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받으신 시험(마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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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진 사건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시험하는 마귀와 그것을 물리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시험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모습과 참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오늘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신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마귀라고 번역하는 이 단어는 디아볼로스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디아볼로스를 흔히 악마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 단어의 뜻은 비방자, 고소하는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비방하고 고소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시키려 합니다. 마귀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는 시험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시키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시험을 받으시면서 광야로 가십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러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아담의 때와 같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도리어 이 시험은 하나님의 의도적인 목적을 위해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십니다. 광야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광야에서 시험을 받는 장면은 이스라엘의 경험을 회상시킵니다. 마태복음을 읽는 유대인들도 이스라엘의 경험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사실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다는 사실은 시내산에서 모세의 경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들은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실패를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그 광야에서 메시야로서 이스라엘의 모범이 되어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어서 나오는 세 가지의 시험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은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배고픔을 느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인데 뭐가 부족해서 배고픔을 느껴야 되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같은 존귀한 위치에 있으면 부족함보다 풍족하고 평안함을 누려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합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이렇게 말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결핍없이, 조금 풍족하게 살아야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지위에 어울리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본문에서 이러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자는 마귀이며 예수님은 이러한 방향성을 거부하고 계십니다. 돌들로 떡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기적을 행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메시야는 구원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인가? 라는 물음에서 예수님은 이 시험을 통하여 분명히 하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의 현 상황은 로마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드러내셨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시도들을 하였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그러한 의도들을 물리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시험을 통하여 자신이 메시야임을 증명함과 동시에 어던 메시야인지를 보여주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구원이라는 개념을 현재 못사는 것에서 벗어나 잘 사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명기 8:3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경제적 풍요때문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지금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메시야 즉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 우리는 어떤 구원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구원은 무엇입니까? 그 기대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과 우리의 나아갈 신앙의 방향이 어찌되는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좋은 것을 설정하고 예수님을 그것을 이루어주는 도구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오셨음을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이어서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데려갑니다. 이 때 성전의 주요 건물들의 높이는 대략 55m정도가 되었습니다. 마귀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려 보아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성전이 어떤 곳입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유대인들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뛰어내린다면 그리고 천사들로 인해 보호받으며 멋있게 착지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구경꾼들 앞에서 놀라운 효과와 함께 예수님의 메시아로서 즉각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신뢰하는 자에게 약속해주신 육체적인 보호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을 강요함으로서 뛰어내리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과 그의 관계에 대한 의심들을 없애는 것은 어떨까요? 이러한 행위는 마치 이스라엘이 므리바에서 여호와를 시험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출애굽기 17장 7절에서 이스라엘은 물을 달라고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믿음의 기도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외의 대상이 되시지 도구가 되시지 않습니다. 이후에 보면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모두가 환영합니다. 겉옷을 깔아서 길을 만들고 종려나무 잎을 흔들며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찬양하는 그 이면에는 자신이 설정한 성공과 자신이 설정한 메시야상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대한 메시야의 행동이 보이지 않을 때 그들은 전부 떠나 버립니다. 이런 행동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정해놓고 이렇게 하면 메시야이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메시야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후에 장소가 다시 옮겨집니다. 예수님과 마귀는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게됩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바라보는 장면은 모세가 느보 산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던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이곳에서 성경은 암시적으로 마귀의 세상에 대한 통치를 언급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한 목적을 알고 마귀는 그 목적의 성취를 조건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십자가와 그 모든 싸움과 고난 없이 예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것을 거부하심으로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손쉬운 길을 단호하게 거부하셨습니다. 이러한 유혹을 통해 처음으로 마귀의 진짜 목적을 드러내는 이름 사탄이 나옵니다. 그 이름은 대적자, 원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이름은 하나님과 구원계획의 원수입니다. 우리는 종종 어떤 행위들에 대하여 합리화를 시키곤 합니다. 때문에 선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것을 이루어가는 수단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오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있는 어떤 선한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선한행위나 선한목적 예를 들어 교회를 부흥시킨다던지 전도를 한다던지 이런 것이 된다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효율성의 원리에 잡아먹히게 되고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선한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목적을 선한 방법대로 이루어가는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이 땅에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는 그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마귀는 세 번째 시험을 통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그 목적을 부각시키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없애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귀에게 사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원수라고 말슴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교회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교제, 성도간의 관계, 교제보다 어떤 일과 목적이 우선시 된다면, 그로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기보다 그일로 인하여 우리의 관계와 사랑이 깨어진다면 그것에 대하여 명확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하나씩 물리치시면서 나는 이런 메시야로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각 시험을 이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떡으로 살아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며, 내가 하나님을 정의하며 선한것과 올바른 것을 정의하면서 하나님을 그에 맞추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에 순종하며 우리의 목적이나 영광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지금 여기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의 삶과 사랑을 나누는 그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와 성도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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