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포로가 아닌 하나님 나라 프로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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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포로가 아닌 하나님 나라 프로로 살기
옛날에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아에 못하게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시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자 사탄은 그 전략을 바꿨다고 합니다.
아에 신앙생활을 못하게 핍박하면 더 뜨거워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신앙생활을 하게 하되, 종교인에만 머물게 만든다고 합니다.
이처럼 현대의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적은 핍박이 아닌 이원론적 신앙생활입니다.
세상 일과 하나님의 일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 일은 세속적인 것이고,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세상 일은 저급한 것이고, 하나님의 일은 거룩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담당하던 청년들도 대부분 이 문제로 힘들어 했습니다.
분명히 성경공부 시간에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고 배웁니다.
그런데 정작 교회는 그 친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지는 관심이 없고,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지만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성경 많이 읽어야 한다, 교회봉사활동 열심히 해야한다, 기도 많이 해야 한다, 예배 잘 드려야 한다 등등 모두 신앙에 대한 평가기준이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교회 리더들을 뽑을 때도 이런 기준으로 뽑다보니 더욱 혼동되는 것입니다.
어떤 친구는 교회에서 목장리더를 할 때 자기가 직장일에 소질이 없고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몸은 직장에 있어도 매번 마음의 무게중심이 교회일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어떤 문제로 인해 교회에서 리더를 그만두게 되었고 직장일에 쏟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일의 성과가 좋아지고 일도 좋아하게 되어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아, 내가 일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처음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 전에는 직장은 그냥 먹고 살기 위한 도구로 생각했기에 기본만 하고, 신앙생활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신앙생활은 기본만 하고 세상일에만 온 마음과 힘을 쏟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쉽게 동화되고 말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도 포기할 수 없고 그렇다고 세상에서 열심히 사는 것도 포기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론]
첫째, 우리는 세상의 포로가 아닌 세상을 섬기는 프로입니다(3절)
3절입니다.
3   그런데 다니엘이 다른 정승들이나 지방장관들보다 더 우수하였으므로, 왕이 그를 나라의 통치자로 임명하고자 하였다.
다니엘은 너무나 일을 잘해서 120명의 지방관료들을 다스리는 세 명의 정승들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두명의 정승들보다 더 우수하여 왕 다음가는 통치자 자리에 임명될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원래 다니엘은 나라가 망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던 유배민이자 이방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바벨론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바벨론이 망하고 제국과 통치자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으로 바뀌었습니다.
나이도 이제 많이 들어 새하얀 머리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여전히 인정받는 현직 관료였습니다.
그만큼 그가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한 곳이 있습니다.
4절입니다.
그러자 다른 정승들과 지방장관들이, 다니엘이 나라 일을 잘못 처리한 것을 찾아내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에게서 아무런 실책이나 허물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다니엘이 임무에 충실하여, 아무런 실책이나 허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당시 왕에게 인정받아 나라의 두번째 통치자가 될 다니엘을 시기 질투하여 그를 해치려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다니엘을 끌어내리려 했는데 그들의 말 속에 다니엘이 어떤 사람인지 단서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다니엘에게 아무런 실책이나 허물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먼저 그의 실책이 없었다는 점에서 다니엘은 자신의 일에 나태하거나 태만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신분은 포로였지만 자기 일에 있어 그는 프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탁월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일은 탁월하게 해내지만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통 지위가 높을수록 많은 이권이 걸려있어 범죄의 유혹을 느끼기 쉽습니다.
우리나라 고위 관료들도 일은 잘하지만 부패하여 감옥에 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에게서는 어떤 허물도 발견할 수 없었는데 이는 그가 부패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2절에서 왕이 세 장관들을 뽑은 이유를 설명할 때 자신에게 피해가 없게 하려 했다고 말합니다.
왕에게 피해란 세금을 징수해야 하는데 넓은 지역에 퍼져있는 120명이나 되는 지방장관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도 없고, 그들을 믿을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20명 위에 3명의 정승들을 세웠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믿을 만한 사람이 바로 이방인 다니엘이었던 것입니다.
세 정승들이 능력이 비슷할지라도 왕이 선택한 사람은 다니엘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도덕성이 다른 두 명의 정승들보다 뛰어났기에 왕은 그를 더욱 신뢰한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처럼 세상에서 탁월한 사람으로 만들었을까요?
오늘 말씀 3절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우수하다’는 단어는 원래 문자적 의미는 ‘탁월한 영을 가졌다’ 입니다.
이것은 단지 그가 업무적 능력만 뛰어났다는 말이 아니라는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분명 그의 신앙심과 관련이 있습니다.
앞서 왕들이 다니엘을 부를 때 사용했던 말도 항상 ‘하나님의 영을 가진 사람’ 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적 연결]
이러한 하나님의 영은 단지 신앙적 영역에만 머무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더 잘 섬길 수 있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역할도 합니다.
출 31:2-5 입니다.
보아라, 내가, 유다 지파 사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불러서 그에게 하나님의 영을 채워 주어,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온갖 기술을 갖추게 하겠다. 그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여, 그 생각한 것을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고 온갖 기술을 발휘하여, 보석을 깎아 내는 일과 나무를 조각하는 일을 하게 하겠다.
출애굽기에서도 기술자인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하나님의 영을 받아 탁월하게 성막 기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창조와 지혜, 능력의 영으로서 우리가 세상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처럼 다니엘의 탁월한 능력과 도덕성은 모두 그의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두 사람이 직장을 다녀도 어떤 사람은 회사의 포로가 된 것처럼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마지못해 일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능동적으로 성실하게 프로처럼 일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을 가진 우리 그리스도인이야 말로 더욱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일과 하나님의 일을 두개로 분리해서 둘다 잘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교묘한 이원론적 사고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려고 하면 어깨에 신앙과 세상이라는 두개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어 너무 힘이 듭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앙의 짐이 없어 가벼운데 우리는 둘다 짊어지니까 너무 무거워 오히려 억눌리게 됩니다.
그게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고 말합니다.
골3:23 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세상일과 하나님의 일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착각하면 안됩니다.
다니엘은 ‘내가 신앙인이니까 세상일도 열심히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한 게 아닙니다.
다니엘에게 세상의 일이란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주님께 하듯 열심을 다해 왕의 제국을 섬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결코 세상의 포로처럼 살기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힘과 지혜로 세상일을 마치 하나님 섬기듯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피아노 치는 일, 공부하는 일, 청소하는 일 모두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능력과 지혜를 받아 세상을 잘 섬기려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럼 세상일도 하나님일이니까 세상일만 열심히 하고 신앙은 기본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세상을 잘 섬기려는 마음만 가지면 오히려 세상과 타협할 위험성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잘하려다보니 점점 세상 기준, 사람들 기준에 맞춰 살아가게 되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잘 섬기면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잘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둘째, 우리는 세상의 프로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프로입니다.(10절)
10절입니다.
다니엘은 왕이 금령 문서에 도장을 찍은 것을 알고도,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서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 다락방은 예루살렘 쪽으로 창문이 나 있었다. 그는 늘 하듯이, 하루에 세번씩 그의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다.
다니엘의 경우를 보십시오.
다니엘은 자신의 신앙심때문에 세상을 섬기는 프로가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신앙심때문에 오히려 그는 큰 위기를 겪게 됩니다.
다니엘을 어떻게든 끌어내리려 한 자들이 다니엘의 신앙심을 공격의 빌미로 삼은 것입니다.
그들은 왕에게 30일동안 왕말고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굴에 넣도록 하자고 건의합니다.
당시 왕은 신의 아들로 여겨졌기 때문에 왕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위를 세워주는 이런 법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어떤 함정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고 왕은 이를 적극 찬성하여 공표합니다.
이로 인해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했다가는 이 법을 어기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세상법이냐 하나님의 법이냐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법은 한번 발표하면 왕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니엘을 누구보다 신뢰하던 왕은 나중에 이를 후회하고 다니엘을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니엘의 단호함이 드러납니다.
다니엘은 세상일에 탁월했지만, 신앙에 있어서만큼은 단호했습니다.
다니엘은 그들이 만든 함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굴에 떨어지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매일 하던 기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평생 기도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한달 기도 안하면 큰 문제가 됩니까?
아니면, 창문 안 열고 이불 속에서 기도하면 뭐가 큰 문제가 됩니까?
다니엘은 이런 융통성이 없었을까요?
이런 의문이 듭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 속에서 꽉 막힌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자기 신앙을 지키려고 남에게 피해주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동료 직원들 다 야근하는데 혼자만 금요예배 드리겠다고 그냥 퇴근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할 몫을 다른 사람들이 다 해야 하는데 이게 과연 좋은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회사에서 더 열심히 하려고 교회 주일예배까지 다 빼먹고 일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리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1장에서 왕이 내린 음식을 먹지 않고, 죽을때까지 버티기만 했던 게 아닙니다.
그는 감독관에게 말해서 자신이 채식과 물만 먹을테니 10일 후 얼굴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테스트를 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안도 없이 자신의 신앙만 지키려고 하는 꽉 막힌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다니엘은 왜 이런 융통성없는 단호한 결정을 했을까요?
사자굴에 빠져도 하나님이 살려주실 것이라고 믿어서 였을까요?
이 답을 알기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는 10절의 ’늘 하듯이’ 입니다.
다니엘은 언제나 하루 세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이방 땅에서 유배민으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세상을 잘 섬길 수 있었던 비결인 것입니다.
고위 관료로 인정받고 편안한 삶을 오래 살다보면 어느새 그 땅의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버립니다.
그 때 다니엘이 다니엘되게 날마다 붙잡아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세상왕에게 충성하기 위해 진짜 온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께 불충할수는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진정한 세상의 왕임을 원수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자신이 제국과 왕을 섬기는 백성이기 전에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이 제국은 언젠가 사라지고, 왕도 바뀔 테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 기꺼이 죽음의 대가를 치룰 각오를 한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은 우리가 세상을 잘 섬길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지만, 신앙때문에 우리는 고난이라는 대가를 치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적 연결]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증거합니다.
벧전4:12-14 입니다.
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13   그만큼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여러분은 또한 기뻐 뛰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14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욕을 당하면 복이 있습니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앙때문에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됩니다.
만약 다니엘이 융통성을 발휘해 대놓고 기도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사자굴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프로들과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세상을 섬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섬기는 이유이자 동력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진정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매일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임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묵상과 기도는 세상의 유혹 앞에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입니다.
우리의 주일예배는 세상이 내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 주인임을 기억하려는 우리의 몸부림입니다.
어떻게든 우리를 세상의 포로로 삼으려 하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누구시며,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기 위한 다니엘의 기도와 같은 나의 몸부림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이 세상을 잘 섬겨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프로임을 다 기억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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