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하나로 만드시는 그리스도

사무엘하 강해시리즈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8 views
Notes
Transcript
서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새벽기도에 오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교회를 하나되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에 각각 다르게 반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하나 됨의 사역에 반응할지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1-분쟁하는 것이 교회의 평안을 파괴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번째 교훈은 분쟁하는 것이 교회의 평안을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다윗의 집이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기울어간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윗의 집이 강하여 갈 때에 분쟁의 위험이 그 안에서 도사립니다. 어제 본 것처럼 사울의 집에는 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아브넬이 사울의 첩을 취했습니다. 선왕의 첩을 취한다는 것은 그 왕권을 계승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스보셋은 선을 넘은 아브넬의 행동에 반감을 드러내고 이 일을 계기로 이스보셋의 정권에서 분열이 일어납니다. 놀랍게도 이 분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하십니다. 이 분열을 통해 오히려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가 되게 하는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다윗 정권 아래 이스라엘을 통일시키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으로 세운 권력체계를 무너뜨리시고 이 무너짐을 통해 오히려 하나됨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17절과 18절에 아브넬이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여러번 다윗을 너희의 임금으로 세우기를 구하였으니 이제 그대로 하라 여호와께서 이미 다윗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종 다윗의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든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다윗을 왕으로 삼아야 한다고 아브넬에게 말했는데 아브넬은 그 이야기를 무시하고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아 권력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스보셋과 관계가 깨지니까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말한대로 다윗을 왕으로 삼자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 다윗의 손을 통해 대적의 손에서 백성들이 구원 받을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아브넬의 입에서 복음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된 권력을 부수시고 불신자의 입에서 복음이 선포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구원하신다는 이 복음을 통해 다시 이스라엘이 하나가 될 것입니다.
아브넬이 부하 20명과 더불어서 헤브론에 갑니다. 21절에 이스라엘의 온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을 맺게 하고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윗이 아브넬을 평안히 보냅니다. 이렇게만 나가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이스보셋 나라 다윗나라로 이렇게 분열 되었던 구약의 교회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요압이 다윗의 부하들을 이끌고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헤브론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합니다. 아브넬이 찾아왔는데 다윗이 그를 환대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요압이 다윗에게 가서 따집니다. 요압 저거 거짓말하는 겁니다. 왕이 어떻게 하는지 동태를 살필려고 온 겁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령을 보내서 아브넬을 다시 돌아오게 합니다. 그리고 아브넬에게 은밀하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 척하면서 아브넬을 죽입니다. 27절 말미에 그 이유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맘미암음이라고 합니다. 이전에 설교할 때 들으셨듯이 들노루 같이 발이 빠른 아사헬이 아브넬을 쫓다가 아브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때의 일 때문에 아브넬을 죽이게 됩니다. 사실 아사헬이 죽은 것은 믿음으로 전쟁을 하지 않아서 생긴 일입니다. 열 두 명의 젊은이들이 대리전을 펼친 이후에 아사헬이 무리하게 아브넬을 쫓았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아사헬이 굉장히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압은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아브넬을 불러내서 죽였습니다. 아브넬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브넬을 살려두는 것은 다윗이 다시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분열된 구약의 교회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요압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다시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의 약속, 다윗이 왕이 되어 메시아의 왕조를 성립하는 그 약속 안에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인간의 욕망과 복수심으로 다시 분열의 조짐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분열된 교회를 하나로 만드시기 위해 애쓰시는데, 죄인들은 여기에 거슬러 교회를 자꾸 분열시키고 교회의 평안을 깨뜨립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이 우선이라서 교회가 하나되고 평안한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적용) 혹시 우리 가운데 분쟁의 씨앗을 뿌리고자 하는 그런 욕망이 숨어있지 않습니까? 저 사람이 너무 싫어서, 내 성격상 이런 게 정말 안 맞아서 자꾸 분쟁을 일으키려 합니다. 찬물을 쏟아붓고 싶습니다. 딴지를 걸고 싶습니다. 내 이야기가 맞는데 하면서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고 비판하고자 합니다. 조금만 참으면 조금만 견디면 공동체가 하나될 수 있는데 그게 안견뎌지는게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죄의 성향을 극복하여서 나로 인해 분쟁의 씨앗이 심겨지고 자라지 않도록 말씀과 기도로 나 자신을 다독여야 합니다. 그리고 동역자가 속상한 일, 서운한 일을 겪어서 분쟁의 씨앗을 뿌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낙심한 동역자를 위로하고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동역자의 감정을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2-분쟁하는 것을 제거하여 교회의 평안을 지키기에 힘써야 한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번째 교훈은 분쟁하는 것을 제거하여 교회의 평안을 지키기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압이 아브넬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다윗이 들었습니다. 28절고 29절에 다윗이 말합니다. 아브넬에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의 아버지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이렇게 말하고 그 집안에 온갖 질병의 고통이 있을 것이라고 저주를 내립니다.
다윗은 요압의 살인이 다윗의 나라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선을 긋습니다. 다윗은 아브넬을 평안히 보내주고 이 기회를 통해 구약의 교회를 하나로 만드려고 했는데 요압의 살인으로 인해 하나됨이 훼손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요압의 살인으로 또 다시 분열이 일어나는 것은 다윗과 다윗의 나라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다윗의 나라는 구약 교회의 분열을 치유하고 다시 하나로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요압의 가문을 저주합니다. 이 저주를 들으면 “아니 저 아브넬은 나쁜 놈이고 요압의 동생이 죽었으니까 요압 입장에선 복수할 수 있지 다윗이 자기 부하의 고충을 몰라주고 저렇게 끔찍한 저주를 내리나”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다윗은 분열하게 하는 것을 저주함으로써 교회의 하나됨을 지켰습니다. 분열된 구약 교회를 다시 하나님의 언약안에 하나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아브넬이 어쩌다가 한 고백, 하나님의 종인 다윗을 통해 온 이스라엘이 대적으로부터 구원받는다는 이 고백의 내용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이 복음안에서 이스라엘이 하나 되어야 하기 때문에 다윗은 분열을 일으키려 한 요압을 저주한 것입니다. 다윗이 한 행동은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구약 교회의 분열을 일으키는 것들이 꺾어지고 없어질 것이라는 복음의 선포입니다. 이게 복음이라고 하면 복음이 너무 폭력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3장 15절 아닙니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이 우리가 잘 아는 원복음입니다. 에덴 동산이라는 최초의 교회를 훼손한 사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무너진다는 것은 폭력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하나됨과 일치됨을 파괴한 요압의 집안이 저주를 받는 것은 오히려 교회의 성도들에게 복음입니다. 교회의 하나됨과 이 하나됨으로 인한 교회의 평강이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는 것은 복음입니다. 옛 언약시대에서 다윗은 구약의 교회가 하나 됨을 회복하도록 하지만 새언약시대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교회를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같은 말씀과 같은 세례로 교회를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한 떡과 한 잔의 성찬식을 통해 교회의 일치를 이루셨습니다. 다윗이 요압을 저주하며 구약의 교회를 하나로 만들려고 하고 교회의 화평을 지키려고 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분의 말씀과 성례를 통해 교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적용) 그래서 우리도 이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구약의 일꾼은 저주라는 방식을 통해 하나됨을 지켰지만 신약의 일꾼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의 방편으로 교회의 하나됨을 지켜야 합니다. 말씀에 복종함과 성례를 감사함으로 받으며 교회의 하나됨과 평안을 지킵니다. 우리는 같은 말씀을 들으며 같은 복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같은 예수님의 몸을 먹으며 피를 마시며 하나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별이나 나이나 학력이나 성향이나 이 모든 것들을 초월해서 교회의 하나됨이 우리 가운데 역사함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를 분열하는 그 어떤 것도 없도록 분열케 하는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그래도 내가 세상에서는 이정도 수준인데 하는 생각과 싸워야 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너무 못난데 저 사람하고 같이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하나입니다. 우리의 하나 됨을 방해하는 것들이 우리를 분열시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다르지만 복음 안에서 다름이 합쳐질 때 더 아름다운 공동체가 이뤄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그런 것처럼, 교회를 하나로 만드시는 그리스도의 역사에 순종하며 우리가 하나됨을 지킬 때 교회가 더욱 건강해집니다. 교회가 이 분열된 세상에 하나됨을 가르칠 수 있는 모범이 되는 공동체가 됩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분쟁하는 것이 교회의 하나됨을 파괴합니다. 우리는 분쟁하는 것을 제거하여 교회의 하나됨을 더욱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가운데 하나됨의 공동체를 보여주며 교회가 분열된 세상의 정답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분쟁을 제거하여 하나됨을 지키는 하루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