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목자의 삶을 사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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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선한 목자- 포이멘 (11)라서 선언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앞서 가시며 우리의 인생을 이끄시는 분이 예수님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엡 4:11 에서 우리에게 있는 사명중에 목자(목사)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에베소서 4:11 (NKRV)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포이메노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목자의 모습은 예수님 한 분만으로 끝나는 사명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오늘날 목자로 있는 우리가 어떠한 목자가 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목자라는 것이 양들의 앞서서 가는 것을 의미할 때, 오늘날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10장의 시작을 보게되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참된 목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 목자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참된 목자와 거짓 목자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며 또 한가지는 우리도 또한 참된 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된 목자와 거짓된 목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1-2절에서 참된 목자는 거짓된 목자는 정당성입니다.
오늘날은 많이 그런일이 없겠지만.. 예전에는 교회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불법적인 일들이 눈 감아 지고, 마치 그렇게 해서라도 교회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신앙인 것인양 잘못 생각되어 지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참된 목자라고 한다면, 참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한다면 정당한 길이 아닌 다른데로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빛의 길입니다. 어두움의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빛의 길이라는 것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길입니다. 그 길을 누구에게 보여 줄 수 없는 길이라고 한다면 그 길은 잘못된 길이라고 생각되어 질 수 있습니다.
사람앞에서 할 수 없는 일은 혼자 있을 때도 하지 말아라
그래서 참된 목자는 3절에서 처럼 인도하여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된 자들은 길이 아니라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들이니 어떻게 길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 길을 따라가는 양들을 다치고, 상하게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목자는 양들을 어떻게 인도하고 무엇을 주는 자입니까?
참된 목자가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생각한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답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양이 양떼에게 가져오는 복들을 보여 주신다(9-10)
목자는 양떼들에게 위협과 위험으로부터 ‘구원’의 복을 줍니다.
9절에서 예수님은 구원의 문이라고 표현이 됩니다. 이것은 이 문안에 들어가는 것이 안전함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양은 목자의 보호 아래에서 목자가 주는 음식을 먹고 영양분을 섭취함으로써 자라갑니다.
우리의 안전과 보호는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 가까이 있을 때에 얻게 되는 복입니다.
뿐만 아니라 9절에서 처럼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먹는다는 것은 양육입니다. 성도는 그저 구원 받은 것으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목자의 보호와 양육으로 성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2. 생명을 더 풍성히 얻게 하신다.
두번째로 참된 목자는 자신의 양들에게 생명의 풍성함을 얻게 합니다.
이 생명은 우리가 숨쉬는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잃은 상태에서는 진정한 생명을 누리는 삶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וַיִּיצֶר֩ יְהוָ֨ה אֱלֹהִ֜ים אֶת־הָֽאָדָ֗ם עָפָר֙ מִן־הָ֣אֲדָמָ֔ה וַיִּפַּ֥ח בְּאַפָּ֖יו נִשְׁמַ֣ת חַיִּ֑ים וַֽיְהִ֥י הָֽאָדָ֖ם לְנֶ֥פֶשׁ חַיָּֽה׃
---> 에트 하 아담 - 아파르 민 하 아다마 베 예히 아다마 레 네페쉬 하야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모르고 살때는 먼지 사람과 같습니다.
사람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이유와 목적을 찾지 못한 채 그저 나의 입을 것을 위해서, 먹을 것을 위해서, 살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어디에도 공동체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는 인생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목자를 통하여 우리가 지금 있는 생명에서 더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은 진정한 우리의 존재 목적, 삶의 이유를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으로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이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 그리고 그 생명있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창조되었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더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복을 얻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1절에서 목자가 고난을 받기 떄문입니다.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목자는 양을 보호하기 위해서 밤낮 양을 돌봅니다. 뿐만 아니라 위험한 동물이 다가온다면 참된 목자는 자신을 내어 던져서 양을 보호할 것입니다.
양들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내어던지는 것이 참된 목자와 거짓 목자(삯꾼 12)과 다른 점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유익을 추구합니까? 자신의 유익을 추구할뿐 아니라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것 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취하려 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참된 목자는 자신의 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자라는것입니다.
오늘날 왜 많은 곳에서 지도력의 부재를 보입니까? 오늘날 많은 지도자들이 자신의 영광을 보이기에 바쁩니다.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교회안에서, 정치에서, 기업에서, 지역사회에서, 가정에서
진실로 자신의 양을 사랑하며, 그들을 위하여 사는 삶이 바로 진정한 목자, 리더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참된 목자는 자신의 삶이 아니라 자신이 이끄는 사람들의 이익을 헌신적으로 지향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끄는 사람들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리더쉽에서 실패를 합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들이, 어머니들이 자녀를 양육하는데 있어서 실패하고,
기업에서는 노사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나라에서도 정치인들과 시민들의 갈등이 심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안에서도 목사와 또 교회의 리더들과 성도들간의 갈등이 일어납니다...
왜 이런일이 일어납니까?? 다양한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사랑의 부재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7절에서 예수께서 이렇게 우리의 참된 목자, 다시말하면 양을 위해 희생할 뿐만 아니라 그 양을 온전히 사랑하시는 목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17절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앞서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독생자 예수를 사랑하신다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예수님의 이러한 사랑의 동기는 당연히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사랑에서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원천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진정한 사랑의 행위가 하나님안에서 발견될 수 있고,
예수께서 그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을 체험하시고 발견하심으로 우리에게 그러한 진정한 사랑을 베푸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사랑이 무너진 시대는 결국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도 제대로된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그 진정한 사랑이 하나님 안에서 발견될 수 있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에 살아있지만.... 하 아담 아파르… 티끌과 같은… 그저 여기 저기 흩날리는 인생과 같은 삶을 살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자,. 그 안에서 진정한 사랑을 체험하고 깨닫는 자들은 네페쉬 아담!! 이 됩니다… 생명의 영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사람은 그 안에서 살아 있는 삶을 살고, 살아 있는 생명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만족, 이기적인 욕구를 위해 살아가는 이 세상 가운데 진정한 리더, 진정한 목자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리고 어떠한 결과를 나타내는가? 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21절에서 사람들은 예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한 것에 논쟁을 합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거짓된 목자들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없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왜입니까?? 참된 진리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목자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아담 아파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이신 예수를 보여주고 진정한 예수의 사랑을 보여줄 때 맹인이 눈을 뜨는 것이지요… 생명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리더의 자리에 우리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가정에서, 기업에서, 교회에서 우리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양을 이끄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사명, 우리의 삶의 목적과 방향을 위해서 우리보다 앞선 목자이신 그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항상 묵상하시고 따라가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