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바라보면 해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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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views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1. 갈등은 일어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라. 2. 할 수 없는 것은 아무리 중요해도 내려놓으라. 3. 하나님께 집중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라.
Notes
Transcript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6장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1)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2)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3)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4)도에 복종하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그 때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때는 언제입니까?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부흥을 경험하자 이를 시기한 종교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잡아들여 예수의 이름을 전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채찍질하여 풀어준 바로 그 때입니다. 비록 채찍에 맞으며 예수의 이름을 전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사도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제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는데, 오늘 말씀을 보면 한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바나바를 비롯한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다줬고, 이를 가지고 초대교회에서는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했었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신의 과부들이 여기에서 소외되는 것처럼 느껴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자 열두 사도들은 초대교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한 자리에 모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니 너희 중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명을 뽑아라. 그러면 이 일은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겠다.
그곳에 모인 공동체 구성원들은 모두 이 말을 기뻐하여 스데반과 빌립, 브로고로와 니가노르, 디몬과 바메나 니골라라는 일곱명의 사람을 뽑았고, 사도들은 기도하며 이들에게 안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는 복음으로 가득한 초대교회 공동체라 할지라도 그 안에 평안과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완벽한 공동체이고, 그곳에는 오직 은혜만 넘쳐야 할 것 같은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완벽한 공동체처럼 보이는 곳에도 이런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초대교회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통해 위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도 그랬는데, 내가 다니는 교회, 혹은 내가 속한 공동체에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은 초대교회가 이런 갈등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고 더 화합하여 큰 부흥을 이루게 되었는가를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알아보기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혹은 내 사람하는 가족 안에 갈등이 발생하게 될 때, 어떻게 해야 순적하게 해결하고 공동체가 더욱 화합할 수 있게 되는가를 함께 나누기 원하는데요. 먼저 갈등이 발생하게 될 때 우리에게 필요한 첫 번째는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분명히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사도들은 탄압을 받고 있었습니다. 외부적으로 탄압을 받는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더욱 똘똘 뭉쳐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제자가 더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상황에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과부들을 구제하는 문제로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사람들 간에 갈등이 벌어진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곳에 흩어져 살던, 그래서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본토 출신으로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유대인들이었죠. 게다가 지금 예수님의 제자였던 열두명의 사도들은 어떻습니까? 이들은 모두 히브리파 유대인입니다. 아람어를 사용하는 자들이예요.
그러다보니 헬라파 유대인들과 소통에 아무래도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들이 이들을 차별해서 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데서 오는 소통의 문제가 빚어지게 되었던 것이고, 결국 사도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헬라파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서 소외를 당한 것처럼 느끼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빚어지게 된 것입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지게 됩니다.
아니 분명히 지금 주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이런 갈등이 벌어지게 되는 것인가? 아니 우리가 똑같이 잘해준다고 하는데, 헬라파 과부들 너무한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어떤 문제가 벌어지게 되었을 때,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미 상황은 벌어졌거든요. 공동체 안에서 의도했건 아니건 헬라파 과부들이 소외당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었고, 이로인해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간에 갈등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원인을 찾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먼저는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아야겠죠.
아니, 이런 갈등의 상황을 접하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갈등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이 모인 공동체는요. 그 안에 아무리 사랑이 넘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똘똘 뭉쳐 있다 할지라도 갈등은 생기게 마련입니다. 갈등이 이상한게 아닙니다.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를 연약한 자들이거든요. 죄인이거든요. 누가 잘나고, 못났고 잘잘못을 따질 필요없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런 연약함들이 서로 부딪치게 되면 어디에선가 마찰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지금 이 시간에도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을 때를 한번 보십시오. 그들이 광야를 행진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키고 계셨지만 이들을 노리는 자들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말렉을 보십시오. 신명기 25장 17-18절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공동체였지만, 그곳에서 피곤하여 뒤쳐진 자들을 공격하는 아말렉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마귀는 언제나 호시탐탐 우리를 해하려고 하기에 조그마한 틈이라도 보이면 갈등은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아무리 좋은 관계일지라도, 아무리 선한 의도로 모인 공동체일지라도 갈등은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갈등이 빚어졌을 때, 그렇지 않아도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힘든데, 왜 이런 일까지 벌어지느냐고 탓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은혜가 넘치는 곳에도 갈등은 빚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무엇보다 이런 갈등을 통해 우리를 분열시키고 해하려는 마귀의 권세가 배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갈등을 조장하는 보이지 않는 악한 영이지 지금 눈에 보이는 내 가족이 아닙니다. 내 공동체 구성원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와 여러분이 갈등의 상황을 만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연약한 죄인이기에 이런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며, 이 배후에 역사하는 악한 마귀의 권세를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말고, 나의 연약함을 통해 틈타려는 마귀를 대적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갈등의 상황에 봉착하게 되면 먼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이런 연약함을 틈타려는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갈등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갈등이 벌어질 때 두 번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려놓는 것입니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요?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갈등이 벌어지자 사도들은 먼저 모든 공동체를 모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사도들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현실적인 대안으로 생각해보면 이 갈등을 푸는 방법은 오히려 간단해 보입니다. 헬라파 과부들이 소외되어 서운함을 느꼈다니까 그 자리에서 헬라파 과부들을 좀 더 챙겨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갈등은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참 간사합니다. 그래서 만약 그 자리에서 사도들이 헬라파 과부들을 더 챙겨줬다면 이번에는 히브리파 과부들이 서운함을 표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소외되어서 서운함을 느낀건지, 단순히 소통의 문제로 서운함을 느낀건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서운해진 마음으로 갈등이 벌어진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맞춰주려고 하다보면 또 반대로 또 다른 사람이 서운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키려 하다보면 절대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게 집중하면 결코 갈등은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사도들은 모든 공동체를 모으고는 자신들은 이 갈등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우리가 이렇게 접대를 일삼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너무 무책임한 발언아닌가? 지도자들이 이렇게 회피하면 일이 해결되겠는가? 생각하는 찰나에 이들은 덧붙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사도들은 회피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곱명의 사람을 세우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사도들이 직접 일곱명을 뽑을 수도 있는데, 이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미 갈등의 원인이 출신 배경이었거든요. 히브리파 유대인으로 구성된 사도들이 일곱 사람을 뽑으면 그것 자체도 다시 문제가 될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도들은 사람을 세우는 일에 아예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초대교회 공동체가, 히브리파 헬라파 유대인들이 직접 원하는 사람들을 뽑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로 이 구제하는 일을 그들에게 맡기겠다고 선언합니다.
사도들의 이런 반응을 보면 우리는 아... 지혜롭구나. 하고 넘길 수도 있는데,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공동체이든지 그곳에서 가장 큰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재정을 담당하는 사람의 힘이 가장 막강합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들은 바로 이 재정을 관리하는 일을 자신들이 내려놓겠다고 선언합니다. 아니. 교회의 지도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도들의 입장에서 어찌보면 권력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권력을 내려놓았습니다. 왜입니까? 자신들이 전부 다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영역임을 깨달았기에 미련없이 내려놓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공동체가 점점 더 커져감에 따라 당연히 소수의 지도자들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당연한 일을 우리는 잘 못합니다. 내가 아니면 안될 줄 알고 내가 다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 역량은 그렇지가 못한데, 내가 다 감당하려고 하니까 결국 의도치 않게 이런저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갈등이 빚어지면 우리는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니, 내가 얼마나 이 공동체를 사랑하는데,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런 사소한 문제도 이해해주지 못하는가? 내 마음도 몰라주고 왜 저러는가? 하지만 이런 반응은 어떻습니까?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에서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는 ‘나 아니면 안돼.’라는 생각을 내려놓으십시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은 그것 자체가 우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갈등이 빚어지게 되었을 때, 이것을 내가 해결해보려고 계속 잡고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십시오. 더 이상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과감하게 내려놓으십시오. 가정에서, 공동체에서 내 힘으로 되지 않는 일을 내가 해결하려 하지말고 내가 붙잡고 있지 말고, 내려놓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이 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다 여겨질 때,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과감하게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겨드릴 때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갈등의 상황에서 내 힘으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내 역량을 벗어난 일은 과감히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겨드림으로 모든 문제의 해결자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자. 이렇게 우리가 갈등의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을 때, 첫 번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겨드릴 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들을 보십시오. 이들은 재정을 담당하는 일이 사실은 공동체에서의 권력의 상징이며, 기득권임에도 이것을 완전히 내려놓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을 세우라고 하면서, 그마저도 자신들이 하지 않고 공동체가 알아서 하도록 전권을 위임해버립니다. 생각해보면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심어놓고 싶을 수도 있는데, 전혀 그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선택한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 하지 않고 기도와 말씀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선택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기보다 접대를 일삼는 것, 재정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는 말을 우리가 원어로 살펴보면 이런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기쁨이 되지 않으니...’ 사도들이 말씀을 제쳐 두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기에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해하시면 안되는 것이, 지금 이 말은 접대를 일삼는 것, 재정을 담당하고, 구제하는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인 사도들에게 있어서 이 두가지 중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것이지, 결코 공동체에서 구제를 하며 재정을 담당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이라는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사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눈에 당면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반대의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그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를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한 일인데, 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역량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를 기도해보니, 하나님께서 사도들이 하기를 원하시는 일은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일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인간된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것도, 저것도 모두 다 중요한 일이고, 공동체에 반드시 필요한 일처럼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 역량이 부족함을 탓할 뿐이지 뭘 내려놓아야 하는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아서 내려놓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생깁니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에 집중하고 사람에 집중해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다보면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내려놓아야 할 것을 붙잡고, 붙잡아야 할 것을 내려놓는 경우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성도 여러분. 언제나 우리의 기준은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갈등이 생기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문제에 매여 문제와 씨름하지 말고,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먼저 기도의 자리로 나아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물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이 무엇일지를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시며, 우리가 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손해되는 것처럼 보이고,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라면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오늘 말씀도 보십시오. 이들이 자신들의 연약함을 인정하여 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이 말을 들은 온 무리가 기뻐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던 일곱 사람,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뽑히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일곱명의 집사들에게 재정과 관련된, 운영과 관련된 모든 일을 맡기고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우리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아멘.
하나님께 집중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했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섰던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허다한 무리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며 주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할 때 내가 속한 공동체의 갈등은 사라지고 더욱 큰 은혜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내릴 때 우리의 삶에 문제가 해결되며 기쁨으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이번 한주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면, 갈등이 빚어진다면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믿음 안에 바로 선 공동체라 할지라도 우리 대적 마귀가 여전히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틈을 노리고 있기에 갈등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갈등이 일어난 사실 자체에 집중하여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지 말고, 갈등이 생기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이전까지는 다 할 수 있었던 일이라 할지라도, 지금 그렇지 않다면,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여 과감하게 내려놓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알 수 없는 부분, 내가 할 수 없는 부분까지 신경쓰며 감당하려 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 내려놓으십시오. 내려놓음은 포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갈등에 집중하지 말고,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께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일하시고,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내 힘으로 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드림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일하시므로 문제가 해결되고 갈등이 사라지며 기쁨이 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하나님께 집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