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기에 좋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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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인간의 마음
미국 언론계의 최고 권위 있는 상이라고 하는 퓰리처상이 매년 그 해 가장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물에게 수여됩니다. 1981년에는 워싱턴 포스트지에 <지미의 세계>라는 기사를 쓴 ‘쟈넷 쿡’라는 25세의 젊은 여기자에게 돌아갔습니다. 그 기사는 당시 ‘어린이 마약중독’에 대한 실태를 다룬 르포형태의 기사였습니다. 지미라는 흑인 8세 아이가 부모에게 매일 마약 투여를 당해서 마약중독이 됐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로 공분을 일으키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사회적 문제로 화두가 되어버린 이 사건을 그냥 덮어 둘 수 없어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조사한 결과 모든 내용이 꾸며낸 허위기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언론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으로 꼽히게 됐습니다. 왜 그녀가 허위로 기사를 썼는지 한참 후에 한 변명에서 이랬습니다. “<워싱턴포스트> 같은 일류 신문사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결국 그런 기사를 쓰게 되었다.”는 거였어요. 당시 <위싱턴포스트>지 에는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폭로하면서 닉슨대통령을 사임하게 만든 밥 우드워드라는 전설적인 기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을 뛰어넘고 싶은 마음에서 조작된 소설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공을 세워서 자기 이름을 알리려고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의 자세에도 이런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좀 더 도덕적이고, 좀 더 완벽해지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압박감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의지’가 아닌 ‘자신의 의지’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완벽해지기를 바라시고, 실수하지 않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잘 보이려는 나 자신의 공명심입니다.
정) 무조건적인 사랑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뭔가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 기사를 보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속에서 하루하루 천지창조가 구현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첫째 날에는 빛을 창조하시고, 둘째 날에는 궁창을, 셋째 날에는 바다와 육지와 식물을 창조하시고,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들을, 다섯째 날에는 바다의 생물들과 공중의 새를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섯 때 날에는 땅의 생물들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보실 때 공통으로 보이셨던 반응이 있는데 바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것입니다. 피조물들이 아무것도 하나님께 해드린 것이 없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냥 좋았다고 하십니다. 특히 여섯째 날 사람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좋아하셨을까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천지창조는 우리에게 뭔가를 요구하지 않으셨어요. 단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정)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실 때 빛이 있었고, 궁창 그리고 바다와 육지, 해와 달과 별과 모든 생물과 인간까지. 모든 창조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 곳곳에서 아브라함도 모세도, 모든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시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이를 낳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땅을 차지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승리케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도 자신을 나타내실 때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라고 하나님 스스로를 알리셨잖아요.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시고, 또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이루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처음 임신을 확인할 때는 임신테스트기로 확인해 보잖아요. 그리고 임신한 지 4주쯤 되면 태중에 아이를 가진 부모가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뱃 속에서 자라가는 아기를 맞이하기까지 엽산에 철분, 유산균에 비타민D, 오메가까지 다 아기를 위한 거예요. 마침내 해산하는 날에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그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감동이란. 초음파로 희미하게 보았던 모습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세상을 바라보시는 그 감동은 아마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해산의 수고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품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신 것이고, 보시기에 좋았던 이유입니다.
반)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의 삐뚤어진 모습
그런데 모든 것이 말씀대로 되었지만, 말씀대로 되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에서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불행하게도 사람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의 모습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열매를 먹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진노하셨고 저주하셨습니다.
한 목회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아이가 조건부로만 자신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할 경우, 아이는 나름의 생존전략을 개발하게 된다.” 예를 들면 자신이 뭔가를 이루거나 성공했을 때 또는 착하게 굴고 말을 잘 들을 때만 사랑받는다고 느끼면, 아이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이루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솔직한 생각을 말하기보다 남들에게 사랑받기 위한 말만 한다는 것이죠. 이런 삶의 형태는 그저 생존일 뿐이지 진정한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신 것은 조건적인 관계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르익어 가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모습은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자기 몸을 가리기 위해 입었던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치마는 하나님이 보실 때 꼴불견이었습니다.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가련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숨어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수치스러움이 배어 나왔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본래의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막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던 인간다움에서 멀어지는 게 만듭니다. 삐뚤어진 것이죠.
반) 반인륜적 범죄들
지난 1월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8살짜리 딸을 살해한 뒤 방치했던 아이의 엄마 붙잡혔습니다. 지난 달 징역 30년 형을 받았습니다. 3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부모에게 상습적으로 학대를 받던 8살 딸이 온몸에 멍이 든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뉴스만 틀면 아동학대 사건이 보도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코로나 이후에 아동학대 신고가 2배로 증가했고, 가정폭력이 있었다는 대답이 32%가 된다고 합니다.
한 소아정신과 의사는 신문 인터뷰에서 “코로나 사태로 아동학대가 훨씬 늘었고, 가끔 드러나는 이런 끔찍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위기의 상황에 부닥치면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들고, 충동 조절이 어려움 사람들이 유치원과 학교가 해왔던 기능을 도맡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더 심해져 아동을 학대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반인륜적 범죄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어떻게 처벌할지, 더 높은 수위의 처벌을 고민하고, 반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불순종의 영역에서는 점점 더 하나님이 허락하셨던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나 삐뚤어진 결과물들이 드러나게 되죠.
이 땅의 모든 성도는 아담의 후손입니다. 자연적인 모습으로 볼 때 우리는 눈 뜨고는 못 봐줄 사람들입니다. 도덕과 윤리로 사람의 상태를 변화시켜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삶의 방식, 먹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까지 끊임없이 노력해도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인생을 교정하기 위해서 뭔가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그 끝은 실패와 좌절만 남아 있습니다.
정)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
하나님은 우리가 뭔가를 교정해서, 이루고, 성공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성공이라는 높이 쌓아올린 바벨탑에 자신을 감추고, 하나님을 피해 도망가고, 자신이 이룬 공로라는 이름의 옷으로 가린 꼴불견으로 살지 말라고 우리를 찾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허락하셨던 본래의 자기 자신을 되찾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입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우리 인생을 비난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공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하셨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쓸 수 없는 그릇을 완전히 부숴버리고 다시 만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빚어가는 주인의 마음에 맞는 모습으로 재창조되는 거예요. 이런 위대한 작업으로 재창조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는 사람, 그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마태복음 8장 5절에서 13절에 보면 백부장의 믿음과 순종에 대해 예수님은 놀랍게 여기셨어요. 감탄하신 것이죠.
정) 선하게 여기시다
하나님은 본래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7번의 “좋았더라”라는 말씀은 히브리어 טוֹב(토브)라는 단어를 해석한 것입니다. 의미상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다’, ‘하나님의 뜻에 잘 맞는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목적을 두고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그 목적이 달성되는 것을 선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재창조된 우리가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두고 선하게 여기시며, 이 모습을 보시기에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성도는 어떤 성도인가요? 참된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의 순종과 통치를 통하여 영적 혼돈과 공허를 쫓아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과 충만함이 이루어진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입니다(엡 1:10, 2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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