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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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9:16–24 (NKRV)
16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17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18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19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22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23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평정한 후 취한 일련의 태도에 대해서 다윗의 감정적인 대응과 또 편파적이고 일관성 없는 태도와 공의롭지 못함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중에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또 한 번의 난(亂)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다윗이 펼치는 정책에는 한 가지 일관되게 흐르는 정신있습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죽음에 대하여 극도로 슬퍼하거나, 자신을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는 유다 지파에게 자신의 왕권 회복에 대한 주도권을 맡기는가 하며, 또 자기에게 직접 칼을 겨누었던 압살롬의 군대 장관 아마사마저 용서하며 자기의 군대 장관으로 삼겠다고 약속하는 등. 이런 행동은 사실상 세상 정치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일관성도 없고, 감정적이고, 공의롭지 못한 처사라고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꿈꾸는 하나님 나라는 궁극적으로 평화의 나라로서, 그 나라는 죄인들 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할 수 있는대로 모든 사람들이 화평을 이루는 나라였던 것입니다. 다윗 자신은 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사람이지만 그런 다윗을 통해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변함없이 세워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 이기적인 인간들 가운데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이것은 오늘 본문에서도 나타납니다. '인간의 연약함 가운데 세워가시는 하나님나라'를 기조로 삼고 있습니다.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내용인데, 신기하게도 16장에 기록된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도망 칠 때 이야기(16장)와 매우 가깝게 이어져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윗이 똑같은 사람들을 만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교활한 자: 유다 지파의 호위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복귀하는 다윗의 앞에 제일 먼저 나타난 사람은 시므이였습니다. 그는 다윗을 향해 돌을 던지면서, 저주의 말들을 퍼부었던 사람입니다. 다윗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는 자기 속에 담아 두었던 온갖 더러운 찌꺼지들을 속 시원하게 다 쏟아 냈습니다. 그랬던 시므이가 이번에는 다윗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합니다. 아직 다윗이 건재하다는 걸 알게 되자 지난날의 잘못을 사죄하고 갖은 아첨을 떱니다. 다윗의 곁을 지키는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는 시므이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시므이를 용서합니다. 그때도 지금도 다윗은 그를 단칼에 처단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때도, 지금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기회주의자: 또 한 사람.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다윗을 마중 나왔습니다. 간사하고 교활한 방법으로 '사울' 집안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빼돌렸던 사람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다윗에게 큰 도움을 주면서 다윗의 환심을 사서, 거짓말로 자기 주인 므비보셋의 소유를 가로챘던, 결국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 철저히 계산된 기회주의자였죠. 그가 다시 다윗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다름아닌 이전에 자신의 도움을 잊지말아 달라는 싸인이었습니다.
이번 반란으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명백하게 잘못이 드러났어도 다윗은 처벌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무쪼록 모든 면에서 과거의 잘못을 덮어주고, 용서하며, 끌어안는 정책을 폈던 것이죠. 왜냐하면 그것이 이땅에 사랑과 화평을 기조로 하는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수많은 저항을 받습니다. 그 속에 교활하고, 영악하고, 약삭빠른 기회주의자도 있습니다. 다윗이라고 해서 그들을 품는 게 어떻게 쉬웠겠습니까. 다윗도 개인적인 감정을 감추지 못하여 실수도 했어요. 자신의 군대 앞에서 압살롬의 죽음을 너무 슬퍼했던 것, 유다 지파를 너무 의식했던 것, 요압을 미워해서 압살롭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마사를 등용하겠다고 했던 것, 므비보셋의 변명을 듣고도 공정한 판정을 내리지 않은 것 등. 아무리 위대한 다윗이라고 해도 실수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실수를 했고, 안 했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잡혀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다. 다윗은 어쨌거나 모든 백성을 새롭게 하나로 묶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웬만한 건 용서하려는 겁니다. 나라를 위한 일종의 유화정책이죠.
다윗이 왕으로서 개인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민심을 수습하는 모습. 자기를 대적했던 유다 지파를 자신의 선봉에 다시 세우고, 저기를 모욕하고 저주했던 시므이를 용서하고, 자신에게 칼을 들었던 압살롬의 군대장관 아마사를 자신의 군대장관으로 기용하며, 시바를 용서한 것, 게다가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않은 것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향한 그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이 꿈꾸던 하나님 나라는 다윗의 때에 아주 부분적으로 실현이 되어 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하게 세워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이 땅의 완전한 통치자로 오신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다시 오실 그 날에 성취될 것입니다.
그 나라가 이루어지기까지 수많은 저항을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교활하고, 영악하고, 약삭빠른 기회주의자도 있겠죠. 우리 눈에 비치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연약함 가운데 세워가시는 하나님나라'는 변함없이 이땅에 사랑과 화평을 기조로 세워질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바로 그 나라의 동역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기름부으시며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연약이 늘 실수를 만들어 내고, 넘어지게 만들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잡혀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다.
오늘 우리의 호흡이 있는 동안 이 땅을 새롭게 하나로 묶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 지도록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기기 바랍니다. 자신의 감정을 자제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향한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인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 지기 위한 도구가 되어 쓰임받기를 기도하는 아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