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담대하라(여호수아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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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고등학교 쫄지마 키안커
좋은 말일까? 나쁜 말일까? 그것은 무엇에 대하여 라는 질문에 달려있다.
정말로 그것이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함으로 자리잡으려면 어떻게 무엇을 통해서 라는 것이 우리에게 구체화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을 때(실제로 체벌의 시간) 그것은 산산조각나고 만다.
모세의 죽음 이후 여호수아는 그 자리를 물려받았습니다.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가 지정되었고 이제 여호수아는 모세의 자리를 이어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어떤 사람입니까? 신명기 34장 10-12절에는 모세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라고 말입니다. 여호수아도 분명 신실하고 능력있는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모세와 비교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그것은 여호수아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여호수아서 전반에 걸쳐서 나오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서는 하나님이 과거에 약속한 것이 현재 어떻게 성취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계명이 어떻게 이행되고 있는지에 대하여 큰 관심을 두고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즉 모세가 말한 그 계명과 약속의 실천과 이행이 여호수아서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여호수아가 모세와 자신을 어떻게 비교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모세란 큰 산입니다. 그 앞에만 서면 자신은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모세란 아버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도 모세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여호수아의 본래의 이름은 호세아입니다. 하지만 모세가 호세아에게 새로운 이름인 여호수아를 주게됩니다. 민수기 13장 16절을 보시겠습니다. “이는 모세가 땅을 정탐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 땅 정탐후에 모세는 구원, 구출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호세아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인 여호와를 포함하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여호와의 종으로 불린 반면에 1절은 여호수아를 가르켜 여호와의 종이라는 표현 대신 모세의 수종자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부분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여호수아 스스로나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평가나 생각속에서 여호수아는 모세를 대체할 사람이 아닙니다. 당시 지나가는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같은 대답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4절입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이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서 하나님이 하신 그 약속을 이루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말을 듣고 하나님앞에서 그 사명을 받고 있는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두렵고 떨림으로 가득했을것입니다. 모세의 기적과 리더십, 모세와 다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것을 해결하는 모세의 모습 지난 시간동안 모세의 옆에서 보고 듣고 배웠던 모든 것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 장면이 어딘가 익숙하지 않으십니까? 바로 하나님께 처음 사명을 받을때의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계속해서 나는 부족합니다. 할 수 없습니다를 외쳤던 모세의 모습이 바로 오늘의 여호수아의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지금은 한없이 큰 산처럼 여겨지는 모세도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이어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5-9절입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두렵고 자신없어 하는 여호수아를 격려해 주십니다. 모세가 왜 위대했습니까?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향한 최고의 찬사로 성경은 모세를 여호와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위대한 지도자였던 이유는 내가 함께 있어서이다. 그런 내가 이제 너와 함께하며 너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아니하겠다. 그렇게 될 때 네 평생에 너를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격려의 말을 하신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강하고 담대하라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강하고 담대하라 라는 명령 두 가지를 통해서 구체화 됩니다. 그것은 무엇에 대하여, 그리고 무엇을 통하여입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무엇에 대하여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까? 7절입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고 약속하신 이상 그 다음에 여호수아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 위에서 강하고 담대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은 삶의 지침입니다. 그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올바름이 선포됩니다. 원어적인 의미를 살려 말하자면 그 명령은 이렇습니다. “너는 마음을 굳건하게 하고 용기를 내어 율법을 지켜라” 이제 여호수아를 필두로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광야에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길을 가느냐 가지 않느냐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습니다. 수많은 신들이 있고 저마다의 행복을 외치며 유혹하는 수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그곳을 앞두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오직 강하고 담대하여 즉 마음을 굳건하게 하고 용기를 내어서 율법을 지켜라 다른 신들에게 다른 우상에게 다른 법들과 다른 쾌락에 마음을 빼앗기지말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 율법을 붙들어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너의 길이 평탄하고 형통하게 된다고 약속하십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매주 세상이라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는 우리를 유혹하고 미혹하는 수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돈이, 명예가, 쾌락이 저마다 자신들이 옳다면서 자신들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우리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거기서 우리는 오직 강하고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고 살아갈때에 우리는 이 길이 맞나? 저 길로 가야하지는 않을까? 라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굳건히 함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그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강하고 담대함은 무엇을 통하여 이루어집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9절에서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함께 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군가 취업을 걱정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와서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져 줄게 라고 한다면 그 두려움과 걱정이 사라지겠습니까? 저 사람이 어떻게 책임진다는거지, 혹은 으레 하는 격려쯤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 사람이 돈이 많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면 마음속에 조그마한 기대가 생깁니다. 조금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어떤 대기업에 높은 위치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조그마한 기대가 더 생깁니다. 저정도 위치에 있으면 나 하나쯤은 취업시켜줄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알고보니 그 사람이 삼성의 이재용부회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취업을 걱정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근거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여호수아가 이런말을 출애굽 전에 들었다면 지금과 같은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누구입니까? 이제 단 2명밖에 안남은 출애굽 1세대입니다. 애굽에서의 10가지 재앙과 홍해를 건넌사건 불기둥과 구름기둥과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을 전부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직접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주님의 백성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 약속의 감격과 이해는 우리 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해져 갈 때마다 더욱 커져가고 분명해 집니다. 하나님의 창조주되심, 통치하심, 구원하심의 사역들이 내 삶에서 깨달아지고 이해되어질때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는 약속의 은혜는 더욱 커져가고 그 은혜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점점 더 강하고 담대하게 걸어 나갈 수 있습니다. 성경안에는 수많은 약속들과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동일하게 약속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해질 때 마다 더욱더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담대하게 살아나갈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은혜를 받았다 라고 표현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가나안 땅에서도 오직 강하고 담대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잘 지켰습니다. 24장 14-15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결국 모세의 수종드는 자로 시작한 여호수아의 삶은 여호와의 종으로 마무리 되게 됩니다. 24장 29절입니다.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여호와의 종이었던 모세의 뒤를 이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여호수아는 이제 없습니다. 강하고 담대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잘 지키고 오직 여호와를 섬긴 여호수아는 모세를 섬기는 자에서 여호와의 종으로 생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모두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들을 수식하는 최고의 수식어를 보십시오. 여호와의 종입니다. 여호와의 종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감에 있어 흔들리지 말고 오직 강하고 담대함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또 매일매일을 세상속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안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이 더해져 갈수록 그 하나님을 믿고 더욱 강하고 담대하여 지고 우리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해져 갈수록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고백속에서 더욱 굳건한 믿음과 평안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