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많이 걱정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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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친 이적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솔로몬의 행각에 모였습니다. 당시 솔로몬 성전 안에 있던 행각은 대중 집회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큰 회랑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요. 이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숫자가 남자만 오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예루살렘 성안에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죠.
이에 악한 마귀가 이를 가만히 둘리가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부흥이 있는 곳에는 동시에 악한 영의 역사도 있지 않습니까? 사도행전 4장 1~3절을 보면 당시에 권력을 가지고 있던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부활의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싫어해서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서 다음날까지 감금을 시키는 일이 일어납니다.
당시에 이 사두개인들은 왕족이거나 귀족 같은 상류층의 사람들이었는데요. 이들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이 갇히게 되었고 다음 날 산헤드린 공회가 소집되었습니다.
여러분, 산헤드린 공의회라면 당시에 최고 권위를 가진 재판기관 아닙니까? 그 유명한 대제사장 안나스와 그의 사위였던 가야바를 포함한 이 산헤드린 공의회는 바로 얼마 전에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다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었거든요. 그 일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이 사람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권력을 가진 이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가운데 세우고 취조를 하는 겁니다. 그 내용이 4장 7절과 10절의 내용이죠. 7절 말씀을 보시죠. [자막]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이어서 10절을 보니 이때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담대히 증거합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최고의 권력자들 앞에서 그들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임을 담대히 밝혔던 것이죠. 여러분 이것은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어떤 사람이었어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헤드린 공의회 앞마당에서 바들바들 떨었던 사람이잖아요? 예수님이 심문을 받으실 때 저 멀리서만 바라보았고 한 여종의 추궁에 무너져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베드로가 지금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배신했던 그 장소 앞에서 이번에는 정반대로 담대하게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요. 이렇게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기에 세상이 두렵지 않고 마귀가 두렵지 않은 것, 이게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라, 염려와 걱정입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바로 이 장소에서 벌벌 떨기만 했던 베드로가 어떻게 저렇게 담대할 수 있을까요? 산헤드린의 권력자들이 당황했을 것 같지 않으세요? 심지어 자신들이 죽인 ‘예수’의 이름을 언급하며 담대히 그분의 부활 소식을 전하고 있으니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이것은 그냥 교육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베드로라는 무식한 어부 출신 지도자의 허풍이 아니었습니다. 남자만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고요.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병자가 일어난 것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14절을 보니까요. 지도자인 자신들도 성전을 드나들며 그 병자를 보았기 때문에 앉은뱅이가 일어난 일을 부인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죠.
자, 이 무시무시한 권력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어떻게 할까?’ 흥미진진하지 않으세요? 18절을 보세요. “예수의 이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지도 말라”고 위협합니다. 이에 베드로와 요한이 참 유명한 대답을 합니다. 19절과 20절입니다.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베드로와 요한의 이 고백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처벌할 명분을 찾지 못해 그들을 풀어주게 되죠. 그리고 공회 앞에서 풀려난 두 사도는 교회 공동체로 돌아오게 됩니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한참 설교를 들었는데, 지금 설교를 시작하겠다고 하면 언제 끝내겠다는 건지… 부임 첫날부터 오바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오늘 본문 24절을 보니까요. 사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기도의 내용이 심상치가 않아요. ‘우리가 죽게 되었으니 이 위협적인 상황에서 구원하소서’ 이런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받게 되는 고난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피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26절 [자막]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9절을 보니까 이들은 오히려 기도의 초점을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라고 합니다. 자신들을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으니 진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가 올려지니까 땅이 진동할 정도로 하나님의 임재가 강력해졌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이렇게 정해봤습니다. [PPT] <기도많이 걱정조금> 사실 이 제목은, 도나 말티즈의 「기도 많이 걱정 조금」라는 동명의 책 제목입니다. 이 책은 근심 걱정이 찾아올 때 힘이 되는 181가지의 말씀 묵상을 따라 기도할 것을 권면하는 책인데요. 우리에게는 모양을 바꿔가며 찾아오는 크고 작은 근심과 걱정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 책은 우리가 걱정을 이기는 길, 걱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은, 걱정을 끊어 내는 것이 아니라, 걱정의 순간, 불안과 염려 앞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초대교회가 처한 위험 가운데 걱정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믿는 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처럼 두려움이 없고 염려와 근심이 없어야 하는데, 사실 우리의 삶이 그러질 못하잖아요?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니까 “아멘!”으로 화답을 합니다. 주일 날 설교를 들으면 ‘그래! 그렇게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지!’ ‘덜 걱정하고 더 기도하자!’ 하는데 다음 날이 되면 그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려요. ‘왜 그럴까?’를 생각해 봤거든요. 우리가 사실 믿음이 없는 게 아닙니다. 평생 예수님을 믿으며 살아오신 분들도 많은데, 믿음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믿음은 있지만, 때로는 염려가 더 많은 거예요.
<페이지처치>라는 책에 ‘걱정을 없애는 기도’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걱정을 없애는 방법은 걱정을 맡기는 것이다. 걱정의 크기는 하나님께 안 맡긴 만큼이다. 걱정을 다 맡기고 해야 할 것을 하면 된다. 어떻게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아버지 하나님, 앞날의 걱정을 아버지께 맡깁니다. 라고 기도하자. 고민할 시간에 기도하자, 궁금할 시간에 순종하자, 걱정할 시간에 행동하자.
참, 공감이 되지 않으세요? 여러분, 걱정을 없애는 방법은요. 걱정을 맡기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고민할 시간에 기도하라는 거예요. 지금 예루살렘 공동체의 모습을 보십시오. 이들에게는 엄청난 염려거리가 생겼습니다. 염려가 생기자마자 이들이 했던 것은 뭐예요? 누구라도 할 것 없이 솔로몬의 행각에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기도가 습관이 되어 있고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누가 나서서 기도하자고 하지 않아도 모여서 체포된 사도들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 비추어서 우리가 걱정을 조금하고 기도를 많이 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지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자!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걱정은 줄이고 기도를 많이 할 수 있을까요?
걱정 조금 기도 많이 할 수 있는 첫 번째 비결은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기도를 해야 합니다. (23~24b)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여러분, 이들이 언제 기도를 했는지를 보세요. 사도들이 감옥에 붙잡혀 갔습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로마와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들을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풀려났어요. 그렇게 풀려나자마자 처음 한 일이 뭐예요? 기도했습니다. “사도들이 놓이매”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보통 언제 기도합니까?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닥치면 기도하게 되죠. 문제가 생겼을 때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세요. 사도들이 풀려나서 공동체에 안전하게 돌아갔어요. 어떤 면에선 급한 문제가 해결된 거죠. 그러면 찬양을 하거나 먹고 마셔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걱정이 생겼을 때도 기도를 했지만, 그 걱정이 해결되고 문제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걱정을 줄이고 기도를 많이 하는 첫 번째 비결은 문제가 생겼을 때만 기도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꾸준한 기도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위시한 초대교회 교인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걱정이 있을 때도 기도를 했지만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도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왜냐하면 이번으로 끝날 박해가 아니었거든요.
여러분들에게 닥쳐오는 불같은 시험들도 일생에 단 한 번이라면 잠깐의 기도로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잖아요?
혹시 수영을 어렸을 때 배워보셨습니까? 저희 부친께서 귀신 잡는 해병대 청룡부대 출신에 월남전 참전용사이시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때 저에게 해병대 수영을 가르쳐 주셨어요. (해병대 수영법이 뭔지는 묻지 마세요. 그냥 그런 게 있어요.) 그런데 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수영할 기회가 별로 없더라고요.
제가 몇 년 전에 수영장을 갔어요. 머리로는 그 이상한 해병대 수영법을 하기 싫은데요. 어른이 되고서도 몸이 기억하니까 그 해병대 수영법을 하고 있더라고요. 머리가 알아서 수영하는 게 아니라, 제 몸이 알아서 수영하더라고요. 국가대표 선수들 보세요. 근육을 이용한 기초훈련을 매일 빠뜨리지 않고 합니다. 머리가 기억하는 게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기도해야 한다고 머리로 기억하는 분들은 많습니다. 그래서 걱정과 근심이 생겼을 때 새벽에 나와서 기도를 하다가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기도를 멈추는 분들이 계십니다. 기도의 맛을 보지 못한 채, 문제 해결만을 위한 기도를 하다 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기도는 어렸을 때 배운 이상한 수영법처럼 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도 기도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그것을 일상의 기도로 연결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개 걱정이 있을 때는 기도하지만, 일이 잘 풀리면 기도의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다시 자기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가 멀어지면 하나님과도 멀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몸이 기억하지 못하는 기도는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간절한 기도가 있을 때 꼭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도 기도로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함께 인사 : 덜 걱정하고 더 기도합시다)
걱정을 줄이고 기도를 많이 하는 방법 두 번째 비결은 교회가 말씀을 붙들고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역시 23절과 24절입니다.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24절]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주재여”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표현은 종이 주인의 권능을 높일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 이런 표현인 거죠.
여러분, 이렇게 “대주재여”라고 부르는 게 얼마나 놀라운 믿음인지 아십니까? 당시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 로마 황제의 소유이지 않습니까? 로마 황제와 그에게 빌붙어서 충성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것처럼 보인단 말이죠. 아마 사람들은 온 세상이 그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과 초대 교인들은 로마 황제나 유대교 지도자들을 이 세상의 소유자 즉 대주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대주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권능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제가 이 부분에 대한 주석을 보니까요. 이 공동체가요. 다윗이 쓴 시편 2편의 말씀을 인용해서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더라고요.
시편 2편은 다윗 왕국 주변에 모반을 꾀하는 대적들에게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심판하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거든요. [PPT]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여기서 말하는 “헛된 일을 꾸미는 민족들”을 오늘 본문에서는 로마 군인과 빌라도,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키는데요. 이 헛된 일을 꾸미는 그 이방 나라 때문에 핍박이 생기고 어려운 처지에 몰렸다고 합니다.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으신 예수님이 죽으셨고 또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대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알고 계세요. [PPT] 그래서 시편 2편 4절에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본디오 빌라도, 대제사장 가야바와 그의 장인이 예수님을 죽이고 사도들에게 어려움을 줬지만, 결국에 그들은 무너졌고 주님이 승리하신다는 말씀 아닙니까?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걱정하지 말고 말씀 붙들고 함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너희가 당할 고난도 너희가 겪을 어려움도 다 알고 있다. 지금은 그들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너희가 승리하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 이러시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진짜 능력 있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요. 반드시 말씀이 들어가야 합니다.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말씀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말씀대로 구하지 못하게 하고 공동체에 말씀이 들어오는 것을 방해합니다. 기도의 자리에 앉아서 딴생각하게 만듭니다. 걱정만 생깁니다. 누군가를 떠올리면 괘씸하기만 합니다. 온갖 가라지를 다 뿌려놓습니다. 마음속에 쓴 뿌리가 올라옵니다. 여러분 바로 그것이 사탄의 전략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누군가가 미워질 때,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포스트잇으로 냉장고와 출입문에도 붙여두시고 스마트폰에 배경으로 저장해 두세요.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 보십시오.
말씀의 역사가 여러분들의 삶을 압도해야 됩니다. 말씀을 의지하지 않은 채, 기도를 시작하면 말씀이 아니라, 걱정이 나를 압도하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내가 십자가를 통과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말씀이 나를 압도하고 주신 말씀 때문에 내 안에 염려와 걱정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걱정 근심을 말씀으로 압도해 버리세요. 개인큐티는 바로 이것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29절을 보니까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불같은 시험 앞에서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정말 하늘의 권능이 임하지 않겠습니까? 염려와 걱정 앞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한 지역교회에 말씀이 살아 있으면은요.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낼 수가 있습니다. 부모가 그렇게 기도를 하면, 자녀들도 말씀으로 기도합니다. 교회 어른들이 말씀으로 기도를 하면, 다음 세대들도 말씀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되겠어요? 기도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죠. 여러분, 그런 교회에 기도응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저는 우리 하름교회가 말씀으로 기도를 많이 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초대교회 교인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했더니 어떤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3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자막]
“빌기를 다음에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여기 보게 되면 두 가지 현상이 나오게 되죠. 이들이 기도가 끝나자마자 땅이 진동합니다. 구약시대에는 “땅이 흔들린다, 지진이 일어난다”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를 말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응답의 표시로 땅을 흔들고 있는 거예요. ‘내가 너희들 가운데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두 번째는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는 거예요. 교회가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예루살렘 교인들 가운데 염려가 있었습니까? 염려가 남아 있었습니까? 베드로와 요한 때문에 걱정거리가 생겼지만, 이들에게는 걱정할 일도 없었어요. 염려가 조금도 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로 기도했습니다. 염려의 순간에 기도하니까요. 염려는 싸그리 다 사라져 버리고 그들 가운데 응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염려의 순간에도 기도하게 되면 반드시 응답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염려 가운데 있죠.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예배드리고 있지만 예배드리는 순간에도 염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알았던 베드로 사도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벧전5:7)”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부분이 잘못 번역이 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무언가를 ‘맡긴다’는 것은요. 되찾아가겠다는 것을 전제하잖아요? 맡기는 곳은 곧 보관소이죠. 전당포 같은 겁니다. 보관료와 이자를 붙여서 다시 찾아오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염려를 맡겼다가 다시 찾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맡기다’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에피립토’(ἐπιῤῥίπτω)는 ‘맡기다’가 아닌, ‘내던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가 아니라, “염려를 다 주께 내던지라”입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내버려야 하는 것들이 뭐예요?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 내버려야 하는 것들 여러분 있지 않으세요? 근심, 걱정, 염려와 같은 마음의 쓰레기들이 이자를 주고서라도 다시 찾아야 하는 맡긴 것들인가요?
우리는 걱정을 안고 교회를 찾습니다. 예배하는 동안에는 하나님께 맡기게 됩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 때 표정이 밝지 않아요. 맡겨 놨던 걱정거리를 다시 찾아서 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 오셨을 때 자리에 앉자마자 이 예배당에서 다짐을 해보세요.
‘주님, 오늘 이 예배를 통해 걱정을 맡기는 게 아니라, 믿음의 종량제 봉투에 내버리길 원합니다. 오늘 주실 은혜로 한 주간 덜 걱정하고 더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걱정이 아니고 염려가 아니고 그 시간에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10년을 걱정하는 것보다, 10분을 기도하는 것이 훨씬 낫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10년째 염려하는 것이 있으십니까? 이제 믿음으로 말씀이라는, 기도라는 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리세요. 오늘 버리세요!
그리고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기도하십시오! 공동체가 함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혼자 기도하지 마세요. 함께 기도해 줄 기도의 동역자들을 만드세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도 예수님이 함께하시지만, 온 교회 성도가 함께 소리 높여 “대주재여!”하며 기도로 나아갈 때, 어둠의 역사들이 물러갈 줄로 믿습니다. 저는 우리 하름교회가 기도로 소문나는 교회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하름교회 때문에 이 하계동과 노원 지역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붙들고 한 주간도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