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3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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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288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본문 : 창39:1-10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땅을 살아가면서 많은 세상의 유혹들, 죄의 유혹들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생각을 붙들어 주셔서 죄가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도록, 죄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거룩히 붙들어 주옵소서. 이러한 유혹들이 찾아올 때 내가 어떠한 은혜를 입은 자인지 묵상하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하신 마음을 우리 안에 채우사 죄의 유혹에 저항하며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거룩한 주일입니다. 오늘 하루의 첫 시간을 주님께 올려드리오니 마치는 시간까지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꿈꾸는 자 요셉이 형제들의 손에 의해 노예로 팔려 넘겨졌다. 요셉의 꿈을 통해 계시하셨던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철저하게 실패한 것만 같았다. 그는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애굽 바로의 친위대장이었던 보디발의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완전히 실패한 인생이다. 더이상 밑바닥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추락한 인생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성경은, 이처럼 바닥을 치고 있는 요셉의 삶을 딱 한마디로 정의한다. 2절을 보니 그를 형통한 자라고 말한다.
이 단어를 영어 성경에서는 ‘successful man’, 즉 부나 명예를 얻어 성공한 자라고 번역하고, 다른 성경번역본에서도 ‘앞길이 훤하게 열린 자' 등으로 번역한다. 이러한 번역의 의미를 따라서 오늘날 우리도 형통한 자가 되길 바랄 때, 세상 가운데에서 부나 명예를 얻어 높은 자리에 오르고, 손 대는 것마다 잘 풀리는 이런 상태를 생각한다. 하지만 본문에 기록된 ‘형통하다’는 단어는 ‘번창하게 하다, 성공적으로 이끌다’ 라는 히브리어 원어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형통한 자로 만드실 때, 요셉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번창하고 성공하게 하는 복을 주변으로 흘려 보내주었던 자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요셉으로 인하여 보디발의 집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고, 요셉으로 인하여 애굽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복을 흘려 보내준단 말인가?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바닥까지 추락한 요셉이 아닌가? 사랑받던 아들이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고, 그것도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은 존귀한 자가 이방인의 집으로 팔려가게 되었다니. 이것만큼이나 수치스럽고 실패한 삶이 어디있겠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형통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바로 이것이 답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경건은 어떤 모습인지를 예를 들어 말씀하신다.
요셉은 형들에 대한 배신감과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비관하여 잘못된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충분히 그럴만 하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성실한 태도로 하나님과 동행하길 힘썼다. 하나님께서도 요셉과 함께 하셔서 모든 일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디발 역시 보고 깨닫게 되어 요셉을 신뢰하게 되지 않은가? 그래서 보디발은 요셉을 많은 노예중 하나로 여기지 않고, 그에게 자기 소유를 다 위탁하여 관리하게 하는 중요한 직책을 맡긴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해 보디발의 집에 복을 더하셔서 그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요셉은 형통한 자, 곧 번창하게 하는 자로서, 축복의 통로로서의 역할을 감당한다.
요셉이 하나님과 주인 보디발에게 인정을 받아 형통하는 복을 누릴 바로 그 때에 사탄은 요셉을 공격한다. 보디발의 아내를 이용해 하나님과 보디발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게 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보디발의 아내가 어느 날부턴가 요셉에게 동침하기를 청한다. 물론 처음부터 대놓고 그를 침실로 끌어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달콤한 말로 유혹했을 것이고, 그 유혹은 점점 강력하게 요셉을 찾아온다. 혈기왕성한 청년이 타지에서 혼자 외롭게 살고 있던 때에, 이와 같은 여인의 유혹은 정말 강력했을 것이다. 어쩌면 보디발 아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요셉에게 자신의 재량껏 뒷돈을 주겠다, 너가 갖고 싶은 것들을 내가 사주겠다 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주인 보디발의 아내의 요구였기 때문에 노예의 입장에서 이를 물리치는 것이 정말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는다면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에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그 유혹이 아무리 달콤하게 들려도, 아무리 그럴듯 하게 보여도, 그 유혹 앞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오히려 그 유혹이 점점 강력하게 다가올 때,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로, 그 여인이 옷깃을 붙들며 유혹하려 할 때, 그 옷 조차 버리고 갈 정도로 죄의 유혹에 단호하였던 것이다. 요셉은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을 신뢰하여 보디발의 집 가정 총무 역할까지 맡긴 보디발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에게 자신은 주인 보디발과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수 없음을 분명히 선언하였다. 내가 은혜를 경험한 자로서, 내가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로서, 죄의 유혹에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 이 말씀 앞에 여러분 자신을 살펴보라. 우리는 우리가 어떠한 은혜를 입은 자인지 잘 알고 있다. 우리를 죄악의 권세로부터 건져내시기 위하여 어떠한 고귀한 희생의 값이 치뤄졌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위하여 부어지시는 그 놀라운 은혜가 어떠한지 누구보다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참으로 연약하여 이 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고, 매순간 경험하면서도 내 안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여 죄의 유혹에 넘어질 때가 얼마나 많이 있던가. 너무나도 가슴아픈 이야기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분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함께 하고 계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외면한 채 당장 눈 앞의 죄의 유혹을 선택하는 우리의 모습은 아니었던가.
죄의 유혹들이 찾아올 때 이를 단호히 거절하지 않고, 그 자리를 속히 박차고 나가질 않고, 그 죄의 유혹들을 마음 가운데 묵상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내 안에서 속삭이는 죄의 유혹들을 계속해서 저울질 한다. 그러면서 끝내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분이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시니 이 정도 죄를 선택한다 해도 하나님은 나를 용서해 주실거야, 하나님은 나를 기다려 주실거야” 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것은 저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이 자리에 앉아있는 여러분들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일상 가운데 무너지는 수많은 죄들은 사실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속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교회의 목사라는 사실을, 내가 교회의 장로, 권사, 집사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모를 것이니까, 내가 양문교회 소속인 것과 주님의 몸된 교회의 성도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니까, 사람들은 내가 새치기좀 한다 해도, 내가 불법을 좀 저지른다 해도, 내가 거짓말로 누굴 속인다 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를 것이라는 전제. 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숨어서 하는 범죄들을 그 누구도 목격자가 없으니 내 죄를 모를 것이라는 전제. 우리는 모든 것들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그 마음 속 깊은 것까지도 살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간과하며 살아가고 있다. 죄의 유혹이 찾아올 때 그것이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내 안에서 몰아내며 즉각적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죄의 유혹이 내 마음 가운데 자리잡도록 내버려둔다. 죄가 주는 즐거움들을 탐닉한다. 죄와 타협한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까마귀가 내 머리위에 앉았다 갈 수 는 있지만, 내 머리위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라고 말했다. 죄의 유혹이 우리 마음에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죄의 유혹이 우리 마음 가운데 뿌리내리고 자리 잡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시며 공의로우신 그분께서 죄를 미워하시는 분임을 안다면, 죄의 유혹이 찾아올 때 주저하지 말고, 고민하지 말고, 죄를 묵상하지 말고, 단호히 몰아낼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형통한 자의 모습이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의 모습임을 기억하여 늘 주님과 동행하기를 힘쓰고, 늘 죄의 유혹들을 몰아내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형통한 삶을 살아내는 이 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자.
주님,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사 죄의 유혹들을 분별하게 하시고, 그것들을 우리 마음 가운데 몰아낼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묵상하게 하시고, 늘 깨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시며, 어떠한 은혜를 입은 자인지를 날마다 묵상하여 죄의 유혹들로부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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