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설교] 예수 그 이름 부를 때
고등부 설교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2 viewsNotes
Transcript
Handout
베드로의 신앙고백
베드로의 신앙고백
<가이사랴 빌립보>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을 특별한 곳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구약 시대에 이곳은 단 지파가 할당받은 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땅의 가장 북쪽에 해당하는 땅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스라엘 땅 전체를 언급할 때,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가장 북쪽에 단, 가장 남쪽에 브엘세바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 시대 1세기에는 진즉에 헬라화 된, 그러니까 이교지방이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예수님이 주로 활동하시던 갈릴리 연안 지역에서 북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세례 요한을 처형한 헤롯 안티파스의 통치 지역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었습니다. 또한 갈릴리에서 족히 이틀을 걸어야 다다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굳이 이곳까지 제자들을 데리고 와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요? 성경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곳 사람들과 접촉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들에게 관심을 두고, 예의주시하는 사람들, 또한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무리들마저 없는 곳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회심을 질문을 던집니다.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사실 이곳은 헤롯 대왕의 세 아들 중 하나였던 헤롯 빌립이 완성한 도시입니다. 꽤 오래 전부터 역사가 있었지만, 이곳이 가이사랴 빌립보, 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헤롯 빌립 때문이었습니다. 헤롯 빌립은 그 당시 로마의 2대 황제였던 카이사르 티베리우스를 기념하고 그에게 이 도시를 바치기 위해 대대적인 확장 공사를 했습니다. 이미 지중해 연안에 가이사랴 라는 지명이 있었기 대문에, 그곳과 구분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까지 붙혀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명명했습니다.
또한 이곳은 헬라 사람들이 바알 신을 대신하여 판이라는 신을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 있던 곳입니다. 따라서 이곳은 가리사랴 빌립보로 불리기 전에 파니움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도교 숭배 지역을 도시로 확장하여 황제에게 바쳤던 겁니다.
지리적으로는 헐몬산 근처였습니다. 헐몬산은 요단강의 시작점으로, 날씨가 맑은 날에는 요단강 전체가 내려다 보일 정도였습니다. 바로 이곳에서부터 팔레스타인 지방에 생명을 잇는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가이사랴 빌립보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틈 사이로 떨어지는 요단강물의 원천은 장관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곳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있을 걸까요? 황제의 도시, 이도교의 신전, 그리고 요단강물의 시작점, 이곳에서 예수님은 왜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도록 유도하고 계시는 걸까요?
그들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우리는 제자들의 대답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춰졌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사랑이 많으신 분, 따뜻하신 분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예언자의 이미지로 비춰졌습니다.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예언자 중 하나라는 겁니다.
<예화>
내가 처음 성경을 읽었을 때, 전과는 다른 예수님의 이미지에 한동안 충격을 먹었지.
세례 요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마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 14: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사람들은 심지어 그 당시 권력자 마저도 세례요한을 두려워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와 같이 보였다는 거예요. “앞장서서 악하고 완고한 왕에게 거침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고대의 혹은 근래의 예언자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예수님은 예언자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저 미래 일을 앞서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권력을 쥔 자들의 불의와 사악함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대언자였습니다. 특별히 예레미야는 자신이 던지는 메시지로 인해서 비운의 선지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한 그는 지속적으로 백성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낭만적인 이미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르스는 방식에는 저항하지만,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저항하지는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같은 방식이 아니어서 늘 고초를 겪었던 예언자들처럼 보였습니다. 적어도 예수님은요. 성경은 예수님의 이런 이미지가 단순히 잘못 되었다고 말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서 제자들의 대답을 유도하는 건, 예언자의 이미지의 연장 선상에서 묻는 듯 합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기서 베드로가 나섭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제자들에게 물으셨지만, 베드로가 대표로 답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