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하셨고, 하실 것입니다

사무엘하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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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Word of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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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8:15–27 (NKRV)
15 나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내 앞에 섰고
16 내가 들은즉 을래 강 두 언덕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하더니
17 그가 내가 선 곳으로 나왔는데 그가 나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
18 그가 내게 말할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깊이 잠들매 그가 나를 어루만져서 일으켜 세우며
19 이르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임이라
20 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숫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21 털이 많은 숫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그의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22 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에서 네 나라가 일어나되 그의 권세만 못하리라
23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반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뻔뻔하며 속임수에 능하며
24 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놀랍게 파괴 행위를 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25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속임수를 행하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로운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
26 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니 너는 그 환상을 간직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27 이에 나 다니엘이 지쳐서 여러 날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환상으로 말미암아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
# 환상을 해석하는 가브리엘
환상을 본 다니엘은 "그 뜻을 알고자" 했습니다(15절). 그 때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보내셨고, 그 환상에 대해 해설해 주었습니다. 가브리엘은 환상을 한 줄로 요약부터 하고 시작합니다.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임이라"(17,19절). 성경에서 은 '최후 심판의 때'를 말하기도 하고, '특정한 상황의 끝'을 말하기도 합니다. 19절의 앞 부분에서 이때를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라고 설명합니다. 이 '마친 후'(아하리트)라는 말은 순간이 아니고 마지막 날들, 어떤 일정한 시기를 의미합니다.
다니엘이 본 환상의 해석을 보면 20절의 두 뿔을 가지 숫양은 메데바사의 왕들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21절의 숫양을 쳐서 쓰러뜨리는 숫염소가 헬라의 왕이라고 합니다. 두 눈 사이에 난 큰 뿔이 헬라제국을 다스린 알렉산더 대왕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알렉산더이 거침없이 바사를 공격하여 마침내 멸망시키고 말 것을 뜻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강대국이었던 페르시아가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헬라제국에 패하게 됩니다. 그 때 헬라제국을 다스리던 알렉산더 대왕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면서, 네 명의 장군에 의해 그들의 이름을 딴 네 개의 왕조로 분열이 됩니다(셀레우코스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마케도니아 왕조, 리시마코스 왕조). 그 중에서 8장에서 다니엘이 본 환상과 관련해서 보게 되는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 남쪽 이집트 지역에 있는 프톨레마이오스 왕국과 북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는 셀레우코스 왕국입니다.
다니엘서에서 이 두 왕국을 남방 왕국과 북방 왕국으로 표현했는데 문제는 이 두 왕국의 계속해서 전쟁속에서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이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유대지역이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셀레우코스 왕국의 안티오코스 3세의 정복 전쟁으로 유대지역을 편입시켰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왕들은 편입된 나라들의 현지 문화와 관습을 잘 수용해 주었어요, 하지만 셀루오코스 왕국은 달랐습니다. 헬레니즘 문화의 우월함을 강조하면서 피지배국가의 문화를 탄압하고 헬레니즘화 하도록 강요했어요. 그 가운데 최악의 상황이 바로 안티오코스 4세(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때 일어납니다.
23절에 보면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반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뻔뻔하며 속임수에 능하며" 가브리엘은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하나님에 대한 반역들로 가득 찼고, 반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23절). 즉 그가 네 뿔 중에서 솟아난 작은 뿔로서, 한 때 다른 헬라 제국들 보다 강성하게 되어서 교만해진 안티오커서 4세입니다.
그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재건한 성전을 훼손하고, 제사를 드리는 것을 금지 했을 뿐 아니라, 성전에서 돼지 피로 이방 신에게 제사를 드리며 그 피를 유대인들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이것을 거부하는 백성들은 모조리 죽이는 등의 핍박을 일삼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스스로를 ‘신의 현현(顯現)’이라고 주장하며 자기 이름을 ‘에피파네스’(현현)로 부르면서 스스로를 신격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를 신격화하여 교만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할지라도 마침내는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않고 깨어지리라는 25절의 예언처럼 실제로 그는 사람의 손 댐 없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갑자기 죽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적그리스도로 예표되는 이 한 왕이 아닙니다. 마지막 때에 반역자들로 가득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는 거예요. 이스라엘은 달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지배한 제국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대제사장직을 매매하고, 경쟁하다가 대학살을 벌일 정도로 성직 사회가 타락했습니다. 그들에게서 하나님이 아침저녁으로 제사를 받고 싶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왜 이천삼백 주야(14절)를 침묵하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제사를 못 드린 이천삼백 주야는 하나님의 침묵의 시간이 아니고 심판의 시간이었습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광란을 벌였지만 그에게 넘겨주신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심판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고, 하나님에게서 끝이 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끝날 무렵, 뻔뻔하고 교활하고 파괴적인 안티오코스 4세도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25절) 하나님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한 마디로 다니엘이 본 환상은 다니엘 당시의 일이 아니라 '정한 때 끝에 관한 것'(17,19절) 여기서 '정한 때의 끝'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특별한 시간을 말하며, 그 기간은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징계하시는 기간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기 전까지의 죄가 아니라,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 또 다시 그들이 범죄하게 되는 죄를 말하는데, 이에 대한 징계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작은 뿔의 성전 훼손과 유다 백성들에 대한 핍박이 있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다니엘의 관점에서 이 환상은 장차 이루어질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안티오코스 4세 이후의 시대에서 보면 이 환상은 과거의 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있든지 이 환상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에게 요구되는 하나님의 뜻은 같습니다. 반역의 자리를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그 자체가 심판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들의 죄가 가득 할 때가지 심판을 미루셨다는 것은, 그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셔서 마지막 뿔을 꺾으실 시간입니다.
성도여러분, 이 일들은 장차 이루어질 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교회가 직면한 내용일 수도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합니다. 마라나타를 외치며 언제 주님이 오실지 궁금해 하지만 정작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성소와 백성들들이 짓밟히도록 내어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역사를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 시간을 뚫고 우리 가운데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던 것처럼, 다시 오실 주님의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그 날이 가까워 옴에 따라 우리의 삶이 더 순결하고, 우리의 신앙이 더 견고해 지기를 기도하는 하루가 되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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