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이것을 기록함은(요20: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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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원함. 요한복음의 서론. 1~12장까지는 예수님의 사역. 13장부터는 예수님의 고난과 긴 설교로 어어짐. 1~12장까지 7가지의 표적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사역이 기록, 13장부터는 예수님의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의 생애의 의미를 더 집중적으로 드러냄. 요한복음의 중심축은 표적과 의미.
표적과 표적이 의미하는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는데 초점이 있다.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이 사건을 행하시는 결정적인 목표가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용도.
표적은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예수님의 7가지의 자기 계시(I AM Message)로 구성. 나는 생명의 떡(6:48), 세상의 빛(8:12), 양의 문(10:7), 선한 목자(10:1), 부활이요 생명(11:25), 길이요 진리요 생명(14:6), 포도나무(15:5). 7개의 자기 계시.
“나는~이다”. 이 말은 히브리 랍비들이 못 쓴다. 이 문법은 구약에 나타난 전형적인 하나님이 자기 계시 방법. “나는 너희를 애굽의 종 되었던 땅에서 구원해 낸 여호와이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자기에게 계시하는 것. 내가 시내산에서 너희에게 말씀으로 임한 하나님이다.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약속의 성취)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의 7개의 자기 계시를 씨줄로 두고 곁에 날줄을 표적에 관한 이야기로 엮어서 천을 짜는 것. 나는 생명의 떡이라는 자기계시 후에 오병이어 표적 사건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드러냄.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선언 후에 소경을 고치는 표적을 행하심.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계시 후에 죽은 나사로를 대낮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살리는 것. 모든 자기 계시와 표적에 관한 이야기의 목적은 단 하나, “예수님은 누구인가?”
요한복음을 읽는 일차 독자들도 예수님을 보았던 기억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음. AD90년 쯤 기록. 제자중에 유일하게 순교가 아닌 자연사 한 제자. 요한복음, 요한계시록을 기록함. 예수님이 어머니를 맡길 때 이미 알고 있었을 것. 예수님의 가르침과 표적과 표적에 대한 사건들을 요한이 재구성한 신앙 고백. 요한은 치밀하게 자신의 생전 예수님이 하신 자기계시 7개를 가지고 생애 있었던 표적을 뒷받침하는 7개의 이야기를 취사선택하여 “예수님은 누구인가”를 치밀하게 기록한 것.
요한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 달리 구분함. 공관복음과 요한복음. 가장 큰 특징이 연대기적 서술방식으로 구성하지 않았음.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의미와 해석 중심. 7개의 예수님의 자기계시와 7개의 표적으로 이루어진 책. 앞부분은 예수님의 행위(표적과 계시), 뒷 부분은 예수님의 설교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 수 있는 책. 이것을 한마디로 정돈해놓은 구절이 있다. 본문을 보라. 30절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다른 기적도 많이 있었으나 취사선택 했다는 말.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31절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취사선택함. 첫째는 기독론적 목적. 우리가 아는 예수라는 청년이 진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였다. 둘째는 구원론적 목적. 그 이름을 믿고 하나님의 죄를 용서하시는 은혜로 구원받게 하려고. 모세에게 말씀하신 그 하나님이 오심.
요한은 예수님의 7개의 사역을 공생애의 주된 사역으로 깨닫고 연대기적 서술방식보다는 표적과 의미를 중심으로 ‘예수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로 왔고 그 이름을 통하여 구원의 시대가 열렸다’라는 것을 선언하는 책.
표적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도 요한의 의도적인 표현. 요한은 이적이나 기적으로 구분하여 사용. 이적은 영어로 miracle. 뒤에 반응은 놀라더라. 자기 이성과 경험의 한계를 깨닫고 두렵고 놀라는 반응으로 마침. 그러나 표적은 ‘시메이온(싸인)’ miracle+meaning. 이 표적을 바라보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놀라움을 넘어 이 표적이 가르치는 사인을 보고 그 결과가 ‘믿더라’.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고 예배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 그래서 요한복음은 표적의 책이라고도 함.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혈통으로 증명하면서 시작. 당시 예수라는 청년을 메시아라고 믿는 유대인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이렇게 시작하고 족보가 등장하는 것.
누가복음도 똑같이 탄생 이야기를 기록. 여기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평화의 왕. 탄생의 의미가 평화에 맞추어져 있다. 전 로마적 시각. 로마의 평화, 아우구스투스의 평화는 힘을 매개로 한 평화, 이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가짜 평화. 진짜 평화가 하늘에서 내려왔음을 선포. 힘을 통한 승리가 아니라 대신 죽는 방식, 원수를 용서하시는 방식으로 이루는 진정한 평화의 메시아를 기록.
마가복음은 로마인에게 기록된 것임에도 족보와 가문에 대한 기록이 없음. 예수님의 사역에만 관심이 있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복음을 받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이 승리하셨음을 1:1절에서 선언하면서 시작. 복음의 시작이라!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전쟁에서 이겼다는 기쁜 소식을 말하는 것. 유앙겔리온. 복음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쓴 복음서 저자. 승리의 관점에서 예수님을 기록하니까 어릴 적 고난과 탄생에 대한 핍박을 말할 필요가 없다. 바로 세례 요한이 등장해서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이렇게 말함. 1장에서 복음이라는 말이 선포되고 15장에서 로마의 백부장의 입을 통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비블리컬 에코.
요한복음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기록 않는다.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성육신 사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역사적 예수 인물을 탐구하는 것보다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예수님을 가장 날카롭게 기록 방식. 가장 어려운 책임에도 초신자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 요한복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임하신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떨기나무 위에 임했던 그 하나님, 성전 번제단 위에 임한 그 하나님, 아담과 하와를 만난 하나님, 우주와 천지를 창조한 그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내 앞에 오신 것. 그 아들이 말씀하시니 물이 포도주로 변하고 떡과 물고기를 통해서 광야의 만나 사건을 재현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이 땅에 진짜 오셨다.
하나님 자신이 내가 결국에는 너희 속에 임재하여 기필코 죄와 사망의 벽을 무너뜨리고 무너진 관계를 회복시킬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를 건져낼 것이다. 약속이 이 땅에 실제로 이루어진 것. 하나님의 성육신 사건이 2천 년간 아무도 풀지 못했던 비밀이 풀림. “죄로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으로 보내어” 죄인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자신의 탄생 목적이 죽음을 위하여 태어나심. 하나님의 엄청난 계획에 아들이 순종하기로 작정한 것. 성령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넘어서 개인적 사건으로 오늘 나에게 체험하게 한 것. 만났다고 현재시제를 쓰는 것. 진짜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
인간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교리는 어떤 종교에도 없는 교리. 신이 자기를 비어서 무한이 유한으로 들어오는 사건이 상상할 수 없는 계시. 사랑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신비. 신이 인간의 손에 비참하게 죽는 방식으로 나의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죽고 부활하는 것을 통해 죄를 소멸하신 사건. 그래서 비밀. 귀신들도 몰랐다. 이 비밀이 교회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가 되었다. 이제 비밀이 밝혀진 것. 이것을 깨닫고 그리스도가 성인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이제 그 이름을 믿음 안에서 전인격 안으로 밀어 넣고 구원의 길로 들어서는 주의 백성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