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는 감사

뉴욕 23번가의 기적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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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돌려 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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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여러분에게 한 동영상을 보여 드리려 합니다. 이 영상에는 흰색 티셔츠를 입은 3사람과 검은 색 티셔츠를 입은 3사람이 나오는데요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끼리 공을 주고 받습니다. 이제 여러분께 과제를 드리겠습니다.
흰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몇번 공을 주고 받았는지를 세어야 하는 것입니다. 흰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끼리 패스를 몇번 하였는지를 세시고 이따가 답을 알려주시면 되시겠습니다. 그럼 영상을 같이 보도록 하시겠습니다.
자 여러분 보셨어요? 이 영상 속에서 흰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은 몇 번의 패스를 주고 받았을까요? 정답은 15번입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들께 또 다른 질문을 드립니다. 혹시 이 동영상에서 고릴라가 등장해서 가슴을 치고나서 들어가는 장면을 보신 분이 계신지요?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영상에 고릴라가 나왔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좀 전의 영상을 다시 한번 보여 드릴께요. 이번에는 고릴라를 한번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다 찾으셨죠? 이 영상은 하버드 대학에서 진행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 ‘the invisible Gorilla’ 라는 심리학 실험의 일환으로 촬영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실험을 위해서 이 영상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고릴라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간혹 본 사람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이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우겼습니다. 그러나 고릴라에 집중하고 영상을 보라고 하면 다들 찾아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체 왜 이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일까요? 이 실험과 이 책의 주제는 선택적 시각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모두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이 실험을 통해서 무언가를 볼 때 전체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각과 관심에 갇힌 사람은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 삶 속에서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도요 우리 안에 일어나는 선택적 시각 때문인 것이죠. 우리가 자기의 욕망이 추구하는 특정한 대상에 사로잡혀 있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감사해야 할, 이 영상에 나오든 우리 인생의 고릴라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가정, 직장, 건강, 자녀, 인간관계, 주식 등 우리의 욕망이 추구하는 특정한 대상에 우리의 시선이 매임으로 말미암아 더 봐야 할 것들을 쉽게 지나치게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창세기 3장에 보시면 사단의 유혹으로 인간이 타락하죠. 그런데 그 뱀이 여자를 유혹할 때 첫마디가 뭐죠? 이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라는 질문을 던지죠. 아니 잖아요? 하나님께서는 동산의 모든 실과를 다 먹으라고 하셨어요. 다만 오직 하나, 너희를 위해 동산 중앙의 선과 악을 분별하는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을 뿐이죠.
먹지 말라 하신 것은 단 하나뿐인데, 사단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떻게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가? 있는 것에 감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 하나 때문에 불평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 가운데 우리의 욕망이 추구하는 특정한 대상에만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죠. 그 전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왜 저것은 못 먹게 하신 것이지? 거기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아름답고 풍성한 은혜들, 여러분 그것들을 보고 계십니까? 아니면 모든 것을 허락하셨지만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그 한 가지에 집중을 하고 계십니까? 이러한 선택적인 시각은 우리를 원망과 불평과 불만족으로 몰아 넣으며 결핍하게 만드는 것이죠.
자, 이러한 우리의 상황을 해독하기 위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절기라고 하는 것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절기를 기억함으로 우리가 놓치거나 그 열심이 식어갈 때 이를 다시 새롭게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생일을 기억하면서 내가 이 땅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를 기억하듯이 우리는 절기를 지킴으로써 우리의 선택적 시각이 교정되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절기를 반드시 잘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신명기 16장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제정하신 3대 절기인 유월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에 대한 규례들이 나옵니다. 그 중 오늘 본문인 13-17절까지는 초막절에 대한 규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3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실까요? 시작
Deuteronomy 16:13 NKRV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이 초실절은 다른 절기들도 마찬가지지만 특별히 과실의 수확과 관련이 깊습니다. 그래서 과실 수, 그리고 모든 과실들을 저장했다고 하여 수장절이라고 부르는 절기입니다. 그리하여 여기 보시면 일년 동안 땀흘려 지은 타작 마당과 포도주의 소출의 수확을 마무리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와 동시에 이러한 감사를 맛보기 위해서 겪은 모든 고난들을 되세기는 절기이죠.
자,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지키냐하면 초막절이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에 산에 올라가서 종려 나뭇가지 혹은 올리브 나무의 가지들을 가지고 내려옵니다. 그리고 그 가지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마당에 혹은 야외에 텐트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초막에 들어가서 일주일 동안 가족들이 기거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나와가지고 40년이 넘도록 초막을 짓고 살아왔어요. 그 광야 생활을 되돌아 보라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4절 이하에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생활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Psalm 107:4–7 NKRV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방황하고 거할 곳을 찾지못해 방황하고 근심하고 주리며 살아가던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이었죠. 즉, 너희가 이 괴로운 광야에서 어렵고 무서운 생활을 할 동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도우셨고, 어떻게 먹이셨으며, 어떻게 인도하시지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얼마전에 히말라야 산에 등정하는 산악인들에 대한 다큐멘타리를 보다가 그 꼭대기 쯤에 완전히 얼어 붙어버린 시체들이 곳곳에 있는 장면을 보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되더라고요.
히말라야의 산에 오르는데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아무도 내가 거기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죽어가는 그 상태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마음이 들다가 문득 든 생각이 내가, 우리가 바로 저 자리를 지나왔구나 하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하늘의 별도 안보이고 나침반도 없어 사방이 깜깜한 날에도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으로 여전히 내 앞에 내 옆에 내 위에 내 안에 계시는 분이시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출애굽 시키신 후에 이제 할 일 다했네 하고 손 탁탁 털고 떠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어미새가 아기새를 그 품에 모으듯이 이스라엘을 품고 그 광야길을 걸어가셨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날 구원하신 이후에 한순간도 쉬지 않으시고 우리를 돌보셨다는 것서입니다. 이것이 너무나도 중요해요.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이 나를 돌보시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방식을 하나님께 주장하기 떄문이에요. 하나님 나를 돌보시지 않는 것 같아. 라고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방식을 자꾸만 강요히 때문이죠. 왜곡되고 편향된 시선입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은 저 히말라야 같은, 저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갈 때 한 시도 빠짐없이 우리와 동행하셨고 돌보셨다는 것이죠.
따라서 하나님의 초막절이란 우리의 왜곡되고 편향된 생각을 조정하는 시간입니다. 올 한해도 내가 열심히 일하고 내가 잘하고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생각이 되지만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힘을 주신 분을 기억하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초막절기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초막절에 우리의 감사가 회복되어야 하는데 어떤 감사가 회복 되어야 하는가 바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우리 16-17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시작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돈을 좋아하셔서요? 천지 우주 만물이 당신의 것이고 모든 것을 지으셨는데 뭐가 아쉬워서 여러분의 주머니제 있는 그 돈을 탐하시겠어요? 하나님께서 왜 우리가 힘을 다하여 드리는 헌금을 요구하시고 명령하실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존재를 받으시길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슬프지만 놀랍게도 우리의 마음과 중심이 가장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 바로 물질이기 떄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바로 여러분의 헌금에 여러분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입술로만 하나님께 감사를 고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구원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빈손으로 나와서 마음의 고백없이 하나님께 나오지 말고 힘을 다하여서 너희의 마음을 바치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헌금을 하나님께서 너무나 기뻐하시고 드리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합니다. 헌금이 중요하고 저도 헌금을 드릴 때 물론 감사함으로 드리지만 그냥 특별한 생각없이 예배 시간에 있기에 당연히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헌금을 막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신다는 생각을 잘 못해요. 오히려 우리가 예배 때 찬양을 하거나 봉사를 하거나 섬기는 모습을 기뻐하신다고는 생각을 하지만 헌금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잘 연관을 짓지는 못하죠.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물질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너무나 기뻐하시고 사랑하신다라는 말씀을 곳곳에서 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냥 나아오지 말고 반드시 네 힘을 다하여 여호와께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9장 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 자원함으로 감사의 재물을 드리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빌립보서 4장 18절 하반절에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 헌금은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성경에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혹은 누구를 기뻐하신다 사랑하신다 즐거워하신다 라는 말씀을 꼽아보자면 그렇게 많이 생각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생각을 해보자면 스바냐 3장의 말씀을 보시면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
즉, 하나님이 그냥 우리를 기뻐하시고 잠잠히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냥 사랑하십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바라볼 때 그 존재만으로 무언가를 특출나게 잘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무언가를 잘하고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랑하세요.
그런데 존재만으로도 기쁜 우리 자녀들이, 또 손주들이 잘 자라고 장성해서 첫 직장에 들어가서 월급을 받았는데 그동안 키워주시고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해서 그 봉급의 대부분을 털어서 부모님께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께 선물을 사왔다라고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면 보통 부모님들은 야, 너 쓰기도 부족할텐데 왜 그랬냐! 라고 면박을 주지만, 그냥 이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너무 기쁘지만! 선물을 가지고와서 주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사랑 가운데 춤을 추고 싶어하시는 것이죠. 그냥도 충분히 사랑하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지만 거기에 더하여
여러분 마찬가지로 우리의 상황과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그 존재 자체를 너무나도 사랑하시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당연히 돌려야 하는 헌물을 드릴 때, 우리 주님은 마치 선물을 받으신 것처럼! 당연한 것 아니 사실 그 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와 사랑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우리의 헌신과 헌금을 받으시고 기쁨과 사랑을 이기지 못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이 하나님께서 기쁨과 사랑을 이기지 못하시면 이러한 행동을 하시는데 어떤 행동을 하시느냐 바로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잘 보세요)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내가 너의 소출의 일부분만 복을 내려 주겠다? 아니요 네가 손으로 하는 일 가운데 한 부분에만 복을 줄 것이다? 아니요!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다! 여러분, 저는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 하고 받을 때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습니다.
다시 한번 더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감사를 결단하고 예물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하나님께서 이를 기쁨으로 받으시며 행동을 하시는데 너의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다! 아멘! 여러분의 믿음대로 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결단코 실언하는 분이 아니시죠. 사실 우리가 안해도 이쁘고 기뻐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는데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의 제물을 올려 드리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을 줄 것이다! 복을 부어주겠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꼐 감사의 헌금을 드리는 행위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고 그 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없이 작고 초라한 것인데, 놀라운 것은 우리 하나님 헌금을 우리에게 받으시면서 마시 우리에게 빚을 지신양 그 감사의 빚을 갚아 주시기 위해 축복을 부어주겠다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예배당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헌금함 입니다. 그 곳에서 헌금을 드리는 행위 자체가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감사의 사랑의 고백이요 바로 거기서부터 우리의 예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커피 한 잔 생략하고 그걸로 적당히 드리시겠다고요? 깜빡 잊어버리고 그냥 오신다고요? 여러분,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요 아무런 가능성도 없었던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도 아낌없이 다 주셨고 자기의 아들까지 내어 주신 분이세요.
그 은혜로 우리가 오늘 여기에 서 있어요.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해서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그 헌금에 여러분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에요.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고 모든 것을 창조하신 주님 앞에 과연 내가 드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만은 우리 하나님이 너무 좋으셔가지고.. ‘야, 너가 나를 기억하고 이 어려운 시기 속에서도 감사를 고백하는.. 참 고맙다, 내가 빚지고는 못살지..! 그러시면서 여러분에게 30배 60배 100배로 갚아주시는데 너의 모든 소출과 네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라..!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예물을 보시면서, 너무 좋아가지고 내가 빚지고는 못살지 이러시면서 흔들어 눌러 넘치도록 하셔서 우리를 채우시겠다 말씀하셨어요. 여러분이 이 감사의 계절에 이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렇게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려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온전히 받으시고 불평과 원망으로 가리웠던 우리의 눈이 열리어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 안에 막혔던 은혜의 샘이 다시 터지기 시작하고 매말란던 우리의 눈가에 감사의 눈물이 고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물붓듯 부어주시는 그 감사의 기쁨 속에서 다시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렇게 우리 자신을 드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들을 올려드림으로 잃어버린 진정한 감사를 회복하시고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을 경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이 감사의 계절에 불평과 원망으로 뒤틀린 우리의 감각과 시선이 온전하게 회복되기 원합니다.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에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는데 우리가 거머리처럼 계속해서 다오다오 하는 탐욕의 자리를 벗어나 주님께 드리는 감사를 회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주님의 크신 은혜 아니면 출발조차도 못했을 경주를 우리를 대신해 걸어가시는 주님께 이제는 합당한 감사를 올려드릴 때 더 큰 능력으로 채우시는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인생 삼아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해 몽땅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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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우리를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하시지만 우리가 그
은혜를 기억하고 그 힘이 다하도록 감사의 예물을 회복하고 드리기로 결단하오니, 이 작은 결단을 어여쁘게 보사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 복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경험하는 인생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 세번 외치고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실 때 우리 이렇게 감사를 올려드립시다. 하나님, 이렇게 좋은 교회에서 마음껏 신앙 생활하고 함께 이 길 걸어갈 신앙의 공동체 얻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담임 목사님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힘을 다해 수고하는 부교역자님들, 우리 장로님들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교육부와 모든 부서들과 공동체를 허락하신 주님 참 감사합니다. 특별히 돌아오는 주 추수감사주일에 우리 모두가 힘을 다하여 주님께 감사를 올려드릴 때 주의 성령 충만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 세번 외치고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세계 열방을 품고 기도하실 때 세우신 파송, 협력 선교사님들의 사역을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게 하시며 내일까지 있을 과테말라 단기선교팀 가운데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사랑하는 환우분들에게 치료의 광선을 비추어 주셔서 몸의 연약함이 강건하여지게 하시고 역사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감사의 능력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의 이름 세번 외치고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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