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ecret: 교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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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출 12장 37-42절/ 제목: Top Secret: 교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복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넘치시길, 기도 응답받으시는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옆 사람과 인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은혜받읍시다. 잘 오셨습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벌써 11월 마지막주입니다. 제가 올해 비행기를 탄 적이 있습니다.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옆 자리에 어떤 여학생이 앉았습니다. 물티슈를 꺼내더군요. 좌석 테이블을 꺼내서 물티슈로 정성스럽게 닦기 시작합니다. 깨끗한 사람이네. 그리고 물티슈를 한 장 더 꺼내서 앞에 모니터를 닥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옆에 손걸이를 닦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저는 자리를 더 좁히고, 그 여학생 근처에 안갈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부정한 제 몸이 닿으면 저도 닦을까봐요.
옆에서 어떻게 하느냐가 우리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합니다. 옆 사람 신경쓰지 않고 은혜 받으시길 바랍니다. 은혜를 받으면 그 은혜가 옆 사람에게 전염될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아멘으로 화답하면, 전체에 미치는 은혜의 여파가 되어서 불타는 좋은 장작이 물에 젖은 장작까지도 태우는 불의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반응과 리액션이 매우 좋습니다. 그런데 대구분들은 아닙니다. 그런데 대구 동신교회 성도님들은 또 반응이 좋습니다. 왜일까?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반응, 자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복이 있습니다. 바로 거꾸로 사역입니다. 교구에서 사역을 하다가 청년부로 가니, 뭔가가 보이는 겁니다. 특별히 한 교회에서 교구에서 존경할만한 어른분들을 많이 만나다가 그들과 교제를 하다가, 청년부로 가니 청년들의 삶의 양태를 보거나 청년들의 사역형태, 하나님과 얼마나 밀접하게 사는지를 보면서 교구에 제가 존경하는 장로님이 보이고 제가 존경하는 권사님이 보이고, 집사님들이 보이는 겁니다.
청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지금 힘들지? 너를 보면, 우리 교회에 어떤 장로님이 떠올라. 그분이 청년시절에 아무것도 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주의일을 열심히 했던 과거를 들려주던데, 그 형제가 바로 너~인 것 같아. 너의 미래가 누구누구야. 그 장로님의 신앙을 한번 잘 지켜보아라.
그러면서 느끼는 것이교회 공동체가 가지는 힘과 능력과 축복의 힘이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경험합니다. 청년들의 에젤의 표본 집사님들(제양원)이 보이고, 억울하고 괴로워도 주님만 바라보고 일했던 권사님들 장로님들을 보고, 집사님에서 장로님이 되시는 과정도 보면서 청녀들을 설득할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본문을 들고 온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공동체의 힘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 시작을 통해서 우리가 엄청난 것을 누릴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생활을 하는 우리는 교회로부터 엄청난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신앙 가운데 놀라운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이 광야 교회의 시작을 그리고 광야 교회를 통해서 교회의 유익을 어떻게 누리고 어떤 신앙적 복을 누릴 수 있을지를 알려줍니다.
놀라운 복을 누리는 비법을 사람들은 공동체라는 이 비밀을 모릅니다. 그러면 이 공동체, 교회 공동체가 가지고 올 수 있는 놀라운 비밀이 과연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알아보면, 여러분의 개인의 인생과 가정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저도 엄청난 복을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이 가르쳐 드리는 이 비밀은 여러분들을 놀라운 세계로 인도할 것입니다. 실제로 이 공동체가 주는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공동체가 주는 복을 누리는 분을 보았고, 저도 현재 진행형으로 보고 있고, 제사 청년들, 에젤, 교구, 장로님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들이 가지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준비를 하면서, 가정에 이 비밀이 임해서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가정들이 상당히 많다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모두 그런 비밀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 광야 교회
1) 출애굽: 광야교회의 시작
출애굽을 성경에서는 뭐라고 표현을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 땅에서 나왔다고 말을 합니다.
(출 12:41)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하나님은 출애굽을 여호와의 군대의 출정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장엄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것의 신약의 표현이 조금은 다릅니다.
(고전 10:1-2)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성경을 세례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행 7: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신약에서는 광야 교회의 시작된 날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신약은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광야 생활이 바로 교회 생활이라는 겁니다. 아주 의미 있는 표현입니다. 광야생활은 고통의 생활이고 광야 생활은 집을 떠난 생활이고 광야 생활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여정입니다. 그런데 이 광야 생활, 출애굽의 시작부터를 광야 교회의 시작이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광야 생활을 엄밀히 말해서는 성경적으로 교회의 시작으로 봐야 되는 겁니다.
출애굽은 바로 광야 교회가 시작된 날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약 60만명되는 광야교회의 시작입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의견들이 상충될 수 있는 60만명의 대장정입니다. 그것도 평안한 여정이 아니죠. 이게 바로 광야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광야교회의 시작이 어떻게 가능해 졌을까요? 이 말은 출애굽이 어떻게 가능해졌느냐와 같은 질문입니다. 백성들이 치밀하게 계획을 했을까요?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모든 여정들을 여행 계획을 짜듯이 계획을 했을까요? 출 애굽 자체를 백성들의 노력이 들어 갔을까요?
2)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겁니다. 인간의 노력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이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교회는 절대 인간의 계획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교회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로 세워지는 겁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짐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는 비단 대구동신교회처럼 너무 큰 은혜를 경험하고 놀라운 역사가 있는 교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부족해 보이는 교회도, 규모가 작은 교회도, 개척이 되는 교회도 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있습니다. 광야교회처럼 가다가 불평과 원망이 나와도, 그 짧은 거리를 둘러 40년이 걸려도, 죄악으로 상당수가 재앙적 죽음을 당하더라도 교회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시작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로 시작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 전제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신앙생활의 동력 자체가 달라지게 됩니다.
왜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과 은혜로 광야 교회가 탄생하고 이 땅의 교회가 탄생하느냐? 바로 피흘림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 광야 교회의 출정식. 여호와의 군대의 출정식 직전에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월절 사건이 있습니다. 10번째 재앙, 피흘림이 있는 겁니다.
출애굽 전날 밤에 죽음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애굽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각 집에도 죽음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 각 집에 장자가 죽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되신에 유월절 어린 양 한 마리의 죽음으로 대신 한 겁니다. 그 피를 보고 그 죽음이 넘어간 겁니다. 그래서 출애굽하는 날 밤 교회가 시작되는 날 밤에 피흘림이 있었다는 겁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흘림이 있었다는 겁니다. 신약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이 되셔서, 심자가에 죽으심으로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세워진 겁니다. 우리는 절대로 이 사실을 잊으며 안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시작은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누군가의 피흘림에 의해서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은 감격할 일입니다. 사람이 절대로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공로가 없습니다. 인간은 이에 대해서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광야교회에서 모세의 공로? 없습니다. 모세는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대구동신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교회를 세우는데 공이 있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아들의 피를 흘려 세우신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이 은혜로 김창렴 목사님을 통해 선교하는 교회로 만드시고, 권성수 목사님을 통해 생명사역 하는 교회로, 문대원 담임 목사님을 통해서 한국교회를 이끌어나가는 교회로 이끄실 겁니다. 이 모든 과정이 전적인 하나님의 계획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도 하나님의 성전이고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창조된 존재입니다. 개인의 인생도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과 인도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가 대구동신교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있을 겁니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저의 성장을 위해서 성도님들의 많은 기도와 담임 목사님의 격려와 사랑과 권성수 원로목사님의 채찍이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교구에서 사역할 때, 장례식장에서 코트를 벗지 않고 있다가 혼나고, 교구 매뉴얼을 만들게 한 장본인이 바로 접니다. 어떻게 선배들이 교육을 못시켰길래, 저는 너무 죄송했는데 당시 선배 목사님들이 저보고 누구나 실수 할 수 있다고 위로해주고, 참 저도 사람 되었습니다. 당시 선배 목사님들이 저거 목회 제대로 하겠나? 절 너무 걱정해 주셨고, 사람 한 몫도 감당 못할 거라고. 제가 그랬습니다. 문제 덩어리였습니다. 제 개인 인생으로 봐도 동신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개인 인생을 이끌어나가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부족해 보이는 모든 영역들을 통해서도 가장 선한 것을 이루어 나가시며,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이 교회를, 그리고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과 은혜로 이끌어나가시는 여러분을 책임지실 줄로 믿습니다.
자, 그러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교회, 이 구성원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는 무엇일까요?
3) 하나님의 기대: 감사
하나님이 기대하는 바는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로 반응하시길 원하십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모든 것들을 다 준비하고 계획했다고 칩시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에게 선물로 주셨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그에게 무엇을 기대합니까? 처음 기대하는 바는 감사입니다.
지난 임직식 때, 담임 목사님 부모님께서 오셨습니다. 어머님께서 저를 보시고 김대경 목사님? 일개 부목사의 이름을 불러주셨을 때, 나는 그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습니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머리 짧게 깍은 사건) 김춘수 시인을 좀 아시네요. 아버님께서 대구 경북을 대표하는 목사님. 이제 대한민국의 경계를 넘어서는 over the seas 감사합니다. 제가 그래서 너무 훌륭한 담임 목사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날 밤 잘려고 누웠는데... 헤헤...헤헤... 너무 감사한 겁니다. 한번더 감사를 표합니다. 일개 부목사에게 그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으로 받겠습니다. 부모님 언급하시면 밥을 사야 한다고 하시던데, 멀어서 그건 좀. 나중에 기회되면 당연히 대접하고 싶습니다.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자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피값주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교회를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대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바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면서 신앙생활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세우신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이 기대하는 바는 감사하면서 신앙생활하라는 겁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음이 많이 상하십니다. 이유가 뭐냐? 불평을 굉장히 많이 한다는 겁니다. 신앙 생활은 감사하면서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불평이 올라옵니다. 왜 그럴까요? 그 불평을 주는 주체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불평하게 만듭니다. 항상 이를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영적 전쟁이라는 표현이 여기에서 나오는 겁니다. 우리는 사탄과 싸우되, 가장 강력한 대결은 감사냐, 불평이냐는 겁니다. 감사는 마음에 만족이 드는 것이구요, 불평은 마음에 만족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감사는 마음의 만족이 밖으로 표출되는 행위입니다. 불평은 마음의 만족 없음, 불만족의 상태가 밖으로 표출되는 행위입니다. 사탄은 마음에 불만족을 줍니다. 그러나 입밖으로 감사가 터져 나오면 불만족이 만족으로 바뀝니다. 사단은 우리 마음에 불만족을 줄 수 있습니다. 이기는 길은 입으로 감사의 고백과 표현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나 사단이 만족을 없앨 때, 입박으로 불평의 말을 내뱉는 행위는 우리가 사탄에게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는 결과입니다. 작은 패배 같지만, 인생 전체의 패배로 이어집니다. 생각이 사단에게 잠식당하고, 이 작은 전투에서의 패배는 큰 전쟁의 패배로 이어지니 인생과 가정과 가문과 교회가 재앙으로 들어가는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불평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마음에 불만족에 감사로 대응하면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결국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내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대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이 고백입니다. 감사를 통해서 놀라운 복을 누리는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런데 특별히 더 큰 은혜를 받은 분들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유월절에는 모두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장자의 죽음으로부터 넘어갔죠. 그런데 그 중에서 더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장남입니다. 그날 밤에 피를 안바르면 누가 죽습니까? 장남이 죽습니다. 제일 긴장하는 사람이 누굴까요? 부모도 긴장하겠죠. 장남 당사자가 가장 긴장합니다. 피가 잘 발라져 있나? 다시 확인하는 사람이 누굴까요? 장남이에요. 밤 새 한 숨도 못자는 사람이 누굴까요? 장남이에요. 자기 자신의 죽음과 연관된 공포는 실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보면 어머니도 그렇고 주변에 가족들이 수술실로 들어갈 때 하나같이 우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다짐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울면서 들어가는 모습 보이지 말자. 저에게 그런 일이 생겨서 수술실로 들어가는데, 울면안돼 울면안돼. 산타할아버지가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안주셔. 웃기는 생각하면서 안울면서 들어갔어요. 마지막에 웃으면서 들어갔어요. 속으로, 아 카리스마 있어. 수술실 들어가서, 마취하면서 울었어요. 그런데 제 동생과 제 아내가 저를 보면서 들어가는 모습이 공포에 질려 있는 얼굴이었대요.
자신의 죽음과 연관이 되는 상황이면, 부모가 아무리 아파 보여도 본인이 가장 공포스럽습니다. 유월절 밤에 장남이 느끼는 공포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비와서 이슬에 씻길까봐 피를 다시 발랐다면 누굴까요? 장남이에요. 그래서 유월절에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사람? 그 은혜를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은 바로 장자, 장남들이에요. 이들은 절대로 잊으면 안되는 거에요. 장남들이 은혜를 망각하고 원망한다? 하나님은 더 크게 진노하십니다.
민수기 13장에 보면 12 정탐꾼이 나옵니다. 누굴까요? 각 족속의 족장입니다. 이들은 장남입니다. 이들이야 말로 그날 밤을 잊으면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 10명이 불평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굉장히 진노하시죠. 민수기 14장 36절을 보겠습니다.
(민 14:36-37)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대요. 하나님이 재앙으로 죽여 버리십니다. 여기서 재앙은 마게파. 전염병을 의미합니다. 전염병이고 역병이면 모두 죽거야 하는데 대다수가 죽어야 하는데 정확하게 불평한 자들, 모세를 원망하게 한 자들만 죽게 하십니다. 그들만 죽여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거에요. 불평한 자들만 죽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장치로 역병을 사용하시는 겁니다.
교회안에는 다 구원의 은혜를 입고 받았습니다.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더 큰 은혜를 입었다? 이런 고백을 할 사람들이 이 중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었으면 잊으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의 특별한 만지심, 보호하심, 특별한 은혜를 누리신 분들이 감격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 무엇보다도 슬퍼하십니다.
하나니의 공평은 사람의 공평과 다릅니다. 분배의 공평이 아닙니다. 자족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공평은 5달란트 주기도 하고 2달란트 주기도 하고 1달란트를 주기도 합니다. 분배의 공평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공평은 많이 주신 자에게 많이 요구하신다는 겁니다. 많은 은혜를 베푼자에게 더 큰 기대가 있다는 겁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아포슬에서 설교 하실 때, 청년들이 큰 은혜를 받습니다. 정말 도움이 되는 말씀을 많이 해 주십니다. 그런데 저도 정말로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 중에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더 많이 필요하고 더 무릎을 꿇어야 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 저와 디렉터인 김대경 목사님이십니다. 라고 하셨어요. 절감합니다. 더 무릎을 꿇어야 하고 더 기도해야 하고 더 열심히 섬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저는 더 나아가, 더 아픈자, 더 고통당하는 자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주님이 사랑하시면, 주를 의지하지 않고는 이 땅을 살아갈 수 없게끔 장치를 해 주셨습니다. 너무 귀한 분들입니다. 감사로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감사를 통해 정말로 크게 기뻐하시고 영광받으실 것입니다.
2. (광야) 교회의 존재 목적
자, 그러면 하나님은 이 광야 교회를 왜 시작하셨을까요? 이 교회, 그리고 오늘날의 교회의 존재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것을 하나님께서 광야교회를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1) 하나님을 섬김: 예배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유월절 사건이 있고 난 다음에 바로가 한 고백에서 이 광야교회의 존재 목적이 드러납니다.
(출 12: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이 교회의 존재 목적은 바로 여호와를 섬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바드는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칼 명령법 이인칭 남성 복수로 이브두 에트 아도나이. 여호와가 목적어로 쓰이면서 예배하다로 쓰입니다.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유일한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제 일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겁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시간인 겁니다. 사실 다 중요합니다. 교제, 전도, 교육 훈련,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종착점은 예배입니다. 선교도 그곳에 예배가 없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인 겁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백성을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 지었다고 합니다. 테힐라. 예배의 행위로서의 찬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시간이 바로 예배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이 바로 교회의 존재 목적의 시간이라는 겁니다. 예배시간을 우리는 놓치면 안되는 겁니다. 우리가 지음받은 목적대로 사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에 빠지지 마시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배 시간에 은혜를 주시고 감격과 새로운 힘을 주십니다. 그러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은혜 받는 것은 두 번째 문제입니다. 때로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고, 여러분이 이 자리를 나왔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겁니다. 그것으로 목적을 달성한 겁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이 자리에 나오기 까지 얼마나 많은 방해 세력이 있었겠습니까? 이 한번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지하교회에서, 핍박받는 지역에서는 숨어서 예배를 드립니다. 마음으로 하나님 섬기면 되었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형식적인 예배를 목숨 걸고 드리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존재 목적이라서 그들은 가장 급박한 순간, 그들의 존재 목적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숨 내 놓고 예배를 모여서 드릴려고 하는 겁니다. 가장 순수한 핍박과 박해의 순간에 존재 목적대로 움직이는 겁니다.
예배 참석은 기본입니다. 박영선 목사님의 책 믿음에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기본을 무시하고 다른 것을 하면 안됩니다. 예배를 등한시하면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어떤 학생이 미국으로 8주 코스 어학연수를 떠납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탔습니다. 스튜어디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코크 or 스프라이트? 예스. 라고 했습니다. 아. 영어를 못하는구나, 그래서 콜라를 갖다 주었다고 합니다. 8주가 지나고 그 학생이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또 그 스튜어디스가 만났다고 합니다. 또 물었어요. 코크 or 스프라이트? 예압. 이라고 했답니다. 기본이 안되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기본이 없이 겉멋만 들면 안됩니다.
예배는 기본입니다. 가장 근원적인 것입니다. 기본을 가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 군대: 훈련소
그런데 교회에 또 다른 기능이 있습니다. 바로 훈련소의 기능이에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예배는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그런데교회가 수행하는 기가 막힌 복의 기능이 바로 훈련의 기능이에요.
(출 12:41)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출애굽기 12장 4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정의하시죠? 바로 여호와의 군대라고 선포하시고 정의내리십니다. 방금까지 노예였습니다. 애굽의 종살이 하던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군대라고 정의내리십니다. 출애굽의 시작은 하나님의 군대의 시작입니다. 교회의 시작은 바로 하나님의 군대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는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하나님의 군대가 훈련 받아야 할 훈련소의 기능을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병영으로 보고 계시는 거에요. 왜냐? 이 땅의 모든 일들이 사실은 영적 전쟁의 상황가운데 놓여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인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훈련생활을 하는 겁니다. 그럼 제가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군인이 된다면 기본 군사 훈련을 받아야 합니까? 안받아야 합니까? 받아야 합니다. 대다수 사격은 대충 합니다. 앞으로 가 옆으로 가 대충 합니다. 비비탄 총 다 쏴 봤고, 장난감 총으로 놀아본 경험도 있고, 체육시간에 줄 맞춰 대형을 이루는 것도 다 어느 정도 배워서 압니다. 그러나 대충 할 줄 안다고 훈련을 안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감옥에 갑니다. 그 전에 맞기도 하겠죠.
놀랍게도 교회도 같습니다. 대충 성경 읽을 줄 압니다. 기도도 대 충 어떻게 하는지는 압니다.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금요철야 나오셔서 뜨겁게 기도하는 훈련도 받아야 하고, 중보기도 학교도 해야 합니다. 예수생명리딩바이블을 통해서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읽기도 훈련 받아야 합니다. 베스트 성경대학을 통해 성경 각권을 어떻게 조망해야 하는지도 배워야 합니다. 제자사역훈련을 통해 암송, 큐티, 독서, 토론, 나눔의 방식, 나눔을 이끄는 방식 다 훈련받아야 합니다. 트레이닝을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다 훈련받으시는 군사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옛 습성을 벗어버리게 됩니다. 소위 군대에서는 사회 물을 뺀다고 하죠? 교회는 옛 습성을 벗어버리는 곳입니다. 영적 전쟁을 위해서 세상의 물을 빼야 하고 옛 습성을 빼야 하는 겁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어제, 대구성시화 연합예배가 있었습니다. 청년들과 사역자들이 함께 참석을 했습니다. 가서 특송도 했는데 거기 주 강사가 이재훈 목사님이셨습니다. 기가 막힌 설교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중에 한 예화가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부목사님 한분이 지방에 담임 목사로 청빙을 받아서 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부흥회를 하는데 격려차원에서 가서 집회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목사님이 이재훈 목사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떤 나이드신 리더분께서 자기를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젊은 목사가 부임했으니, 자기가 조언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듣겠습니다. 자기가 여러 담임 목사님을 거치면서 정말로 듣기 싫은 세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새롭게 담임 목사님이 오실 때 마다 3가지를 공통적으로 강조하는데 저는 이 세가지 단어가 너무 싫습니다. 무슨단어입니까? 첫째가 다음세대. 우리 올드 세대가 헌신하고 수고 했는데 다음세대만 중요하다고 하니 섭섭합니다. 둘째 싫은 단어가 땅끝. 가보지도 않은 땅끝 땅끝. 예루살렘이 중요한데 왜 땅끝을 이야기하냐? 세 번째 세신자. 모든 목사님이 세신자. 우리같은 헌신자는 헌신짝처럼 내버려 두고. 3가지 단어가 너무 싫습니다. 제가 든 생각은 우리 교회는 권사님들이 다음세대를 너무 생각해요. 청년부와 교육부서를 위해서 옛날에 그렇게 기도했다고 하네요. 권사님들에게 기도제목을 드리고 기도 부탁할려고 합니다. 땅끝을 너무 부르짖어서 장로님들도 선교 가고, 선교를 위해 목숨거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이 너무 감사하죠. 새신자. 새자족 부서들이 새가족들을 1:1로 캐어 하면서 얼마나 교회의 얼굴로 잘 대접해 주시는지. 이게 다 훈련의 결과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재훈 목사님이 사탄이 교회에 줄기차게 참석한다고 합니다. 예배위원, 교역자들보다 먼저 와서, 그리고 주차장에 상주하면서 갈 때 올 때 시험들게 한다고 합니다. 교회는 전쟁을 위해 훈련받는 곳입니다. 전쟁하는 곳입니다. 옛 습성을 없애는 기간이 바로 교회의 훈련입니다. 교회에 오지도 않는 분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모릅니다. 교회를 통해 훈련받고 훈련받은대로 사영하여 교회에서 열매가 맺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 생활이 중요한 겁니다. 교회에서는 옛 습성을 없내는 장소이자 기간입니다. 신자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군대는 단체 생활을 하죠? 교회도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훈련 방법은 공동체 훈련입니다. 예수님도 제자 1명이 아니라 12명을 선택하셨습니다. 부대끼면서 성장시키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반드시 공동체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훈련이 됩니다. 그래야 효과가 있습니다. 절대 혼자 신앙생활해서는 성장이 없습니다. 단언컨대 없습니다. 교회가 없으면 얼마나 시험들기 쉽고 연약한 존재인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가나안 교인이라고 있습니다. 거꾸로 하면 안나가. 안나가 교인이 한국에 100만명이 있다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그분들 하는 이야기가 한결같습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다. 목회자가 타락했다. 갈만한 교회가 없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사람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은 뭐라고 생각하실까요? 교회를 세우신 분이 누구에요? 하나님입니다. 갈 군대가 없네 공군 육군 해군 다 썩었네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죠. 문제가 있지만 여전히 군대에서 훈련이 일어나는 겁니다. 군대를 통해서 국방이 지켜지고 있습니다. 교회도 문제는 여전히 많습니다. 당연하죠. 사람이 모인 곳인데. 죄인이 모인 곳인데. 훈련을 통해 성장해야 할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 어떻게 완벽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뭔가? 훈련되어야 하고 공동체로 모여야 한다는 겁니다. 그분들께는 너무 죄송한 말씀이지만, 너무 교만하십니다. 자기들이 갈만한 교회가 없대요. 갈만한 목회자가 없대요. 다 목회자보다 자기가 신앙적으로 위에요. 세상 웬만한 교회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세상에 그보다 교만한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가나안 교회 현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현상이 아님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훈련의 장인 교회에서 기본을 훈련받으시길 바랍니다.교회는 당연히 인간이 모인곳이라 부족한 것이 있지만, 여기서 정예 군인이 만들어 집니다. 훈련이 일어납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가정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개인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겸손히 교회 공동체에서, 훈련에 뛰어드셔서 변화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터인 이 삶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교회와 우리 신앙
이러한 교회는 결국 존재 목적이 예배이고 훈련소의 기능을 감당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관련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우리가 첫 번째로 알아야 하는 것이 냉엄한 현실 인식입니다.
1) 냉엄한 현실 인식
(출 12:37-38)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37절과 38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놀랍게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만 출애굽을 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잡족이 함께 출애굽을 했습니다. 그들이 함께 광야로 나아왔습니다.
광야 교회는 순수하게 구원 받은 백성만 있었던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유가 있어요. 예수님이 마가복음 4장과 마태복음 13장에 비유를 말씀하시죠. 농부가 알곡을 뿌립니다. 그런데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심습니다. 일꾼이 주인에게 말하죠. 이 가라지들을 다 뽑아 버릴까요? 아니다. 추수때까지 내버려 두라. 알곡이 같이 뽑힐까 하노라. 겉으로는 구분이 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뿌리가 서로 엉켜 있어서 같이 뽑힌다는 거에요. 그래서 추수때까지 내버려 두라는 겁니다. 교회는 양도 있고 염소도 있다는 겁니다.
교회라는 공동체에 대해서 정확한 현실 인식을 해야 합니다. 교회는 절대적으로 이상적 공동체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처음의 이스라엘 백성들, 즉 광야 교회 조차도 이스라엘 백성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잡족이 있었다는 겁니다. 교회도 유감스럽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상적으로 교회를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이상적 교회를 세우고 싶어합니다. 신앙 좋은 사람들만의 공동체로 세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합니다. 교회 안에는 언제나 잡족이 있고, 언제가 가라지도 있고 언제나 염소도 자라고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 더, 신앙에 따른 믿음의 그레이드도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그러므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상적 공동체가 아니라는 거에요. 교회가 이럴 수 있냐?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뭘까요? 어떤 사람이 가라지인지 살피는 것일까요? 아니에요. 내가 가라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병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잡족의 행태를 보이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성장이 없다? 성장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장이 없다는 것은 병들었다는 겁니다.
민수기 11장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민 11: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놀랍게도 섞여 있는 잡족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섞여 사는 다른인종들이 탐욕을 품어요. 그리고 고기를 달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동합니다. 애굽에서는 생선도 있고, 오이도 있고, 참외, 부추, 파, 마늘이 있었다고 추억하게 만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게 된 원인제공을 누가 합니까? 바로 섞여 사는 잡족이 하는 겁니다. 교회에서 사실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면, 불평을 많이 하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가라지 노릇을 한 것입니다. 섞여 사는 인종과 같은 것을 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내가 불평의 근원지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감사의 근원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감사의 근원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웝합니다. 병들지 않기를위해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인도
13장에 보면 출애굽 출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3장 21절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출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출애굽 하는 장면에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심이 등장합니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비록 문제가 있을지라도 비록 다툼도 많고 이상적이지 못해도 귀한 공동체인 이유가 뭐냐? 바로 여호와께서 교회 앞에서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머무는 곳입니다. 특별히 대구동신교회는 더 큰 은혜의 손길이 머무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귀한 공동체가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대구동신교회만이 아닙니다. 어떤 교회든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십니다.
특별히 대구동신교회는 김창렴 목사님을 통해서 선교하는 공동체로 만들어 주시고 권성수 원로목사님을 통해서 생명사역하는 폭발적 성장을 이룬 공동체로 만들어 주시고, 문대원 목사님을 통해서 한국교회를 이끄는교회로 이끄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앞으로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출 40:36-37)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40장에 보면 구름이 떠오르면 나아가고, 머무르면 머무는 겁니다. 몇날 며칠이라두요.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우리가 보기에 아니라도 그래도 가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보기에 가야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멈추라고 하면 멈추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민감히 듣기 위해서 날마다 노력해야 합니다.
이는 비단교회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가라면 가고, 멈추라면 멈추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했지만, 가라고 해서 갑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슨 일을 당할지 알지 못하나 가는 겁니다. 우리 인생도 하나님이 가라 명령하시면 무슨일이 있을지 몰라도 앞으로 가는 겁니다. 하나님은 한 걸음만 보여주십니다. 10걸음은 보여 주시질 않습니다. 소경에게 100미터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줘 봤자 다 허사입니다. 바로 앞에만 알려주면 됩니다. 우리에게 100일뒤의 일을 알려 줄 필요도 없고, 그러면 우리는 그 길을 안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딱 필요한 한 걸음만 보여주십니다. 갈바를 알지 못하고 가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길을 걷다 보니, 뒤를 돌아 봤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손길과 발자취를 느끼며 감사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동행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길이 가장 안전합니다. 가장 귀하고 복된 길입니다. 그 길을 걸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3) 우리의 새로운 시작
한해를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마무리 하고 감사함으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합니다.
(출 12:42)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유월절 마지막밤, 그리고 그 출발, 그리고 유월절 규례를 주십니다. 기억하라는 겁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교회의 새로운 출발, 새로운 여정의 출발은 광야길입니다. 어렵습니다. 기억하며 가면 됩니다. 여호와의 밤을 기억하고 유월절의 정신을 기억하며, 피 값주고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예배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지만, 이것이 존재 목적이지만,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기억과 기념이 이루어집니다. 은혜를 기억하게 됩니다. 은혜가 흘러 넘치게 됩니다. 우리는 이 힘으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달려오셨습니다. 고난의 길을 걸으셨던 분도 계시고, 아픔을 겪으신 분도 계시고, 자녀의 수능 뒷바라지로 고생하셨던 분들도 계십니다. 한해동안 정말 쉼없이 달려오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로 모여서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은 연초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말에 해야 합니다. 한해의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마무리가 아름다워야 합니다.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결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약속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마무리부터 다음의 시작을 미리 생각해야 합니다. 연초에 다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을 계획해야 합니다. 2023년의 출발을 힘차게 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하며 신앙생활
예배를 소중히->훈련에 뛰어 들어->하나님의 인도
저는 여러분들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지금부터 은혜로 감사하며 신앙생활하기를 다짐하기를 소망합니다. 내년에는 예배를 소중히 여기기로 굳게 마음먹기를 소망합니다. 내년에 훈련에 뛰어들기로 지금부터 작정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멋지게 도약하기를 지금부터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경험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교회는 인간의 계획 아님/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
2. 하나님의 기대: 감사
3. 교회의 존재 목적: 하나님을 섬김/예배
4. 교회는 군대/훈련
5. 교회는 이상적이지 않음/섞여 있음/알곡과 가라지
6. 교회는 하나님이 앞에서 인도하시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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