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장들과 함께 보는 기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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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근은 우리를 시험하는 시간이다

1. 서론
기근은 농사와 관련되어 쓰이는 말 중 하나입니다.
특히 농경 사회였던 고대 사회에서 기근은 단순히 농경의 의미를 넘어서서 한 민족의 죽고 사는 문제를 야기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고대 사회의 다양한 신들 가운데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신이 꼭 나타나 있고 그 신의 위세가 대단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고대 세계에서 기근은 삶 전체와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기근에 대한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비가 안오는 자연적 현상의 기근의 의미를 넘어서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경제, 사회, 사업 등… 우리의 삶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환경적인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의 조상! 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아담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서 찾을 정도로 아브라함이 기독교 안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굉장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생각되게 한 여러가지 이야기 중에서 아브라함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가 없었던 이방 땅에 살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명령하십니다.
창세기 12:1 NKRV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 굉장히 당황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에 아브라함은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11장 8절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11:8 NKRV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그러니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 우리가 그 믿음을 본 받을 만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데는 그렇게 큰 문제가 없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도 큰 위기가 찾아 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5) 아브라함은 인생의큰 우기인 기근을 만나게 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 고대사회에서 기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어떤 산업의 한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에 대한 위협이고, 민족 전체에 대한 위기 입니다.
어쨋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곧 만나게 되는 사건은 기근이라는 아이러니가 아브라함의 인생에 찾아온 것입니다.
특히 이 가나안땅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땅입니다.
창세기 20:11 NKRV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아브라함이 가나안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아서 아브라함이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위협도 있고, 거기다가 기근을 통한 환경적인 위협도 아브라함 앞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의 신앙, 믿음, 정착을 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에서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라는 표현이 반복하여 처음과 끝에 나타납니다.
다시말하면 기근이 정말 너무 극심하게 들었다는 것을 강조하여 보여줍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을 떠나서 애굽으로 떠나갑니다.
아마 이 선택은 가나안을 완전히 떠나려는 생각이 아니라 잠시의 기근을 피해 보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생각이 아브라함을 더 큰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아브라함이 생각했을 때는 이 기근과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 있다가는 자신의 삶이 정말 어려워 질 것이다!
심지어 죽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 생각들 안에서 가나아 땅을 약속으로 주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려는 신앙을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뒤로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집트로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저 자신 앞에 닥쳐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이 선택은 오히려 아브라함과 그 민족의 미래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약속의 자손을 함께 얻을 아내 사라를 빼앗길 위기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앞서 7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제단을 쌓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어가던, 신앙의 최고조에 달했던 아브라함은 눈 앞에 닥친 위기 가운데 스스로 가나안 땅과 그의 후손에게 치명적 위협을 가하는 위기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한번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져 버리니 계속된 위기 가운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방향을 완전히 잃어 버립니다.
그러니 가나안을 떠나 애굽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서 마주한 위기에서도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자신이 마주한 위기를 또 벗어나려고 합니다.
가나안의 기근 가운데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던 아브라함은 애굽에서도 그 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하실 것이란 사실을 믿지 못하고 불안에 빠지게 됩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아브라함은 애굽의 사람들은 아내를 뺏기 위해서 자신을 죽일 것이라 생각하며 결국 그의 불안은 거짓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13절에서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누이라고 할 것을 요청할 때 사라는 아무말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제적으로 아브라함이 사라를 그렇게 거짓말 하도록 강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75살, 사라는 65 —> 사라의 이름의 뜻: 공주, 왕비)
특히 아브라함은 여기서 사라를 잃더라도 자신의 목숨은 어떻게든 살려서 기근이 걷히면 다시 가나안으로 갈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자신의 아내를 내어주면서 아브라함이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아바르함의 생명이고
어떤 물질적 유익입니다.
창세기 12:13 LHB
אִמְרִי־נָ֖א אֲחֹ֣תִי אָ֑תְּ לְמַ֙עַן֙ יִֽיטַב־לִ֣י בַעֲבוּרֵ֔ךְ וְחָיְתָ֥ה נַפְשִׁ֖י בִּגְלָלֵֽךְ׃
—> 여기서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의 원래 의미는
: 나의 누이라고 말해주시오 그러면 내가 나에게 유익되는 것, 좋은 것을 얻을 것이요!
라고 번역될 수 있다.
무엇을 기대했을 까요?? 16절에서 아브라함이 기대했던 것을 얻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 ---> 재물입니다.
여기까지 아브라함의 계획대로 되는 듯 합니다.. 사라 한 명 희생시켜서 자신의 목숨도 얻고, 재산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기근이 걷히면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가면 그만입니다.. 여기서 사라는 희생될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훌륭한 사람입니까??
더욱이 사라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하여 약속하신 그 약속은 완전히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완전히 버려 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앞에 있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벌인 이들,
가나안 땅을 떠나고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손을 잉태할 아내를 빼앗겨서 하나님 나라의 계획에 최악의 위기를 초래한 아브라함의 인생에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17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데려간 일에 대한 책임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것은 바로가 사라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할 목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바로가 아브라함을 불러 책망을 합니다.
이 재앙의 목적은 바로를 향한 것도 아니요… 바로 아브라함에게 이 책망을 듣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모든 일은 아브라함의 일로 일어나게 됩니다. ---> 하나님의 사람의 잘못된 생각과 결정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바로가 하나님의 재앙가운데 처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의 사람이 잘못된 모습을 보였을 때 다른 이들이 피해를 입게 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이 있습니다.
12장 2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일종의 사명입니다. 다시말하면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복의 영향력을 미치는 자들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른말로 하면 복의 영향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더 악하게 만들어 재앙을 일으키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때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영향력이 없는 것 같지만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서있을 때 우리를 통하여 다른 열방들이 복을 얻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 마저 타락한다면 그 사회와 그 세계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한 사람이 구원의 방주가 되었습니다. 모세 한 사람이 종되었던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러한 노아가 없다면, 모세와 같은 사람이 없다면 그저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을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구원의 소식을 듣지 못할 뿐입니다.
바로는 이 일이 아브라함때문에 일어난 일임을 알고
18절에서 말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이 물음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만일 아브라함이 사라를 자기 아내라고 밝혔더라면 바로는 결코 사라를 데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는 재앙을 받지 아니하였을 것이고, 범죄하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들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로 인하여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바로는 아브라함을 용서해주고 보내줍니다.
그리고 20절에서 바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냅니다.
여기서 보냈다는 것은 왕궁 밖으로 보냈다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 국경 밖으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다시 기근이 있는 가나안으로 가는 것입니다.
다시 그 기근 앞에서 이제는 나의 생각과 나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기근의 때에 우리는 그것을 빨리 헤쳐나오고 싶은 욕구가 들 때가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나를 돌봐 주시지 않는 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 방법을 생각하고, 나의 생각으로 삶을 방향을 정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근의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기근의 때와 같은 시간을 견뎌낼 때 비로소 약속의 시간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이 되는 장소로 부르셨지 우리를 재난의 장소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기근의 때가 있었습니다. 막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광야에서 40일동안 금식을 하셨을때 그 시간은 예수님께 기근의 시간입니다.
그때 마귀가 속삭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장 그 기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입니다. 그 방법을 사용하면 당장 기근을 해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복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저주 가운데 있게 될 것이었습니다.
부활의 영광과 승리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시간을 견뎌내었기에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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