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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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9-27절까지만 읽자.)
다니엘은 꿈을 꾸는 중에 환상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환상, 즉 그 계시가 다니엘을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16절을 보면, 천사들 중 ‘하나’에게 다가가서 환상의 진상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는 다니엘에게 환상을 해석해 줍니다.
17절과 18절에서 천사가 우선 간략하게 해석해줍니다.
17-18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Daniel 7:17–18 NKRV
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다니엘은 이 꿈을 자기 개인의 것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종말의 때를 살아갈 우리의 삶까지도 내다보았습니다. 그래서 번민하고 근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다니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두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대지

첫 번째, 성도의 인생에는 극심한 고난이 있다는 겁니다.
19절에선 말합니다. 그 넷째 짐승이 다른 짐승들과는 다르다고 말이죠. 심히 무섭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부터 세번째 짐승은 사자, 곰, 표범으로 비유하는데, 이 넷째 짐승은 어떤 특정한 짐승에 비유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악하고 두려운 짐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정 이름을 붙이지 않고 여러가지 말로 묘사할 뿐입니다.
그 이는 쇠요, 그 발톱은 놋이라고 표현합니다. 철권정치를 행하던 로마를 표현하는 겁니다.
열 뿔은 무엇을 말할까요? 열 명의 왕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상징성을 가진 것이지, 진짜 열 명의 왕이 일어난다는 게 아닙니다.
10은 완전수입니다. 그러니 무수히 많은 왕이 일어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겁니다.
그런데 핵심은 로마로부터 나온 작은 뿔입니다.
그 작은 뿔은 교회와 성도를 매우 힘들게 했습니다. 그 작은 뿔의 악행을 살펴볼까요?
2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Daniel 7:25 NKRV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 작은 뿔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괴롭히고,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때와 법을 고치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안티오쿠스 4세라는 악한 왕이 이 작은 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짓을 행하는 게 어디 그 뿐일까요?
근대에 와서는 독일의 히틀러가 이 작은 뿔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대 시대는 어떻죠? 교회와 세상을 어지럽히고 괴롭히는 세력이 지금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
.
그리고 이 시대의 풍조도 작은 뿔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풍조가 어떤가요?
현대 시대는 사사기와 같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천지입니다.
나의 성별을 내가 정하고, 나의 삶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살아갑니다.
또 어떤 것이 작은 뿔이 될 수 있을까요? 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분별력이 없는 자들은 돈의 노예가 되어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돈 때문에 다른 성도를 괴롭힙니다. 돈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돈의 흐름에 따라 자기 인생의 스케줄을 맞춥니다.
딱 다니엘서 7장에서 말하는 작은 뿔의 행실과 똑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이 성도에게 있어선 ‘고난’ 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보다 더한 고난이 어딨겠습니까?
과거에는 이 ‘고난’이 실질적으로 성도의 삶에 극심한 고통을 가져다 줬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흐르면서 이 ‘고난’의 성질이 변해갑니다.
요즘에는 성도에게 달콤함과 편의를 제공하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더 위험한 겁니다.
진짜 실질적인 고통이 가해지면, 마음이 낮아져서 하나님을 찾기라도 합니다.
그런데 내가 예배드리고 싶을 때만 예배드리고, 내 성별을 내 마음대로 바꾸고,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마음대로 하니까 좋다고들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더 멀어지기 쉽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죠.
그러니 더 무서운 고난입니다. 하나님을 아예 찾지 않게 만들어버리니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의 모양을 잘 분별하시길 소망합니다.
내 삶에 달콤한 것. 쓰게 느껴지는 것. 이것 저것 할 것 없이 반드시 말씀 앞으로 끌고 와 가면을 벗겨봐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로 가지고 와서 정체를 밝혀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내 소견에 옳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을 줄 믿습니다.

2대지

두 번째, 종말이 완성될 때, 성도는 반드시 구원을 얻습니다.
고난 뿐인 이 세상이 끝이라면 얼마나 절망적일까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종말의 완성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종말에 대한 강조가 현세를 경시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종말을 사모할 때 현세를 바르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종말을 바라볼 때 우리는 마주하는 고난들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힘들게 하는 작은 뿐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26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Daniel 7:26 NKRV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심판이 시작되면 그 작은 뿔은 권세를 빼앗깁니다. 빼앗길 뿐만 아니라 완전히 멸망합니다. 그리고 역전됩니다.
25절에선, 작은 뿔의 손에 우리가 붙인 바 되었는데, 27절을 보면, 전세가 역전되어 우리 거룩한 백성에게 그 악한 나라가 붙인 바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 인생을 종말론적으로 바라볼 때, 환난으로 끝이 나나요? 구원으로 끝이 나나요?
구원으로 끝이 나죠.
로마서의 5장 8-9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Romans 5:8–9 NKRV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악한 세력을 심판하십니다.
죄에 대한 진노를 끝까지 참고 참고 참으시다가 마지막 심판 때에 그 진노를 쏟아내십니다.
하지만 그 진노하심에서 우리 성도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 진노의 불길이 너무 뜨거워서 고통스러울 순 있으나 반드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나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그러니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오늘 내가 죽어도 나를 구원하실 예수님 아닙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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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절 후반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성도의 고난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낸다고 합니다.
우리의 고난은 한 때처럼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고난이 더욱 극심해지면서 두 때까지 늘어난 것 같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며 붙잡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놓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을 때에...
하나님은 단번에 그 때를 반 때로 줄여주십니다. 성도의 신음소리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 때에 우리의 고난의 때를 완전히 없애주시고,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의 때를 보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우리 성도는 이미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우리 오늘 모두, 만나게 될 고난을 두렴 없이 거뜬히 넘어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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