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우리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다니엘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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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우리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이 세상을 주관하고 계신다. 세상 제국은 모두 사라지고 없어질 것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하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 나라를 하루 하루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의 삶이 중요하다.
[서론]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그림 ‘The scream’’절규’라는 작품을 본 적이 있습니까?
유령처럼 생긴 사람이 손을 귀에 대고 공포에 질려 절규하는 모습입니다.
이 작품은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현대인의 내면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주 우리는 156명의 젊은이들이 한 순간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를 비롯한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울컥 울컥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현대 문명은 나날이 발전해 가지만 여전히 우리는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세상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 뿐입니까?
북한은 날마다 미사일을 쏘아대고, 러시아의 침공은 끝이 없고, 중국은 대만을 침략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고, 기후재앙이 일어나고 있고, 전염병이 끝나지 않고있고, 물가는 치솟으며 세계경제는 불안하기만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이미 뭉크의 그림에 나온 사람처럼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절규하고 있는 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믿는 사람들조차도 이렇게 외치고 싶을지 모릅니다.
‘도대체 우리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그런데 이러한 물음을 일찌이 던졌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전쟁에서 패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수천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전만 있다면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단순히 자신들을 복주시고, 지켜주시는 수호신 정도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열심히 성전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에 패배하였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수치스럽고 비참한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고대전쟁은 신들의 전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패배는 곧 하나님의 패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망했고, 절망에 빠져 절규했습니다.
‘도대체 우리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오늘 말씀은 이런 우리의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고 있을까요?
[본론]
어느날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은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당시 왕의 꿈은 나라의 흥망성쇠와 연관되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매우 중차대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왕은 너무 불안해 어떻게든 그 꿈을 해석하고자 했습니다.
문제는 그 꿈의 내용을 본인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은 꿈을 해석하는 지혜자들에게 꿈의 내용도 알아맞추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꿈의 내용까지는 알아맞출 수 없다고 말하자, 왕은 화가 나서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 때 다니엘이 나타나 왕의 꿈을 알아맞추고 해석해줍니다.
다니엘은 왕의 꿈에 거대한 사람모양의 신상이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32절입니다.
‘그 신상의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쇠이고, 그 무릎 아래는 쇠이고, 발은 일부는 쇠이고, 일부는 진흙이었습니다.’
이 신상은 서로 다른 재료인 네 부분으로 이루어졌고, 이들은 각각 제국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해석들이 있지만 많은 학자들이 금은 바벨론, 은은 메대와 페르시아, 놋쇠는 그리스, 쇠는 로마, 발 아래 쇠와 진흙은 로마가 분열하여 흩어진 나라들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금으로 된 부분만 바벨론이라고 밝히고 있지 그 다음 나라들에 대해서는 명칭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확실히 단정지을 수는 없고, 그것이 핵심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재료들로 신상을 만들어 제국들을 설명했을까요?
그 이유는 번영과 힘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이 이 신상에 잘 녹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금과 은은 화려함과 번영을 상징하고, 놋쇠와 쇠는 무기를 만드는 강력한 힘과 권력을 상징합니다.
인간이 만든 제국들은 모두 이러한 인간의 번영과 힘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제국들의 실체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우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제국들을 인간의 모습을 한 신상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강력한 제국들이 세워지지만 영원히 지속되지 못하고 결국 무너지며 또다시 새로운 제국이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그럼 이 모든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분이 누구일까요?
이것이 도대체 우리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에 대한 성경의 첫번째 대답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모든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37절)
37절입니다.
임금님, 임금님은 왕들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왕이십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임금님께 나라와 권세와 힘과 영광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순금으로 된 우상의 머리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말합니다.
바벨론이 순금으로 표현된 이유는 그 나라의 웅장함과 화려함때문입니다.
그 당시 바벨론은 세계 최강국으로서 광활한 영토와 엄청난 규모의 성을 자랑했고, 고대 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바벨론의 하늘정원’ 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기술로 어떻게 공중 건물에 수로를 대서 큰 정원을 만들었는 지 놀랍기만 합니다.
그만큼 찬란한 문명을 누리고 있던 제국이 바로 바벨론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 모든 것을 왕에게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르둑’이라는 신을 믿는 바벨론 왕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다니엘은 용감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왕에게 그 꿈을 꾸게 하고, 자신이 그 꿈을 해석할 수 있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세운 화려한 제국이지만 그 제국의 운명은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 이런 꿈을 꾸게 하셨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다니엘이 해석하게끔 알려주셨을까요?
지금은 바벨론이라는 제국이 온 세상을 통치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다니엘아, 너희들 유배지에서 힘들지? 내가 아무 것도 안하는 것 같지?
아냐, 나 죽지 않았어, 여전히 이 세상을 내가 통치하고 있단다.”
이렇게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나라의 왕의 꿈을 통해 소망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십시오.
러시아,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은 바벨론 제국과 같습니다.
그들은 힘과 화려함을 자랑하며 더 크고 강한 자신들의 제국을 세우려 합니다.
아프리카, 남미를 가보면 중국과 미국이 서로 여러 나라들을 자신들의 경제 식민지로 만들려 합니다.
제가 남미 온두라스를 가보니 거의 미국 브랜드들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옆나라 니카라과를 가면 중국 자본이 완전히 경제를 잠식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제국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잠시 영광을 주시지만 그들에게 종말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금과 은으로 화려함을 자랑하는 제국이든, 놋쇠와 쇠로 힘을 자랑하는 제국이든 모두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니엘처럼 제국들 사이에 끼어 살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소망을 품어야만 합니다.
도대체 우리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에 대한 성경의 두번째 대답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나를 통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십니다.
34,35절입니다.
또 임금님이 보고 계시는 동안에 아무도 돌을 떠내지 않았는데, 돌 하나가 난데없이 날아들어 와서, 쇠와 진흙으로 된 그 신상의 발을 쳐서 부서뜨렸습니다.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쇠와 은과 금이 다 부서졌으며, 여름 타작 마당의 겨와 같이 바람에 날려 가서 흔적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왕의 꿈속에 나온 신상은 매우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랫부분으로 내려갈수록 구조적으로 약하다는 것입니다.
발가락 부분인 진흙은 매우 부서지기 쉬운 재료입니다.
이 발 부분을 공격하여 신상을 무너뜨린 게 바로 돌멩이 하나입니다.
그 돌멩이는 아무도 떠내지 않은 다듬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크고 대단한 돌이 아니라 가공되지 않은 돌멩이 하나에 의해 신상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화려함과 힘으로 무장한 제국이라는 우상을 무너뜨린 그 돌멩이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작은 돌멩이 하나로 시작하지만 우상을 무너뜨리고 큰 산이 되어 온 땅에 가득찰 것입니다.
제국은 인간들이 세운 것이라면 천국, 즉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세운 것입니다.
제국과 천국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제국과 천국이라는 두 나라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제국에 통치당하면 천국을 누리지 못하고, 천국에 통치당하면 제국이 힘을 쓰지 못합니다.
번영과 힘의 원리가 작동하는 세상이 제국의 통치방식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섬김의 원리가 작동하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 통치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이 바로 돌멩이 하나를 제국에 던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제국의 삶의 방식인 번영과 힘이 전부인양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십자가의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모두들 높아지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가장 낮은 곳에서 죽으셨습니다.
사랑과 섬김의 결정체인 십자가를 통해 온 인류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작은 겨자씨 한 알과 같아 매우 작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겨자씨가 나중에 큰 나무가 되듯 하나님 나라도 작게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밀가루 반죽에 들어가는 누룩과 같습니다.
누룩이 나도 모르게 밀가루를 부풀게 하듯 하나님 나라도 은밀하게 자라나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겨자씨의 비유나 누룩의 비유의 초점은 처음 시작이 작고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 자리에서 사랑과 섬김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갈 때 생명력있는 하나님 나라는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통해 나의 삶 가운데 개입하고 계십니다.
도대체 우리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에 대한 성경의 세번째 대답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47절)
47절입니다.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의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 가운데서 으뜸가는 신이시요, 모든 왕 가운데서 으뜸가는 군주이시다. 그대가 이 비밀을 드러낼 수 있었으니, 과연 그대의 하나님은 비밀을 드러내는 분이시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와 남의 땅에 살아가는 신세지만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은 이방 왕이 그에게 엎드려 절하며 그의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섬기는 마르둑이라는 신이 있는데 포로로 끌려온 패배한 민족의 신을 찬송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심지어 48절에 보면 다니엘에게 귀한 선물과 함께 높은 지위를 줘서 바벨론의 모든 통치자들과 지혜자들의 어른으로 삼아주었습니다.
다니엘을 그만큼 존귀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국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미 시작했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의 고난에 대해 인내할 수 있는 소망을 주는 동시에 이 세상의 불의한 일에 대해 저항할수 있는 용기도 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인류의 역사를 통제하시고 조정하십니다.
순간순간 나팔소리, 북소리가 우리의 마음을 두렵게 만들지만, 또다시 그 소리는 잠잠해지고,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와 바이올린 소리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할 것입니다.
마지막 날 주님이 오실 때에는 모든 소리가 합쳐져 주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뒤돌아서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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