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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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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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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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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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서론
서론
범죄자, 특히나 살인범이라고 하면 우리는 덜컥 겁이 납니다. ‘저 사람은 분명 악한 사람일거야 저 사람은 엄청난 죄를 지은 나쁜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인범이라면 대부분 악한 사람입니다.
누가 죄인인가 라는 뮤지컬에서도 살인범이 등장합니다. 재판석에 살인범이라는 죄명으로 선 그 사람은 바로 안중근 의사였습니다. 그분은 이토히로부미라는 일본인을 죽인 사람입니다. 살인범이지요. 맞습니까? 어떤 사건이, 어떤 명칭이 우리에게는 큰 선입견을 줍니다. 사회 통념이라고 할까요?
이스라엘 지역에서도 어떤 사회적 통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많이 있고 저도 그랬는데, 그것은 바로 안좋은일을 당하면, 그 사람이 안좋은 행동을 했기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라는 생각입니다. ‘인과응보’라고 말하죠. 오늘 본문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무리가 예수님을 찾아오면서부터 시작됩니다.
본론
본론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시골인 갈릴리 지역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수도인 예루살렘 성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길에서 제자들과 모인 무리들에게 주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재림과 심판의 날은 어떤 날이 될 것인지를 알려주고 계셨지요.
‘종말에 관한 말씀을 하시던 바로 그 때에’ 수많은 무리 중에 두어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당시 빌라도가 했던 잔인한 일에 관해서 여쭤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정치적 지도자였던 빌라도는 무슨 이유에서 였는지 모르지만 갈릴리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올라왔을 때 그들을 죽여서 제물로 드린 매우 잔인하고 사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빌라도가 잔인한 것도 맞지만, 은연중에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무슨 큰 죄를 저질러서 그렇게 된 것일꺼야 라는 마음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빌라도를 곧장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예수님은 그들에게 비참한 일을 당한 갈릴리 사람들이 너희보다 죄가 더 많아서 이런 일을 당하게 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즘도 비슷하지만 그 당시 AD 1세기의 사회적 통념상,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에서 누군가 비참한 일을 당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떤 큰 잘못이나 죄를 저질러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욥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의인이었지만 하루 아침에 굉장한 비극을 겪게 됩니다. 그는 한 순간에 그의 가족들과 가축들을 다 잃고, 그의 아내와 그의 건강마저 잃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욥을 찾아온 친구들은 욥에게 어떤 말을 했나요?
job15:20-21 “그 말에 이르기를 악인은 그의 일평생에 고통을 당하며 포악자의 햇수는 정해졌으므로 그의 귀에는 무서운 소리가 들리고 그가 평안할 때에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이르리니”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악인은 그 일생 중에 고통을 당하며, 그의 날이 정해져 있어서 그의 귀에는 무서운 소리가 들리며, 그가 평안할 때 멸망의 그림자가 그에게 다가온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친구들은 욥을 악인으로보며, 너가 악한 행동을 저질러서 이런 일이 생겼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luke13: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NO! 욥만 악한 일을 저지른 게 아니다. 너희들도 죄가 있다. 너희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런 일을 피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예수님은 최근에 일어났던 사건 중 실로암 망대 붕괴사건을 예로 드시며 이 말씀을 설명해 주십니다.
luke13: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빌라도가 사람들을 죽인 그 시기에 예루살렘 성벽에 있던 실로암 망대라는 건물이 무너져서 열여덟명의 생명을 빼앗아 갔습니다.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서 ‘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많아서 죽었다’, ‘아니다.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는 것이다’하며 니가 맞니 내가 맞니 의미없는 논쟁을 벌였던 것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이 죄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아 죽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너희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망대가 무너져 죽은 그들의 죄와 너희들의 죄와 다르지 않은 것처럼 빌라도에게서 죽은 그들의 죄가 너희들의 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 그들은 죽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2절과 4절을 반복하시며 “너희 또한 회개 하지 않는 다면 이런 일을 언제든지 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위의 두 사건을 6-9절의 열매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의 비유로 다시 한번 더 설명해주십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었고 삼년동안 그 나무에서 무화과가 맺히길 바랬지만 열매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인 그 사람은 자신의 종인 포도원지기에게 자리만 차지하는 이 무화과 나무를 베어버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자 그 종이 그에게 “조금만더 참아보자, 올해도 내가 잘 자랄 수 있게 거름도 주겠다. 그래서 올해는 열매를 맺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베어버리도록 하자”고 말합니다.
주인은 자신의 밭에서 기른 무화과가 열매를 맺길 바랬습니다. 이는 당연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 나무는 무려 3년이나 열매를 맺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자리만 차지하는 이 나무를 베어버리려고 했으나, 종이 조금만더 시간을 줘보자는 말을 듣고는 조금만 더 참아보기로 결심합니다. 주인은 무화가 나무에게 내릴 심판을 거두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준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해 어떤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시지만, 어떤 이들은 심판을 피해가게 하시며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십니다. 심판을 받거나 안 받거나 하는 것은 사람의 어떠함에 있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누구의 죄는 더 커서 심판을 받고, 누구의 죄는 비교적 작고 그 사람이 거룩해서 심판을 피해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큰 계획 가운데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부로 ‘심판을 받아 죽은 자들은 죄인이다, 살아있는 나는저들보다 더 착하고 거룩하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죽은 자들과 죽음을 피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같은 죄인입니다.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 사람의 죄와 살인을 범한 사람의 죄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죄입니다. 티끌만한 죄도 미워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 쟁이의 죄나 살인마의 죄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두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번째는 ‘하나님 앞에서 그 누구도 의인이란 없다’는 사실입니다. 심판을 받은 사람이나 심판을 피한 사람이나 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빌라도의 살인사건과 실로암 망대 붕괴 사건은 누가 당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사건입니다.
최근에 이태원에서 참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로 1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모녀가 함께 할로윈을 구경하다가 변을 당하기도 했고요, 중고등학생들이 궁금함에 그 거리를 지나다가 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전하게 놀다가 귀가하려는 길에 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태원과 할로윈이 주는 이미지때문에 그곳에서 변을 당한 사람들을 악한 사람들로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 자리에 우리가 없었다고 해서 우리를 좀 더 거룩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옳지 않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적절하지 않는 생각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자리에 오르신 분이 누구십니까? 온갖 부적절한 죄명을 뒤집어 쓰시고 십자가라는 악랄한 처벌을 받은 분이 누구십니까? 상종할 수 없는 죄인들과 병자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과 함께 십자가에 메달리신 분이 누구십니까? 우리는 그런 분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 분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고 있습니다.
더럽고 비참한 자리에 계셨던 그분께서는 결코 더럽지 않고 오히려 거룩하시며, 결코 악하지 않고 오히려 선하시며, 결코 거짓되고 이기적이지 않으시며 오히려 사랑이 흘러넘치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믿습니다. 그분을 우리의 구원자로 믿습니다. 당장에라도 심판을 받는게 이상하지 않을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런 놀라운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은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비참한 일을 겪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며 비난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비극을 당한 자들을 안타까워 하며, 그들의 가족들을 위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기억해야 할 두번째 사실은 ‘하나님의 긍휼, 즉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입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러한 비극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우리가 지은 죄를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러한 비참한 일이 나의 죄로인해 내게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늦지 않게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이러한 심판이 여러분의 사는 날 동안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안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몸뿐만이 아니라 영혼을 벌하시는 예수님께서는 분명 이 땅에 재림의 주님으로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오셔서 죄를 회개한 자들을 구원하시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을 심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일어나는 모든 안타까운 일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위로와 슬픈 마음을 가지며 이와 더불어 이러한 일들을 통해 예수님의 심판과 재림의 날이 가까이왔음을 기억하며 스스로 각자의 죄를 반성하고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 7절을 통해서 마지막 재림의 날에는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이 일어나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matthew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올해는 유독 더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강남과 포항 등 곳곳에서 물이 범람해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의 가뭄은 가난한 자들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결론
결론
우리는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본문 앞 부분인 누가복음 12장 56절의 말씀처럼 시기를 분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말고 오직 말씀으로 변화와 도전을 받아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르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romans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눈물이 많고, 안타까운 일들이 많으며, 고통이 가득한 이 시대 속에서 구원의 길을 오직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오직 이 길만이 구원과 영생이 있습니다.
john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john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예수님을 믿어 이 땅의 심판으로부터, 그리고 이 땅의 삶 이후에 죽음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얻는 우리가 되길 소원하며, 그러한 은혜를 받은 우리가 이웃을 향한 사랑과 위로를 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