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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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신대원 학우 여러분,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면 수업에 잘 적응하고 계십니까? 저는 비록 몸은 조금 피곤하지만, 동기들과 얼굴을 맞대고 수업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아쉽기만 합니다. 이렇게 마지막 학기를 즐겁게 보내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저에게는 큰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사역의 문제 때문입니다. 목회를 준비 중인 저에게 현재 한국교회의 현실은 너무 절망적입니다. 통계청 발표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 여의 코로나 기간 동안 문을 닫은 교회는 만여 개에 이릅니다. 같은 기간 150만 명 정도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심지어 지금은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있음에도 30% 정도의 성도들은 계속 비대면 예배를 고수하겠다고 합니다. 이제 사역을 시작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솔직히 말하자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개혁주의생명신학 7대 실천운동 중 첫 번째인 ‘신앙운동’은 우리에게 성경만이 답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그렇습니까? 눈앞의 현실이 이토록 절망적이고, 미래조차 불투명한데 정말로 우리에겐 성경만이 답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인 ‘메롬 물가 전쟁’은 이스라엘이 절대로 패하면 안 되는 전쟁입니다. 만약 이 전쟁에서 패하면 이스라엘은 민족 자체가 사라지게 됩니다. 전쟁에 참여한 군사들은 물론 길갈 진영에 남겨둔 가족들도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갈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의 전망은 매우 어둡습니다. 전쟁을 앞둔 이스라엘의 상황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4절과 5절입니다.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백성이 많아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이 왕들이 모두 모여 나아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가에 함께 진 쳤더라”(수 11:4–5)
이렇게 엄청난 수의 군대가 모인 이유는 가나안 북쪽 왕들의 위기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여리고성과 아이성이 정복당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한 배신자 기브온을 벌하기 위해 모였던 가나안 중남부 왕들의 전멸 소식도 들었습니다. 가나안 북쪽 왕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솔 왕 야빈을 중심으로 서로 연합하고 모든 군대를 소집했습니다. 이렇게 소집된 군대는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았습니다. 말과 병거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들은 메롬 물가에 함께 모여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이스라엘을 멸절시키자고 다짐합니다. 이렇듯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놓인 이스라엘의 현실은 어땠습니까? 민수기는 당시 이스라엘의 전력에 대해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26장 51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된 자가 육십만 천칠백삼십 명이었더라”(민 26:51)
이 숫자는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장정의 숫자입니다. 물론 적지 않은 숫자입니다. 하지만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은 가나안 연합군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문적인 군사훈련도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가나안 군대가 보유한 수많은 병거가 이스라엘 진영에는 단 한대도 없었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의 현실은 너무 절망적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합니다. ‘메롬 물가’에 모인 가나안 연합군의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진영에 삽시간에 두려움이 퍼집니다. 믿음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조차도 이 캄캄한 현실 앞에선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누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한 마디로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 하시니라”(수 11:6)
하나님은 참으로 간단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냥 내일 이맘때에 가나안 연합군을 넘겨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을 쳐서 멸하고,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병거를 불사르면 된다고 하십니다.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이 쉽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군이 가나안 연합군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0%입니다. 군사적 규모로 보나, 무기로 보나, 기세로 보나 이스라엘은 가나안 연합군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여호수아라면 하나님께 따져 물었을 겁니다. 아니 적어도 어떤 방법으로 싸우라고 말씀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다 못해 하늘의 군대라도 보여주셔서 안심시켜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여호수아의 반응이 좀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황당한 말씀을 하시는데도 여호수아는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왜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너무 당황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하는 걸까요? 아니면 하나님께 뭐라고 따져야 할지 생각 중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위기의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첫 번째 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잠잠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대체 무엇을 경험했을까요?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언덕까지 넘실거리던 요단강이 마른 땅이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수 3:17). 그냥 성 주위를 돌다가 소리만 질렀을 뿐인데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수 6:20). 벧호론 비탈길에서 적군에게 쏟아져 내리는 우박을 경험했습니다(수10:11). 믿음으로 명령하니 멈춰 서 버린 해와 달을 경험했습니다(수 10:12-13).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잠잠히 귀를 기울입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의 유일한 답은 하나님의 말씀 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은 너무 절망적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말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문제의 해결은커녕 계란으로 바위를 치라는 명령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기억하는 겁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온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곧 기록된 성경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믿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곧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이자 우리에게 하신 언약(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서 1장 8절입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하나님은 우리 수준에서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렇기에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사역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그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여호수아는 즉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런데 그냥 순종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정말 과격하고 무식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종합니다. 7절입니다.
“이에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 가로 가서 갑자기 습격할 때에”(수 11:7)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마자 전 군사를 이끌고 가나안 연합군을 습격합니다. 병력의 차이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무기의 열세 따위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전술이나 전략도 없습니다. 그냥 이스라엘을 끌고 가서 “메롬 물가”에 모여 있는 가나안 연합군에게 충돌시켜 버립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의 장점이자 강점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우직하게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기브온 전투입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전투에서 위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여호수아서 10장 12-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수 10:12-13a)
해와 달을 보며 멈추라는 여호수아의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순종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문제의 크기나 심각성의 정도가 아닙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신뢰 하는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 하는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셋째,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반드시 승리를 주십니다.
여호수아는 정말 거짓말처럼 승리합니다. 어느 것 하나 우세한 것이 없었음에도 믿을 수 없는 승리를 거둡니다. 단순히 이긴 정도가 아니라 완벽한 승리를 거둡니다. 8절과 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 그들을 격파하고 큰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추격하고 동쪽으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추격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이고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로 살랐더라”(수 11:8-9)
성경은 여호수아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여호와께서 가나안 연합군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반드시 승리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여호수아를 통하여 승리의 공식(formula)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잠잠히 듣습니다. 그리고 들은 말씀을 믿습니다. 믿기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믿고 순종하는 여호수아에게 완벽한 승리를 주십니다
설교를 정리하며 130년 전에 이 땅을 밟았던 아펜셀러 목사님의 기도를 함께 보기 원합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건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가 가득한 이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간절히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드는 목사님의 심정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신대원 학우 여러분, 포스트 코로나로 접어드는 한국교회에 닥칠 어려움은 현실입니다. 수치로 증명되는 절망적인 현실이 우리 앞에 있으며,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어 보이는 불투명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저는 솔직히 두렵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41장 10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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