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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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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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1–5 (NKRV)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저희 집 아이들이 양치를 하고 나면 꼭 저에게 입을 벌리고 옵니다. 좋은 냄새 나는 걸 확인시키고 자기 양치했다고 칭찬해 달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반대로 누군가로부터 모함(오해)을 받거나 욕을 듣고, 인정을 받지 못할 때는 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잘 아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칭찬을 기대하고 삽니다.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 보니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세상에 서서 바라볼 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는 모두 자기의 생계, 자기의 보람, 자기의 업적을 위해서 일하고, 땀 흘리기 때문에 자기가 일하고 수고한 만큼 칭찬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할 때 속상해하고 낙담하게 됩니다.(매슬로우의 존중의 욕구)
이런 모습이 교회 안에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섬기고도 속상한 경우가 언제입니까? 실컷 땀을 흘리며 수고하고 노력해서 뭔가를 했는데 인정받지 못할 때입니다. 꼭 누구 칭찬이 아니더라도 나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좋지 않은 결과로 돌아올 때 그때는 정말 뭘 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 버리는 것을 다들 경험해보셨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어제 제가 경찰서에 다녀왔습니다. 뺑소니로 신고를 받은 경찰이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추적해서 교회로 연락이 온 것입니다. 작년 12월에 두 교구를 맡게 되다 모니 이곳저곳 환우들을 심방했는데 그 과정에서 병원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작은 접촉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런 접촉이 난 줄도 모르고 그냥 주차장을 빠져나왔는데 차주가 뺑소니로 신고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경찰서에 가서 경위서를 작성하고 보험처리를 하고 피해차량 차주에게 사과전화까지 하고 왔습니다. 태어나서 경찰서에 처음 가봤습니다. 돌아오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냐 하면 “심방하기 싫어진다. 내가 이런 꼴 당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했나” 내가 잘못한 게 맞는데도 어떻게 하나님 나한테 이러실 수가 있나? 싶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합니다. 잘한다고 칭찬받으면 기분 좋아서 열정을 쏟아 부으면서, 열심히 일하고도 인정을 못 받고 오히려 문제가 생기면 마음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건 누구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인가요? 바로 나입니다. 과연 나는 지금 누구 때문에 수고하는 것이고, 누구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인가? 나에 대해서 한 꺼풀만 벗겨보니까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수고는 모습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이건 저 한 사람만의 얘기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취할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 할 것인가? 그 결과로 내게 무엇이 주어지는가? 하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보며 산다고 해야 옳습니다. 이런 모습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고린도교회를 보면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서로비방하고, 권모술수에 교만과 분쟁, 싸움과 부도덕한 문제들이 난무한 교회였습니다. 이런 교회가 분열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해 보이죠. 고린도교회가 분열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서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사도 바울까지도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고린도교회를 향해 바울은 사람의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판단만이 중요함을 기억하고 서로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멈추라고 권면합니다.
저는 오늘 이와 같은 사도바울의 권면을 통해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주님의 백성으로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WHO : 그리스도의 일꾼은 누구인가?>
본문 1절에 보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일꾼’이라고 번역된 ‘휘페레타스’라는 단어와 ‘맡은 자’라는 ‘오이코노모이’라는 단어는 주인에 대한 종속과 의무가 강조된 동시에 종, 하수인, 관리인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휠씬 더 실질적인 높고 낮음의 지위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자신이 영적으로 부요하며 왕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자랑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뭐가 잘못됐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스스로 왕 노릇 하려는 권위주의적 태도만 문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태도 뒤에는 ‘이 세상의 관원들의 지혜’, 세상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콜로세움의 높은 곳에 마련된 VIP좌석에 앉아서 다른 성도들이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믿음의 싸움을 관람하는 것이 자기들의 역할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도의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지 참다운 예수의 제자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참다운 제자는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낮추시고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결국 많은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 형벌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 십자가가 지니는 종의 형상, 섬김의 모습을 지니지 못하고 겉으로 보기에 강하게 보이고 다른 형제, 자매들 위에 고압적인 자세로 권세 부리려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은 참 제자라 할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그의 자랑으로 삼은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얻게 될 높은 지위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 이 여러분 중에도 이런 환장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를 판단했습니다. “당신은 이것 때문에 안돼. 당신은 이게 문제야.”
이런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바울은 사람의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판단만이 중요함을 기억하고 서로에 대한 판단을 멈출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이 스스로를 마치 구원이 완성된 사람들인 것처럼 생각하여 왕 노릇하려는 교만도 함께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일부러 더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표현으로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는 비교적 신분이 낮은 종을 나타내며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무례하고 건방진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복음으로 인해 여러 고난과 비천한 경험을 겪고 있는 사도 바울 자신과 동역자들의 모습이 참된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청지기(맡은 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의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1절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를 같은 의미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를 가리키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은 돈, 시간, 노력을 바쳐가면서 교회를 위해서 뭔가를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말을 우리는 쉽게 장로, 권사, 집사, 교사, 성가대원, 뭔가 교회의 일을 맡아서 일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좀 더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를 말합니다.
이 비밀은 무엇입니까? 2:7절에 보면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셨다가 그의 종들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일컫는 말입니다. 또 1:24절에서는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볼 때 하나님의 비밀은 곧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를 충성되게 증거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누가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람이겠습니까? 바로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를 알고, 십자가를 아는 모든 성도가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차원이 아니라 복종의 차원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를 터로 삼고 그 위에 세워져 가는 성전 된 성도를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23절에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 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소유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람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WHAT : 비밀을 맡은 사람>
그러면 비밀을 맡았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윌리엄 맥스웰이 쓴 「목수」(The Carpenter)라는 제목의 책에 보면 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야기를 살펴보면 어느 마을에 정직하게 집을 짓는 목수가 있었는데 그는 모든 면에서 반듯한 사람이었습니다. 톱질을 할 때도 ‘심장박동’에 리듬을 맞춰서 톱질을 하고, 목공용 자와 연필을 사용할 때도 ‘마치 도덕적 원칙을 적용하듯’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반듯한 목수가 일하는 목공소를 찾아와 문을 닫고 그가 일하는 것을 한참씩 지켜보다가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어서 사람들을 그 목수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반듯한 사람이니까 남에게 말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믿음이 가요.” 그러면서 한 가지 비밀을 알려 줍니다. 만약에 그 비밀이 밖으로 새 나가면 마을에 사는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릴 수도 있는 그런 비밀이었습니다. 그 목수는 이런 식으로 본의 아니게 사람들의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되었고, 어느 때부턴가는 자신이 비밀을 보관해 주는 사람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고 비밀 하나를 폭로 했습니다. 얼마 후에 또 하나 누설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그 목수는 이제 나쁜 소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소문 때문에 마을의 어떤 사람은 죽음의 위협을 당할 뻔 했습니다. 결말 부분에 목수는 여전히 톱질을 하고 대패로 나무를 깎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의 톱질과 대패질은 연필이 그려놓은 선을 깔끔하게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제 그의 연장들마저도 정직하지 못한 것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납니다. 비밀이라는 것은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내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을 죽게 만드는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비밀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폭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누설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감춰져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비밀을 맡은 사람은 그 속에 갇힌 비밀 때문에 그 속이 곪아터지고, 썩어서 독이 되고, 급기야 병들게 됩니다.
이것처럼 비밀을 맡았다는 것이 이처럼 큰 멍에가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멍에를 지우시기 위해서 비밀을 맡기셨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 곧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사람의 비밀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았다는 것은 우리 안에서 생명으로 역사하시고, 우리 안에서 병든 것을 고치시는 치유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은혜가 됩니다. 동시에 이 비밀은 폭로되고 누설 되어서 퍼져 나가야 하는 비밀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비밀을 맡기셨습니까? 누가 이 비밀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비밀을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가장 최악인 나에게 하나님께서 이 비밀을 맡기신 이유는 최악인 나를 최고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재윤이 초등학교 입학. 아직 초등학교에 가기에 모자란데. 부모는 이 아이에게 많은 것을 맡긴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최고로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맡기신 것처럼 우리가 최고로 사랑하는 분 또한 하나님이시기를 바랍니다.
<HOW : 그리스도의 일꾼은 어떻게 하나님의 비밀을 폭로하는 하는가?>
(확신 : 확신에 찬 사람은 뭔가 다른 것이 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비밀이 세계 열방 가운데 퍼져나가게 할 수 있습니까? 바로 내 속에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아는 성도가 할 일입니다. 수없이 돌아봐야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모임은 나를 자랑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모이는 것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를 자랑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단지 성도들이 모이면 세상 것으로 살아가고 세상 것을 힘으로 삼는 것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힘으로 삼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것을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세상 것이 있으면 웃고 없으면 낙심하고 염려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새 하늘 새 땅에서 영원히 살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세상 것으로 울거나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라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는 어둠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인 것입니다.
1:23절에 보면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성경대로 드러낼 때 교회는 다니지만 십자가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되기 때문에 반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활동을 위해서 열심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십자가는 자신의 열심을 포기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분명히 그들에게는 거리끼는 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일성수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한 날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날이 거룩하다는 말은 분명 거리끼는 말입니다.
십일조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십일조는 돈이 아니라 내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십일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겠습니까?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하면서 거룩하게 떠받드는 사람들에게 성전은 예배당이 아니라 우리 몸이라고 말한다면 분명 이상한 신학을 말한다고 떠들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힘으로 삼고 있는 이방인들 앞에서도 세상 것을 욕심 내지 않고 주어진 대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미련하게 보일 것은 당연합니다. 보이지도 않는 새 하늘 새 땅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어리석게만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두려워서, 사람들의 반대를 받고 욕을 먹고 싫어할 것이 두려워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을 못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일군으로서 충성되지 못한 모습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도 세상에 뭔가를 두려워한다면 우린 신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 속에서 끄집어내야 할 그리스도를 끄집어 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봉사를 못하고, 헌금을 못하는 것도 뭔가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충성은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충성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이고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할 뿐이다는 것입니다. 설령 그렇게 하다가 어떤 불이익을 당해도 나는 내가 깨달은 하나님의 비밀을 말할 뿐이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판단 받는 것을 매우 작은 일, 즉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습니다. 오직 주님만 판단하실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마지막때 우리를 판단하실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무엇도 두려워 할 필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충성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 때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지십니다. 3-5절 말씀을 보십시오. 3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강도해주고 있습니다.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사도바울의 선언이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손에 맡긴다 고백이 되어서 주의 일꾼으로 자처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해방감을 주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이기 때문에 세상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을 두려워해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두려워 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2절에서 말하는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는 말씀 역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신실함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사람의 비밀을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이 깨달음은 한편으로는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과 함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내리려는 시도를 막아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낙심하지 말고 다시 그리스도의 일꾼답게,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람으로 서십시오.
하나님의 일꾼들이 행한 모든 일들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 칭찬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꾼들은 사람이 높이는 것을 기대하거나 사람들의 판단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칭찬을 바라며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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