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신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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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성격유형을 16가지로 분류하여 나타내는 검사인 MBTI검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성격유형은 크게 에너지의 방향, 인식기능, 판단기능, 생활양식 또는 업무수행방식으로 나뉩니다.
업무수행방식에는 J성향과 P라는 성향이 있습니다.
J성향은 Judging, 판단형입니다. 이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서 열심히 계획하고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모습들을 보입니다. P성향은 Perceving, 인식형입니다. 이 유형은 J유형과 비교했을 때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상대적으로 자율적이고 융통성이 있게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J와 P성향을 가진 사람이 여행을 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J인 성향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느 숙소에서 잘지 다 계획을 짜서 움직입니다. P인 성향은 그곳에서 즉흥적으로 맞닥뜨리는 상황에 맞추어서 계획을 짭니다. 즉, 무계획이 계획입니다. J인 사람은 P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P인 사람은 J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형이신 것 같습니까? 저는 어떤 유형일 것 같습니까? 저는 P유형입니다. 그리고 저의 곁에는 J유형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J유형의 사람들에게 변명거리로 쓰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잠언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으로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이끄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라는 말씀입니다. 네. 농담입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저희가 한창 MBTI에 대해서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이 모든 이야기를 정리해주시는 한 마디를 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JJJJ형이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Jesus형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 속에서 바울은 선교여행 중에 있습니다. 바울은 P였을까요 J였을까요? 제 생각에 바울은 아마도 J성향이지 않았나 하고 추측해봅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 해당하는데요, 이는 사도행전의 15장부터 18장까지의 분량입니다.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계획이 거부될 때

오늘의 말씀을 함께 따라가 보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제 2차 선교여행중에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던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시아 지역이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 지역에서 큰 부흥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기에 다시금 아시아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다섯 절 안에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는 바울의 전도 이야기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지도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소아시아 지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계획대로 계속해서 아시아로 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그 계획을 막으십니다. 성령님께서 그 계획을 어떻게 막으셨는지 성경은 구체적으로 증언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계속해서 아시아로 가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바울은 계속해서 아시아로 가려고 노력하면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수정합니다. 두 번째 계획을 세웁니다. 무시아에 이르러서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비두니아는 갈라디아 위쪽에 있는 지역입니다. 바울은 그곳으로 가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그곳마저도 예수님의 영, 그러니까 성령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J인 성향이 자신의 계획이 틀어질 때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물어보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스트레스 그 자체인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바울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로 내려갑니다. 드로아는 항구도시입니다. 여러 방향으로 항해가 가능했습니다. 바울은 이 가운데 새롭게 계획을 세워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서 바울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 주십니다. 그 계획은 바울이 마게도냐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성향과 상관없이 각자 자신의 삶에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바울처럼 애를 쓸 것입니다. 오늘은 말씀에 신호등을 빗대어서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고자 합니다.
삶이라는 도로 위에서 우리는 계획이라는 차를 타고 운전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목적지까지 우리의 계획대로 신나게 가고 있는데 성령이라는 신호등이 빨간 불을 띄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고 싶지만, 멈추어야 합니다. 문제는 ‘노란불'일 때입니다. 여러분은 노란 불일 때에 어떻게 하시나요? 애를 쓰고 건너가고자 혹은 속도를 더 내어서 달려가고자 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노란 불일 때에는 속도를 줄이고 멈추어서는 것이 맞습니다. 이 교통법규를 지키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저조차도 운전을 할 때에는 괜스레 속도를 올려서 신호를 통과해보려고 더 애를 쓰게 됩니다.
신호 및 과속 단속장비에 걸리기 딱 좋은 경우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성령님의 빨간 불에는 확실하게 멈추어 섭니다. 우리의 계획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란 불을 띄우실 때는 어떻게든 나의 뜻과 계획대로 진행해보려 노력합니다. 오늘 바울도 그러하였습니다. 바울이 아시아로 그리고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던 이유는 죄를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바울은 노란 불을 보고서 어떻게든 막힌 상황을 뚫어보려 노력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고자하는 길이 또 그 계획이 옳은 것이라 생각할지라도 이상하게 길이 막히거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신호를 주시고 계시는지 볼 수 있어야합니다.
파란 불인 것을 노란 불이나 빨간 불이라 말하며 멈추어 서는 것은 신호위반입니다. 성령님께서 가라고 하는데, 주변 상황과 환경이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선한 양심이 이 일을 하는 것이 맞다고 말하는데 하지 않는 것은 신호를 위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 뜻과 계획에 켜진 신호가 노란 불이나 빨간 불인것 같은데 내 뜻대로 나의 삶을 주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 또한 신호위반입니다. 계속해서 안 되는 일을, 이상하게 안 되는 일을 억지로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전도하려고 했습니다.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 그 길과 방식이 옳은 것 같아 보일지라도 성령님께서 원하시지 않으신다면 바울과 같이 그 계획이 거부되고 또 자꾸만 실패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성령님의 신호등이 무슨 신호인가하고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함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봅니다. 소망하기는 오늘 우리가 우리 안에 답답하더라도 성령의 신호등에 맞추어서 성령님께서 주시는 신호를 잘 보고 또 기다리는 태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길

바울에게는 이제 녹색 신호등이 켜졌습니다. 그런데 그 녹색 신호등은 바울이 처음 생각하고 계획했던 길을 가리키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시아도 아니고 비두니아도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신호등은 쌩뚱맞은 마게도냐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반응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10절입니다.
혹시 ‘우리'에 이상함을 느끼셨다면 이 우리라는 표현은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자신을 바울의 여행에 포함된 사람이었음을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시 바울의 여행에는 바울 뿐만 아니라 디모데와 실라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드로아에서 누가가 합류하며 ‘우리'라는 표현을 썼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바울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인임을 보고 즉시 떠나기로 결정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이 의심없이 즉시 마게도냐로 떠나기로 확정하게 된 계기는 바로 뒷부분에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줄로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상황이 자신들의 계획과는 다르게 인도될 때마다 그 상황에 있어서 이상함을 감지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고민했을 것입니다. 때마침 바울에게는 꿈을 통해 마게도냐라는 길을 보이셨습니다. 아마 바울은 혼자서 결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정하였다는 말 뜻 안에는 함께 고민하다, 연합하다 등의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그의 일행이 열심히 고민한 결과 마게도니아로의 부르심은 그저 단순한 꿈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올바른 부르심임을 인정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리가 어디인지 알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생각했던 경로가 옳은 경로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실히 알았을 때에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고 즉시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따르기로 결단합니다. 바울은 이제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을 맡겨드립니다. 계획이라는 차의 목적지를 나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으로 수정합니다. 바울과 그의 일행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서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마게도냐의 항구, 네압볼리로 떠났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삶 속에서 성령님의 이중적인 인도하심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어느 한 방향에 대해서는 빨간불이나 노란불을, 또 다른 방향에 대해서는 녹색 불을 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녹색 불은 직진일 수도, 좌회전일 수도, 우회전일 수도 있습니다. 소망하기는 우리가 원하는 길과 다르게 흐를 지라도 성령님께서 보여주시는 신호등을 따라서 결정하고 움직이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가야 할 길을,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보여주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순간에 하나님께서 갑자기 우리의 갈 길을 없애시거나 계획없이 유턴, 역주행을 시키시지는 않으시는 분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을 마게도냐로 인도하시는 과정은 결코 불합리하거나 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인 분이셨습니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인도하심을 통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도록 하고 또 인정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목적지까지 다다르기에 직진이 좋은 길이라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계획은 직진이 아니라 좌회전이나 우회전 신호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길이 운전하기 어려운 비포장도로일 때도 있습니다. 또 성령님의 신호등은 멈추고 싶은데 초록 불을, 가고 싶은데 빨간 불이나 노란 불을 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 바울을 기억합시다. 이따금씩 분명히 네비게이션이 내가 아는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리킬 때가 있습니다. 그 길이 목적지까지 다다르는 최적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익숙한 길을 선택하고 그 길로 차를 몰아갑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우리는 후회합니다. 더 오래걸리고 또 돌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하십니다.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그리고 완전한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갖고 우리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하고 우리의 삶을 그의 계획에 맡겨드리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드러나는 하나님의 계획; 빌립보교회가 세워지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자신이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곳, 생각지도 못한 곳에 도착해 있습니다. 계획적인 사람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스트레스인 상황이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일행과 함께 빌립보에 이르렀습니다.
빌립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빌립보서 혹은 빌립보 교회가 떠오릅니다. 또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마게도냐의 첫 번째 성읍, 로마의 총애를 받는 도시였습니다. 바울에게는 이곳까지 온 것이 굉장히 스트레스였을 수 있었겠지만, P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는 이곳에서 벌써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집니다.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은 며칠간 빌립보에서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보통은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었던 모습에 비해서 이번에 바울은 정확한 이유는 찾을 수 없지만 기도처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모인 여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마도 이들은 유대교로 개종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여인들이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 중에는 루디아라고 하는 여인도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염료로 유명한 두아디라에서 옷감을 장사하는 부유한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하나님을 섬기는 여인이었습니다.
바울의 목적지가 어디였는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전도'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들을만 한 자를 준비해주십니다. 사람이 행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은 바울이 전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빌립보에서 이 루디아라는 여자의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바울과의 대화에서 루디아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세례를 받습니다. 그런데 루디아 뿐만 아니라 루디아의 집 전체가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곧 그 가정은 ‘교회'가 됩니다. 여러분 이 교회가 어느 교회인지 추측이 되십니까? 맞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빌립보교회의 시작입니다.
빌립보교회는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에 함께 읽지는 않았지만 바로 다음 구절에 바울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냈을 때에 그 여종의 주인들에 의해서 고발을 당해 감옥에 수감됩니다. 이 때에 실라도 함께 갇히게 되는데 옥에 갇혔을 때에 기도와 찬양함으로 옥문이 열리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옥문을 지키던 간수는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자결하려고 했으나 바울과 실라가 이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그 모든 집안의 사람이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이들 가족이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빌립보교회의 두 번째 가정입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은 이 여종 또한 빌립보 교회의 성도가 되었을 것이라고 거의 확실하게 추측합니다.
빌립보교회는 인종과 신분 그리고 성별 모든 것이 다른 자들이 같은 복음으로 모인 공동체였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말씀의 주제와는 별개로 이 부분에서 복음의 능력을 옅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것이 다른 우리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연합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습과 또 상황 나이가 모두 다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으로 부르셨습니다. 저는 감히 이 복음이 우리와 이 시대의 소망이요 또 그리스도인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사회가 분열되고 또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기 바쁜 오늘날, 복음을 소유한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연합의 능력, 하나됨의 능력을 보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소망하기는 우리 동서울 광염교회의 귀한 성도 여러분들이 먼저 이 하나됨의 능력을 보임으로 말미암아서 교회와 가정 그리고 각자의 속한 자리에서 복음을 누리며 또 전하는 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서, 녹색 불을 따라 달려간 바울에게 초점을 맞추어보겠습니다. 바울은 생각지도 못하게, 예정과 계획에도 없던 빌립보에서,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만나게 되었고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바울에게 있어서 굉장히 특별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의 마음을 만나볼 수 있는데, 빌립보서의 1장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너희가 내 마음에 있다고 표현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 되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계획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우리를 맡겨드릴 때에 때로 우리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또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환경 속을 걸어가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곳은 보통은 넓다기 보다는 좁으며 편하기보다는 불편합니다. 그 길을 가다보면 가끔은 상상하지 못한, 계획에 없는 고난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길이 맞나 싶을정도로 비포장 도로가 이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길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녹색 불이 켜진 길임을 확증하고 인정하였다면 오늘의 말씀을 의지하여 그 길을 계속해서 달려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하여 드립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오늘 바울과 그의 일행이 느꼈던 것처럼 하나님의 계획을 보고 듣고 또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희 교회를 보시겠습니까? 저는 저희 교회가 성령님의 교통법규를 잘 준수하며 또 계획을 하나님께 맡긴 교회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동일한 고백이십니까? 아멘. 하나님께서 그러한 저희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가시고 계십니까? 발걸음을 멈추지 않도록 하십니다. 비록 저희가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방향과 방식대로 이 교회를 이끌어가십니다. 저는 모든 순간순간들 마다 동서울 광염교회를 통하여서 교회는 사람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느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생각만큼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지는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모이기 어려운 힘든 상황 가운데에서도 모일 수 있도록 하시고, 놀랍게도 복음을 들을 존귀한 지체들을 꾸준히 예비하시고 보내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생각과 계획만큼 주일학교를 부흥시켜주시지 않았습니다만, 꾸준히 학생부의 아이들이 날마다 신앙으로 성숙해져 가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놀랍게도 가장 어린 윤성이의 입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의가 전가될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고백을 제 귀로 듣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생각과 계획만큼 교회에 재정을 허락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만큼 지역사회에서 구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교회로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저희 교회의 목표인 30%를 구제, 선교, 장학의 비율에 지출하는 교회로 만들어가셨습니다. 할렐루야.
저희 교회가 계속해서 성령님의 교통법규를 잘 지키며, 계획을 사람에게 맞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그리스도의 교회로, 그리스도를 향해 자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려 애썼지만 성령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드로아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마게도냐에 있는 것임을 인정하고 즉시 그 길로 가기로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루디아와 여종 그리고 간수를 예비하셨고 이를 통해서 빌립보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 속의 바울과 같이 각자 저마다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하지만 우리의 계획은 하나님의 계획과 맞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그 일의 목적이 하나님을 향한 것일 지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그 때에 우리 안에 내주 교통하시는 성령님께서 선한 양심으로, 말씀으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묵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교통신호와 하나님의 네비게이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의 삶에 그리고 교회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계획을 보고 듣고 또 느끼는 은혜를 누리는 동서울 광염교회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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