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06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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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 땅
열매맺는 땅
중등부 친구들~ 다들 한주 잘 보냈나요? 오늘도 함께 예배로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도 함께 말씀을 나눌텐데요, 딴짓하거나 잡답하거나 하지 말고, 지금은 주님께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니까, 말씀에 집중해서 오늘은 대체 어떤 말씀을 우리에게 주실지를 잘 듣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로서 11월이 되었습니다. 이제 2022년도 두달만을 남겨놓고 있는 것이죠. 우리 친구들 한 해를 돌아보면 어떤가요? 올해 초에 가졌던 다짐들이나 목표들을 잘 이뤄가고 있나요?
아마 그 다짐들 중에는 성적 향상을 목표로 둔 친구들도 있을거에요. 어떤가요? 좀 성적이 올라갔나요? 올라갔다면 너무 좋지만, 사실 그것은 쉽지만은 않죠.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어떨까요? 우리는 매번 삶을 살아가면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다가, 주일에 교회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잘못 살았구나 하고 회개하게 되죠. 그리고 다시 삶으로 돌아가면 똑같은 모습을 반복합니다.
그러다가 겨울이나 여름을 맞이하면서 수련회 때가 되면 또 다시 내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회개하고, 이제는 정말 주님께로 돌아갈거야! 라고 말하지만, 한달만 지나면 다시 돌아오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나는 신앙의 성장을 이뤄낼 수가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주님 앞에 죄송한 마음만 있게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함께 생각해봅시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란 불가능한 것일까요? 그냥 우리는 매번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그런 고민과 질문들을 가진 친구들을 위해 예수님은 오늘 비유의 말씀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바로 그 유명한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 즉 씨뿌리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우리 함께 이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 신앙의 성장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주실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무리들에게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나와서 열매를 얻기 위해 씨를 뿌립니다. 이렇게 확 뿌리니 어떤 씨는 길에 떨어지고, 어떤 씨는 바위에 떨어지고, 어떤 씨는 가시떨기 속으로 떨어지고,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집니다.
당연히 그 씨들은 동일한 결과를 보이진 않았겠죠?
가장 먼저 길에 뿌린 씨앗은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있다가 새에게 쪼아먹히게 됩니다.
친구들 우리가 산을 걷다 보면 여러가지 길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서는 사람이 관광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길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다니는 발을 통해 만들어진 길도 있죠. 그 길을 자세히 보면 다른 지역의 땅에 비해 표면이 딴딴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계속 그 땅을 밟으며 다녔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겠죠. 그러다보니 오늘 말씀에 나온 것처럼 씨가 흙 속에 파묻히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딱 드러나게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다른 새들에 의해 먹히게 되겠죠.
그렇다면 다음으로 바위에 떨어진 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피어날 수 있었을까요? 한번 예측해보면 어떨까요? 길 위랑 비슷할 것 같죠. 그럼 사진 한번 보여주시겠어요?
화질이 좋지는 않은데, 사진을 보면 어떤가요? 바위 위에도 잘만 하면 이렇게 나무가 자라기도 합니다.
이런 것처럼 이 씨앗도 바위 위에서 싹이 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씨앗은 저 나무랑은 다르게 물을 공급받지를 못해 금방 마르게 됩니다.
다음으로 또 어떤 씨앗은 가시떨기 위로 떨어집니다. 이 씨앗은 흙도 부드럽게 있고, 물도 공급을 받아서 조금 자라게 됩니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가시 때문에 크게 자라지는 못하게 되죠.
마지막 씨앗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좋은 땅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씨앗의 백배나 되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친히 그 뜻을 설명해주십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씨 뿌리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수님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뿌려지는 땅들은 말씀을 듣는 자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마귀는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말씀의 씨앗을 사람들로부터 뺏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럼 가장 먼저, 길가와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길 가와 같은 사람은 말씀을 처음에는 듣지만 금세 마귀가 새처럼 그들의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예시를 들자면, 오늘 이 자리에 와서 말씀을 들어도 게임, 유튜브 같은 다른 생각들이 가득차서 말씀을 온전히 듣지 못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바위의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요? 이들은 처음에 말씀을 너무 잘 받아들이지만, 믿음으로 인해 시련이 찾아올 때 바로 말씀을 버리는 이들입니다.
무거운 짐진자 나아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와 같은 말씀을 듣고 감동해서 교회를 나오는데, 오히려 교회를 다녀서 어려움들이 생기게 되니까 바로 교회를 떠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시떨기는 어떤 경우일까요? 바로 말씀을 듣고 잘 지내다가 세상에서 생기는 걱정들, 혹은 재물들의 유혹에 넘어가버리고 마는 자들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도 학교 성적 때문에 걱정하거나, 혹은 가수 콘서트를 가려고 교회를 가지는 않는 경우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지막 좋은 땅은 어떤 사람일까요? 모두가 잘 알듯이 말씀을 잘 듣고 믿으며 그대로 실천하여서 믿음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바로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때요 친구들, 예시가 잘 맞나요? 그렇다면야 감사한 일이지만, 아마 우리 친구들 마음 한편에서는 아 나는 길가네, 아 나는 바위네 이런 생각들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 그렇다면 오늘 이 씨뿌리는 비유의 말씀을 듣고 우리는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
길가와 같은 우리의 마음을, 혹은 바위와 같은 우리의 마음을 열심히 단련하여서 좋은 땅과 같이 바꾸어나가요! 이런 결론으로 다들 생각하게 될거에요.
하지만 우리의 결론은 이것이 아닙니다. 왜일까요? 우리의 노력으로는 그러한 것들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받고 열매맺어 결실을 맺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구원을 받고 주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열심히 노력만 하면 구원을 못받던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죠.
왜냐하면 구원은 이미 창세전에 주님의 택하심을 따라 모두 정해져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좋은 땅의 사람들은 이미 정해져있다는 것이죠.
어 그러면 제가 늘 보이는 모습은 좋은 땅의 모습이 아닌데, 그럼 전 이미 글렀다는 것일까요?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인가요?
자.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우리는 여기서 이 두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아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자 친구들, 이 두 구절을 보면서 뭔가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나요? 앞의 로마서는 우리 지난주 본문이었죠?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야고보서 말씀은 어떤가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즉 행함이 없다면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것을 보면 마치 두 말씀이 충돌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것은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
이 두 말씀은 사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의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믿음만을 가지고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서의 말씀은 뭘까요? 이것은 행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행함이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믿음으로 우리가 완전하게 구원을 얻는다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이끄신다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해서 칼로 자르듯 갑자기 사람이 성경대로만 살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거룩하게 되어간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려운 말로 성화라고 하죠.
자, 그렇다면 다시 오늘 말씀으로 돌아와볼게요. 분명 좋은 밭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좋은 밭의 모습과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물론 그렇게 보일 수는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이 택하시고 구원하신 이들은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밭의 모습으로 변화하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말씀을 통해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는 그런 훌륭한 주님의 자녀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친구들, 나 스스로의 모습이 길가와 같다고, 혹은 바위와 같다고 생각해서 절망하거나 포기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에 좋은 밭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음일 것이고, 그 사람은 분명 결국에는 너무나도 좋은 밭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할게요. 오늘 예수님이 주신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좋은 밭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전도사님이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신앙의 성장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했었는데요, 주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스스로가 마치 매번 변화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가망이 없는 이들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좋은 밭이 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분명 좋은 밭으로 나아가는 신앙의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은 지금처럼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 실패하고 그 안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계속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성공하고 승리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몇주 전에 이야기했던 성도의 견인, 우리를 세상끝까지 인내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친구들이 이것을 기억하고, 우리를 좋은 밭으로 만드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좋은 밭의 모습으로 주님과 함께 나아가는 우리 중등부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함께할 찬양은 전심으로 입니다.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고백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좋은 밭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은혜를 바라보았습니다. 주님, 우리는 아직도 부족하고, 매번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셨음을 믿고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우리를 좋은 밭의 모습으로 인도하여주셔서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통해서 열매맺는 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합니다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