할 정도로 인기가 절정인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전 지역을 돌고, 외진 곳에 계시면서 사역을 하시다가 드디어 그의 선교사역을 전초기지인 가버나움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시 가버나움에 돌아왔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가버나움 전체로 퍼져 나갔다.
순식간에 예수님을 만나 그 말씀을 듣고, 치료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계신 집 뿐만 아니라 문밖까지도 입추의 여지도 없이 사람들이 가득 찼다.
그때 네명의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침상채로 데려 와서 예수님의 치유를 받는 사건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께로 나갈 수 없었던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 중풍병자를 데리고 옥상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는 그 중풍병자를 침상채 누인 채로 지붕에서 예수님 앞까지 내려 보낸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중풍병자를 고쳐준 사건이다.
오늘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예수님의 사역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전에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난 후에는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철저히 숨기길 원하셨다.
마가복음 1:44 NKRV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엄중한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의 방향이 완전히 바꿔진다.
마가복음 2:10 NKRV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예수님은 당신이 구약의 다니엘서에 예언된 인자임을 당당히 선포하신다. 그리고 그 당시로는 신성모독에 해당되는 죄 사함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그 죄사함의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시겠다고 선포하신다.
완전히 당신의 사역의 방향을 바꾸신 것이다. 실제로 그 다음 사건을 보면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히 세리인 레위를 제자로 부르고 그 집에 들어가 함께 식사를 나눈다.
그리고 그것을 비난하는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에게 당당히 선포하신다.
마가복음 2:17 NKRV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무엇이 예수님의 사역을 바꾸게 하셨을까? 무엇이 예수님의 마음을 그토록 감동시키셨을까?
본문 5절에 그 키가 있다.
마가복음 2:5 NKRV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믿음을 보셨다고 말씀하신다.
보다는 원어로 에이돈으로서
2. 이해하다 ⇔ 보다 — 이해하다, 보는 것으로 이해하여.
Rick Brannan, ed., Lexham 헬라어 성경 어휘사전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20).
예수님은 믿음을 보셨다.
그냥 믿음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
오늘 본 사건은 공관복음서에 다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모든 공관복음이 그 표현이 약간은 다른데 똑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는 표현이다.
그만큼 그들의 믿음이 예수님을 감동시켰고, 그 믿음이 예수님의 사역의 방향을 결정짓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기에 예수님의 마음을 그토록 울리게 했을까?

은대1) 주변의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다.

마가복음 2:1 NKRV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예수님의 소문은 사람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소문을 들은 한 사람의 마음에 믿음이 생겼다.
로마서 10:17 NKRV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래 예수님이시라면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있는 한 중풍병자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다른 친구들에게 고백했을 것이다. 그 고백은 또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고, 결국에는 그 중풍병자에게로 옮겨가 그들은 그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갔을 것이다.
그렇다 믿음은 움직인다. 믿음은 파동력을 가진다.
불신앙도 파동이 있고
믿음도 파동이 있다.
전도서 4:12 NKRV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0명의 정탐꾼들의 불신앙은 순식간에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을 절망으로 몰아갔고
다윗의 마음에 불붙은 믿음은 순식간에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을 승리의 군사로 세워갔다.
사도행전 11:24 NKRV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예수님이 보신 것은 바로 이들 다섯명 가운데 흐르고 있는 믿음의 파동이었다.
혼자서는 쉽게 무너지는 믿음도 서로가 서로에게로 흘러가는 믿음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하게 서서
예수님께로 한 걸음 한걸음 걸어가게 한다.

은대2) 어떤 장애도 포기하지 않고 뛰어넘는 믿음이다.

마가복음 2:4 NKRV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해석) 마음을 모아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네 사람은 곧 장애에 부딪친다. 그 장애는 어떤 환경이나 조건의 장애가 아니었다. 바로 사람의 장애였다. 아무도 이들에게 길을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은혜의 자리인가? 힘들고 어려운 우리들에게 양보도 할 줄 모르고, 자기들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모임이 아닌가? 여기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돌아가자. 발을 돌리는 믿음이 아니었다.
장애가 있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었다. 이들은 그 상황에서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중풍병자를 침상채 든 채 힘을 합쳐 영차 영차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예수님이 계신 바로 그 위의 지붕을 뜯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일까?
나중에 어떤 비난과 공격을 받을 것인가? 뻔히 드러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그 구멍으로 중풍병자를 침상채 예수님 앞에 달아내렸다.
고린도전서 2:5 NKRV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을까? 바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었다.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중풍병자를 고칠 수 있는데,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평생을 침대에 누웠던 인생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데, 어찌 포기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의 에너지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의 불꽃이다.
풍랑이는 바다 위를 베드로가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셨다.
그 예수님을 바라 보았을 때, 풍랑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물은 더 이상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도리어 그의 발을 굳건하게 바쳐주는 디딤돌이었다.
베드로가 뱃전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 때문이었다.
베드로가 풍랑을 밟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예수님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장애보다 더 크신 능력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믿음이라는 줄을 우리에게 던져, 그 줄을 붙잡고 어떤 장애라도 떨치고 일어설 수 있게 하신다.
성예) 예수님을 힘겹게 데려오던 회당장 야이로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당신의 딸이 이미 죽었습니다. 더 이상 선생님을 괴롭게 하지 마세요.”
그때 주저앉는 야이로를 붙잡는 음성이 있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 예수님의 음성이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 앉을려는 야이로를 일으켰다.
그 절망적인 상황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래서 이제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워있는 딸의 방으로
주님과 함께 한 발자국씰 내딛게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기의 딸을 살리는 예수님의 능력을 목격하는 큰 은혜를 누렸다.

적대) 예수님만을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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