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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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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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gust
0UNLIKELY
Fear
0UNLIKELY
Joy
0UNLIKELY
Sadness
0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29UNLIKELY
Conscientiousness
0.27UNLIKELY
Extraversion
0.54LIKELY
Agreeableness
0.6LIKELY
Emotional Range
0.29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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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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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여러분에게도 이렇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던 날이 분명 있을거에요.
어제도 기도하며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났을거구요.
오늘 저는 우리처럼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나누려고 해요.
인생이 송두리째 바꿔버린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해요.
한 남자가 있어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남자에요.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오늘 일을 열심히 해야, 성과를 내야 가족이 먹을 음식을 살 수가 있어요.
그는 이 일을 잘하고 싶었어요.
대대로 해왔던 일이긴 하지만,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내일과 미래를 만들어서 자녀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신이 일하는 그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고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인지 늘 성과가 좋았어요.
노력한만큼 꽤 괜찮은 결과가 그에게 돌아왔고, 그는 그 결과를 통해 삶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이었어요.
그 날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어요.
똑같은 날이었어요.
평소와 같이 날씨를 확인하고 물길의 변화를 보며, 자신의 일터이자, 가장 잘 알고 자신 있는 장소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일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날 따라 소득이 없어요.
자신이 공부해왔고 터득해왔던 데로라면, 소득이 있어야 해요.
그날 따라 뭐가 바뀌고 변하고 그런게 아니에요.
똑같이 평범한 날이에요.
그런데 아무 것도 얻지 못했어요.
그렇게 밤을 새고 돌아왔어요.
그리고 전날 밤을 복기하며 배에서 그물을 꺼내 씻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복기해도 이해할 수가 없는거에요.
집안 대대로 해왔던 이 일. 그리고 집 안에서 내려오는 고기가 잡힐 수밖에 없는 그 포인트에요.
잡히지 않을리가 없어요.
무조건 고기가 잡혀야 하는데 한마리도 잡지 못했어요.
허탕을 친 오늘 집에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또 어떤 음식을 사가야 할지 돈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답답한 마음으로 그물을 씻고 있던 그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요.
“배를 잠시 빌려달라”
지금 이 사람의 심경은 상당히 복잡해요.
고기가 잡히지 않은 이유를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야 오늘 밤에도 허탕을 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려면 어서 그물을 정리하고 들어가야 해요.
여러 생각으로 분주한 그에게 “배를 빌려달라”고 이야기해요.
배를 빌려주지 않아도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그가 자신의 배를 기꺼이 내주어요.
배는 이 남자에게 있어 삶의 터전이자 정체성이에요.
함부로 내어줄 수 없어요.
그가 살아갈, 가족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완전 필수품이에요.
그런 그가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배를, 빨리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하는 그 순간에도 그 사람에게 내어주었어요.
배를 내어준 것은 단순히 빌려준 것을 의미하지 않아요.
그는 이 사건을 통해 배를 포기하게 되거든요.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던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뀌는 일을 경험하게 되거든요.
마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것처럼, 그의 인생도 배를 손에서 놓으면서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예수님은 말씀을 같이 듣고 있던 배의 주인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세요.
예수님께서 배에서 어떤 말씀을 나누셨는지 정확하게 알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 말씀을 듣고 그의 마음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말씀을 듣고 육지와 조금 떨어져있던 배를 몰아 깊은 곳으로 가기 시작해요.
저희 아버지가 한 때 낚시티비에서 특집 촬영을 하자고 할 만큼 나름 유명한 분이었어요.
낚시대회 나가서 우승하고 상금 타고 하셨어요.
어느 날인가 집에 모르는 아저씨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물고기 잡는 방법에 대해 아버지에게 배우겠다고 오신거죠.
화이트보드를 가져다 놓고 그 앞에서 열강을 하시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정말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사람들이 고기 잡는데 고수가 되어 갔어요.
저희 아버지는 좋은 낚시대가 없었어요.
진짜 저렴한 낚시대 하나를 딱 들고가서 물고기를 정말 많이 잡아왔어요.
저 어렸을 때 화장실 욕조에 물고기가 살았어요.
아이스크림 먹으려고 냉동고 열면 붕어가 우수수 떨어졌어요.
그만큼 프로였어요.
그런 프로에게 누군가가 가서 “너 잘못했어.
그렇게 잡는게 아니야!”라고 하면 말을 들을까요?
안 듣겠죠.
자신만의 노하우와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사람에게, 이런 말은 큰 실례가 되는거죠.
특히 낚시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면 기분이 나쁠거에요.
이 배의 주인은 프로에요.
프로 낚시꾼이에요.
그 누구보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요.
딱봐도 물고기를 잡아본 적 없는, 그물을 던져 본 적 없어 보이는 사람이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해요.
그럼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웃고 넘길거에요.
“지금은 물고기가 잡히는 시간도 아니고, 깊은데는 물고기가 없어요” 라고 하면서 넘겼을거에요.
또 하필 그날은 하루 종일 그물을 던졌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날이잖아요.
이 사람은 재미로 취미생활로 낚시를 하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대대로 가업으로 받아 해왔던 사람이란 말이죠.
허탕을 친 불편한 마음을 간신히 추스리면서 겨우 그물을 씻고 정리하고 있었어요.
불편해 죽겠는데도 배까지 빌려 줬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가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래요.
솔직히 선 넘는거 아닌가요?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전문가도 아니잖아요.
당연히 무시해도 되는 그 때 그가 이렇게 말을 해요.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 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내가 그물을 던지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가겠습니다.”
실패를 경험하다
이 남자는 누구일까요?
예수님께 배를 빌려 드리고, 그 말씀에 의지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믿음으로 그물을 던졌던 그 남자.
누구일까요?
맞아요.
베드로에요.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가셨어요.
말씀에 관심도 없었던 사람이었어요.
그저 하루를 살아내기에 급급했던 사람.
어부 외에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 없는 그를 직접 찾아가셨어요.
그리고 그에게 살아가야하는 희망과 소망을 주셨어요.
그 부르심에 응답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마음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물론 계속해서 실수하고 넘어지고 잘못도 했지만 그는 예수님의 마음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더 이상 세상의 가치로 살아가지 않기로 결정했거든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베드로는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것” “만선이 꿈인 어부”였어요.
그의 삶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가치는 돈. 물질이었어요.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삶의 방향과 가장 중요한 가치는 말씀이 되었어요.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라.” “에라이 밑져야 본전이니까 던져는 본다.”가 아니었어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 그물을 던집니다.”
이 순간부터 그의 삶의 가치는 말씀이 된거에요.
평생 만선이 꿈이었지만 만선의 기쁨을 누려본 적 없던 그가, 물질을 포기하고 말씀을 의지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랬더니 평생의 꿈이었던 만선을 보게 되었어요.
그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알고보니까 예수님 타짜였네!!”라고 생각했을까요?
절대 아니죠.
그저 선생님이었던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었어요.
그가 바짝 엎드려 “나를 떠나달라고.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해요.
이게 상식적으로 맞는 대화에요?
그의 평생의 꿈 만선을 지금 경험 했잖아요.
“감사합니다!
허탕 친 줄 알았는데, 다행히 물고기를 팔아 우리 가족을 먹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고기 팔고 얻은 돈의 얼마를 감사하니까 드릴게요!” 라고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에요?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향해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제발 떠나주십시오”라 말했
어요.
왜 그는 이런 고백을 했던 것일까요.
예수님 앞에 서니까,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니까요.
자신이 중요하다 여겨왔던 모든 세상과 그 물질의 가치가 형편없어 보였던 거에요.
베드로는 배 위에 있으면, 배만 있으면, 비록 넉넉하지는 않아도 자신의 힘으로 가정을 먹여 살리고 나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가치관 속에 살았던 사람이에요.
그랬던 베드로가 전날 밤 큰 실패를 경험했어요.
그 실패를 만회할 어떤 방법도 돌파구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성공을 했어요.
자신의 생각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그 일이 가능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어요.
그 때 그는 깨달은거에요.
이 일이 가능한 분은 한 분밖에 없다.
바로 메시야.
그리스도.
예수님은 그에게 이제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하라 말씀하세요.
배 위에서 내려오라.
배에서 내려와서 땅에 서 걸으라.
그리고 사람을 취하라.
이제부터 너의 삶의 목적은 물고기.
세상의 가치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세요.
배는 베드로의 삶의 터전이자 정체성이에요.
배는 베드로의 전부에요.
그런 그에게 배를 포기 하라고 하시는 것이죠.
여러분을 여러분되게 만드는,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학교? 직장? 직함?
무엇이 여러분을 여러분되게 만들어가고 있나요?
세상이 원하고 말하는데로 최선을 다해 사는 것도 중요해요.
하지만 그렇게 세상의 가치를 붙잡고 나를 만들어간다면요.
세상이 바라는 인간의 삶을 살아가게 될 뿐이에요.
내 삶을 지켜주는 것을 계속해서 붙들고 고집 부리면서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 나도 상처를 받게 될거에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될거에요.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 그 분이 나의 삶의 정체성이자 이유라 말하는 그 사람은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될거에요.
베드로가 배를 버리고 따랐어요.
하지만 언제든 그는 다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그랬던 그에게 정말 그 배를 포기하게 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요.
예수님께서 홀로 기도하기 위해 먼저 제자들을 배에 태워 보내세요.
그 배에는 프로 배잡이들이 가득했어요.
그렇게 배를 타고 건너가는데 갑자기 거센 풍랑이 들이치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혹시 배 타 본 적 있나요?
제가 필리핀 있을 때 생각을 하거나 쉬고 싶을 때 항상 가던 섬이 있었어요.
그 섬에 들어가려면 작은 배를 타야 하는데요.
이 배는 작은 파도는 버틸 수 있지만 바람이 좀 거세게 불면 막 흔들리는 배였어요.
어느 날 배를 타고 들어가는데 선원들의 표정이 좋지 않은거에요.
창문 없이 비닐을 돌돌 말아놨던 배였는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기 시작하니까 비닐을 내리고 찍찍이를 붙여서 고정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비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요.
저는 배멀미를 해본 적이 없는데요.
진짜 속이 너무 울렁거리는거에요.
계속 헛구역질 나오고 머리가 아프고, 빨리 섬에 도착 했으면 좋겠는데 맞바람을 맞으니까 너무 더디게 나가는거에요.
배에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비닐로 막았지만, 바람과 비, 그리고 파도는 그대로 다 들어왔고 결국 온몸이 다 젖은체로 진짜 기절하기 직전에 섬에 도착을 했었어요.
지금 제자들이 만난 풍랑은요.
제가 경험한 것과 차원이 달랐어요.
왜냐하면 프로 배잡이들 조차 키를 붙들지 못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배를 운전하지 못했거든요.
그렇게 “다 죽는다!”라고 외치면서 고군분투하던 그들에게 누군가 쓰윽 찾아오죠.
처음엔 귀신인 줄 알고, 온갖 소리를 다 질렀는데 알고보니 예수님이었죠.
물 위를 걸어오는 분을 보고 베드로가 외쳐요.
“저도 물 위를 걷고 싶습니다!”
질문! 풍랑이 칠 때 바다 위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는 어디일까요?
“파도가 치는 바다” “배 안”.
당연히 배 안 이죠.
비바람이랑 파도가 치는데 어딜 가요.
배 안에 있어야지.
그런데 지금 베드로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거에요.
“저도 물 위를 걷고 싶습니다!”
이 말은 “나도 물 위를 걸어 볼래요.
나도 나도 해볼래요.”
이게 아니에요.
비록 비바람이 치고 미친 듯한 파도가 몰려오는 바다 한가운데이지만,
가장 안전한 곳은 이 곳 배 안이 아니라 당신이 있는 그 곳입니다.
라는 베드로의 고백이에요.
“물 위를 걸어 당신에게 가고 싶습니다.”
“물 위를 걸어 가장 안전한 당신의 품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예수님만 바라보고 물 위로 뛰어 들었어요.
그런데 진짜 걷게 된거에요.
얼마 걷다 물에 빠졌지만 베드로는 이때 진짜 배를 포기하게 되었어요.
배를 진짜 포기하고 나를 위협하는 세상 속으로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고 뛰어들면서 손에 쥐었던 세상의 가치를 집어 던졌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원하나요?
그럼 배 위에서 내려와야 해요.
여러분이 편안하다 여기는, 나에게 익숙한 그 자리에서 반드시 내려와야 해요.
배를 장식하던, 여러분의 인생을 장식하던데 사용하던 에너지를 이제는 그 곳에서 내리는데 사용해야 할 때에요.
배에서 나와 물 위를 걷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인만 가능해요.
흘러가는데로 살지 마요.
하루 하루 의미 없이 보내지 마세요.
의미 없이 보내게 하는 그 삶에 자리에서 나오세요.
배 밖이 위험해 보여도 나오세요 이불 밖이 위험하긴 해요.
이불 안이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긴 해요.
그렇다고 계속 이불 안에 있을 수 없잖아요.
이불 안에만 있으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잖아요.
생활을 하려면 싫더라도 이불을 박차고 나와야 하듯, 배 밖이 위험해 보여도 나오세요.
그래야 물 위를 걸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삶을 실제로.
진짜로 경험할 수 있게 돼요.
내려와야 보인다
우리 말씀을 한번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마태복음 16장 18절이에요.
우리 함께 읽어 볼까요?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에서 말하는 음부의 권세는 다른 말로 지옥문이에요.
다시 읽어보면 “지옥문은 교회를 절대 이길 수 없다.”
이건 엄청난 약속이에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지옥문의 뜻은요.
다음과 같아요.
원래 성문은 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용도잖아요.
누군가 공격을 한다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기려고 싸우겠지만, 덤벼드는 상대가 강하면 강할 수록 그 안에서 두려워하며 소심해지고 방어만을 할거에요.
생존에 급급한 방어를 하겠죠.
간신히 하루를 살아내며 두려움과 절망 속에 빠질거에요.
“지옥문은 교회를 이길 수 없다.” 성문을 들고 공격하는 사람은 없죠.
마귀가 그 지옥문을 들고 우리를 공격하진 않을거에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어요.
“지옥문이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나를 둘러싼 세상의 공격과 위협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나의 삶. 나의 발걸음을 막지 못한다” X2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이번 한주 여러분에게 가장 익숙한 것 그리고 하나님보다 더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 것이 있었다면 그 것을 놓을 수 있기를 소망해요.
여러분을 안정적으로 지켜주고 있던 그 배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보입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세상 그리고 마귀는
가장 안전한 장소인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걷기를 소망하는 사람을 저와 여러분을 더 이상 위협할 수 없어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결단한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여호와의 그 은혜가 충만하기를 소망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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